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들라 2/2
Épisode 26.
파리 시민들은 한두 사람씩 무기를 갖추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튈르리 궁 앞에서 군대와 충돌하여 폭동으로 변했고 양쪽 다 많은 사상자를 냈다.
7월 13일.
앵발리드를 습격한 만 명의 군중은 이만 사천 자루의 소총과 이십 문의 대포를 탈취해 무장을 강화했고, 다시 상 라바르 성당을 습격하여 많은 빵과 밀가루를 압수했다.
왕의 군대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르스 연병장에 집결한 연대들의 지휘관인 브장발은 왕의 명령을 기다린다면서 파리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7월 14일 새벽.
파리 전역에 요란한 종소리가 올렸다. 시민군이 궐기를 촉구하는 종소리였다.
"바스티유의 대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다!"
"바스티유의 대포가 상 탕 트와느와 팔레 루아얄 그리고 시청을 향하고 있다!"
무장을 한 시민들은 바스티유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바스티유의 수비 사령관 드 로네이에게 시민군에게 무기를 양도하고 요새의 탑에서 대포를 제거하라는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나 백기를 들고 간 시민 대표에게 군인들이 사격으로 응수하자 바스티유는 삽시간에 시민들에 의해 포위되었다.
백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격렬한 전투 끝에 수비군 중의 몇몇이 그들의 사령관 드 로네이를 강제로 항복시켰다. 흥분한 군중들은 바스티유 사령관 드 로네이와 파리 시장 자크 드 플레셀을 때려죽였다.
바스티유 점령을 기념하여 파리의 대주교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가를 부르도록 하자 왕족들은 파리 동쪽 200km 지점의 메츠로 달아났다.
이제 프랑스의 주인은 루이 16세가 아니라 프랑스의 국민이었다.
혁명은 시작되었으며 처음부터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7월 15일.
국왕 루이 16세는 자기의 패배를 인정하고 군대를 일단 철수시켰다.
시민들이 떠받들던 자크 네케르는 파리 시청으로 나와 국민 위병대를 창설하고 사령관에 질베르 라파예트를 임명했다. 국왕은 시민에게 무조건 굴복했던 것이다.
레미의 집은 혁명군의 연락 장소가 되어 줄리앙과 마리벨은 더 이상 거기에 머물 수가 없게 되었다. 레미는 두 사람을 위해 볼로뉴 근처에 있는 귀족의 빈집을 하나 구해 줬다.
최근까지 사람이 살고 있던 집이었기 때문에 가구도 그대로 있었다. 줄리앙과 마리벨은 마치 신혼부부처럼 행복하게 며칠을 보냈다.
줄리앙이 드러누워 있는 동안 마리벨은 집 앞 텃밭을 뒤져 감자를 캐냈다. 집주인이 심어놓고 달아난 감자였다. 심각한 파리의 식량난 속에서 감자는 하늘이 내린 은총이었다. 마리벨은 남는 감자를 거리에 들고나가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줄리앙의 상처도 점차 아물기 시작해서 이젠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 걸을 정도가 되었다. 몸은 비록 부자유스러웠지만 줄리앙은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리벨이 곁에서 온 정성을 다해 자기를 간호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집 앞에서 마차가 한 대 멈췄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르마였다.
"다르마 선생님!"
"기쁜 소식이야, 마리벨! 그대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어!"
국민의회에서는 성직자와 귀족들이 지금까지의 특권을 모두 포기했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왕궁의 명령으로 2년간 출연이 정지되었던 마리벨의 징계도 자연 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리벨 즉시 콩테 극장으로 달려갔다. 극장의 객석과 무대를 고루 밟아보며 마리벨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들어서고 싶었던 국립 극장인가!
분장실에 들렀을 때 그녀는 환영하는 사람들과 시샘의 눈초리를 함께 맞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베아트리스가 마리벨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마리벨, 너무 좋아할 것 없어. 밖에서는 혁명이라느니 하며 떠들어 대지만 여기선 그런 말이 통하지 않아요. 우리 코메디 프랑세즈 단원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절대적으로 국왕 폐하의 신하예요. 국왕 폐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코메디 프랑세즈 단원으로 인정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무대에는 나가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앞으로 반년 동안은 우리의 레퍼토리와 배역이 다 정해져 있으니 마리벨은 출연할 여지가 없을 뿐이에요."
말하자면 코메디 프랑스의 단원으로 복귀를 해도 무대 출연은 시키지 않고 다만 급료만 받아가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마리벨은 무척 마음이 편해졌다. 언제든 배역만 들어오면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레미는 국민 위병대의 부대장으로 승진했다. 회복된 줄리앙은 국민 의회의 서기로 취직이 되었다. 혁명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소식이 날아들고 있었다.
마리벨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소식은 오빠 앙투안이 사면된다는 소식이었다. 생 쥐스트의 불온서적 출판의 죄는 이미 지나간 혁명 전의 죄였지만 사면이 내려지지 않는 한 헌병에게 쫓겨 다녀야 했었다. 그러던 것을 레미가 손을 써서 쉽사리 앙투안의 사면장을 얻어 가지고 왔다.
줄리앙은 즐거운 마음으로 사면장을 가지고 상 탕 트와느의 망통 술집으로 앙투안을 찾아갔다. 지하실에 숨어 있던 앙투안은 찾아온 사람이 줄리앙이란 전갈을 받고 들여보내도록 했다.
"마리벨은 잘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줄리앙은 사면장을 내놓았다.
"생 쥐스트! 당신은 이제 자유의 몸입니다!"
사면장을 손에 들고 앙투안은 감격하여 떨고 있었다.
"누구한테 감사하면 되겠소?"
"마리벨과 내 친구 레미 그라탱이란 사람에게요."
앙투안은 떨리는 손으로 줄리앙의 손을 잡았다.
"고맙소. 당신은 두 번이나 나를 구해 주시는군요! 그때의 상처는?"
"다 나았습니다. 당신도 다치셨죠?"
"난 상처가 가벼웠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줄리앙은 앙투안을 만나면 꼭 얘기하려던 말을 꺼내기가 무척 쑥스러웠다.
"부탁이 있습니다. 마리벨을 제게 맡겨주십시오. 결혼하고 싶습니다!"
앙투안은 줄리앙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리벨의 남편으로서 한 군데도 나무랄 데가 없는 청년이었다.
"로버트라는 영국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소?"
"마리벨에게서 들었습니다."
"전부?"
"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그리고 아직 마리벨 가슴속에는 로버트라는 사람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까지도..."
"그렇다면... 당신은 로버트의 역할을 대신해 주겠다는 뜻인가?"
"대역을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난 줄리앙입니다."
줄리앙은 분동을 터뜨렸다. 앙투안까지 자기를 로버트의 대역이라고 말하는 데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오, 줄리앙. 난 마리벨의 결혼에 간섭할 자격이 없소. 두 사람의 관계는 당사자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길 바라오."
일어서 나가려는 줄리앙에게 앙투안은 보자기에 싼 묵직한 것을 내밀었다.
"이걸 마리벨에게 전해 주면 고맙겠소. 전에 마리벨로부터 받아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이오."
줄리앙은 무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받아 가지고 술집을 나왔다.
앙투안은 줄리앙의 마음을 언짢게 해서 돌려보낸 것이 마음 아팠다. 그러나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줄리앙을 보았을 때 앙투안은 깜짝 놀랐었다. 마리벨이 맡겨놓은 장식용 접시 속의 인물 즉 로버트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프랑스 인이며 다르 달랑 공작 댁의 차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앙투안은 두 번째로 놀랐다.
앙투안은 마리벨이 줄리앙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줄리앙의 모습에서 로버트를 발견하고 사랑으로 치달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아무리 용모가 닮았다 하더라도 사람에게는 남다른 개성이 있는 법이다. 언젠가 줄리앙에게서 로버트와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면 사랑은 깨어지기가 십상인 것이다.
이미 로버트는 멀리 영국에서 마가렛 공주와 약혼을 했고 줄리앙은 현실로 마리벨 눈앞에 있는 것이다. 앙투안의 생각에도 마리벨과 줄리앙이 맺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단지 마리벨이 줄리앙을 로버트의 대역으로서가 아니라 줄리앙 바로 그 사람으로서 사랑할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생 쥐스트가 당신에게 이걸 전해 주라고 했소."
집으로 돌아온 줄리앙은 보자기에 싼 물건을 마리벨 앞에 내놓았다. 마리벨은 겹겹이 종이로 싼 그 물건을 조심조심 풀어보았다. 그것은 앙제에서 앙투안과 헤어질 때 맡겨 두었던 장식용 접시였다.
그 접시를 보는 순간 줄리앙은 너무도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너무나도 자기와 닮은 사람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줄리앙은 접시 속의 사람이 로버트라는 걸 직감했다. 그 접시를 보는 순간 마리벨의 두 뺨이 홍조를 띠면서 꿈꾸는 듯한 눈으로 변하는 것을 줄리앙은 보았다.
"로버트?"
마리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닮았다는 말을 마리벨에게서 들었었지만 그토록 꼭 닮았을 줄은 줄리앙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비록 어린 시절 로버트의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줄리앙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전 가끔 줄리앙 당신과 로버트가 쌍둥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자기를 쳐다보는 마리벨의 눈동자는 사실은 자기를 쳐다보는 눈이 아니라는 것을 줄리앙은 깨달았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마리벨?"
이제 마리벨의 귀에는 줄리앙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줄리앙은 아까 앙투안이 했던 말을 생각해 냈다.
'당신은 로버트의 대역이 되어 줄 생각인가?'
그제야 줄리앙은 그 접시를 앙투안이 전해주라고 부탁한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줄리앙과 마리벨의 사랑을 로버트를 사이에 두고 확인해 보라는 뜻이었다.
"마리벨! 그 접시를 내 앞에서 깨 버려!"
"안 돼요!"
마리벨은 보물을 감추듯 그리고 줄리앙이 그것을 빼앗으려는 도둑이라도 되는 것처럼 줄리앙을 매섭게 쳐다봤다.
줄리앙은 불끈 울화가 치밀었다.
"난 줄리앙이야. 선택해 다오, 마리벨. 나인가 아니면 과거의 첫사랑의 망령인가! 날 택하겠다면 그 접시를 깨버리고 로버트와 영원히 헤어지란 말이야!"
줄리앙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는 것을 마리벨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줄리앙? 이상해요! 무서워요! 그런 얼굴은 하지 마세요!"
"처음엔 멀리서 널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어. 마리벨이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았어. 설사 로버트의 대역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줄리앙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불쌍해져 버렸어. 로버트의 대역만으로는 내가 너무 불쌍해. 최소한의 사랑이라도 받고 싶어. 아니, 네 모든 걸 갖고 싶어. 너의 마음을 갖고 싶어."
줄리앙의 눈은 욕망으로 이글거렸다. 지금까지 로버트라는 청년에 대해서는 말로만 듣고 있었지만 이제 그 얼굴을 보고 나니 라이벌 의식이 치솟았다. 그것은 분명히 질투였다.
갑자기 줄리앙이 마리벨을 껴안았다.
"안 돼요, 줄리앙!"
언젠가 그녀의 아파트에서 밤새 마리벨을 껴안았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추위에 떠는 마리벨의 몸을 녹여 주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불붙는 욕망에서였다. 남자로서 마리벨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서였다.
"아! 도와줘요, 로버트!"
마리벨의 그 한마디가 줄리앙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했다. 사랑한다든가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감정 위에 파괴해 버리고 말겠다는 감정이 앞섰다. 로버트라는 한 남자를 위해 간직한 마리벨의 순결을 짓밟아 버리고야 말겠다는 잔인한 생각이 온통 줄리앙을 지배하고 있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껴안은 채로 줄리앙은 마리벨을 침대 위에 던졌다.
야수 같이 덤벼드는 줄리앙에게 마리벨의 저항은 너무도 허약했다. 마리벨의 옷이 하나씩 차례로 벗겨졌다.
"로버트라면 절대로 이런 짓은 하지 않아요."
그것이 마리벨의 마지막 저항이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내 행복은... 끝나 버렸어!"
몹시 흐느꼈던 것은 도리어 줄리앙이었다.
이튿날 아침 레미가 찾아왔다. 줄리앙에게는 첫 출근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줄리앙, 서둘러! 첫 출근부터 늦을 수는 없잖아!"
그러나 방 문을 열었을 때 줄리앙은 거기에 없었다. 침대 위에는 편지 한 장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마리벨! 나를 용서해 주오. 난 결코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소. 당신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는 것으로써 당신에게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싶소.'
줄리앙의 편지를 들고 서 있는 마리벨은 온몸으로 떨고 있었다.
"줄리앙!"
진정으로 마리벨은 줄리앙을 애타게 불렀다. 로버트가 아닌 줄리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