Porto→Fátima, Portugal
Day 82.
Saturday, July 15
23시 리스본행 버스를 타고 0시 50분 익숙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곧 파띠마에 도착할 시간에 10분간 휴식이라니 나로선 이해가 안 되었지만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1시 반쯤 드디어 파띠마에 도착했다.
파띠마가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라 불안해서 안 자려고 버텼으나 결국 잠이 들었고 졸다가 깼다.
안개가 자욱한 밤이었다. 자다 일어나서 더 추웠는데 파띠마 버스 터미널에 내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화물칸에서 배낭을 내리고 다시 순례자가 되었다.
차가운 밤공기에 어두운 골목은 유난히 스산했다. 성지엔 대형 로사리오가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아무도 없는 고요한 길을 걸었다. 성지 뒤편에 있는 순례자 숙소까지 무사히 찾아갔다.
2시쯤 도착한 숙소는 문이 닫혀있었는데 초인종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의 어느 창에 불이 하나 켜져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올라~ 하니 누군가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순례자 숙소는 문을 닫았고, 이제는 운영을 안 한단다.
오늘 하루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의 숙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료가 아니거나 하루밖에 머물지 못하는 정도의 상황만을 각오하고 왔다.
이 늦은 시간에 기꺼이 답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어 뒤돌아서는데 미안하다고 해주는 그분이 고마웠다.
허탈과 공포가 몰려왔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게 나은지도 몰랐다.
파띠마 성지 근처 파크 벤치에 배낭을 내렸다. 식수대가 있어서 사과를 씻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배낭을 내리니 더 추워서 배낭을 다시 메었다.
일단 바람 피할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성지로 이동하는데 저 멀리 불빛이 보였고. 가보니 화장실이었다. 두 번째 오는 곳인데도 이 부근에 화장실이 있는 줄 몰랐다. 그냥 주차장을 파크라 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공원이었던 셈이다.
은근히 깨끗했고 무엇보다 입구가 따뜻했다. 벽에 콘센트가 있어서 배낭을 멘 채로 폰 충전을 했다.
건물 반대편에서 남자들의 소리가 들려서 긴장했으나 그저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즐거워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덕분에 안 무서웠다.
그러고 찬찬히 둘러보니 화장실 반대쪽엔 샤워실이 있었다. 물론 샤워실은 잠겨 있었고 사용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긴 하지만 8시가 되면 오픈한다니 최소한 씻을 수는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었다.
이곳 시설은 순례자를 위한 거란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캠핑카뿐만 아니라 텐트도 있었다. 급한 대로 50% 정도 폰 충전이 되자 성지로 들어갔다.
고요한 바깥과는 달리 성지 내에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성모 발현 성당에는 새벽 4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렇게 우연히 미사에 참여했다. 호텔에 묵었더라면 결코 오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솔직히 갈 곳이 없었다. 뻥 뚫린 공간이라 추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따뜻한 분위기에 위안을 삼았다. 더 이상 무섭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미사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연이어 4시 반, 5시, 5시 반, 6시 미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6시 미사 땐 너무 춥고 졸려서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경량 패딩을 꺼내려다 이걸로는 안 될 분위기라 침낭을 꺼내서 둘렀다. 그나마 나았지만 여전히 추웠다.
미사 참여가 아닌데 계속 앉아있으려니 눈치가 보였다. 그 와중에도 졸음이 쏟아져서 꾸벅꾸벅 졸다가 미사가 끝나자 일어났다.
예전에 묵었던 Domus Carmeli (Carmelitas Descalços)가 문을 열었을 것 같아 일단 일어났다. 혹시라도 땀냄새가 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어제 한번 더 씻고 출발할 걸 그랬나 싶었지만 사실 그럴 정신도 없었고 그래 봤자 이동 중에 다시 땀을 흘리게 되니 소용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오로지 씻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문은 열려있었다. 로비 소파에 배낭을 내려놓고 리셉시온 오픈을 기다리며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했다. 까미노가 끝나니 진짜 순례자가 되어 있었다.
제대로 씻지 못하는 중세에는 어떻게 걸었을까? 까미노데 뽀르뚜게스는 시도조차 못해 보고 여기까지 와있었다.
오늘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라도 숙소에 들어가야 했다. 이곳은 트윈룸뿐이라 두 명은 30€, 혼자는 20€에 트윈룸을 쓰게 된다.
스태프가 출근을 해서 일주일을 쓰게 되면 얼마나 할인받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점심 저녁 포함 32€라는 말 뿐이니 결국 할인은 없다는 말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숙소가 되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체크인하겠다고 하니 오늘은 꼼쁠리또란다. 그래, 이렇게 되어야 최악의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거지. 낙담을 하고 있으니 소파에서 푹 쉬다 가라고 먼저 얘기해 주는 스태프, 그라시아스!
배낭을 두고 우선 다른 숙소를 찾으러 나섰다. 혹시 몰라 미리 봐 두었던 파띠마의 숙소 중에서 먼저 Pereira Guesthouse로 갔다.
입구에 서 있던 한 아주머니가 멀리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더니, 내가 다가가자 이 게스트 하우스는 문을 닫았다고 말한다.
그런가 보다 하며 돌아서다 뭔가 이상해서 다시 가보니 그 아주머니는 리셉시온에 앉아있었다. 혹시 경쟁업체인가 싶었으나 내가 찾아간 바로 그 숙소였다. 이건 뭐지?
다시 들어가서 물었다. Pereira Guesthouse 아니냐니깐 당장 나가란다. 화부터 내는 걸 보니 그냥 거부였던 거였다. 내 몰골이 엉망인가 싶었으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
순례자 차별인가 싶었으나 배낭도 없으니 그냥 동양인 차별인 셈이다. 온라인으로 당일 예약을 해버릴까 싶었으나 그렇게까지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른 곳도 몇 군데 더 있었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이들도 그냥 내가 싫은가 보다.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숙소 찾기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이틀을 노숙했는데 하루 더 못하겠나 싶은 맘이 들었다. 다른 숙소는 친절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더 맘 상하는 일이 생기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씻을 수만 있으면 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챙겨 파크내 샤워실로 갔다. 지름길인 왼쪽 길을 두고 오른쪽으로 빙 돌아갔다. 벌써 이용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거의 24시간 만에 씻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돌아와서 배낭을 잘 정리해서 호텔 로비 구석에 놓아두고 나왔다.
양말은 허리에 매달았고 수건은 모자에 얹어서 산책을 나갔는데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어서 Pingo Doce Fátima (09:00~22:00)에 도착하니 거의 다 말라있었다. 수건은 개어서 들고 들어갔지만 숙소가 정해지기 전에는 장을 볼 수 없어 구경만 하고 나왔다.
다시 돌아와서 로비에 앉아있으니 스태프가 뭐라 그런다. 나가서 점심도 먹고 구경도 하고 다니라고. 그런데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게 느껴지니 되려 고마웠다.
다리를 다쳐서 오래 걸을 수 없으니 기다렸다가 내일 체크인하겠다니까 알겠단다. 스페인에서 사 온 초코 비스킷을 배낭에 쑤셔 넣으니 3개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15시쯤 배낭은 구석에 놔두고 복숭아 주스와 초코 비스킷과 경량 패딩을 챙겨서 나왔다.
In 2017, The Shrine of Fátima Celebrates The Centennial of The Apparitions That Were at Its Origin.
Nossa Senhora de Fátima,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 여섯 번 나타났으며 처음 나타난 5월 13일은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세 명의 아이는 루치아 도스 산또스와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꼬 마르또, 히야친따 마르또이다.
대성당을 통해 성지로 들어가니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다.
너무 더워서 일단 대성당 계단 부근에 있는 십자가의 길 벽화 앞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시원하고 좋았다. 오늘 밤은 무사하려나? 그러고 보니 3일째 제대로 된 잠을 못 자고 있는 거였다. 벌 받는 거라 생각하자.
내일은 며칠 체크인을 해야 하나? 최소 이틀은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적당한 리스본 숙소가 나오면 앞당길 수는 있겠지만 아니라면 여기서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이제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다. 돌아갈 때까지 편히 쉴 수 있는 곳만 있으면 된다.
바티칸의 베드로 광장보다 더 넓어서 100만 명이 함께 할 수 있다는 Cova da Iria에 Capelas da Apariçoes가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그제야 그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바로 그 느티나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이제야 하나라도 뜻깊게 보였다. 오늘은 한국어로 미사가 진행되었다.
Cova da Iria 광장을 내려다보며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시는 Monument to the Sacred Heart of Jesus, 예수 성심상 바로 아래에서는 생명과 정화를 뜻하는 성수를 받을 수 있다.
Basilica de Nossa Senhora do Rosario de Fátima는 1928년 기초공사가 시작되어 1953년 10월 7일에 축성되었다. 좌우 회랑에는 예수님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대성당 입구에는 Thomas McGlynn 신부가 조각한 티 없이 깨끗한 성모 신심에 봉헌을 요구하신 성모상이 있다.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성인상들이 있다. St. Teresa of Avila, St. Francis de Sales, Bl. Marcelino de Champagnat, St. John Baptist de la Salle, St. Alphonsus Maria de Ligouri, St. Jonh Bosco, St. Dominic Savio, St. Louis Marie Grignon de Montfort, St. Vincent de Paul, St. Simon Stock, St. Ignatius of Loyola, St. Paul of the Cross, St. Beatrice da Silva.
이제는 공사를 마친 대성당에 들어갔다. 중앙 제대 위에는 성모의 메시지를 성체성사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전해 주는 벽화가 있고 파티마의 기적에 관한 내용들이 성당 내부 벽면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표현되어 있다.
중앙 제대 위의 부조는 하느님이 성모님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이고 왼편으로는 1942년 티 없이 깨끗한 성모 신심을 세계에 공표하시고 파띠마의 성모님께 1946년 관을 씌어주신 교황 비오 12세(Pope Pius XII), 교황 요한 23세(Pope John XXIII)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Pope Paul VI)가 무릎을 꿇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제대 위 천정의 황금색 테두리에는 파띠마 로사리오의 거룩한 여왕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는 뜻이 적혀있다.
'REGINA SACRATISSIMI ROSARII FATIMA ORA PRO NOBIS.'
발현 당시 성모님의 행적들을 나타낸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고 15개의 Chapel 제단에 로사리오의 15 신비가 조각되어 있다.
둥근 모양의 부드러운 십자가는 4방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어느 종교학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가 짧고 아래쪽이 긴 십자가는 위로 상승하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Francisco와 Jacinta, Lucia의 Tombs가 있는데 성모를 처음 만났던 세 어린이 중 제일 큰 루치아 (1907-2005)는 평생을 수녀 생활을 하다가 향년 97세로 2005년 바티칸에서 영면하고, 프란치스꼬 (1908-1919)와 히야친따 (1910-1920)는 1919년 스페인 독감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파띠마의 세 가지 비밀 중의 하나인 공산주의 몰락의 현장인 무너진 베를린 장벽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묵주기도 매 단을 바칠 때마다 외우는 구원송의 시작이 이루어졌던 파티마 성지.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지난번에는 공사 중이라 여기저기 출입제한 라인이 있어서 못 들어가는 줄 알고 바깥만 보고 갔었다. 그러고 보니 루치아, 프란치스꼬, 히야친따의 묘도 오늘 처음 본 셈이다.
지난번엔 왜 대성당 안에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 대성당도 공사를 하고 있어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파띠마 대성당이라고 못 들어갔을까? 이렇게 쉽사리 포기해 버리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Basílica da Santíssima Trindade 건물 외관은 한글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성경 구절을 새겨놓았으며 성당 앞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상이 세워져 있다.
수십 가지 언어로 성서를 적은 창문과 각각의 사도에게 바쳐진 성서 인용구가 적힌 12개 청동문이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도다. 한글도 있다.
내부에는 슬로베니아 예술가 마크로 이반 루프니크의 모자이크 작품과 아일랜드의 예술가 캐서린 그린의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제단 뒤 장식이 있다.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세계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5월 13일이었다. 세 명의 어린이들은 현재의 파티마 교구인 Vita Nova de Ourem 마을의 Cova da Iria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루치아(10세), 그녀의 사촌 프란시스꼬(9세)와 히야친따(7세)였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 아래 양을 쳤는데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성삼위일체 성당에서 성모 발현 소성당에 이르는 200m 정도의 대리석으로 깔린 속죄의 길에는 무릎걸음으로 묵주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을 볼 수 있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에코백 때문에 애매해졌다. 다시 호텔로 돌아갈까 싶었으나 자꾸 들락거리면 신경 쓰일 것 같았고 배낭을 맡기고 와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배낭을 잃어버려도 그다지 미련은 없을 것 같았다.
성지 내 화장실에서 장을 비우고 대성당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미사가 시작되어서 다시 계단 의자로 나왔다. 그런데 점점 추워졌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옮기다 보니 촛불 행렬 자리를 잡는 사람들로 이내 가득 찼다.
처음부터 끝까지 촛불 행렬을 지켜볼 수 있었고 10시 45분쯤 끝이 났다. 그러나 오늘은 예전과 달리 호텔 문이 닫힐까 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Porto→Fátima, Portugal
RENEX Bus
23:00 Porto
00:50~01:00 휴식
01:30 Fátima
○Fátima
●Basílica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Capelas da Apariçoes
●Basílica da Santíssima Trind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