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 달랑 가의 삼 형제 1/2
Épisode 20.
12월 1일, 다르 달랑 가의 장남 올리비에 대위는 살롱에 걸려있는 그림을 바라보며 깊은 감상에 젖어있었다. 그것은 《라벤더의 꽃님》이라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 속의 아름다운 여인은 친척인 마리 안느 로비노 드 생 쥐스트였는데 부인이 죽자 그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찾을 길이 없었다.
어릴 적에 올리비에는 생 쥐스트 댁에 자주 놀러 갔었다. 그 부인의 어린 딸도 무척 예쁜 소녀여서 올리비에는 자라서 그녀를 아내로 삼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곤 했었다.
그날은 바로 콩테 극장에서 《아크로폴리스의 시민》 첫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올리비에는 가슴속에서 초대장을 꺼내보았다. 그 초대장을 자기에게 주었던 소녀를 그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소녀는 죽었다고 했어. 하지만 이 초대장을 준 소녀는 저 《라벤더의 꽃님》을 쏙 빼닮았는 걸. 어쩌면 그 소녀가 바로 죽었다는 생 쥐스트 부인의 딸인지도 몰라."
살롱 안으로 줄리앙과 프랑소와가 들어왔다.
"형님, 여기 계셨군요."
뒤이어 다르 달랑 공작 부부도 들어왔다.
"오! 모두 모여 있었구나. 삼 형제가 한꺼번에 모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너희들 오늘 파티에 꼭 참석해야 한다. 제발 이 어미를 실망시키지 마라."
다르 달랑 공작 부인은 삼 형제에게 일일이 다짐을 받아야 했다. 삼 형제 모두가 착실하긴 했지만 웬일인지 모두들 파티 같은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파티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버지 다르 달랑 공작을 하나도 닮지 않은 것을 부인은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지만 자기 집에서 여는 파티에서는 불편할 때가 많았다.
"녀석들! 어느새 이 아비보다 더 훌륭한 남자들로 변해 버렸구나..."
다르 달랑 공작은 삼 형제의 모습을 보며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르 달랑 공작 부인은 곧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도 있던 아들 삼 형제가 파티가 시작되기 직전에 종적을 감춰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공작 부인보다는 다르 달랑 삼 형제와 춤이라도 한 번 추어볼까 하고 기대를 품고 왔던 소녀들의 실망이 더 컸다.
콩테 극장이 가까워지자 줄리앙은 마치 도둑질하러 들어가는 사람처럼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배우를 싫어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고 실제로 배우를 싫어했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 모여있던 친구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어, 줄리앙 아냐?"
"네가 웬일이냐? 연극을 보러 오다니!"
"오라! 첫눈에 반한 여배우가 있는 모양이지? 잔느냐? 그녀가 오늘 객석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네게까지도 전해졌구나?"
줄리앙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올리비에도 사정은 줄리앙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극장 로비에 들어서니 줄리앙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올리비에는 그 틈을 이용하여 도둑고양이처럼 구석진 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깐이었고 올리비에는 곧 젊은 여자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어머! 올리비에 님!"
"여자를 싫어한다는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되는군요."
"다르 달랑 댁의 올리비에 대위님과 함께 연극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 프랑소와도 마찬가지였다. 두 형들과 달랐던 것은 좀 어린 소녀들에게 둘러싸였다는 사실뿐이었다.
"어머나?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프랑소와 님! 댁의 파티에 갈까 했었는데 여기 오길 정말 잘했네요."
"다르 달랑 도련님들은 자기 집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잖아!"
"연극 관람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건 마찬가지야."
수다스러운 소녀들 틈에서 프랑소와는 귀를 막고 있을 처지도 못 되었다.
그 시간에 잔느는 피에르를 거느리고 콩테 극장을 향해 달리는 마차에 타고 있었다.
"정말이야, 잔느? 지금 콩테 극장에 간단 말이지?"
"물론이죠."
"당신 같은 대배우가 그런 초보자의 연극을 구경하러 간다는 건 마리벨을 경쟁자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걸 모르나?"
"난 말이죠, 피에르. 지금 심심해서 데리고 놀 상대가 필요한 거예요. 바로 그 심심풀이 상대가 마리벨이 되는 셈이죠."
"알 수가 없어! 당신이란 여자는..."
잔느는 재미있다는 듯이 쓸데없이 발을 비비는 시늉을 했다.
"내 발 밑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접근하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꼴을 즐기는 거예요."
"가까이 다가오면 발로 짓밟아 쫒아 버린다... 이 얘긴가?"
"어때요, 당신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잔느가 콩테 극장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그녀의 팬들이 구름같이 잔느를 에워쌌다.
"오! 잔느. 당신을 위해 최고의 귀빈석을 준비했습니다."
"아닙니다. 오늘은 꼭 제 부스에서 모시겠습니다."
"다르 달랑 공작의 파티를 마다하고 당신을 기다린 제 성의를 생각해 주십시오."
잔느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손끝으로 입 맞추었다.
"고마워요, 여러분. 나중에 들르도록 하겠어요. 지금은 배우들을 격려해 주어야 해요."
"격려라니? 당신이 마리벨을?"
"물론이죠. 그녀는 나의 까마득한 후배니까요."
잔느는 여왕처럼 거만한 동작으로 분장실의 문을 열었다.
"마리벨, 준비는 잘 되어가나요?"
그렇게 말하며 들어서는 순간 마리벨의 의상을 보고 잔느는 기절할 뻔했다. 마리벨이 양팔이 훤히 드러난 잠옷같이 축 늘어진 의상을 걸치고 발가락이 다 드러난 샌들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꼴이죠, 마리벨? 훤한 대낮에 잠옷이라니! 무대에 침대라도 가져다 놓았나요?"
예상했다는 듯 마리벨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이것 말인가요? 이건 잠옷이 아니에요. 로마인의 복장입니다. 난 로마 여성이니까요."
이번에는 잔느를 다르마를 돌아다보았다.
"다르마, 당신까지도 팔을 다 드러냈군요! 어머나! 바지도 입지 않으시고."
다르마도 흰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나도 로마인이라오, 잔느. 로마 사람은 바지를 입지 않지."
"야만인이로군요, 완전히!"
"로마인더러 야만인이라니... 그래도 할 수 없죠."
너무도 능글맞은 대답에 질린 듯 잔느는 홱 돌아섰다.
"난 돌아가야겠군요. 이런 야만스러운 무대는 봐줄 수가 없어요."
잔느가 나가자 피에르가 허둥지둥 뒤따랐다.
"잠깐 기다려, 잔느. 그렇게 화를 내고 돌아가면 어떡해? 이럴 땐 끝까지 냉정하게 무대를 보는 것이 당신다운 태도일 텐데?"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군요, 피에르. 내가 지금 돌아가면 날 지지하는 사람들도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귀빈석은 텅 비게 된단 말이에요. 말하자면 마리벨의 무대를 보는 귀족은 한 명도 없게 된다는 거지요. 혹시 남아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남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죠. 이것이 바로 내가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이라고요."
피에르는 새삼 잔느의 교활함에 혀를 내둘렀다.
마차에 올라서며 잔느는 마리벨의 처지를 측은하게 생각했다.
'그런 이상한 복장을 해야만 내게 도전해서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정말 가엾은 아이야!"
사람들은 잔느가 코웃음을 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여보게, 역시 잔느가 돌아가 버렸구먼."
"우리도 돌아가는 게 좋겠네. 그렇잖아, 줄리앙?"
줄리앙은 경멸의 눈초리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극장이 뭐 손님이 손님을 구경하러 오는 덴가? 손님은 무대 위를 보는 거야. 잔소리 말고 앉아있거나 해!"
올리비에 주변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잔느 양이 화를 낼 정도라면 형편없는 연극인가 봐요. 우리도 돌아가는 게 어때요, 올리비에 님?"
"잔느가 화를 낼 정도였다니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군. 난 꼭 보고 가야겠소."
"그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은데? 우리도 끝까지 보고 가자."
어린 프랑소와도 소녀들 앞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잔느가 그러는데 아주 야만적인 연극이라나 봐요."
"어머나! 병약하신 프랑소와 님이 기절이라도 하시면 어떡하죠?"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프랑소와는 처음으로 능글맞은 얼굴로 히죽 웃었다.
"그렇게 되면 난 여러분들의 품에 안기게 되겠죠, 뭐."
"어머나! 그럴 땐 꼭 내 쪽으로 쓰러지세요, 네?"
돌아가려고 출구까지 나갔던 사람들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상한데? 돌아가는 사람이 없잖아?"
"그러게 말이야. 우리만 가는 것도 우습잖아?"
"이왕 왔으니 구경하는 게 어때?"
이런저런 이유로 잔느를 따라 돌아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이 시대 귀족들의 참모습이었다.
막이 올랐다.
아크로폴리스 신전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사실적인 무대장치와 고대 로마인을 방불케 하는 파격적인 의상과 연기는 처음부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다르마의 연기는 전에 없이 열렬했고 마리벨이라는 신인도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표정으로 관객들의 가슴속에 비극의 짜릿함을 심어주고 있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숨 한번 크게 쉬는 사람이 없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연극이 관객들의 호흡을 동시에 멈추게 하고 동시에 숨 쉬게 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때까지와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이었다는 정에서만도 관객들은 이 연극을 끝까지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극이 끝나자 관객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망측한 연극이야! 눈뜨고 볼 수가 없어. 팔다리를 함부로 드러내다니."
"그것도 남자만 그런 게 아니고 여자까지 말이야!"
"하지만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가치가 있었어."
"마리벨의 연기는 잔느를 따라가려면 멀었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선한 맛이 느껴지잖아?"
"아무튼 이제부터 살롱의 화제가 어떻게 돌아갈지가 궁금하군."
"난 말이야, 이미 결정했어. 이제까진 잔느의 팬이었지만 오늘부턴 마리벨의 팬이야."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리벨은 로비에서 나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팬들에게 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세요. 옷이나 갈아입어야죠."
"아닙니다, 지금의 무대의상 그대로가 좋아요."
마리벨이 분장실을 나서는데 줄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줄리앙이 마리벨의 성공적인 데뷔를 축하하기도 전에 올리비에와 프랑소와도 나타났다.
삼 형제는 모두가 서로를 보고 놀랐다.
"형님!"
"프랑소와!"
"줄리앙!"
"세 분이 모두 아는 사이인가요?"
로비에서 기다리다 못한 팬들이 분장실 앞으로 몰려왔다.
"훌륭한 연극이었소, 마리벨 양."
"오! 마치 올림푸스 여신이 내려오신 것 같더군요."
"오늘 저녁은 내가 대접해 드리겠소."
"마리벨 양, 우리와 함께 축하의 파티를 벌이는 게 어떻겠소?"
그렇게 너스레를 떨던 귀족들이 뒤로 나자빠졌다. 다르 달랑 삼 형제가 보다 못해 잡아 낚아채었기 때문이다.
"누구야! 무슨 짓이야, 이놈들! "
"이봐! 다르 달랑 공작의 아들들 아니야?"
"그렇소! 난 올리비에예요."
"난 줄리앙!"
"난 프랑소와!"
마리벨에게 추파를 던지던 귀족들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마리벨 양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은 우리 다르 달랑 가의 형제들을 거쳐 신청해 주시오!"
올리비에가 늠름한 태도로 귀족들을 꾸짖었다. 풋내기 신인 여배우라고 얕잡아보던 귀족들은 다르 달랑 가의 삼 형제가 마리벨을 감싸고 나서는 통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말았다.
마리벨은 그제야 세 사람이 형제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모두들 배우를 싫어한다고 했었구나!'
쓰러졌던 한 늙은 귀족이 일어나며 분하다는 듯 내뱉었다.
"제기랄! 명문 다르 달랑 공작 댁의 도련님들이 이런 여자와 친한 줄 누가 알았겠나!"
올리비에가 노한 얼굴로 그 귀족을 노려보았다.
"이런 여자라니! 말씀 삼가시오! 귀하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이오. 그녀는 이곳 파리에 온 후 줄곧 우리 다르 달랑 가의 보호를 받고 있었소."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올리비에가 임기응변으로 그렇게 둘러댔다. 그러나 귀족들은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분! 오늘 우리 집에서 파티가 있는 것을 알죠? 그 파티는 사실상 이 마리벨 양을 소개하기 위한 겁니다."
거짓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삼 형제는 마리벨을 마차에 태우고 파티가 한창인 집 쪽으로 달렸다.
"형님!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없었잖아, 그 상황에선."
"그렇게 해서 위험을 모면하진 했지만...."
"앞으로 어떡하죠?"
"말 그대로 실행할 뿐이다."
"집엔 어머니가 계시잖아요. 마리벨은 배우이고..."
마리벨은 공연히 자기를 떠맡아 쩔쩔매는 삼 형제가 불쌍했다.
"왜들 그렇게 배우를 싫어하시죠?"
"아버지 때문이라오. 아버진 여배우만 보면 애인으로 삼으셨거든. 그래서 어머닌 항상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지. 우리 형제들도 그 때문에 배우를 싫어하게 됐고."
얘기를 듣다 보니 배우를 싫어할 만도 했다.
"그렇지만 배우 모두가 당신 어머님을 괴롭힌 건 아니잖아요? 훌륭한 배우도 많이 있어요. 그런 편견은 버려야 해요."
마차가 집에 가까워질수록 삼 형제는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반기겠지만 어머니는 몹시 실망하실 것 같았다. 어머니의 실망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아무리 마리벨이 배우고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귀족의 파티에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 말 많은 귀족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그러나 이미 던져진 주사위였다.
마차가 다르 달랑 공작 댁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다. 다르 달랑 삼 형제가 파티에 참석하지 않아서 아가씨들은 맥이 빠져있었고 그래서 자연히 화제도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나! 도련님들이 한꺼번에 모두 오셨어!"
그래서 파티는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들뜬 분위기가 되어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뒤따라 등장한 마리벨을 보고 아가씨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아름다운 아가씨를 댁에 숨겨두셨군요?"
"그러니까 우리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으셨군요."
"정말 몰랐지 뭐예요. 우리들에게도 인사를 좀..."
마리벨은 능숙하게 그들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어요. 제 이름은 마리벨,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입니다."
그때까지 호감을 나타내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배우라면 그들에겐 모두가 천한 존재들이었다. 귀족 출신인 잔느만 빼놓고는.
"이 댁 어른의 취미가 아들들에게도 전해졌는가 보군!"
"천한 배우 나부랭이가 파티에 참석하다니!"
그러나 그런 귀족들의 불평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리벨의 행동 하나하나는 너무나도 우아하고 품위가 있어서 도리어 자기들이 뒤쳐질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런던의 랜버트 가에 있는 동안 몸에 밴 예절과 화술 덕분이었다.
"배우지만 뼈대 있는 집안의 예절이 몸에 배었군요!"
"그래요, 마치 잔느 같잖아요? 아니, 잔느와는 달라요, 더 우아하고 청초해요."
다르 달랑 가의 삼 형제도 그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큰 망신만 면하면 다행이겠다 싶었는데 마리벨이 그 말 많은 귀족들을 잘 요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리벨 양. 내일 무대는 꼭 구경하러 가겠어요."
"나도요."
파티가 끝났을 때 이미 마리벨은 그 콧대 높은 귀족들을 자기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갔다. 이제 마리벨도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 절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안녕히..."
"잠깐 마리벨, 당분간은 우리 집에 머물러 주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서 우리 삼 형제는 사교계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오."
"감사합니다만, 전 귀족의 신세를 지고 싶지가 않아요. 전 귀족을 싫어해요."
"무슨 까닭이지?"
"이유는 많지요. 무엇보다도 제 애인이 귀족에게 살해 됐거든요."
"하지만 귀족 전부가 당신 애인을 죽인 건 아니잖소? 그런 편견은 버려요."
마차 속에서 마리벨이 하던 말을 이번에는 올리비에가 하고 있었다.
"좋아요. 제가 그대로 돌아가면, 배우는 구해준 은혜도 모른다는 말을 듣겠군요. 그럼 당분간만 신세를 지기로 하죠."
그렇게 해서 마리벨은 다르 달랑 가에 잠시 머무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문제가 아직 하나 남아있었다. 다르 달랑 공작 부인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올리비에는 어머니의 방으로 갔다. 다르 달랑 공작 부인은 우울한 얼굴로 창가를 향해 앉아있었다.
"어머니, 실망하셨겠군요. 함부로 사람을 집 안에 끌어들여서."
"난 너희들을 믿는단다. 다만 그 아가씨를 내 눈에는 띄지 않게 해 다오."
마리벨이 다르 달랑 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은 그날 저녁으로 파리의 사교계에 퍼졌다. 잔느의 귀에도 그 소문이 들어갔다.
"뭐라고? 마리벨의 배후에 다르 달랑 가가 있다고?"
"그렇소, 잔느. 다르 달랑 공작 집안이라면 도를레앙 공작, 블랑슈 공작과 더불어 검은색을 희다고 해도 통하는 권력자요. 앞으론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게 되어 버렸소."
피에르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잔느는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리벨을 보잘것없는 풋내기로만 봤었는데 어느새 그런 거물을 붙잡았지? 그렇다면 오늘 마리벨의 무대는 대성공이었다고 사교계에 퍼질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자기가 한없이 경솔했었다. 망신을 주려는 목적에서 시골 여자 역을 마리벨에게 억지로 맡게 한 것이 발단이 되어 그녀가 일약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아크로폴리스의 시민》의 주연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잔느의 예상대로 이튿날 파리의 신문은 '새로운 연극 계의 샛별'이라고 마리벨을 평하고 있었다. 다르 달랑 공작가의 배후가 있었기에, 사교계의 소문이 있었기에 신문도 그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마리벨의 연기는 아직 잔느에게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나 첫날보다는 이튿날이... 그렇게 해서 공연 마지막 날인 엿새째 날에는 매우 감동적인 연기를 마리벨은 해냈다. 천부적인 재능 덕분이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시민》은 코메디 프랑세즈의 단장이 욕심을 낸 이상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고 막을 내렸다.
다음 한주 동안은 잔느의 공연이 있었지만 그다음 주부터는 해가 바뀔 때까지 마리벨의 《아크로폴리스의 시민》이 공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