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느! 내 사랑 1/2
Épisode 30.
람베드 거리의 랜버트 저택 정문 앞에는 매기와 수잔 그리고 맥코비와 엘렌 등이 나와 로버트의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버의 백양나무 별장에서 하룻밤 묵은 로버트가 런던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벌써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차가 도착한 것은 오후 네시였다.
"로버트 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마부 해리가 싱글벙글 웃으며 소리지르자 사람들이 우르르 마차로 달려왔다.
혁명 때문에 정국이 불안정한 프랑스로부터 로버트가 반년 만에 무사히 귀국한 것이다.
로버트는 마차에서 내렸다.
"로버트 님! 떠나실 때보다 더 건강해지셨군요!"
"고마워, 매기!"
로버트의 뒤를 이어 마차에서 내린 마리벨을 보고 사람들 모두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마리...?"
"그래요, 마리벨이에요. 안녕하셨어요?"
사람들은 차례로 마리벨을 껴안았다.
로버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내 약혼자를 전부터 알고 있었나?"
로버트는 태연하게 말했다.
"약혼자라고요?"
"그렇소. 마리벨과 나는 파리에서 약혼을 했다오!"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 모두들 랜버트 가의 새 여주인에게 인사를 하시지."
맥코비, 매기, 수잔, 엘렌 등이 차례로 마리벨에게 무릎을 꿇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마리벨, 아버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두 사람은 랜버트 공작이 있는 서재로 갔다.
"아버님, 지금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로버트! 그리고 마리벨도! 어서 오너라!"
"저희는 프랑스에서 약혼했습니다. 결혼 날짜는 나중에 정하기로 하겠습니다."
한동안 윌리엄 랜버트는 말을 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런 랜버트 공작을 그대로 두고 두 사람은 서재를 나왔다.
"아버님이 역정을 내시는군요?"
"괜찮아. 우린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마리벨은 옛날에 자기가 쓰던 방으로 가 보았다. 침대도 옷장도 커튼도 모두 옛날 그대로였다. 마리벨은 열 살 때 처음 이 랜버트 저택에 왔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저녁 윈저 궁에서 로버트의 귀국을 축하는 파티가 열렸다. 언제나 정보에 빠른 클라렌스가 로버트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로버트가 파티장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이 우르르 그에게로 몰려왔다.
"로버트,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친구들이 로버트를 꼼짝 못 하게 붙잡자 호지어가 커다란 가위를 들고 왔다.
"무슨 짓이에요?"
뒤이어 들어온 마리벨이 기겁을 하며 친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누구야!"
마리벨을 보자 로버트의 친구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그때까지 친구들에게 잡혀 꼼짝도 못 하고 있던 로버트가 싱글벙글 웃으며 일어섰다.
"자! 다들 머리를 내밀게. 그리고 호지어! 그 가위를 이리 줘. 모두들 말했잖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런던을 떠나기 전 로버트와 친구들은 내기를 했었다. 마리벨을 못 데려 오는 날엔 로버트가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약속이었다. 그 대신 로버트가 마리벨을 데려오면 자기의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나선 친구가 여섯 명이나 있었다.
약속을 지키는 일은 신사의 첫째 조건이었다. 모두들 머리카락을 로버트의 앞에 늘어뜨리고 죽을 상을 짓고 있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로군. 자를 마음이 생기지는 않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면 내가 약속을 어기는 꼴이 되니 할 수 없지 않은가!"
호지어가 첫 번째 차례였다.
"제발 부탁이야. 너무 짧게 자르지는 말아 줘! 나도 다음 달에는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네!"
호지어는 죽는시늉을 하면서 머리를 내밀고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로버트의 가위가 호지어의 머리카락을 한 뭉텅이 자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로버트, 그분을 용서해 줘요."
마리벨이 애원했다.
"안 돼요, 마리벨! 이건 신사의 약속이거든."
"하지만 로버트! 호지어는 우리 결혼식의 들러리를 설 사람이라고 말했잖아요. 들러리의 머리카락이 엉망이면 결혼식이 뭐가 되겠어요?"
"하긴 그렇군..."
로버트가 주춤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호지어가 기를 펴고 말했다.
"이봐, 로버트! 어서 자르게. 자네 마음대로 자르라니까!"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여섯 명의 친구들이 서로 머리를 내밀며 머리카락을 잘라 달라고 아우성이었고 로버트는 가위를 든 채 울상을 짓고 서 있었다.
"로버트, 신사의 약속을 지키도록 하시오!"
어느새 나타났는지 클라렌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로버트로서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로버트, 약속을 지키세요. 하지만 다 자를 필요는 없어요. 머리카락 몇 개만 잘라도 약속은 지킨 것이니까요."
그제야 로버트는 안도를 했다. 마리벨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버트, 공은 훌륭한 약혼자를 두었군요. 마리벨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는 오늘의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을 것이오."
그렇게 해서 모두들 한바탕 웃고 나서 즐거운 파티가 시작되었다.
클라렌스 공과 함께 마가렛 공주도 왔다.
"오랜만이에요, 마리벨 양."
"공주님, 오랜만이에요."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도 마리벨은 의문을 풀 수가 없었다. 자기가 런던을 떠나던 날 마가렛 공주는 로버트와 약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로버트가 자기와 약혼할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런던으로 오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물어볼까 했으나 마리벨은 로버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로버트의 아픈 곳을 건드리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어떤 사정이 생겨서 파혼을 했거나 아니면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했는지도 몰라!"
그러나 마리벨은 차라리 로버트가 이혼한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결혼한 적은 없지만 줄리앙에게 순결을 빼앗긴 몸이라 로버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의문은 자연히 풀리고 말았다. 클라렌스가 마리벨에게 그동안의 경과를 말해주었다.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마가렛은 나의 아내라오."
너무도 놀라웠다. 그렇다면 레안드르와 함께 영국으로 오려고 했을 때 영국 왕가의 결혼식이 있다고 하던 것은 마가렛 공주와 클라렌스 공의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주 행복하오. 아직 자식이 없는 것이 한 가지 흠이긴 하지만!"
마리벨이 떠나던 날 로버트는 마가렛 공주와 약혼을 했었다. 그러나 그 날부터 로버트는 사람이 아주 달라졌다. 몸을 돌보지 않고 술을 마셔 댔고 품행이 나쁘기로 소문이 난 친구들만 골라서 사귀며 돌아다녔다. 그런 소문은 국왕 조지 3세의 귀에도 들어갔다. 국왕은 대단히 노했다.
"에잇! 더는 못 참겠다! 나의 조카인 마가렛의 남편감으로 로버트는 낙제야! 약혼을 취소한다!"
"아니에요, 폐하! 로버트 님은 마리벨 양을 잊지 못해 고민하고 있어요. 이제 마리벨이 프랑스로 떠났으니 로버트 님의 고민도 곧 사라질 거예요. 전 로버트 님이 마리벨을 잊을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릴 거예요!"
마가렛 공주는 눈물로 국왕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로버트의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고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국왕의 조카가 약혼자에게 따돌림을 받다니! 이건 왕가의 수치다! 마가렛! 로버트 따윈 잊어버리고 다른 약혼자를 찾아라!"
그때까지 참고 있던 클라렌스도 드디어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가렛 공주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어느 날 클라렌스는 로버트를 세인트 제임스 공원으로 조용히 불렀다.
"오늘은 웬일인가? 술에 취하지 않았으니!"
"전하께서 부르시는데 감히 술에 취해서 나타낼 수가 있나요?"
"로버트! 내게는 공손하면서 어째서 마가렛에게는 그토록 냉정한가? 그대가 마가렛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 그대는 나와 국왕까지도 경멸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클라렌스의 양 손에 각각 칼이 하나씩 쥐어져 있는 것을 로버트는 그제야 알아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전하?"
"보다시피 결투다!"
클라렌스는 칼 한 자루를 로버트에게 던졌다.
"전하, 전 전하와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비겁하게 꽁무니를 빼지 말게! 마가렛과 약혼했으면 그대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어! 하지만 자넨 그 의무를 저 버렸어! 그건 나와 왕가에 대한 배신이야! 자, 어서 칼을 뽑아라!"
클라렌스의 칼끝이 로버트의 가슴을 향해 날아 들어오자 로버트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키며 칼을 뽑았다.
두 사람의 칼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세인트 제임스 공원의 정적을 갈라놓았다. 그러나 몇 번 칼이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로버트는 그만 칼자루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한심하구나, 로버트! 영국 최고의 검객이라는 자네가 그게 무슨 꼴인가!"
로버트로서도 창피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칼을 잡은 손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로버트! 그대가 마리벨을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마가렛에게 청혼해 올 때까지 마가렛은 내가 임시로 맡기로 하겠다."
"전하, 무슨 말씀이신지?"
"마가렛과 내가 결혼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형식적인 결혼일 뿐이다. 그대가 돌아오면 내가 고이 간직했다가 마가렛을 내주겠다!"
클라렌스 공의 배려가 너무나 세심하여 로버트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를 희생해서까지 로버트와 마가렛을 보호하려는 그 정성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리벨은 자기가 떠난 뒤의 로버트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 후 마리벨의 그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갔다.
이튿날 아침 랜버트 저택의 식탁에는 마리벨이 함께 하게 되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이로구나! 랜버트 가의 아침 식탁에 여자가 앉아있는 것이!"
랜버트 공작이 감상에 젖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작은 이미 마리벨을 며느리로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인들도 세 사람의 식탁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몇 년 만일까? 저렇게 따스한 분위기에서 공작님께서 식사하시는 것이!"
"그러게 말이야. 공작님께선 그동안 너무도 적적하셨어!"
"모두가 마리벨 님 덕분이야. 아! 이런 상태가 이젠 오래오래 계속되겠지?"
"물론이지. 우리들도 힘이 나잖아!"
아침 식사가 끝나갈 무렵 랜버트 공작이 입을 열었다.
"로버트, 약혼식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아버님,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들은 이미 파리에서 약혼식을 올렸다고요!"
"아무리 프랑스에서 약혼식을 했다고는 하지만 랜버트 가의 외아들인 이상 영국에서 정식으로 약혼식을 해야 되는 거야. 오늘 밤에 약혼식을 마련하겠다. 준비시키도록 해!"
"아버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로버트 마리벨은 감격했다. 랜버트 공작이 반대할 것을 예상해서 로버트는 파리에서 서둘러 약혼식을 간단히 올렸던 것이다. 아버지가 설사 반대하더라도 약혼은 기정사실임을 강조하여 결혼을 강행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랜버트 공작이 자진해서 두 사람의 약혼식을 정식으로 치러주겠다니 감격할 수밖에!
"공작님께서 로버트 님과 마리벨 님의 약혼식을 오늘 밤에 정식으로 열어 주신대!"
랜버트 가의 하인들도 만세를 부르며 함성을 질렀다.
그날 저녁 약혼식은 온 영국을 통틀어 가장 성대하게 치러졌다. 모든 귀족들이 초대되었고 프랑스에서 망명해 온 프랑스의 귀족들도 참석했다.
"축하합니다, 로버트 님!"
"축하합니다, 마리벨!"
"고맙습니다, 여러분!"
여자들은 모두들 마리벨을 부러워했다. 자기들의 우상이었던 로버트를 마리벨에게 완전히 빼앗겼다는데 대해 실망을 하는 소녀들도 많았다.
그런데 약혼식장은 얼마 안 가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망명 귀족인 미요 백작 부인이 참석하자마자 떠나겠다고 하자 나머지 프랑스 귀족들도 뒤따라 일어섰다.
"왜 그래요, 미요 백작 부인?"
미요 백작 부인은 분노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설마 하고 왔어요. 마리벨이란 이름은 흔한 이름이니까요. 그러나 로버트 님의 약혼자가 혁명 배우 마리벨 바로 그 여자일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답니다."
"그래요, 마리벨은 악마의 일당이랍니다! 악마의 약혼식을 축하해 줄 생각은 없어요. 한 자리에 함께 앉아 있기도 싫다니까요!"
마리벨은 몹시 난처했다. 프랑스 귀족들이 자기에게
반감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할 줄은 몰랐다.
"혁명 배우 마리벨! 그 소문은 나도 들었지만 설마 하니 로버트 님의 약혼자가..."
"마리벨 님! 정말인가요? 당신이 그 악마들의 일당인가요?"
언제나 다정하고 친절한 마가렛 공주까지도 마리벨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악마라뇨? 저는 다만 배우였을 뿐이에요."
"시치미 떼지 말아요.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네 국왕과 귀족들을 잡아 죽이는 사람들이 악마가 아니고 뭐예요?"
"아! 그때를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려요. 미쳐 날뛰던 관중들의 눈동자를! 그들을 충동질한 건 바로 이런 여자들이에요!"
마리벨은 어떻게 해서든 오해를 풀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너무나도 괴로운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따뜻한 마음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거예요."
"저것 보세요! 저 여잔 지금도 그들을 변호하고 있잖아요!"
"로버트 님! 절대로 속아서는 안돼요. 저 여잔 생 쥐스트의 애인이랍니다!"
"아니에요! 전..."
"마리벨이 생 쥐스트의 애인이라는 건 프랑스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에요!"
"뭐라고? 생 쥐스트라면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루이 16세를 기요틴으로 보낸 인물이 아닌가?"
"아닙니다! 그 분과 전...."
마리벨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변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이상 얘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생 쥐스트 누이동생이란 것을 사실대로 밝혀 봤댔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리어 로버트와 랜버트 공작의 입장만 어렵게 만들 뿐이었다.
"전 생 쥐스트란 이름은 모릅니다!"
"거짓말이에요. 당신 재판 때 생 쥐스트가 변호를 했었잖아요?"
마리벨이 몰리는 꼴을 보다 못해 로버트가 가로막고 나섰다.
"그만들 하시오! 당신네들은 내 약혼자를 모욕하기 위해서 온 거요?"
"우리는 로버트 님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마리벨을 축하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
"마리벨은 나의 약혼자예요. 그러니까 마리벨에 대한 모욕은 우리 랜버트 가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소!"
그렇게 말하고 로버트는 정원으로 나가버렸다. 마리벨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로버트, 전 생 쥐스트를 알지 못해요. 만난 적도 없어요."
울먹이는 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어색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마리벨! 당신은 옛날부터 거짓말하는 데는 무척 서툴렀지."
그때 에베크가 정원에 나타났다.
"에베크, 마리벨을 부탁하네. 난 좀 급히 다녀올 데가 있어."
마리벨이 붙잡을 사이도 없이 로버트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리벨,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로버트의 머리카락이 왜 저렇게 길어졌는지 알고 있나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우울해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프랑스로 간 뒤에 로버트는 집시 여자한테 점을 쳤지요. 마리벨을 다시 만나게 해 달라는... 집시 여자는 로버트가 머리카락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로버트는 그때부터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답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긴 머리카락을요!"
마리벨의 거북한 입장을 얼버무려 주기 위해 에베크는 노력했지만 마리벨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마리벨 양, 오늘 파티의 주역인 당신이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합니까? 어서 들어갑시다."
그러나 마리벨은 파티장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전 잠시 여기 있겠어요. 로버트 님은 곧 돌아오시겠죠?"
"로버트는 이미 런던에는 없을 거예요. 아마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을 거요."
어쩔 수 없이 마리벨이 파티장이 들어섰을 때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파티라면 더 있을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이거 정말 너무하는군. 모처럼 손님들을 불러놓고 말이야."
"파티는 이제 끝이로군."
삽시간에 나머지 사람들도 파티장을 떠나갔다. 약혼식 장이었지만 랜버트 공작이 약혼을 정식으로 발표하기도 전에 파티는 끝장이 나고 말았다.
창밖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