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ía de Muertos, 죽은 자의 날에는 죽은 자도 살아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산 자들의 기억 때문에 죽어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만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면 그 존재마저 사라지게 된다.'
드라마 '한 사람만'에서 언급된 어느 영화 이야기였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영혼만 모여서 지낸다고 했다. 좋은 의미의 기억이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추억 속의 좋은 사람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나쁜 사람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범죄자들은 그 누구보다 더 오래도록 그곳에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니 다소 충격이었다. 또한 누군가에겐 원수인 사람도 누군가의 가족일 수 있었으니 그 기준도 모호했다.
한 세상만 무사히 살아내기로 한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스토리들은 은근히 불편했다. 저승이든 환생이든 또 다른 인생은 정말 원치 않는다. 조용히 잊히고 싶었고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문득문득과거 내가 잘못한 사람들이 가끔 생각났다. 그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작은 일에도 나 혼자 미안해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 나름 노력했는데어떤 식으로든 보상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작은 미련이 사라지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그렇게 기억 속으로 한 사람씩 흘러 보낼 수 있었다.
누구에게든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받고 있겠지만 말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그들이 혹시 무시하거나 아님 혹은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으니 예전처럼 대해 주길 바라는 작은 마음에서였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연락이 없었고 경제적으로 힘든 이만 나를 찾았다. 나는 어떤 존재인 걸까?
몇 년 전, 뜬금없이 '첫사랑'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는 반가움보다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섰고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돈 좀 빌려줄래?"
내가 지난 시절, 좋아한다고 할 때는 다소 냉정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좋아했고 존중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그 모든 마음은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내가 만만한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다들 왜 이러는 거지?
"백수한테 무슨 돈이 있겠어요?"
"그건 그런데..."
얼마가 필요한지 묻지도 않았다. 어디에 쓸 건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정적만이 흘렀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말을 꺼냈다.
"생활비가 필요해서"
"그런데요?"
"그렇다고..."
그 사람은 일명 '성당 오빠'였다. 주일학교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난 터라 '오빠'라고 불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했으니 모두가 무서워했고 친구들은 싫어했다. 하지만 중학생인 내 눈에는 혼자서 악역을 도맡아 하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을 좋아하기로 했다.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절이라 의지하고 싶은 어른이 필요했을 때였으니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그 사람은 나의 이상형이었다. 온몸으로 티를 냈으니 그 사람도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 동생의 대부였지만 그 사람의 부모님은 나의 부모님의 대부, 대모였다. 가족이 서로 아는 사이라 다소 믿을 수 있었지만 때로는 조심스럽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도 애써 모른 체했으니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나에게 자기를 남자로 좋아하는지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예감이라도 하듯 나는 '플라토닉 러브, 정신적인 사랑'일뿐이라고 답했다. 그의 얼굴에서 미묘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잘못 말한 걸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단체 영화가 아닌 개인적으로는 처음 본 영화는 '사랑과 영혼'이었다. 영화 시작 전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카페로 갔고 주스를 마시며 대화 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영화가 시작한 후에야 들어갔지만 상관없었다. 상영관의 불은 꺼지고 이미 영화는 시작된 후였는데 진한 애정신이 한창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이런 영화를 보자고 한 거였나 싶어 그 사람의 저의를 의심하며 스크린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영화가 어땠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별로였다고 답했다. 지금은 수십 번을 반복해서 보아도 여전히 명작이라 칭하는 그 유명한 영화를 말이다.
친한 오빠들과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런 기회가 별로 없었다. 뜻밖의 누군가로부터 고백을 받으면 겁이 나서 피해 다녔다. 그러다 관심을 접으면 그제야 제대로 쳐다보게 되었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평생을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름 사랑이라 생각했으니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의리에서였던 것 같다.
그 사람을 통해서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다. 바닷가에 가서 마냥 걷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주스를 사주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데리고 간 적은 있었지만 우리 사이는 딱 거기까지였다.
스무 살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이브에 성당에서 마주쳤다. 그런데 웬일인지 나를 안아주었다. 그의 품이 참 따뜻했다.
"이제 앞으로는 이렇게 안아주지도 못하겠네."
처음 있던 스킨십에 어리둥절했지만 묻지도 못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신부가 되기로 했다는 의미였다. 의외로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우리 사이는 더 나아갈 것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눈치가 빨랐다. 내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년 후, 신학교를 중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소문도 들렸다. 좋아하던 여자를 만나겠다고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다 퇴학을 당했다고. 어머니조차 나에게 그 소문이 사실이냐고 묻기도 하셨다.
"내가 어떻게 알아!"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여자로 대한 적이 없었으니 첫사랑이 아니라 그냥 짝사랑일 뿐이었다.
몇 년 후,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문 속의 여자가 아닌, 내가 알던 또 다른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서른 즈음에 그 사람의 아내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개인적으로 통화를 했던 적은 없어서 그 전화는 너무 뜻밖이었다. 자신의 남편이 서울에 가게 되었는데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해서 어머니를 통해 내 전화번호를 받았단다. 그리고 인사차 전화해 봤단다. 반갑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내 연락처가 왜 필요한 건지 이해되지 않았고 굳이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을 자기 아내를 시켜서 알아보게 한 것도 납득되지 않았다. 그 언니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연락처를 알아봐 주는 그 심리는 뭔지 다소 의아했다.
얼마 후,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서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는 고민 상담을 위해 만났지만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보자마자 "말해봐!"라고 다그치는 그 사람은 상담자로서 적합하지 않았다. 만나더라도 음료만 마실 뿐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 같이 있는 그 상황이 좋았던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앉아만 있다가 그냥 돌아오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서로 대화가 없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 사람은 저녁을 먹자면서 본인이 있는 논현동으로 오라고 했다. 아무 데나 들어가자며 골라 들어간 곳은 겉보기와 달리 고급 일식집이었고 가격을 보고는 바로 나가자고 했다. 밥이 비싸 봤자 얼마나 비싸겠어 자만했던 모양인지 직장 부근에 뭐가 있는지 모르면서 그곳으로 오라고 한 거였다. 근처에는 만만한 식당이 없어서 결국 호프집으로 갔다. 맥주와 안주거리로 요기를 했지만 내가 술을 마시지 않자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이 노래방이었다. 싫다고 거절했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근처 노래방으로 끌고 갔다. 노래 부르기 싫다고 하니 듣기만 하라면서 분위기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타 치고 노래 부르던 지난 시절에는 멋있었지만 지금은 피곤했다. 노래 부르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해서 집에 가겠다고 하자 옆으로 다가와 앉았고 갑자기 내 옆구리를 껴안더니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그때 난 청바지 위로 삐져나온 살을 애써 숨기고 있었는데 살이 만져지자 갑자기 인상을 쓰며 이게 뭐냐고 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들킨 것도 끔찍한데 굳이 그걸 트집 잡는 이 사람은 또 뭔가 싶었다.
'내가 살이 찌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화가 났다. 그 와중에 자기를 쳐다보란다. 왜 그런가 싶어 뿌루퉁한 얼굴로 쳐다보니 그 사람의 얼굴이 다가오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 분위기는 뭐지 싶어서 일부러 "왜요?"라며 멀뚱히 쳐다봤다. 그러자 머쓱해하며 아니라고 하더니 갑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집에 바래다주겠다며 택시를 타고 서초동까지 왔다. 그 상황이 답답하고 불편해서, 내리지 말고 바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기어이 따라 내렸다. 골목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집까지 바래다주겠단다. 괜찮다고 해보지만 계속 따라올 기세라 싫다고, 돌아가라고 화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제야 알았다며 조용히 돌아갔다.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혼자서는 서울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겠다'며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지금 대전인데 서울에 오고 있다며 집주소를 대라고 했다. 그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만나자고 하면 무조건 만나줘야 하는 건가 싶어 머뭇대니 근처에 와서 연락할 테니 주소를 부르라고 다그쳤다. 마지못해 알려주었다. 세대수가 많은 곳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두 시간 후쯤 초인종이 울렸다.
순간 겁이 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상황이 두려웠다. 그래서 대꾸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내가 응답을 하지 않자 전화가 왔다.
"문은 왜 안 열어?"
"근처에서 연락하기로 한 거 아니에요?"
"밤을 새웠더니 너무 피곤해서 잠 좀 자려고 온 건데."
"누가 재워준대요? 집은 또 어떻게 알았어요?"
"우편물에 이름이 있어서..."
'남의 집 우편함은 왜 뒤진 거지?'
갑자기 짜증이 나서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자 여기까지 왔는데 집 앞에서 기다릴 테니 나오라고 했다.
말없이 차를 출발시키더니 어딘지도 모르는 한적한 곳에 주차를 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시키더니 마시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서 바로 졸기 시작했다. 한 시간가량 자는 모습만 지켜보았고 그 사람은 피로만 풀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좋아했던 사람으로 대우했고 연락이 오면 만났지만 서울에 오면 당일에 갑자기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기 일쑤였다. 미리 연락하라고 항의도 해보지만 약속까지 하고 만날 사이는 아니었나 보다. "선약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뭐." 라면서 당일 연락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존중해 주었다.
서울이라며 갑자기 또 연락이 왔고 교보문고에서 만나기로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그 사람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새치로 뒤덮인 은발을 뒤로 가지런히 묶고 있었는데 출사 다니는 게 취미라더니 스타일까지 어쩜, 내가 정말 싫어하는 스타일이 되어있었다.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도 싫었지만 평소 청결하지 못한 사람이 머리를 기르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못마땅했던 터였다. 하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이 더 먹기 전에 그런 스타일을 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도 그랬었다. 그때까지 나는 탈색이란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이 더 먹기 전에 밝은 색으로 탈색을 하기로 했고 염색하면 머리카락이 많이 상한다고 해서 긴 머리카락을 자르기 전에 염색을 했던 터였다. 다행히도 머리카락은 많이 상하지 않았다. 염색한 후에 갑작스레 온 연락이라 그대로 나갔더니 보자마자 "머리 꼬라지가 그게 뭐냐?"라고 했다. 하지만 '당신 머리 꼬락서니도 만만치 않아요~'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근처 스타벅스로 갔는데 주문만 하고는 계산을 하지 않고 멀뚱히 서있었다. 불러내는 쪽이 계산해야 한다는 게 내 원칙이었으니 백수인 나에게 계산까지 떠넘기는 게 기분 좋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러 서울에 왔는데 약속 시간이 밀려서 시간 때워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란다. 한 시간 동안 말없이 주스만 마시며 앉아있더니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싫다고 했다. 그 부근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아무 데나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밥을 사줄 만큼 그 상황이 편하지도 않았고, 그날은 밥을 먹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버스 사건이 있던 바로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약속이 취소되었는지 바로 서울역으로 간다며 택시를 불렀다. 주머니에서 동전 수십 개를 꺼내 보이며 무거워서 택시비로 써야겠단다. 동전을 보며 택시기사가 좋아할 거라는 그 사람은 계산할 때 귀찮아서 매번 지폐만 꺼내 썼던 모양이다. 택시가 와서 잘 가라고 인사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서로 할 말도 없는데 따라가면 뭐 하나 싶어 거절했지만 계속 재촉했고 결국 내가 먼저 뒤돌아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생각해 보니 만난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어느 날 늦은 저녁에 전화가 왔었는데 마침 집 부근에서 모임 하던 중이라 그 전화를 놓쳤다. 나중에 부재중 메시지를 보고 연락하니 받지 않았고 뒤늦게 메시지가 왔다.
"별일 아니다."
서울에 왔으니 나오라고 하면 난감할 것 같아 사실 연락하고 싶지 않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만에 걸려온 전화가 돈을 빌려달라는 그 연락이었다. 이 전화를 끝으로 그 사람에 대한 존중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 사람의 부모님은 꽤 부유하신 분들이었는데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어머니에게 따로 물어보았지만 별일 없다고 했다. 어떻게 살면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다른 것도 아닌 생활비를... 그나마 남은 정이 다 떨어졌다.
첫사랑이라 우기고 싶었던 그 사람은 더 이상 나의 첫사랑이 아니었다. 한때 짝사랑했던 사람으로 애써 존중해 주었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버지보다 더 권위적인 고집 센 아저씨일 뿐이었다. 3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콩깍지가 벗겨지려나 보다.
그 사람과의 인연이 짝사랑으로 끝난 것만큼은 두고두고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남들과 달랐던 모양이다. 가급적이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억지스러운 상황도 이해하고 참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미움받는 편이 낫다'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생기자 드디어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아는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하나씩 정리되고 있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내가 도와주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것도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이제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혼자가 되어도 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다. 내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