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 달랑 가의 삼 형제 2/2
Épisode 21.
이듬해 1788년 1월.
코메디 프랑세즈는 잔느를 주연으로 막을 올려 대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월에는 세 번째로 《아크로폴리스의 시민》이 상연되어 역시 성공했다.
그래서 잔느와 마리벨 사이에는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다시 봄이 되었다.
로버트와 헤어져 레안드르의 손에 끌려 마리벨이 프랑스 땅을 밟은지도 어느덧 2년이 되었다.
그동안 마리벨은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올리비에는 소령으로 진급했다.
1788년 6월.
줄리앙이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형님! 혁명이 일어났답니다. 며칠 전 그르노블에서 혁명이 일어났대요."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기와를 던져 몰아냈다더니 정말 혁명이 일어났단 말이냐?"
"그래요, 형님. 혁명이라고요!"
1788년 6월 7일, 도피네 주의 그르노블에서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기왓장 세례를 퍼부어 쫓아냈다. 그것은 그해 봄부터 프랑스 각지에서 벌어진 식량 폭동의 여파였고 보통 '기왓장의 날'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프랑스혁명의 첫 사건이었다.
"농담하지 마라, 줄리앙. 그건 혁명이 아니야. 단순한 폭동이라고!"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7월 21일에는 도피네 주에서 비합법적인 삼부회의가 개최되어 전국 삼부회의가 개최될 때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결의를 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이 결의가 혁명운동의 슬로우건이 되었다.
프랑스 삼부회의는 14세기에 필립 4세가 성직자(제1계급), 귀족(제2계급), 평민(제3계급) 대표 등을 소집한 것에 그 기원을 둔다. 회의는 주로 국왕이 요구하는 세금을 의제로 했는데 회의 소집권과 의제 제출권을 모두 국왕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국왕이 거대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회의는 1614년 이후는 개최되지 않았다.
8월 24일에 재무대신 브리에느가 사임하고 25일 자크 네케르가 후임으로 앉은 뒤 왕은 삼부회의 개최를 다음 해 5월 5일에 열 것을 승낙했다.
이 무렵부터 제3신분 즉 시민 대표의 수를 배로 늘리자는 운동이 일어났으나 자크 네케르는 반대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압력이 가중되어 드디어 이 해 2월 12일 파리 고등법원은 제3 신분의 수를 늘릴 것을 승인했다.
이러한 정치적 변혁은 시민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주긴 했으나 당장 헐벗고 굶주린 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이렇게 격동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의식을 더욱 부채질했던 것은 그해 수확기에 전국에 내려졌던 심한 우박이었다. 돌 같은 우박이 파리 근처에서 노르망디, 상파뉴 지방에 이르기까지 곡창지대를 모두 짓밟아버리고 말았다.
그에 이어서 찾아온 추위는 1702년 이래의 혹한이어서 12월 말에는 센강이 파리에서 르아브르까지 얼어붙고 기온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다.
시골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파리로 몰려들었다. 어느새 파리에는 거리마다 거지, 부랑자, 실업자들이 모여들어 금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파리의 구석구석에는 퀭한 눈의 사내들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녔고 이렇게 해서 프랑스는 운명의 1789년을 맞게 되었다.
1789년에 코메디 프랑세즈의 마리벨은 17살이 되었다.
1월 24일엔 삼부회의 소집과 선거규칙이 공포되고 프랑스 전국에 정부의 포고령이 선포되었다.
"프랑스 왕국의 모든 이름 없는 시민들도 저마다 자기의 소망이나 요구를 직접 궁중에 상신해 줄 것을 폐하께서는 희망하고 계신다."
국왕이 시민의 편에 서겠다는 약속을 하자 파리 시민들은 한동안 굶주림을 잊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 전국은 5월 5일에 열릴 삼부회의를 향해 격렬한 선거전에 돌입했다.
시에스의 《제3 신분이란 무엇인가》, 로베스피에르의 《알라스 인에게 고함》, 까미유 데물랭의 《프랑스 인의 철학》이 등장하여 시민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정국이 어떻게 돌아가든 백성이야 굶어 죽든 말든 국왕의 별궁 베르사유 궁전은 호화스럽기 그지없었다.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들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극장으로 안내하게."
말로만 듣던 베르사유 궁전을 처음 보는 마리벨은 그 화려함에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다들 알겠지? 오랜만에 왕비님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실수 없도록 조심해야 돼."
눈부신 베르사유 궁전의 대리석 조각들을 쳐다보다가 마리벨은 기둥에 부딪혔다.
"아! 마리벨은 베르사유가 처음이겠군."
잔느가 촌닭을 바라보듯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마리벨을 바라보았다.
궁전 안에 있는 극장에서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자 여배우 한 명을 놓고 사람들이 빙 둘러섰다.
"더욱 능숙해지셨더군요."
"정말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리시고."
그 여배우가 꽤 신분이 높은 여자라는 것은 아첨하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로 보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마리벨이 보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연기였다.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님! 어떻습니까, 전문가가 보시기에? 우리들의 연기를 솔직하게 비평해 주세요."
뜻하지 않게 즉석 비평을 부탁하는 바람에 마리벨은 잠시 당황했지만 느낀 대로 대답했다.
"글쎄요, 약간 외국 억양이 섞인 것이 흠이긴 하지만 대사도 두 군데밖에 안 틀리고... 그런대로 무난했어요."
그러자 그 여배우의 얼굴이 갑자기 독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나의 억양이 고깝게 들렸나 보군! 나의 억양은 모국 오스트리아를 잊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남겨둔 거예요!"
오스트리아라는 말에 마리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마리 앙투아네트! 오스트리아에서 시집 온 루이 16세의 왕비!
단장은 금세 죽을 상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왕비님. 이 아이는 궁이 처음이라서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단장은 마리벨을 떠밀어 왕비에게 사죄하게 했다.
"어서 마리 앙투아네트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 마리벨!"
마리벨은 어쩔 수없이 왕비 앞에 엎드려 경솔한 발언을 사과했다.
"마리벨이라고 했죠? 바로 그대가 마리벨이로군요. 소문은 듣고 있었죠. 지금 대중들에게 인기 절정이라고."
마리벨에게는 대답할 여유를 주지 않고 거만한 왕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잔느와 인기를 다툰다기에 어떤 사람인가 했더니... 아직 어린애가 아닌가?"
사뭇 조롱하는 말투였다.
"그럼 단장님, 오늘의 연극은 내가 미리 준비해 놓았어요. 저녁 8시부터 시작하기로 하죠."
말을 마친 왕비가 사라지자 곧 연습이 시작되었다. 연극은 세 시간 후에 시작해야 했으므로 즉흥극이나 다름없었다.
왕비가 준비했다는 대본은 유치한 작품이었다
프랑스에 유학을 온 스위스 귀족 카사드슈 백작을 둘러싸고 귀족의 딸 줄리와 평민의 딸 리블이 경쟁을 벌여 결국 귀족 줄리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이 줄거리였다.
"배역은 줄리에 잔느 그리고 리블에 마리벨! 이것도 왕비님이 정하신 것이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왕녀로 태어나 정략결혼으로 1770년 열다섯 살에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로 시집을 왔다. 그리고 1774년 열아홉 살에 루이 15세가 죽고 루이 16세가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루이 16세와 그녀는 정사를 돌보지 않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가난에 허덕이던 국민의 반감은 당시 왕비 한 사람에게 거의 집중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비가 정했다는 줄거리도 그러려니와 배역 결정에도 속이 뻔히 들여다 보였다.
귀족 출신이며 귀족에게 인기 있는 잔느와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마리벨을 무대 위에서 정면으로 대결시켜 귀족이 이기게 한다는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왕비의 속셈은 그토록 간교했다.
"오! 속을 뻔했군요, 백작님! 저 여자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당신을 유혹하여 백작 부인이 되려고 했답니다!"
마리벨은 죄인으로서 귀족들 앞에 꿇어앉는다.
"그러니까 천한 출신은 애초에 상대하질 말아야 해요."
백작은 마침내 리블에게 속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줄리는 리블의 죄를 추궁하지 않고 조용히 타이르기만 한다.
"자! 리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허황된 생각을 버리고 하늘에서 주신 운명대로 살아라. 지금이라도 널 체포하러 온 경찰들을 모두 돌려보내마. 신도 국왕도 우리 귀족도 너그럽단다."
그러나 마리벨은 다음 대사가 입속에서 차마 나오질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연극을 계속해야지!"
"오! 자비로우신 아가씨! 제 죄를 웃으시며 용서해 주시다니!"
마리벨은 어쩔 수없이 그렇게 지껄였다.
"그럼 백작 부인이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버리고 운명에 따르겠느냐?"
"네! 시골에 내려가서 밭을 갈고 시골 청년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우리 귀족에게 더욱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는가?"
또다시 마리벨은 대사가 막혔다.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그것만큼은 죽은 레안드르가 도저히 용서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찌 된 거야! 다음 대사는?"
왕비가 일어나며 대사를 재촉했다. 마리벨의 얼굴에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것은 거짓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자비로우신 귀족님 만세! 국왕 폐하 만세! 왕비님 만세!"
왕비와 귀족들이 일어나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울렸다.
"정말이지 왕비님, 이토록 시원한 연극은 오랜만에 봅니다. 이번 한 번으로 연극을 마치긴 아까운 느낌이군요."
귀족 한 명이 왕비 옆에서 아첨을 해댔다.
"아! 그 말도 옳군요. 그럼 단장, 이 연극을 파리 국립극장에서 한 달 동안 상연하도록 하세요."
단장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도무지 돈을 받고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아이들의 장난 같은 연극이었다.
"알겠죠, 단장? 한 마디도 대사를 바꿔서는 안 돼요. 배석도 지금 그대로!"
누구의 명령이라고 반발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왕비는 다시 마리벨을 불렀다.
"마리벨이라고 했지? 그대의 연기는 그런대로 쓸 만했어. 그런데 무대에 서서 사사로운 감정을 쏟는 경향이 있더군. 그건 좋지가 않아요. 앞으론 조심해야죠."
그러고 나서 왕비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3개월 뒤에 이것과 똑같은 연극을 국왕 폐하 앞에서 하는 거예요!"
"찬성입니다. 폐하도 즐거워하실 겁니다."
"그럼 3개월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해요. 그때 얼마만큼이나 연기가 늘었는지 보겠어요!"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 약속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역사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왕비가 떠난 뒤 여배우들이 지껄였다.
"오늘 왕비님은 아주 즐거워 보이시더군."
"그래, 무척 아름다운 분이셔."
"아! 나도 베르사유에서 한번 살아봤으면!"
"하지만 연극은 재미가 없었어. 그런 무의미한 연극을 앞으로 한 달 동안이나 해야 하다니! 지겹겠네!"
따로 떨어져 있던 잔느가 한마디 거들었다.
"과연 무의미한 연극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