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내 사랑 마리벨 #39

내 사랑 마리벨 2/2

by 안녕
Épisode 37.


마리벨은 돌아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앙투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초조하다 못해 짜증이 났다.

그때 문 소리가 났다. 앙투안이려니 생각하고 달려가 문을 여니 거기에는 뜻밖에도 로버트가 서 있었다.

"로버트!"

"침착하게 잘 들어, 마리벨. 생 쥐스트가 체포되었어."

"체포?"

"그래, 내가 직접 보고 오는 길이야."

마리벨은 너무 놀라 한동안 입이 얼어붙었다.

체포!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로버트, 앙투안을 살려 줘요! 우리 오빠를 살려줘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리벨은 로버트에게 매달렸다.

"오빠?"

그렇게 한번 반문하고 로버트는 거리로 다시 달려 나갔다.

"로버트!"

울부짖는 마리벨을 뒤로하고 달리면서 로버트는 생각했다.

'생 쥐스트! 그가 앙투안? 마리벨의 오빠가 생 쥐스트? 어른이 되면 마리벨과 둘이서 프랑스로 건너가 찾아주겠노라고 약속한 오빠 앙투안이 생 쥐스트란 말인가! 그런데 나는 앙투안을 마리벨의 애인이라고 여기고 그녀를 의심했다는 말인가? 질투의 감정이 내 눈을 멀게 했던 말인가!'




로버트는 급히 동지들을 규합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 파를 도와 앙투안을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게 무슨 망신인가? 빨간 장미를 잡으려고 혈안이었던 우리가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되다니!"

로베스피에르는 시청을 점령하고 시청 앞 광장에 자기 파의 무장병을 대기시켰다.

"무얼 주저하고 있소, 로베스피에르? 빨리 무장봉기의 지령을 내리시오!"

그러나 웬일인지 로베스피에르는 이 중요한 순간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밖에 있던 로베스피에르 파의 무장병들은 빗속에서 떨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출동 명령은 아직 멀었나?"

"비가 이렇게 쏟아지니까 오늘은 해산하란 말인가?"

"뭐야! 그럼 오늘은 돌아가세."

대기시켜 놓았던 무장병들이 하나둘씩 흩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잠시 후 국민공회 군이 빗속을 진격해 왔지만 로베스피에르 파의 무장병은 모두 돌아가 버린 뒤였다.




시청 밖으로 나가려던 로버트가 국민공회 군의 사격을 받았다.

"무슨 총소리야!"

로버트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국민공회 군이오, 생 쥐스트. 모두 피하시오!"

국민공회 군은 이미 시청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로버트, 당신이나 피하시오!"

"안되오, 생쥐스트! 잡히면 끝장이오."

"난 이미 틀렸소. 로버트, 당신을 살아야 하오. 그래서 마리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해!"

무장병들은 벌써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로베스피에르와 앙투안은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일 수가 없었다.

로버트가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회의실에 들어선 무장병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로베스피에르! 생 쥐스트! 그대들을 국민공회의 이름으로 체포한다!"

르 바는 권총으로 자살하려고 했다. 로베스피에르도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묶을 필요는 없다!"

앙투안이 그렇게 소리치며 조용히 앞장서서 호송 마차로 걸어갔다.




말로 극단은 파리 근교의 불로뉴 숲 속에서 천막을 치고 내일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굉장한 비로군! 천막 안이 온통 물바다야."

"물을 퍼내야겠소, 장!"

그렇게 말하며 천막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이 극단에 새로 입단한 줄리앙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줄리앙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처참한 모습으로 천막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줄리앙을 사랑하는 크리메이느였다.

"바보 같으니라고! 그러게 밖으로 나다니지 말라고 했건만! 파리 시민들은 혁명 때문에 누구든지 총을 가지고 있다고."

크리메이느는 줄리앙을 부축하여 침대 눕혔다. 다행히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부상은 큰 것 같았다.

"아빠! 줄리앙이 부상당했어요!"

그러나 크리메이느의 울부짖음을 듣고 달려 들어온 것은 진짜 줄리앙이었다. 부상당한 사람은 로버트였다.

줄리앙은 부상당한 로버트를 내려다보았다. 로버트도 줄리앙을 쳐다보았다. 서로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줄리앙은 그가 로버트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리벨이 보여준 그림 접시 속의 청년이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줄리앙이 두 사람이야!"

크리메이느는 정신이 얼떨떨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크리메이느, 소독용으로 쓸 독한 술과 깨끗한 헝겊을 준비해 줘."

로버트의 가슴과 팔 두 군데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줄리앙은 우선 상처를 술로 소독한 뒤 헝겊으로 싸맸다.

로버트는 기절해버렸다.

"줄리앙, 이 사람이..."

"맞았어, 지금 수배 중인 로버트, 빨간 장미야!"

"마리벨의 첫사랑이라는?"

줄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버트의 숨결이 점차 거칠어졌다.

"의사를 불러야겠어요!"

"의사는 안 돼! 경찰에게 알리면 끝장이야."

그러나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죽으면 안 돼! 로버트, 네가 죽으면 널 사랑하는 마리벨도 죽고 말 거야!'

"칼과 램프를 가져와! 내가 해 보겠어."

줄리앙은 소매를 걷어 부쳤다.

장과 크리메이느가 침대에 로버트의 사지를 묶어 매자 줄리앙은 불에 달군 칼로 수술을 시작했다. 줄리앙의 얼굴에서 주르륵 쉴 새 없이 흘러 떨어지는 물방울은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빗속에서 한 무리의 헌병들이 불로뉴 숲을 포위하고 로버트를 찾고 있었다.

"분명히 이 숲 근처에서 사라졌어!"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마침내 헌병들은 말로 극단의 천막을 발견했다.

"줄리앙! 경찰들이 오고 있어요!"

경찰이 오면 로버트는 그들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다. 줄리앙은 이것저것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로버트의 피 묻은 옷을 몸에 걸쳤다.

"줄리앙!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크리메이느! 로버트를 보살펴 줘!"




말을 마치고 줄리앙은 로버트가 타고 온 말을 타고 빗속을 달렸다.

"달아난다!"

"빨간 장미다!"

"시내 쪽으로 간다. 빨간 장미를 잡아라!"




이튿날 아침, 날씨는 맑게 개었다.

마리벨의 옆 방에 사는 시몬느라는 아가씨가 숨이 턱에 차서 달려왔다.

"마리벨! 로베스피에르가 끌려가고 있어요. 생 쥐스트 님도요."

그러나 마리벨은 놀라지 않았다. 어제저녁에 앙투안이 국민공회 파들에게 체포되었으나 잠시 후 로버트에게 구출되어 다시 시청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몬느가 가지고 온 정보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마리벨! 정말이에요. 생 쥐스트, 당신 오빠 말이에요."

"염려 없어요. 오빠는 어제저녁에 다시 구출되었어요."

"그렇지 않다니까요. 내가 지금 보고 오는 길이에요. 생 쥐스트 님도 로베스피에르 님도 모두 혁명광장으로 끌려가는 걸 보았다니까요!"

그제야 마리벨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하룻밤 사이에 또 상황이 변했단 말인가!

마리벨은 계단을 구르듯 내려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정신없이 퐁 뇌프를 건너 혁명광장 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건 꿈이야! 그래, 그럴 리가 없어. 아! 앙투안!'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물결이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의 이름을 수군거리며 광장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폭군을 타도하라!"

"로베스피에르는 폭군이다!"




테르미도르 10일!

혁명의 순교자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는 그들이 이름 붙였던 혁명의 광장에서 그들이 사랑했던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기요틴의 재물이 되고 말았다.




만약 사람이... 불행한 사람들을 새로운 질서에 반대하여 일어서게 할 수 없다면 나는 자유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사람이 각자의 땅을 갖게 되지 않는다면 불행한 인간이 없어졌다고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구성하고 또한 지금 이렇게 지껄이고 있는 이 육체를 경멸한다. 사람들은 이 육체를 박해하고 죽일 수가 있다. 그러나 여러 세기 동안 스스로 주어진 이 독립된 생명을 내게서 빼앗아 갈 수는 없다.




'행복이란 유럽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관념이다.'




역사가 프랑스혁명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로베스피에르를 이야기할 때, 웬일인지 슬픈 울림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이름, 루이 앙투안 레옹 프로렐 드 생 쥐스트!




마리벨이 혁명 광장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뒤였다.

누군가 마리벨을 알아보고 말했다.

"마리벨 양, 좋은 구경을 놓쳤구먼.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는 방금 처형됐소."

그러나 마리벨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붉은 피가 마르지 않은 기요틴의 칼날을 쳐다보면서도 그녀는 오빠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난 보지 못했어! 오빠의 죽음을 보지 못했어! 내가 보지 않은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야!'

마리벨은 끝까지 거기에 서 있을 생각이었다.

그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은 로버트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버트!"

"마리벨!"

로버트가 말에서 내렸다. 그러나 마리벨은 앙투안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도 로버트가 아닌 것만 같았다.

"마리벨!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했어!"

"로버트!"

광장 한가운데서 두 사람은 힘껏 껴안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그들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들은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란한 총소리 때문에 두 사람은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저기다! 빨간 장미!"

로버트는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최후의 시간을 마리벨과의 단 한 번의 키스를 위해 다 써버린 모양이었다.

"마리벨! 어서 가!"

그리고 그는 다시 말 위에 올라탔다. 아니, 올라타지도 못했다. 헌병들의 집중 사격이 로버트의 망토를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낙엽처럼 로버트는 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로버트!"

마리벨이 달려갔을 때 그에게는 단 한 번의 숨 쉴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들 죽어갔다.

레안드르가 죽어 갔다.

줄리앙도 사라졌다.

올리비에도 프랑소와도 모두 죽었다.

그리고 잔느와 피에르도 죽었다.

단 하나의 혈육인 오빠 앙투안도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버트가 죽어갔다.

모두들 파릇한 젊음을 혁명의 강물 위에 던져 흘러가 버렸다.

이제 마리벨은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다. 삶의 희망을 마리벨에게서 깡그리 빼앗아 간 것은 바로 혁명이었다.




사흘 낮과 밤을 마리벨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다. 잠도 자지 않았다.

마리벨은 퐁 뇌프 밑을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다가 앙투안의 마지막 약속을 생각해 냈다.

'너한테 부탁할 수 있을까? 저 하얀 꽃이 만발한 도버의 언덕 위에 나와 잔느를 묻어다오!'

'그래, 아직은 죽어서는 안 돼!'




이튿날 아침, 마리벨은 도버의 백양나무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언덕 아래에 펼쳐진 하얀 꽃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리벨은 가장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는 곳을 골라 놓고는 언덕을 내려가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마리벨은 손가락으로 흙을 긁어내고 잔느와 앙투안의 머리카락을 섞어 곱게 묻었다.

마리벨은 흙을 덮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건 예쁜 무덤이었다. 하얀 꽃으로 꾸며진, 하느님이 손질한 무덤이었다. 그 옆에 그녀는 쓰러졌다. 이제 마리벨에겐 다시 일어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리벨은 죽어갔다.

레안드르와 잔느와 앙투안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로버트의 품으로 갈 것이다.




"마리벨!"

멀리서 바람결을 타고 로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죽음이 가까이 온 모양이었다.

"마리벨!"

로버트의 목소리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가고 있어요, 로버트! 서두르지 말아요!'

마리벨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은 땅 밑으로 가라앉아 흡수되고 있었다.

그녀는 흙이었다. 바람이었다. 꽃이요, 나비였다.

"마리벨!"

로버트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렸다.

'벌써 다 온 걸까?'

마리벨은 눈을 떴다. 로버트의 얼굴이 보였다.

"로버트?"

목소리가 자신의 귀에 생생히 들려오는 것이 이상했다.

"마리벨!"

마리벨은 일어나 앉았다. 팔과 가슴에 붕대를 감은 로버트가 미소를 지으며 마리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리벨!"

로버트는 다치지 않은 한 팔로 그녀를 껴안았다. 차츰 따뜻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로버트! 당신은 살아 있었나요?"

"그래! 당신이 살아있는 것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마리벨은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구름과 바람과 꽃과 나비... 그런 것들은 믿을 수가 있었다.

"당신은 혁명 광장에서 죽었어요!"

"난 거기에 가지 않았어!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줄리앙이 내 옷을 입고 말을 타고 달아났던 거야!"

"그렇다면 혁명광장에서 만난 사람은?"

"줄리앙이었군! 가엾게도 줄리앙이 나 대신 죽었어!"




두 사람은 일어섰다. 레안드르 대신, 잔느와 앙투안 대신, 그리고 프랑소와와 줄리앙 대신 일어섰다.

"다들 쓰러졌는데 어째서 우리만 일어서는 거죠?"

"그건... 그들이 쓰러졌기 때문이야!"

그들은 힘차게 백양나무 별장을 향해 걸었다.

"우리들만 행복해져도 괜찮을까요?"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돼!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삶을 사는 게 아니야. 혁명의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간 모든 이들의 삶을 사는 거라고!"

마리벨은 로버트의 품에 쓰러졌다. 죽어 간 모든 이들을 위해 그들은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처가 매우 아프게 느껴졌지만 로버트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찡그리는 것은 행복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찡그리는 모습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그들이 결코 두 사람의 불행을 바라보길 원치 않을 것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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