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내 사랑 마리벨 #11

킹스크로스의 결투 2/3

by 안녕
Épisode 9.


이튿날 아침, 여자들이 함께 쓰는 침실 쪽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 싸구려 모텔은 2층 복도를 사이에 두고 여자들 방과 남자들 방이 갈라져 있었다.

"여자들 방에선 아침부터 웬 소동이지?"

"그 마리벨이란 소녀 있잖아. 자기가 도망쳐 나온 남작 집에 다시 들어갔다가 오겠다는 거야."

"돌았군. 잡히는 날이면 큰일이 난다고 제 입으로 말해 놓고선."

"그런데 그녀가 소지품을 몽땅 그 집에 놓고 왔다는 거야. 그걸 가지러 간다는군."

"소지품이래야 떨어진 옷가지 나부랭이겠지 뭐."

"그게 아니래. 중요한 편지와 애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벽걸이 접시인가 뭔가가 있다는 거야."

레안드르는 마리벨이란 소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듣고 보니 그처럼 중요한 물건도 아닌 것을 찾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겠다니 말이다.

"제 고집대로 하라지, 뭐!"

"레안드르, 자네가 함께 가주지 그래?"

"같은 프랑스 사람이란 이유로 내가 위험을 무릎 쓸 놈처럼 보이나?"

"이것 봐. 빗 속에서 그녀를 업어 온 사람이 자네 아닌가? 그러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그런 억지가 어디 있나? 그만두겠어. 난 바보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다가 레안드르는 말을 멈추었다. 어느새 마리벨이 문 가에 서서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레안드르. 처음부터 혼자 갈 생각이었어요."

"고집부리지 말아. 문을 넘기도 전에 잡히고 말 걸."

"천만에요.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어떻게?"

마리벨은 뒤에 감추고 있던 금발머리 가발을 뒤집어쓰고 오른손으로 눈가리개를 했다.

"히야! 정말 몰라보겠는 걸?"

"어때요. 이만하면 됐죠? 이제 분장만 좀 하면 당신들도 날 알아보지 못하게 될 거예요."

마리벨이 분장을 마치고 나왔을 때 문 앞에 웬 멋진 귀족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누구시죠?"

"잔소리 말고 빨리 따라와. 난 굼벵이는 딱 질색이라고."

마리벨은 어리둥절했다.

"누굴 찾으세요?"

"시간이 없대도. 늦어도 가게 문을 여는 열두 시까진 돌아와야 해. 첫 출근부터 늦을 수는 없잖아?"

레안드르였다.

"멋져요! 레안드르 후작님!"

고급스러운 마차에 올라타며 마리벨이 외쳤다.

웨스트엔드에 있는 아서의 집 앞에 마차가 멈췄다.

아서 집안의 집사가 나왔다.

"난 프랑스 망명 귀족 레안드르 후작, 그리고 내 동생 크리메이느 양이야. 아서의 친구지."

두 사람은 곧바로 넓은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아서는 자고 있겠지?"

"보통 때라면 그렇죠. 그러나 오늘은 중대한 일이 있어서요."

레안드르와 마리벨은 서로 쳐다봤다. 잠꾸러기 아서가 정오 가까이까지 자고 있을 것을 예상하고 각본을 짰던 것이다.

"곧 두 분의 내방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럴 필요 없네. 우린 아서를 놀라게 해 주고 싶으니까."

집사는 아첨하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물러갔다.

처음부터 예상은 빗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변장이 완벽하다 해도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각오하고 왔던 두 사람이었다. 이만한 일로 꽁무니를 뺄 수는 없었다.

레안드르를 응접실에 기다리게 하고 마리벨은 자기가 이틀 동안 묵었던 방으로 갔다. 방은 달아나던 날 그대로였다.

마리벨은 쉽사리 자기 짐을 찾아들고 나왔다. 아서의 방문 앞을 지나가다 그녀는 방에서 새어 나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안토니와 아서였다.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좋아, 먼저 로버트와 네가 등을 맞대고 선 자세에서 각각 열 걸음씩 걸어간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서로 돌아서서 공격한다. 한 사람에게 탄환은 두 발씩."

"그때 로버트의 후견인인 자네가 로버트 뒤에 서있다가 그 녀석을 쏘겠다 이 말이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날 쏘기 전에 쏴 버려야 해. 로버트는 명사수니까 실수가 없어야 해."

"염려 마, 이 겁쟁이야."

"그런데 안토니, 내 후견인으로 나선 데니스는 어떻게 하지? 그놈이 어차피 진상을 알게 될 텐데. 그놈의 입을 틀어막을 방법이 없잖아."

"염려 없어. 데니스 놈은 결투 장소에 오지 않을 거야. 어제저녁에 내가 놈에게 일러두었지. 로버트 녀석이 근신 중이라 결투는 성립되지 않을 테니 나타날 필요가 없다고 말이야."

"그렇지만 말이야. 다른 구경꾼도 있을 수 있잖아!"

"그래서 내가 결투 시간을 아침 열 시, 결투 장소를 멀리 떨어진 킹스크로스 숲으로 정한 거야. 그 시간 그 장소에 결투를 구경하러 나올 놈들이란 킹스크로스의 배고픈 참새떼들 뿐일 걸세."

"탄복했어! 정말 자넨 머리가 좋아. 그런데 로버트가 정말 나타날까? 놈은 자택 근신 중이잖아."

"놈은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놈이야.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내가 보장하지. 그러나 만약의 경우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목적은 달성하게 되는 셈이야. 놈이 죽음이 두려워 자기가 제안한 결투를 피했다고 떠벌이는 거야. 놈은 망신살이 뻗치는 거지. 마침내 근신이 해제되는 날 즈음에 놈은 또다시 결투 신청을 하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놈의 생명이 한 달 정도 연장되는 것뿐이지. 우리들의 본래 계획에는 전혀 차질이 없을 거야."

"완벽하군. 암튼 안토니, 자넨 천재야."

"자, 이제 우리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 지금이 아홉 시니까 앞으로 한 시간 남았어."

마리벨은 거기까지 듣고 레안드르에게로 왔다. 두 사람은 잽싸게 아서의 집을 빠져나왔다.

한동안 마리벨은 가슴이 떨려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들은 두 악당의 음모는 너무나도 파렴치하고 비정한 것이었다.

"상상도 못 할 악당들이군!"

"어떡하죠.?"

"어서 랜버트 댁으로 가자. 로버트를 만나 결투를 중지시켜야 해."

랜버트 가의 집사 맥코비도 마리벨을 알아보지 못했다.

"로버트 님은 십분 전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로버트는 분명히 결투 장소로 떠난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나가는 마차를 세웠다. 마차는 서둘러 달려 킹스크로스 숲 근처에 두 사람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삼십만 평이 넘는 넓고 울창한 킹스크로스 숲에서 어떻게 로버트를 찾아낸단 말인가.

마리벨과 레안드르는 나뭇가지에 찔리고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지며 숲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마리벨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이제 잠시 후면 사랑하는 로버트가, 자기의 후견인으로 가장한 악당 안토니의 총을 등 뒤에서 맞고 쓰러질 것이다. 빨리 그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헤매도 숲 속에는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런던탑의 빅벤이 열 번 울렸다.

그때 한 방의 총소리가 울렸다. 놀란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떡갈나무 숲 쪽이야!"

총에 맞아 쓰러진 로버트가 마리벨의 눈에 선히 보였다.

'아, 로버트! 결국 함정에 걸려들고 말았구나.'

두 사람이 떡갈나무 숲에 닿았을 때 연달아 두 방의 총소리가 또 울렸다. 이젠 절망이었다.

"저 언덕 아래야. 거기에 넓은 빈 터가 있어!"

두 사람은 떡갈나무 숲 아래 빈 터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그때 저만치 앞쪽에서 마차가 한 대 달려오고 있었다.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아서였다. 안토니도 보이지 않았다.

"아, 로버트, 결국 당신이 당하고 말았군요."

빈터에 닿았을 때 그들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엎어져 있는 로버트를 발견했다.

"로버트!"

가슴 근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로버트는 간신히 눈을 뜨고 마리벨을 쳐다보았다.

"살아있군요, 로버트!"

"와 주었군, 마리벨! 그대를 보지 못하고 죽는 줄 알았어!"

"아, 로버트! 사랑해요!"

마리벨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로버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걱정할 것 없어. 상처는 어깨 쪽이야. 난 죽진 않아."

상처는 왼쪽 겨드랑이 근처였다. 한 뼘만 오른쪽으로 왔어도 총알은 정확히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다.

"아, 하느님!"

레안드르가 손수건을 꺼내 어깨 근처를 묶어 우선 지혈을 했다. 그리곤 로버트를 들쳐 메고 숲 속을 헤쳐나갔다.

가물가물하는 의식 속에서도 로버트는 자기를 메고 달리는 젊은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누구지, 이 젊은이는! 어째서 마리벨과 함께인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안토니였다.

안토니의 부상은 심했다. 총알 하나는 왼쪽 눈을 관통했고 또 하나는 무릎 근처에 박혀있었다.




랜버트 공작의 놀라움은 컸다. 외아들 로버트와 양자 안토니를 하루아침에 잃을 뻔했던 것이다.

두 부상자는 우선 랜버트 저택에 눕혀 놓고 치료했다.

"로버트 님은 비교적 경상입니다. 한 달쯤 치료하면 부상당한 팔도 완쾌될 것입니다. 하지만 안토니 님은 위험합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만 왼쪽 눈은 물론 오른쪽 눈까지 못 쓰게 될 겁니다. 게다가 오른쪽 무릎 아래는 잘라내야 합니다."

랜버트 가의 주치의 모스 박사의 말이었다.

안토니는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지만 로버트는 처음부터 경상이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로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마리벨을 만난 기쁨 때문에 팔의 부상 따위는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는 듯했다.

"클라렌스 공께서 오셨습니다."

집사의 뒤를 따라서 클라렌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잘도 근신하고 있군."

"황송합니다, 전하."

비꼬는 말투와는 달리 클라렌스의 얼굴은 밝았다. 로버트의 부상이 대단치 않다는 것을 듣자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클라렌스는 로버트 주위에 둘러 서 있는 랜버트 공작과 마리벨에게까지 가벼운 눈인사를 했다.

"자, 그럼 변명해 보게나, 로버트. 집에서 근신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킹스크로스에 가서 그 추잡한 결투에 말려들게 된 경위를!"

"근신하란 명령을 어긴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아서와 결투를 하기로 한 그대가 아닌가? 어째서 아서는 멀쩡하고 후견인인 안토니와 자네가 마주 쏘게 되었는가?"

"... 결투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다시 기억하기도 싫습니다. 명령을 어긴 벌만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고지식한 놈!"

그러나 클라렌스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잔인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지만 자기 입으로 안토니와 아서를 고자질할 로버트가 아님을 클라렌스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안토니!"

그때 실성한 모습으로 뛰어든 것은 커밍스 남작이었다.

"안토니, 내 아들아!"

커밍스는 안토니의 침대 위에 엎어지려다가 모스 박사의 제지를 받고는 랜버트 공작과 로버트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클라렌스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랜버트 공작! 이 더러운 흉계를 국왕 폐하께 직접 보고해서 만천하에 밝히겠소!"

커밍스는 미친 듯이 랜버트 공작 앞에 주먹을 내두르며 악을 썼다.

"남작, 우선 클라렌스 공에게 예부터 갖추시오."

그제야 커밍스는 클라렌스를 알아보았고 부랴부랴 흐트러진 옷깃을 여몄다.

"전하! 무례한 꼴을 보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하께서 와 계시리라곤..."

"괜찮소. 아드님이 사경을 헤매는 중이니 옆사람을 살필 경황이 있겠소? 그러나 아무리 분하고 슬프더라도 귀족의 체통은 지키시오."

"그렇습니다, 전하. 슬프고 원통합니다. 이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음모입니다. 안토니에게 상속시키지 않으려고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커밍스 공!"

클라렌스는 엄하게 불렀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함부로 추측해서 말하지 마시오. 랜버트 공작은 영국 왕실의 중신이오. 공의 말이 그를 무고하는 결과가 된다면 결코 그 죄가 가볍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전하, 이 사건은 너무도 뻔합니다. 랜버트 가의 음모에 제 아들 안토니가 희생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클라렌스는 옆에 선 시중에게 눈짓을 했다. 잠시 후 방에 들어온 사람은 아서였다.

아서는 아직도 결투의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아니면 제 죄가 두려워서였는지 사색이 되어있었다.

"아서! 그대가 말하라. 털오라기 하나라도 보태지 말고 빼지도 말고 사실 그대로를 말하라!"

클라렌스의 명령은 추상같았다.

"아! 내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 아서야, 사실 그대로를 말해다오. 아무것도 겁낼 것이 없단다. 넌 이 사건이 어떤 음모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그러나 아서는 커밍스 쪽은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다. 머리를 아래로 숙인 채 더듬더듬 증언했다.

"안토니가... 랜버트 가를 계승하면 영지의 1/5을... 나누어 준다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전, 결투를... 받아들이기로 했죠."

아서의 얘기가 한 마디씩 옮겨질 때마다 커밍스는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서는 끝까지 커밍스 쪽으로는 눈길 한 번 돌리는 일없이 사건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증언했다.




열 시 오 분 전, 로버트가 결투 장소인 킹스크로스 숲에 홀로 나타났을 때, 안토니와 아서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버트, 양해하게. 아서의 후견인 데니스는 오늘 참석하지 않았네. 자네가 자택 근신 중이라 결투에 나올 수 없을 것으로 믿는 모양이었어. 괜찮은가?"

"난 괜찮은데 아서가 어떨는지!"

"나도 괜찮아!"

그렇게 해서 단 사람의 증인 안토니에 의해서 결투 준비는 진행되었다.

아직 채 물러가지 않은 아침 안개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로버트와 아서는 빈 터 한가운데에 등을 대고 섰다.

런던탑의 빅벤이 은은한 소리로 열 번을 울렸다.

"시작!"

안토니의 구령에 따라 두 사람은 각각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아홉 발자국, 열 발자국.

두 사람은 동시에 돌아서서 서로를 향해 겨냥했다.

바로 이때 안토니가 로버트를 등 뒤에서 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안토니 쪽에서 전혀 소식이 없었다.

아서는 갑자기 겁이 났다.

자기를 향해 똑바로 겨냥하고 서있는 로버트의 총구가 대포만큼이나 크게 보였다.

"아서, 먼저 쏴!"

로버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아침 숲을 울렸다.

'이제 곧 안토니가 로버트를 쏠 거야.'

아서는 그렇게 위안을 하며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가까스로 버티고 서있었다.

"뭘 멍청히 서 있나, 아서! 싸울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로버트가 두 번째 재촉했다. 그래도 안토니는 소식이 없었다.

'안토니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모양이구나!'

아서는 그런 생각이 들자 몸에서 한꺼번에 기운이 빠져버렸다.

겨낭하고 있던 총구가 어느덧 아래로 떨어지고 덜덜 떨고 있던 다리는 무릎이 꺾였다. 아서는 꿇어 엎드렸다.

"쏘지 마, 로버트! 제발!"

"일어나, 아서! 명예를 지킬 기회를 주겠다."

"살려 줘! 항복이야!"

아서는 완전히 오그라들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좋아, 그럼 약속해라. 다시는 마리벨에게 손대지 않겠다고."

"물론이야, 로버트. 사실 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저 안토니가..."

'탕...'

그때 안토니의 총구가 불을 뿜으며 로버트가 볼품없이 고꾸라졌다.

"안토니! 어떻게 된 거야?"

아서의 얼굴에 그제야 핏기가 돌았다. 그리고 반가이 안토니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아서는 이내 멈추어 서서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안토니의 총구가 자기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안토니? 내가 뭘 잘못했나?"

"아직 모르겠나? 자넨 역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군."

"머리는 자네 혼자 쓰기로 되어 있었잖아!"

"이 멍충아. 생각해 봐. 로버트는 검술도 사격도 일류네. 그러니 놈에게 자네가 결투를 해서 이길 까닭이 없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야. 즉 자넨 이미 결투 끝에 죽어 있는 목숨이야. 로버트 역시 마찬가지야. 서로 총에 맞아 함께 죽을 수는 있지 않겠어?"

"그렇다면 안토니, 날 죽일 셈이야?"

"물론이야. 널 살려두면 이 결투의 진상이 언젠가는 폭로된다. 게다가 네게 주기로 한 랜버트 가의 영지도 아깝고"

"안돼! 안토니, 목숨만 살려줘!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안토니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지나갔다. 안토니의 총구가 심장을 겨누자 아서는 이미 사색이 되어 살려달라는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탕!'

그러나 그 순간 쓰러진 것은 아서가 아니었다.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로버트의 총구가 연기를 뿜고 있었다. 로버트가 마지막 힘을 다 모아 가까스로 안토니의 다리를 맞춘 것이다.

안토니가 다시 권총을 잡으려 할 때 아서의 총구가 안토니를 향해 불을 뿜었다. 워낙 가까운 거리라 안토니의 왼쪽 눈을 관통해 버렸다.

"배신자!"

쓰러진 안토니의 얼굴에 침을 한 번 뱉어주고 겁쟁이 아서는 마차를 타고 달아났다.

이것이 킹스크로스 숲 속에서 벌어진 추잡한 결투의 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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