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레안드르 1/2
Épisode 14.
《동백장의 텔레즈》는 파리에서도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냉담하기 짝이 없던 파리의 비평가들도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새로운 애정관을 창조한 코메디 프랑세즈의 승리'라고 격찬했다.
이 연극에서 잔느 드 모로는 텔레즈가 아니라 아리아느로 분장했다. 통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연극의 주연은 분명히 샤를르와 텔레즈였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 주는 개성 있는 인물은 역시 아리아느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면 설사 자기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용감한 여인! 그것이 바로 아리아느요, 잔느였다.
공연 엿새째가 되던 날 국립 극장의 분장실에서는 지금 막 분장을 끝낸 잔느가 막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잔느! 오늘 무대를 당신의 약혼자가 보러 온다는 것이 사실이오?"
피에르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답니다. 13번 부스라나요! 내 어머니라는 여자는 우리 아버지를 설득시켜 자기 아들과 나를 약혼시켰어요. 나와 결혼시켜서 그 아들로 하여금 다지르 가문을 잇게 하려는 속셈이죠. 반 강제나 다름없었어요. 그렇게만 되면 자기는 한 평생 다지르 집안에서 호강하며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오지 않을지도 모르잖소. 그 레안드르라는 자는 몹시 자존심이 강해 보이던데."
"흥! 아무리 돈과 지위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까요? 배우들의 최고 영예인 코메디 프랑세즈에 입단하여 그곳 최고의 인기 여배우인 잔느와 결혼하게 되는데도요? 어머닌 이미 레안드르를 귀족 명부에 올려놓았고 이 코메디 프랑세즈의 입단 교섭도 이미 끝내 놓았다고요."
피에르의 깡마른 얼굴엔 핏기가 가셔져 있었다.
"잔느! 당신만 좋다면 내가 그 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피에르! 쓸데없는 생각 말아요! 난 언제나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그렇다면 당신도 레안드르란 자를 사랑하고..."
"멋대로 상상하지 말아요."
"맞아, 그럴 리가 없지. 당신 같은 여자가 그따위 시골뜨기 유랑 극단 배우를..."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도 레안드르란 청년은 용감하고 씩씩한 남자임엔 틀림없어요. 적어도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청년이었으니까요. 그날 콩피에뉴의 극장에서도 단원들이 코메디 프랑세즈의 잔느를 사칭했던 것인데 자기가 나서서 성난 관객들을 막아 냈고 또 입장료를 한 푼의 에누리 없이 돌려주는 걸 당신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요."
"잔느, 도대체 당신은 어느 편이오? 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구려."
잔느는 대답 대신 경멸이 가득 담긴 미소를 피에르에게 던졌다.
레안드르와 마리벨이 13번 부스에 들어서자 장내에는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나타났어, 잔느의 약혼자가!"
잔느의 약혼자가 그날 저녁에 13번 부스에 나타나리라는 소문이 잔느의 팬들 사이에는 이미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저 젊은 여자는 누구지?"
"꽤 미인인데?"
"자기 약혼자의 공연장에 다른 여자와 함께 버젓이 나타나다니!"
마리벨은 국립 극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극장의 크고 화려한 규모에 놀라 정신이 아득해져 있었다. 지정된 부스에 앉은 뒤에도 극장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 손님들의 의상을 보곤 마리벨은 더욱 넋을 잃고 말았다.
"이봐요, 레안드르! 모두가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어요!"
"그렇게 느껴질 뿐이야. 이런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때 문이 열리면서 다지르 후작 부인이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잘 와 주었어, 레안드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레안드르는 뒤로 돌아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가씨는?"
"마리벨이라고 해요."
"마리벨? 어디선가 본 얼굴이군요."
"댁의 하녀로 잠깐..."
다지르 후작 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와인병을 깼던... 호호... 묘한 인연이로구나."
부인이 계속 호들갑을 떠는 동안에도 레안드르는 대꾸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럼 연극이 끝나면 다시 봐요."
다지르 후작 부인이 돌아가고 나자 막이 올랐다.
레안드르와 마리벨은 묘한 흥분을 맛보며 아직은 텅 빈 무대를 지켜보았다. 무대장치도 귀족의 응접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사실적이면서도 무척 화려했다.
연극은 샤를르와 텔레즈의 등장과 함께 차분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샤를르 역은 프랑소와 조셉 다르마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레안드르도 그의 훌륭한 연기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극은 어느덧 2막에 접어들고 있었다.
"말해 보세오.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전가요, 아니면 텔레즈인가요!"
아리아느로 분장한 잔느가 텔레즈와 샤를르가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미칠 듯이 울부짖었다.
"난 텔레즈를... 사랑하오."
이렇게 샤를르가 대답하면 레안드르의 희곡에는 아리아느가 샤를르의 뺨을 힘껏 때리는 것으로 쓰여 있었다.
그러나 말로 극단의 공연에서 마리벨은 아리아느가 텔레즈를 때리는 것으로 고쳐 연기했었다. 마리벨의 그러한 개성 있는 연기는 관객들을 충분히 매혹시키고도 남았다.
마리벨은 숨을 죽이고 잔느를 주시했다. 아리아느는 샤를르를 때릴 것인가, 아니면 텔레즈를 때릴 것인가.
그러나 잔느는 아무도 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를 때린 것보다도 더욱 격렬한 비난과 증오와 경멸의 눈초리를 객석 구석구석까지 보여주고는 돌아서서 무대를 떠나버렸다.
'저것이 바로 잔느다! 과연 코메디 프랑세즈의 잔느로구나!'
애송이 배우인 마리벨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연기였다.
제3막에서 아리아느는 약혼자 샤를르와 텔레즈의 탈출을 도와준다.
"고마워요, 아리아느!"
"고마워할 것 없어요. 내가 당신네들의 탈출을 도와주는 것은 약혼자를 배반하고 다른 여자에게 넋이 빠져버린 남자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 어디든 멀리 떠나가 버려요."
그것이 아리아느의 마지막 대사였고 또한 연극의 끝이기도 했다.
샤를르와 텔레즈가 허둥지둥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던지는 잔느의 비웃음 소리가 폭풍처럼 객석까지 불어오면서 막이 내렸다.
레안드르도 마리벨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아마도 그것은 코메디 프랑세즈의 《동백장의 텔레즈》를 관람했던 모든 관객들의 박수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말로 극단이 공연했을 때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는 두 연인의 장래를 축복하는 박수를 보냈었다. 그러나 콩테 극장의 관객들은 약혼자를 배신하고 달아나는 비겁한 샤를르와 텔레즈, 그들을 한껏 비웃어주는 아리아느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막이 내려지고 나서도 잔느의 비웃음 소리는 극장 안에 메아리치고 있는 듯했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아리아느! 잔느! 를 외쳐 댔다.
"굉장하군, 코메디 프랑세즈는! 비록 내 작품이긴 하지만 그들은 어디 한 군데 흠을 잡을 수가 없는 완벽한 해석을 해 냈어!"
레안드르는 코메디 프랑세즈에 대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마리벨은 그보다도 잔느에게서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한 연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마리벨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기 자신을 느꼈다. 그리고 한때나마 잔느의 이름을 사칭하여 시골의 관객들을 우롱했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잔느가 연기했던 아리아느에게는 품위가 넘쳐흘렀다.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고 제스처도 단순했지만 그녀는 눈동자의 움직임과 눈빛으로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었다.
"레안드르, 나도 잔느 같은 연극을 하고 싶어요. 저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연극을! 잔느 같은 참다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아! 마리벨, 내가 가르쳐 주겠다! 하지만 꽤 고달플 거야. 그대가 견뎌낼 수 있을까?"
"나보다도 레안드르가 더 견디기 힘들 거예요. 난 연극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숙맥이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쪽이 오히려 더 좋아. 우린 꼭 해내야 해! 알겠어? 내가 직접 가르친 사람은 반드시 명배우가 되고 말 거야."
"어떻게?"
"그건... 하느님이 그렇게 결정하신 거야!"
"그런데 지금까지 배우를 몇 명이나 키웠죠?"
"마리벨이 첫 번째야. 하지만 문제없어, 자신 있다고!"
관객들이 모두 떠나가 버린 뒤 다시 막이 올라가고 텅 빈 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젠가 반드시 저 무대에 서고 말겠어! 반드시..."
그렇게 결심하면서 마리벨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마리벨의 얼굴을 바라보며 레안드르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레안드르 님이시죠?"
누군가 그들의 뒤에 와 있었다.
"다지르 후작 댁에서 모시러 왔습니다."
"필요 없다고 부인에게 전해 주시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지르 후작 댁의 건장한 하인들은 강제로 두 사람을 마차에 태웠다.
"이건 후작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입니다. 완력을 쓴 걸 용서하십시오."
하인 중에서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는 마차 문을 닫아걸어 버렸다.
"다지르 후작이 직접 내린 명령이라면 당신도 어쩔 수가 없겠군요."
"하지만 마리벨, 난 절대로 귀족이 되진 않을 거야. 난 배우로 만족하니까, 나의 아버지처럼."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마차에서 뛰어내려요!"
"도망친다고 될 일이 아니야. 그 대신 후작에게 분명히 말해 주겠어. 후작은 내가 잔느와의 결혼을 승낙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나를 부르는 거니까 본인이 싫다면 다른 사람을 맞아들일 수도 있을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쩐지 레안드르는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는 《동백장의 텔레즈》를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단지 그게 궁금해서 파리에 온 것뿐인데...'
다지르 후작 댁은 센 강 건너 생 쉴피스 성당 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응접실에는 후작 부인은 비롯하여 잔느 등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오! 레안드르, 어서 인사드려라. 네 새아버지인 다지르 후작님이시다."
"네가 레안드르냐? 잘 왔다."
다지르 후작은 마음씨가 좋게 생긴 늙은이었다. 빌로드로 만든 군복만 벗긴다면 거리의 흔한 늙은 마부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생김새였다.
다지르 후작 부인은 레안드르가 별 저항 없이 따라왔다는 것이 무척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소개하겠어요, 여러분! 이 청년은 오늘 여러분이 국립 극장에서 관람한 《동백장의 텔레즈》의 원작자인 레안드르 말로입니다. 내 아들이죠."
살롱에 모인 사람들은 레안드르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후작님은 레안드르를 잔느의 약혼자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결혼 후에는 레안드르가 다지르 가를 계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코메디 프랑세즈로부터 특별 입단 허가도 나왔습니다!"
다지르 후작 부인이 신이 나서 떠들어대자 살롱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거절하겠습니다!"
레안드르가 그렇게 외치자 사람들은 박수를 멈추고 이 당돌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지금 부인께서 말씀하신 모든 조건을 거절하겠습니다."
처세술이 능란한 어머니를 둔 덕택에 하룻밤 사이에 재산과 영예와 미녀를 얻게 된 청년이 그걸 거절하겠다고 제 입으로 말하니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롱 안은 갑자기 문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무슨 말이냐, 레안드르? 무슨 기분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느냐?"
"전 한 번도 그런 횡재를 꿈꾸어 본 일도, 바란 적도 없습니다. 저는 유랑 극단의 배우인 지금의 상태를 지극히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레안드르, 잔느와 결혼하여 다지르 가를 이을 생각이 없단 말이냐?"
"레안드르 말로는 아버지 끌로드 말로의 아들로서 말로 집안을 이어 나갈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이층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잔느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잔느가 딱지를 맞고 말았네!"
"그러게 말이야, 콧대 높은 잔느가!"
이층 난간 위에 홀로 서 있던 잔느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가자, 마리벨! 여기에 우리가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어!"
"잠깐!"
잔느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힘이 담겨있었다.
"듣지 못했나요, 레안드르? 다지르 후작님께서 당신을 나 잔느 드 모로의 약혼자로 인정했어요. 게다가 성미 급한 당신의 어머니는 이미 귀족회 명부에 당신을 나의 약혼자로 등록해 놓았다고요."
"잔느, 난 당신과 결혼할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소. 당신이나 나나 서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뿐더러 사랑하고 있지도 않잖소?"
"레안드르, 귀족 사회에서의 결혼이란 반드시 사랑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랍니다."
"난 귀족이 아니오."
"그러니까 귀족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겁니다."
"그런 당신과의 약혼이 바로 명령이란 말이오?"
"그래요, 다지르 후작 님의 명령이지요. 나 잔느는 명령에 복종할 뿐입니다."
뜻하지 않았던 어려움에 직면하여 레안드르는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평민으로서 귀족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쯤은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레안드르는 이제 잔느와의 결혼을 거절할 만한 정당한 이유를 찾아내야만 했다.
"레안드르는 다음 달에 저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어요."
그때 마리벨이 불쑥 튀어나와 소리 질렀다. 레안드르가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그게 정말인가? 귀족의 딸을 버리고 유랑 극단이나 따라다니는 천한 여자와..."
레안드르가 대꾸할 사이도 없이 마리벨이 다시 나섰다.
"그러니까 레안드르는 당신하고 결혼할 수 없는 거예요."
마리벨은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신이 나서 잔느의 얼굴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가?"
"그렇소."
레안드르의 대답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했다. 마리벨은 레안드르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우린 오래전부터 서로 사랑해 왔어요. 그러니까 당신과의 약혼은 취소해 주셔야 한다고요."
"알겠어요, 마리벨 양."
그것으로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레안드르는 마리벨의 순간적인 기지에 감탄했다. 그래서 마치 진정으로 사랑하고 결혼을 바라는 것처럼 힘껏 마리벨을 껴안아 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잔느의 눈에 푸른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누구든 당장 경찰을 불러 줘요!"
잔느의 말에는 새파란 날이 서 있었다.
"저 두 사람을 체포하도록 해요. 유랑 극단의 배우가 귀족의 약혼자를 빼앗은 건 분수를 모르는 일, 이건 영락없는 모욕죄에 해당해요!"
순간적으로 레안드르와 마리벨은 서로 떨어졌다.
"다시 한번 묻겠어요, 레안드르. 저와의 결혼을 승낙하겠어요?"
"싫소!"
"그렇다면 감옥으로 가세요. 평민의 신분으로 귀족을 배반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군요."
살롱 안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잔느의 차가운 눈초리를 피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후작님! 일은 이렇게 쉽게 처리해야 하지 않겠어요?"
"..."
다지르 후작도 전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잔느! 왜 레안드르까지 감옥으로 보내려 하는 거지?"
다지르 후작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시나요, 어머니? 바로 이것이 귀족이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고요."
총을 든 세 명의 경찰이 살롱 입구에 들어서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안드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어요. 당신이 나와 약혼한다면 마리벨만이라도 용서해 주겠어요. 어때요? 승낙하시겠어요?"
"난 싫소!"
레안드르의 대답엔 변함이 없었다.
"좋아요. 그러나 마음이 변하거든 언제든지 말하세요. 뭣들 하고 있는 거예요! 어서 저 두 사람을 체포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레안드르와 마리벨은 다지르 저택 지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잔느는 가혹하게도 두 사람에게 식사도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잔느와 결혼하면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가 되고 다지르 후작의 작위도 계승하고... 그 모든 조건은 그럴듯했다. 그러나 레안드르에게는 더 좋은 것이 있었다.
레안드르는 극단의 가난한 배우들이 좋았다. 그리고 그 연극을 구경하며 웃고 우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김살 없는 얼굴이 좋았다.
빵 한 조각을 겨우 얻어먹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하고 국왕을 존경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보람이었다. 그들을 떠난 자신을 레안드르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끌로드 말로! 내 아버지! 아버지의 피가 제 몸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난 배우다! 죽어서도 배우가 될 테다! 그렇습니다! 레안드르도 배우입니다! 코메디 프랑세즈가 아니라 유랑하는 말로 극단의 배우입니다.'
레안드르는 자유를 그리워했다. 자연 속에서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연극을 하고 싶었다. 봄에는 꽃이 핀 들판에서, 여름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가을엔 낙엽 속에서, 그리고 겨울엔 눈 속에서... 그것은 콩테 극장의 무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화려한 무대였다.
레안드르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도 옛날에는 더없이 좋은 어머니였다. 어느 해 겨울 크리메이느와 동갑이던 어린 동생이 병에 걸려 약 한 번 먹지 못한 채 차디찬 시체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이틀 밤낮을 주검 앞에서 울었다.
"돈만 있었다면 우리 아이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 이젠 가난이 지긋지긋해요!"
그렇게 외치고 어머니는 마차를 타고 홀로 떠났었다. 남편과 레안드르와 극단의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뿌리치고...
그런데 세월이 흘러 7년 후인 지금, 그녀는 귀족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하나뿐인 아들을 자기의 위치를 굳히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다가 아들이 자기 말에 따르지 않아 결국 갇히는 광경을 차디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귀족이란 신분이 좋고 편안하다 하더라도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생각해 보면 불쌍한 것은 마리벨이었다. 나흘 동안이나 물 한 모금 먹지 못했으면서도 마리벨은 단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레안드르의 품 안에 쓰러져 있었다.
레안드르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로버트의 모습을 보았다.
'목숨을 걸고 마리벨을 보호하겠는가? 그렇다면 데려가는 걸 허락하지!'
레안드르는 눈물을 머금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