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내 사랑 마리벨 #24

프랑스 만세 1/2

by 안녕
Épisode 22.


베르사유에서 돌아오는 마차 속에서 마리벨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한 달 간이나 그 지긋한 연극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이리저리 뛰는 것이 보였다.

"이봐요, 무슨 일이 있어요?"

"지금 누가 영주님 댁을 습격했어요."

"토지대장과 차용증서를 모두 불태워 버렸대요."

"뭐라고요? 그럼 우린 자유의 몸이 된 거잖아!"

"그렇다! 우린 자유다!"

"어이쿠! 자유?"

"자유, 자유 만세!"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의 표정이 꽤 밝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다.




마리벨이 다르 달랑 공작 댁에 도착하자 삼 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 굉장하군! 마리벨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님 앞에서 연극을 했다면서?"

"베르사유는 어땠나? 시치미 떼지 마."

우울한 마리벨의 마음을 그들이 이해할 리가 없었다. 마리벨은 대꾸도 하지 않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리벨, 피곤한 모양이군?"

"미안해요. 오늘은 혼자 쉬고 싶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린 낮부터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삼 형제의 실망은 대단했다. 마리벨을 가운데에 두고 신나게 베르사유 궁이며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삼 형제의 화제는 다시 우울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최근 여러 지방에서 폭도로 변한 농민들이 영주와 부자들을 습격하고 있다더군요, 형님."

"알고 있어. 금년 들어 벌써 수백 건의 보고를 받았다고."

"이러다간 파리도 위험하지 않겠어요?"

"귀족들이 싸우지 않고 그냥 굴복하리라고 믿는가?"

올리비에는 군인답게 비장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리벨은 문득 도리느가 생각났다. 도리느는 지난가을에 필립이라는 청년과 결혼해서 아파트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지난번에 찾아갔었을 때 그녀는 뱃속의 아기가 꿈틀거린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자랑했었다.

'어쩌면 아기 엄마인 도리느도 지금 굶고 있을지도 몰라!'

마리벨은 벌떡 일어섰다.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귀족의 집에선 빵 따위는 남아돌았다. 마리벨은 빵과 고기 등을 바구니에 담고 아파트로 향했다. 그것이 마리벨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고마워, 마리벨! 네 덕분에 난 건강한 아기를 낳게 될 거야."

"도리느! 비록 살림은 가난하지만 당신은 참 행복해 보여요."

"돈만 있으면 난 부러울 게 없어. 필립은 날 사랑하고 나도 필립을 누구보다 사랑하거든. 그리고 우린 이제 곧 아기를 갖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부러워요, 도리느."

"그런데 필립이 다니는 레비용 씨네 공장은 보수가 너무 적어서 탈이지 뭐야."

마리벨은 남은 빵을 아파트의 다른 가난한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아파트를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도리느의 남편 필립이 다니는 레비용 공장 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무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마리벨은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다.




레비용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대표들이 레비용을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뭐? 임금을 올려달라?"

레비용의 매부리코가 벌렁거리며 콧김을 뿜었다.

"부탁드립니다. 지금 급료 가지고는 가족이 굶어 죽기 딱이에요. 게다가 어머니는 병으로..."

"이봐! 자네 어머니의 병이 왜 나 때문이란 말인가?"

이번에는 도리느의 남편 필립이 나섰다.

"레비용 씨, 저의 집에서는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납니다. 아내에게 영양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어요!"

"뭐라고? 영양 있는 음식? 너희들 같은 처지에선 보리도 사치스러운 거야. 흑빵이나 완두콩을 먹어야 해. 날품팔이 직공들은 하루 15 수면 충분해. 그런데 난 20 수씩이나 주고 있잖아! 그런데 임금을 더 올려달라고? 이 날강도 같은 놈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요? 흑빵에 완두콩?"

"15 수로 먹고살라고요? 국왕의 말도 하루에 500 수 어치는 먹는다는데!"

"에잇! 우릴 뭘로 보는 거야!"

화가 난 노동자들이 레비용의 책상을 둘러엎고 난동을 부렸다.

"아이고, 사람 살려! 내가 잘못했네. 말로 하자고!"

그때, 밖에 있던 노동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큰일이다, 군대가 오고 있어!"

"달아나라!"

사람들은 모두 이리저리 뛰어 달아났다.

"모두 체포해서 바스티유로 보내!"

그날의 소동은 군대가 출동하여 일단 가라앉았다.




이튿날 아침, 마리벨이 다시 아파트에 찾아갔을 때 도리느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지난밤에 필립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겁먹은 도리느를 위로해 주고 콩테 극장으로 돌아오니 막이 오를 시간이 되었는데도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거리의 소동 때문에 연극 관람을 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 시간에도 필립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레비용과 교섭하기 위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레비용을 내보내라!"

"임금을 올려달라!"

그런데 또 급하게 달려온 사람이 군대의 출동을 알렸다.

"뭐라고? 임금 인상 교섭에 어째서 군대가 출동한단 말인가!"

잠시 후 멀리서 군대가 밀려오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저것 봐! 귀족의 군대다!"

"정말이다. 귀족을 옹호하는 스위스 용병이야!"

"맞아! 귀족 놈들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야."

임금을 올려달라고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귀족을 몰아내자는 폭도로 변했다.

"에잇, 나쁜 놈들! 귀족을 몰아내자!"

"귀족을 처치해라!"

노동자들 손에 몽둥이를 들고 군대에 맞섰고 군대의 대포는 노동자들을 향했다.

"쾅!"

4월 28일.

파리 시내에 울려 퍼진 이 대포 소리야 말로 바로 프랑스 대혁명의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마리벨은 콩테 극장에서 한창 그 한심한 연극을 공연하고 있는 중이었다.

"큰일 났다! 상 탕 트와느 거리에서 시민들이 귀족 군대에게 학살당했다!"

누군가 극장으로 들어서며 소리지르자 연극은 즉시 중단되었다.

"군대가 시민을 죽여? 설마..!"

"정말이다! 레비용 공장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대포를 맞고 길바닥에 쓰러졌어. 상 탕 트와느 거리는 아수라장이라고!"

객석에 앉아있던 귀족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폭도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 어서 돌아가자!"

마리벨은 필립이 걱정되었다.

"마리벨, 어딜 가는 거야? 지금 나가면 위험해! 난동 속에 휘말리면 큰일이라고!"

다르마가 말렸지만 마리벨은 뿌리치고 극장을 나왔다. 가엾은 도리느를 위해 필립의 생사를 알아봐야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극장 앞에는 마차가 많았지만 마부들은 상 탕 트와느 거리는 위험하다며 모두 고개를 저었다.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하는 수없이 마리벨은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마리벨이 상 탕 트와느 거리에 다다를 무렵 그곳에선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한 모퉁이만 더 돌아가면 레비용 공장이었지만 밀려다니며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때문에 마리벨은 발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필립! 필립! 필립을 못 봤어요?"

마리벨은 다치고 죽고 쓰러지고 울부짖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부르짖고 다녔다.

"마리벨!"

줄리앙이었다.

"사관학교에서 소식을 듣고 빠져나오는 길이야. 왜 이런 곳에 와 있지?"

"필립이... 도리느의 남편 말이에요. 레비용 공장에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어제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대요."

"필립! 필립!"

줄리앙의 손을 잡고 마리벨은 목이 쉬도록 외치며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한 시간 동안이나 그렇게 돌아다녀도 필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이 사방에서 솟아오르고 이따금 콩이 튀는 듯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안 되겠어, 마리벨. 그동안 집에 돌아갔는지도 모르잖아!"

"그렇군요. 틀림없이 필립은 집에 돌아갔을 거예요."

두 사람이 도리느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도리느는 시체같이 창백한 모습으로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도리느! 필립은?"

도리느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곧 돌아올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솟아오르는 불길과 총소리를 듣고 온 마리벨과 줄리앙은 필립이 돌아오리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오, 필립!"

도리느는 마리벨의 무릎에 쓰러져 울고 있을 뿐이었다. 한없이 울기만 하던 도리느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성난 얼굴로 외치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우리들만 이런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이야! 일하고 또 일하고 힘이 빠지게 일을 해도 하루 먹을 빵을 살 수조차 없잖아! 알고 있지, 마리벨? 지금 파리 시민들은 여섯 사람 중에 한 사람 꼴로 굶어 죽고 있어. 여섯 명 중의 한 명이 말이야!"

마리벨도 줄리앙도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도리느! 도리느!"

창밖에서 어렴풋이 도리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작고 힘이 없었지만 분명히 필립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총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필립이 쓰러져 있었다.

"오, 필립!"

그러나 도리느는 그렇게 한번 외쳤을 뿐이었다. 이미 필립은 죽어있었다. 사색이 된 도리느는 필립의 시체 위에 쓰러졌다.

"필립이 죽었다! 도리느가 위험해!"

도리느는 기절해 버렸다.

"빨리 물을 데워! 충격을 받아서 도리느의 아기가 빨리 나올 것 같아!"

아파트의 주인 아주머니가 달려 나오고 갑작스럽게 출산 준비를 하며 법석을 떨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사내 아이야, 아주 건강한!"

"내 아기를 이리 줘요! 필립과 나의 아기!"

도리느는 아기를 안았다. 그리고는 필립의 시체 쪽으로 기어갔다.

"보세요, 당신의 아기를! 아들이에요. 미름은 필립이라 부르겠어요, 쁘띠 필립! 당신처럼 씩씩하고 건강한 남자로 키우겠어요. 키워서..."

도리느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아기와 함께 시체 위에 푹 고꾸라져 버렸다.

갓 태어난 쁘띠 필립을 남겨놓고 도리느도 필립을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죠!"

두 사람을 볼로뉴 숲에 묻으며 마리벨은 레안드르를 묻을 때처럼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마음씨 착한 도리느! 행복의 문 한 발자국 앞에서 걸려 넘어진 도리느! 자신은 배를 굶주리면서도 마리벨의 시험을 위해 달걀 세 개를 사주었던 도리느!




마리벨이 다르 달랑 공작 댁에 도착했을 때 콩테 극장의 심부름꾼이 마리벨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공연 시간이 되었으므로 마리벨을 부르러 온 것이었다.

방금 도리느와 필립을 묻고 온 마리벨은 도무지 연극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비록 무대 위라고는 하지만 귀족 만세, 왕비 만세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쫓아 주세요, 줄리앙. 연극은 당분간 쉬겠어요. 그리고 왕비가 시키는 연극은 하기 싫다고요!"




잠시 후 군인들이 다르 달랑 공작 저택으로 몰려왔다. 왕비의 명령을 거역한 마리벨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줄리앙! 군인들이야!"

"걱정 마, 프랑소와!"

현관에서 마리벨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군인들이 참다못해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짓들이오!"

막아서는 프랑소와를 밀치고 군인들은 응접실 문을 열어젖혔다.

거기에는 삼각 붕대로 오른팔을 어깨에 잡아 맨 마리벨과 줄리앙이 앉아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이렇게 된 사정을 설명하려던 참이었소. 그런데 이렇게 함부로 침입하다니 좀 지나치지 않소?"

책임 장교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했다.

"아... 아뇨! 죄송합니다, 줄리앙 님."

"보다시피 마리벨 양은 어제 레비용 공장 사건에 휩쓸러서 부상을 입었소. 그러니 당분간 무대에 서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소. 부상이 완쾌될 때까지는 공연을 쉬겠다고 왕궁에 전해주시오."

장교는 줄리앙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곧 눈치채고 말했다.

"좋습니다. 부상한 데를 직접 확인하게 해 주십시오."

줄리앙은 짐짓 화가 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다르 달랑 가문은 공작의 칭호를 누리는 유서 깊은 집안이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 다르 달랑 가문을 믿지 않겠다는 뜻이 되오!"

장교는 마음이 켕기는지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럴 리가! 죄송합니다. 제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마리벨 양은 부상이 낫는 대로 무대에 설 것이라고 보고 하겠습니다."

군인들이 돌아가고 나서 곧이어 올리비에가 돌아왔다.

"어제 사건 때 군대를 총지휘했던 사람이 형님이라면서요?"

"그렇다, 줄리앙"

"어째서 무장하지도 않은 시민들에게 발포했나요?"

줄리앙은 형에게 마구 대들었다.

"전 사관학교에서 군대의 진정한 뜻을 배웠습니다. 군대는 국가의 적을 향해 진격하는 것이라고요."

"어제의 그들은 분명 국가의 적이었다. 여기저기서 지주와 귀족을 습격하고 폭동을 일으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바로 국가의 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비록 사관생도였지만 루소의 자유사상에 심취해 있던 줄리앙에게 그 말이 먹혀 들어갈 리가 없었다. 줄리앙의 생각으로는 국가는 곧 국민이었다. 결코 국민은 국가의 적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시민에게 발포하는 것은 도리어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다.


프랑스 통화

프랑(Francs), 수(Sou), 상팀(Centime)

1 Francs = 20 Sou = 100 Centime

100 Francs = 신 1 Fran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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