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34
최선을 다하고 최악을 기다려라.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열네 살 여름, 처음으로 일본이란 곳에 갔다. 내가 다니던 성당은 일본의 한 성당과 자매결연을 맺어 2년마다 여름 캠프를 함께 했는데 한 번은 한국에서, 한 번은 일본에서 국제 여름 캠프를 진행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떠날 수 있었던 여행이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나를 보내주신 이유는 다른 집 아들, 딸들이 참가하는 캠프에 당신 자식만 보내지 않으면 왠지 자존심 상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어머니 덕분에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캠프 기간 동안 며칠을 제외하고는 두세 명씩 흩어져 일본 성당 신자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낯선 그들과의 생활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손짓 발짓으로도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일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른들은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었고 혹여나 지내는 동안 불편함은 없는지 늘 살펴주었다. 어찌 보면 보살핌을 받아본 유일한 어린 시절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외대에 입학해서 일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그 캠프는 나에게 얼마 안 되는 좋은 추억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일본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해외 전시회 출장이 연이어 좌절되면서 오기로 떠난 일본 여행은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직장인으로 쉽게 갈 수 없는 해외여행이었으니 도쿄 여행 중에 요코하마, 하코네, 후지산 등을 다녀오기로 했다.
6박 7일 일정으로 성당 언니와 함께 일본 여행을 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누군가의 배웅을 받는 듯한 언니가 나타났다. 언니는 성당 내에서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그들의 연애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난 그들이 말할 때까지 비밀을 지켰다. 그들은 커플링까지 끼고 있었다.
10시쯤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았다. 출국심사관이 대뜸 나에게 일본에 도착하면 입국 재심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졌다. 기내식을 먹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어느덧 도쿄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밟으면서 긴장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제지 없이 그냥 그렇게 순조롭게 일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쩌면 어린 나이에 일본을 많이 다녀온 전력 때문인지도 몰랐다. 중학생 때 이후 대학생 때는 일본 관광국 초청으로 조선 통신사 행렬 재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리타(成田) 공항에서 게이세이 센(京成線)을 타고 우에노(上野) 역에 가서 미리 예약해 둔 민박집에 전화했는데 웬 젊은 여자가 받았다. 간다(神田) 역에 가서 다시 전화하기로 했다. JR을 타는 과정에서 조금 고생했지만 17시 반쯤 무사히 도착했다.
이번엔 주인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30분 정도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고 다시 전화하니 집이 비었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 후에는 출발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고 그래도 오지 않아 다시 전화하니 이번엔 아주머니가 놀라는 눈치였다. 뭔가 이상했는데 다른 예약자를 우리라고 착각하고 픽업한 모양이었다. 간다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민박집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가게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자 기다란 복도가 나왔는데 복도 옆으로 미닫이 문이 늘어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복도 끝방으로 우릴 안내했는데 한눈에도 창고 같았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 도착한 이들에게 마지막 방을 내어주었다니 아마도 오버부킹이었던 모양이다. 도착한 시간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먼저 도착했을 텐데 창고를 치워서 억지로 만든 방 같았다. 며칠 있다가 빈 방이 나오면 옮겨주겠다고 했지만 이제 와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고 항의해 봤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치 방세를 미리 낼 테니 깎아달라고 했지만 미리 일주일치 방세를 내든가 아니면 나가라고 하니 그대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1박에 1인당 3만 엔짜리 방은 두 사람이 누우면 공간이 없을 정도로 협소했다. 어렸을 때 묵었던 일본가옥에서의 숙박을 꿈꾸었지만 실상은 다다미가 깔린 창고였다. 그래도 작은 창문이 있어서 답답하지는 않았다. 이미 해가 저물어서 밖으로 나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설어 그대로 뻗어버렸다.
짧은 일정이지만 많은 곳을 둘러보아야 해서 도쿄 근교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제일 먼저 하코네에 가기로 계획했지만 하코네 프리패스를 싸게 구할 수가 있다고 해서 미루고 가장 힘든 후지산에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후지산 (富士登山) 등반은 한때 세계적으로 아름답고 상징적인 봉우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한 일종의 종교 순례로 여겨졌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중요성으로 유명한 후지산 정상 등반은 비교 불가한 경험이다. 후지산은 실제 화산이지만 1707년 이래 활동하지 않고 있다.
기차와 버스로 후지산의 시즈오카 쪽의 등산로 시작 지점 세 곳으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JR 신칸센 도카이 선은 도쿄 역에서 오다와라 역까지 운행된다. 오다와라에서 JR 고템바구치 선으로 갈아타고 고템바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면 스바시리와 고템바 등산로 시작 지점으로 갈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숭배받는 성산까지 가는 길의 대표적인 간이역을 후지산 고고메 (富士山五合目)라고 한다. 정상까지는 스바시리 등산로, 후지노미야 등산로, 고템바 등산로, 요시다 등산로의 네 가지 경로가 있는데 모든 등산로는 고고메에서 시작한다. 각 등산로마다 색상으로 구분되어 있다.
정상에는 여름에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영하의 기온일 수 있고 경사진 미끄러운 화산 암반이라 쉽지 않다. 기온이 가장 높은 낮에 후지산을 오를 수도 있지만 정상에 서 있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일출 때이다. 후지산의 일출을 보려면 한밤중부터 등산을 하거나 산장에서 숙박하는 방법이 있다. 야간 등산을 하면 뜨거운 여름 태양을 피하고 올라가면서 일몰을 즐길 수 있다.
후지 스바루 라인은 야마나시 현 남동쪽과 시즈오카 현의 경계 근처에 있다. 신주쿠 역에서 JR 주오선 고속열차를 타고 오쓰키 역에서 내려 후지 큐코 선으로 갈아타고 후지산 역이나 가와구치코 역에서 내린다. 후지산 돗큐 고속열차를 타면 45분이 걸리고, 정규 노선 열차를 타면 가와구치코 역까지 약 한 시간이 걸려 도착한다. 가와구치코 역까지는 신후지 역(2시간 15분 소요)이나 미시마 역(90분 소요)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둘 다 도카이도 신칸센 노선이 통과하는 역이다. 후지산 역이나 가와구치코 역에 도착하면 버스를 타고 후지 스바루 라인까지 가면 된다. 후지 스바루 라인까지는 신주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두 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는다.
후지산은 약 5,000년 전에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 지형인데 후지 스바루 라인은 산을 오르지 않고 경치를 즐기는 명당으로도 인기가 많다. 이곳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고미타케 신사로에서는 후지요시다와 야마나카 호수를 전망할 수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코스 외에도 오추도 트레일이라는 코스가 있는데 이 경로는 후지산 중턱을 거의 같은 고도로 한 바퀴 도는 순환형으로, 산봉우리를 오르는 것보다 훨씬 쉬운 길이다. 이 코스를 따라 사토미다이라까지 가서 가와구치 호, 야마나카 호와 일본 알프스의 시원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서둘러야 했지만 일어날 수가 없어 무작정 자다가 7시쯤 간신히 일어났다. 첫날부터 무리가 되는 일정이었지만 후지산에 가기로 했다. 신주쿠(新宿)에 가서 고속버스 터미널을 간신히 찾았지만 돌아오는 좌석이 없다고 했다. 일정을 미룰까 하다가 후지산 아래에 있는 가와구치코(川口湖)란 곳에서 출발하는 신주쿠행 버스 좌석은 있다고 해서 그 표를 구입하고 8시 45분, 출발했다.
2시간 반 가량을 타고 가니 멀리 후지산이 보였는데 바쁜 우리 일정엔 아랑 곳 없이 길이 혼잡했다. 고고메(五合目)에 도착하니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르려면 서둘러야 했지만 우리는 처음 보는 낯선 주변 환경에 넋을 잃고 있었고 후지산 등반은 잊고 마을에서 여유를 부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정신을 차리고 고고메에서 가와구치코(川口湖)까지의 버스 티켓을 미리 구입하고 출발했다.
후지산 등반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정상에 다다르기도 전에 버스 시간 때문에 내려와야 했다. 버스를 타고 후지산 고고메를 출발하여 한 시간여 만에 가와구치코 역에 도착했으나 예매해 둔 신주쿠행 버스가 늦게 와서 30분 늦게 출발했다. 다시 2시간 반 동안 버스와의 사투를 벌여야 했지만 오히려 그 긴 시간 동안 피로를 풀 수가 있었다.
신주쿠에 도착한 시간은 21시였지만 버스에서 푹 자고 일어난 덕에 좀 더 돌아다니다 간다행 전철을 탔다. 얘기하다 보니 간다역을 지나쳐 동경역까지 갔다. 다시 되돌아오느라 숙소에 도착시간은 22시 40분이었다. 23시에 숙소 문이 닫혀서 아슬했다. 내일은 하코네에 가기로 했다.
하코네는 가나가와 현 남서쪽,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에 위치하며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최고 수준의 천연 온천이 넘쳐나는 리조트 타운으로 유명하며 후지산 전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하코네는 신주쿠역에서 오다큐선을 타고 하코네 유모토 역에서 하차하거나 아니면 도쿄역에서 JR 도카이도 신칸센을 타고 오다와라 역에서 내린 다음, 하코네 도잔선을 타고 오다와라 역에서 하코네 유모토 역까지 가는 방법이 있다.
하코네는 일곱 개의 온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1878년 미야노시타에 문을 연 후지야 호텔에 외국인 방문객이 몰리면서 이 지방도 차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존 레넌을 비롯한 수많은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이 호텔에 묵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하코네의 유모토 지방은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위치한 일본 최고의 인기 온천 지구이다. 에도 시대에는 이 지방이 도카이도 옛길을 따라가다 쉬어가는 주요 역참이었다고 한다. 유모토는 가미야마산과 고마가타케 산 등의 여러 산이 유모토를 둘러싸고 있는데, 로프웨이를 타고 산을 오르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산인 후지산이 보이는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아시노코 (芦ノ湖)는 일본 가나가와현 아시가라시모군 하코네정에 있으며 3,000년 전 하코네 산이 마지막으로 폭발했을 때 만들어진 호수이다. 약 3000년 전에 하코네 산의 중앙화구구의 대규모의 수증기 폭발에 인해 이루어진 폐색호이다. 면적은 7.1 평방 km, 깊이는 43.5m이며 수면 높이는 해발 723m이다. 호반 주변에는 수많은 경승지가 점재하고 있다. 호수 위에는 하코네 해적선 및 아시노코 유람선의 관광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17~18세기에 실제로 있었던 군함 등을 모티프로 한 하코네 관광선은 독특한 배 모양 때문에 하코네 해적선이라는 애칭으로도 친숙하며 약 반세기에 걸쳐 취항하고 있다. 하코네 로프웨이의 종점 가까이에 있는 도겐다이 항, 모토 하코네 항, 하코네 마치 항 등 3개의 항구가 있으며 각각의 선로를 10~30분에 걸쳐 운항한다.
하코네 고마가타케 로프웨이(伊豆箱根鉄道駒ヶ岳索道線)는 일본 가나가와현 아시가라시모군 하코네정에 있는 여객용 삭도이다. 아시노코에 있는 하코네엔 역과 고마가타케 정상 역을 잇는다. 1963년에 개통하였으며 정식적인 노선 이름은 이즈 하코네 철도 고마가타케 삭도선이라고 한다. 현재 하코네 산의 하나인 하코네 고마가타케 산정 (높이 1327m)까지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곤돌라는 101인승이며 2대가 있으며 두레박 식으로 교호 운행된다. 편도 소요시간은 7분이며 9시 10분부터 16시 50분 (하산 막차)까지 15분 내지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승차권 구입 시 하코네 프리패스를 제시하면 할인 운임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저렴한 하코네 프리패스는 구할 수가 없다고 해서 그냥 제 돈을 주고 사기로 했다. 9시 출발하여 신주쿠에 가서 오다큐 센(小田急線) 패스를 5,500엔에 구입한 후, 하코네로 향했다. 하코네 유모토 역에 내려 등산 철도를 타고 고라에 가서 다시 케이블 카와 로프웨이를 타고는 전망대에 도착하여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이 근방에 있는 오와키다니는 활화산 온천과 구멍을 통해 유황 증기 분출구가 있는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계곡이다. 화산 가스와 증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며 초현실적인 풍경이 연출되지만 다소 지독한 황 냄새를 견뎌내야 한다. 이 계곡에서 파는 검은 달걀은 온천에서 삶은 달걀로, 황 성분 때문에 껍데기가 까맣게 변한 것이 특징이다. 한 알을 먹으면 수명이 몇 년 늘어난다는 설이 있는 검은 달걀을 사 먹었다.
로프웨이를 타고 도착한 곳은 도겐다이. 올라갈 때는 안개가 심해서 경치를 잘 볼 수가 없었는데 내려올 때는 많이 나아져서 안개 너머로 펼쳐진 멋진 광경을 엿볼 수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두고 돌아서기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왔다.
아시노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하코네 마치까지 갔는데 비가 내려서 버스가 기다리는 모토 하코네를 어렵사리 찾아갔다. 가는 길에 삼나무 숲이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등산버스를 타고 하코네 유모토에 와서 오다규센을 타고 신주쿠로 갔다. 가부키쵸를 구경하다 일찍 돌아왔다.
큰 곳 두 곳을 다녀오고 나서인지 피곤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다음날은 걸어서 아끼하바라까지 갔는데 오노덴에서 카메라를 구입했다. 긴자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배낭여행 중인 학생들을 만났는데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반가워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들의 여행기를 들으며 한참을 얘기하다 헤어졌다.
히비야 공원을 돌고는 신바시까지 걸어가서 임해부도심행 유리카모메를 탔다. 오래 걸어 다녀서인지 유난히 힘들었다. 내리기 싫어서 그냥 유리 카모메를 타고 경치만 구경하다 신주쿠로 돌아왔다. 오늘은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왔지만 어머니와 통화하기 위해 잠깐 나가서 공중전화에 가서 통화하고 왔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언니를 불렀지만 그사이 언니도 전화를 걸러 밖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문이 잠겨서 한참을 고생했다.
이제는 요코하마에 가기로 했다. 요코하마 항의 랜드마크 타워에서 스탬프에 정신을 뺏겨 시간을 보내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산케이엔에 가기로 하고 버스를 탔는데 졸다가 그냥 지나쳐서 종점에 내려서 걸어서 되돌아왔다.
산케이엔(三渓園)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에 있는 일본 정원이다. 무역으로 재력을 쌓은 실업가이며 미술 애호가이기도 한 하라 토미타로, 산케이가 개원한 광대한 순 일본 정원이다. 원내에 있는 린슌카쿠(臨春閣)와 구 도묘지(燈明寺) 삼중탑 등 10탑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부야로 갔는데, 저녁으로 오랜만에 우동을 먹기로 하고 일본식 우동을 파는 곳을 찾아서 돌아다녔으나 결국 못 찾아 회전초밥 집으로 갔다. 109라는 빌딩에서 쇼핑했다. 돌아오는 길에 공중전화에 들러서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리고 숙소로 왔다.
다음날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신주쿠로 갔다. 마이 시티에서 쇼핑하다 쓰미토모 빌딩으로 갔다. 경비가 남아서 점심은 일본식 정식을 거하게 먹었다. 도쿄 청사에 들렀다가 시부야에서 쇼핑하다가 돌아왔는데 비가 내렸다. 일단 숙소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서 숙소 근처에서 우동을 먹고 돌아왔더니 문이 잠겨있어서 또 고생했다. 문을 열어준 옆방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방에는 창이 없어서 답답해 보였다. 좁지만 창이 있는 우리 창고방이 더 나아 보여서 계속 방을 옮기지 않았던 터였다. 밤새도록 천둥 번개가 요란했다.
다음날에도 여전히 비가 왔다. 우에노 관광을 하다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느긋하게 누워 있다가 12시쯤, 짐을 챙겨 들고 나와서 마지막으로 우동을 먹고는 공항으로 출발했다. 짐이 많은 데다 비까지 와서 고생했다. 우에노에서 게이세이센을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갔다. 한 시간 반 만에 이미 서울 항공을 날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일본에 한번 더 갔었지만 교통비용이 비싸다는 느낌에 하코네는 다시 가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의 풍경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가보고 싶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싶다.
처음에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누린다는 생각에 얼마가 들든 상관없었지만 여행이 거듭되면 될수록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했고 하루 교통비로 십만 원 가까이하는 비용은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도쿄에는 아직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많았으므로 도쿄는 이번으로 끝내자란 생각에 다른 곳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유럽여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언제든 갈 수 있었던 일본은 항상 뒷전이 되었다. 엔화가 워낙 오르기도 했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모처럼 오랜만에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홋카이도에 가려고 준비했던 2011년,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버렸다. 복구하기까지의 기나긴 시간보다 방사능 유출 소식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으로 낙인 되어버린 일본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깝지만 너무 먼 나라가 되어버렸다.
계획했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좌절되는 일이 유독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어떤 식으로든 사고가 났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어느덧 나에게 포기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내내 후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