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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24

Castrojeriz→Boadilla del Camino

by 안녕
Day 22.
Wednesday, June 17


인기척에 일어나 보니 다들 데사유노를 먹고 있었다. 생장에서와 동일한 토스트 모양의 가예따스와 비스킷, 레체, 꼴라까오, 까페가 준비되어 있었다.

좁은 식탁에 자리가 없어서 까페에 레체를 넣어 커피통에 채워 놓고 침대로 돌아와 기다렸다. 다들 떠나고 조용해지자 나가서 먹었다. 식빵과 버터나 잼이 있었으면 했지만 그래도 비스킷과 커피로 배를 채우고 가진 동전을 모두 도나티보 박스에 넣었다.

배낭을 메고 나서는데 오스삐딸레로가 문 밖에 홀로 앉아있는데 뭔가 애잔하게 보였다. 그제야 1.10€가 너무 적은 게 아닐까 맘이 쓰였다.

오늘은 이떼로 데 라 베가까지 이동할 생각으로 7시 반쯤 출발했다.




까스뜨로헤리스를 나오기 위해서는 산 후안 성당을 지나 두 개의 도로를 건너야 한다. 이어서 밭 사이로 흐르는 오드리야 강을 건너기 위해서 나무다리를 건넌다. 바로 뒤에 짧지만 경사가 지고 돌이 많으며 큰 고랑이 있는 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 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모스떼라레스 언덕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보일 것 같았던 모스떼라레스 언덕은 보이지 않고 30분쯤 걸으니 산 하나가 멀찍이 보이는데 뭔가 기다란 길이 산 정상을 향해 쭉 뻗어있었다. 설마 저 길로 가는 건가? 산 크기에 따라서 쭉 뻗어있는 저 길의 길이도 달라질 테니 한껏 긴장을 했다.

까스뜨로헤리스의 출구는 오르막길인 모스떼라레스 언덕으로 이어진다. 이 언덕은 까스뜨로헤리스에서 멀지만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겁에 질리게 한다. 자전거 순례자들은 해발 940M의 가파른 오르막을 피하려면 Castrillo Matajudíos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까스뜨리요 마따후디오스라는 지명은 유태인들을 죽인 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오르막 길만 무사히 잘 넘는다면 평탄한 길이 이어지므로 큰 무리를 주지는 않는다.

드디어 산 아래에 도착했지만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다행히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흙길, 돌길이라 미끄러워서 조심해야 했다.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오르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만약 더운 오후 땡볕에 이 길을 오른다면 다소 힘들지도 모르겠다. 언덕의 정상까지는 오드리야 강의 다리에서 1.5km 정도지만 오르막이 꾸준히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충분히 체력을 안배하며 걷는 것이 중요하다.

언덕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펼쳐진 산 아래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을 향해 걷는 길이라 이렇게 뒤돌아서야 아침 해를 볼 수 있다. 사진을 찍고 잠시 숨을 돌리다가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나 하고 둘러보니 여기가 정상이었다. 발뒤꿈치 상처도 있고 이 언덕도 있고 해서 오늘 일정을 짧게 잡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끝나버렸다. 더 걸어도 될 체력이지만 굳이 더 가야 할 이유는 없어 예정대로 이떼로 데 라 베가까지만 가기로 했다.

해발 940미터의 모스떼라레스 언덕 정상은 나무가 거의 없는 메세따 지역이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걸어가는데 H와 J가 뒤에서 나타났다. 부르고스에서 2박 하고 점프해서 오는 길이란다. 어제 마을 초입에서 보았던 그 대형 버스를 타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걷다 보니 신부님 일행도 만났는데 역시 부르고스에서 2박 하셨단다. 난 걸을 만했는데 다들 그 메세따를 건너뛴 모양이다. 뉴욕 K가 자꾸 내 끼니 걱정을 해준다. 이래 봬도 굶고 다니진 않았지만 Y와 함께 계속 걸었더라면, 먹기 싫으면 안 먹겠다고 소신껏 얘기를 했을 즈음이라 한소리 들었을 것 같긴 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나의 식사량이 부족하긴 하지만 여기는 순례길이었다.

500m 정도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십자가상이 보이며 조금 더 가면 까미노의 왼쪽에 차가운 샘물로 피로를 씻겨줄 삐오호 샘을 만나게 된다.

10시 쉼터에서 잠시 앉아 쉬는데 뉴욕 K가 일행에게 육포를 나누어 주면서 나에게도 한 조각 건네주었다. 고기를 먹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선 육포는 정말 처음이 아닌가 싶다. 선입견이 있었지만 넙죽 받아서 입에 넣었는데 이게 은근히 맛있었다. 염분이 필요하던 나로서는 입에 맞아 너무 맛있게 먹었더니 한 조각을 더 건네주었다. 다들 맛있게 먹어서 결국 앉은자리에서 육포 한 봉지를 다 비우고 일어섰다.

먼저 출발하려니 옆에 있던 노점으로 나를 이끌더니 바나나 두 개를 손에 쥐어준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그걸 또 넙죽 받았다. 뒤늦게 금액을 물으니 2€라는 말에 뉴욕 K도 흠짓 놀라는 눈치였다. 비싼 바나나를 또 먹게 되었다. 잘 먹겠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또 울컥했다.

이런 게 동생을 챙겨주는 오빠의 마음이려나? 근데 난 이런 걸 잘 모른다. 친오빠가 있지만 다정한 무언가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동생이 다정하게 누나라고 부르며 따를 때가 있긴 했지만 그런 남동생마저 사춘기 이후로는 무뚝뚝해져 버렸다. 우리 삼 남매는 셋 다 그렇게 무뚝뚝했지만 서로 간섭 또한 하지 않았기에 싸울 일도 별로 없었다. 서로 불만은 없었지만 그런 게 당연한 듯 살아왔기 때문에 주변에서 살가운 오누이의 모습을 보아도 그저 남들 일인 양, 드라마처럼 다가올 뿐이었다.




샘터에서 휴식을 가진 뒤 오른쪽으로 돌아 10분쯤 걸으니 갈림길이 나왔고 직진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떼로 델 가스띠요 즉 뿌엔떼 피떼로로 가는 왼쪽 화살표를 따라갔다.

이곳에는 이탈리아 페루자의 성 야고보 형제회가 있는데 이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세시대의 전통을 지켜가며 순례자들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다.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이떼로 델 가스띠요라고 불리는 13세기의 건물인 산 나꼴라스 소성당은 이탈리아 페루자의 성 야고보 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쓰이고 있다.




삐수에르가 강이 굽어진 곳에 있는 작고 오래된 마을인 Itero del Castillo (788M)는 Puente de Fitero (766M)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은 빨렌시아가 시작되는 마을이면서 중세 레온 왕국이 시작되는 마을로 부르고스 주에서 벗어나는 길가의 우뚝 솟아있는 탑 아래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화려했던 까스띠야 왕국의 국경도시로서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Ermita de San Nicolas
산 니꼴라스 소성당은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이떼로 델 가스띠요라고도 불리는 13세기의 건물로 까미노를 지나다 이떼로 다리를 건너기 전에 까미노의 왼쪽에 있다. 현재는 페루자의 성 야고보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쓰인다.

Puente de Itero
열한 개의 아치와 부벽으로 이루어진 까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다. 알폰소 6세가 얀따다 전투에서 그의 형제 산초 2세를 이긴 후 까스띠야와 레온 왕국의 결합을 기리며 이떼로 다리의 건축을 지시했다. 중세 연금술사들에게 이 다리는 산띠아고로 가는 길을 걷는 동안 가톨릭 사상에 위배되는 비전을 받은 자신이 죽고 새로 태어나는 곳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이떼로 다리는 시작하는 사람과 비전 받은 사람들의 다리라고 불린다. 이 다리는 아치의 수가 열한 개인데 스페인에서 11은 분쟁, 변화, 위험 등을 의미하는 숫자다.




산 니꼴라스 알베르게를 지나 부르고스와 빨렌시아를 구분 지어주는 삐수에르가 강의 시작하는 사람들의 다리라고도 알려진 뿌엔떼 데 이떼로를 건너 버드나무 숲 사이를 흐르는 삐수에르가 강을 건너면 빨렌시아 경계석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빨렌시아다.




PALENCIA
프랑스 출신의 낭만주의 여행가 다빌리에 남작은 '여행자들에게 익숙한 경로에 포함이 안 되어 있을뿐더러 감춰진 보물들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이 있다. 빨렌시아는 그런 지방 중 하나다'라고 기록했다.

빨렌시아는 스페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 중 하나로 다른 지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빨렌시아와 이웃해 있는 Cantabria 경계에는 높은 산이 있다. 이곳은 매우 인상적이다. Picos de Europa 산을 바라보는 삐에드라슬루엔가의 전망대, Fuentes de Carrion 주위의 해발 2,400M가 넘는 산들, 오래된 송백 나무 숲이 있는 Tejeda de Tosande 등 자연의 박진감 넘치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라스 뚜에르세스와 꼬발라구아처럼 변덕스럽게 오르내리는 석회암 지대에는 사슴, 노루, 여우, 늑대, 살쾡이, 독수리, 황갈색 곰 등이 살고 있다. 변화무쌍한 뻬르니아 계곡에는 띠에라 데 깜뽀스 방향으로 조금씩 물이 흐르는 저수지들도 많다. 띠에라 데 깜뽀스는 곡식을 재배하는 넓은 평원이다. 마을의 교회와 수도원의 늘씬한 탑만이 이곳의 단조로운 풍경에 변화를 줄 뿐이다. 이 광대한 황무지엔 라 나바 호수 같은 생태학적 보물과 18세기의 놀라운 토목공사가 이뤄낸 까스띠야 수로의 지류가 있다.

빨렌시아의 까미노를 지나다 보면 수많은 역사적 유물과 오랜 시간에 걸쳐 생성된 다양한 예술 양식을 만나게 된다. 비야 데 라 올메아다에는 아낄레스의 황홀한 모자이크가 남아 로마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데 이 모자이크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모자이크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 지방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으로 변천된 건축물들도 풍성하게 남아 있다.

프로미스따의 성 마르띤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선과 정교한 부조,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의 산따 마리아 라 블랑까 성당의 아름다운 아치, 비야 무리엘의 산따 마리아 라 마요르 성당 등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양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건축의 진짜 보물들은 평범한 마을에 숨어 있다. 특이한 모양의 비둘기 집, 굴을 파서 만든 포도주 창고, 목동들의 오두막, 아케이드가 있는 길 등이 그렇다. 특히 벽돌로 쌓은 벽과 목재로 만든 발코니가 예쁘게 꾸며진 가정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한 마요르 길, 마요르 광장의 모퉁이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여러 성당들과 ‘미지의 아름다움’(La Bella Desconocida)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대성당도 마찬가지다.

빨렌시아 또한 스페인 지방의 멋들어진 맛집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까스띠야 지방의 가장 좋은 채소는 빨렌시아의 농장에서 재배된다고 할 정도로 신선한 채소가 넘쳐난다. 또르께마다의 고추, 세르베라의 고기, 양념한 메추리와 새끼 비둘기 고기, 엘 세라또의 양젖 치즈, 까리온의 Mantecadas (버터 과자), 비욜도의 Amarguillos (씁쓸한 맛이 나는 과자), 프레치야의 Bollos (크루아상 같은 빵), 아길라르 데 깜뽀의 비스킷과 봉봉이 빨렌시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다리를 건너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이떼로 데 라 베가에 다다른다.




삐수에르가 강변의 기름진 평야의 작은 마을인 Itero de la Vega (770M)는 도랑과 운하 사이의 검정 버드나무 숲 주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시원한 버드나무 그림자가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위로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Rollo Juridiscional
심판의 기둥은 마을 광장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기둥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을 심판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66년에 스페인 문화자산으로 선정되었다.

Ermita de Nuestra Senora de la Piedad
자비의 성모 소성당은 13세기의 단순한 고딕 양식 성당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버드나무 숲 사이에 세워져 있다.




11시, 오늘의 목적지 이떼로 데 라 베가에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마을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어느 바르에서 뉴욕 K가 나를 부른다. K신부님을 기다리며 P신부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자기 스파게티를 같이 먹잔다. 이젠 너무 염치가 없어서 괜찮다고 사양했는데 너무 많아서 남겨야 한다고 재촉한다. 음식 버리는 건 못 보는 성격이라 그렇게 또 얻어먹었다. 그런데 면에 토마토소스만 부어서 만든 정말 심플한 스파게티였는데 내가 먹어주지 않으면 정말 남길 맛이었다. 굳이 맛을 따지지 않는 나는 그냥 맛있게 먹었다.

다들 보아디야 델 까미노까지 갈 거라며 여긴 너무 짧은 거리니 나도 거기까지 가서 다 같이 저녁 먹잔다. 아, 어쩌지? 그래 챙겨주는 사람이 있을 때 따라나서자. 그래서 오늘 더 걸어가기로 했다. 천천히 걷는 내가 먼저 출발했다.




마을 출구에는 작은 움막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과거 이 지역에서 생산되던 포도주를 저장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마을을 관통하는 마르께스 데 에스뜨레야 거리를 지나면 마을 끝자락의 오른쪽에 샘터가 나오고 여기에서 조심해서 자동차 도로를 건너면 이제 눈앞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밀밭의 향연이 펼쳐진다.

12시쯤 인적 없는 조그만 마을인 뽐뻬드라사와 삐수에르가 운하를 지나고 나서도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 광활한 띠에라 데 깜뽀스를 지나다 보면 멀리 보아디야 델 까미노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작은 구릉들과 언덕의 굴곡이 끝나고 마침내 지평선까지 멀리 뻗어있는 평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레온까지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길은 한겨울의 세찬 눈보라와 여름의 지독한 태양의 뜨거움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띠에라 데 깜뽀스는 외로움과 호젓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거대한 밀밭의 평원이다. 이떼로 데 라 베가에서 보아디야 델 까미노까지 8km가 넘게 이어지는 밀밭의 지평선을 보고 한없이 걸었다. 다시 뜨거운 열기의 스페인 특유의 날씨를 되찾아가는 듯하다.




멀리서 Boadilla del Camino (782M)을 바라보면 띠에라 델 깜뽀의 수평선으로 높은 성당 건물이 보인다. 13세기에는 3개의 성당과 2개의 병원이 있었을 정도로 번창했던 보아디야 델 까미노는 현재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성모 승천 성당과 같은 시대 플랑드르 양식을 보여주는 심판의 기둥으로 불리는 원주 탑이 유명하다. 마을에는 벽돌로 지은 전통 가옥과 진흙으로 만든 담이 보존되어 있다. 이 마을 근처에서는 돌을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성당과 명문가의 저택도 모두 벽돌로 지어졌다고 한다. 성당의 내진부와 심판의 기둥, 중세식 발코니는 까미노에서 가장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보아디야 델 까미노에서는 Sopas de Ajo (마늘 수프)와 양젖으로 만든 치즈, Cocido (여러 부위의 고기를 삶은 요리), 새끼 양 구이 요리 등을 맛볼 수 있다.

Rollo Juridiscional
후기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7m 높이의 심판의 기둥은 마을 중앙 광장에 있다. 이 기둥은 중세 공개 재판에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중대한 죄를 지은 죄인을 여러 마을로 끌고 다니면서 칼을 채워 이 기둥에 묶어놓았다. 까미노에 있는 심판의 기둥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것으로 16세기 플랑드르 양식을 보여준다.

Iglesia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16세기에 지어진 성모 승천 성당은 18세기에 재건축되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봉헌화와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례반이 돋보인다.




마을 초입 부근에서 뒤늦게 출발했던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혼자였다면 마을 입구의 공립 알베르게로 갔을지 모르지만 같이 걷다 보니 사립 알베르게로 들어가는 그들을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도 입소문이 났던 곳이지만 통나무집 같은 느낌의 2층이 다락방 같았다.

샤워하는데 여긴 세면대에서도 손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다. 빨래를 널고 확인하니 주방이 없었다. 자체적으로 저녁을 판매하는 알베르게였는데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단다. 사 먹자는 말이었나 싶어 빠지려고 하니 굶지 말라고 신부님마저 호통이라 안 먹을 수 없었다. 오늘은 먹은 것도 많아서 배가 안 고팠지만 당장 사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으러 나간다고 해서 결국 따라나섰다.

근처 바르로 가니 거기도 식사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알베르게였다. 다시 돌아와서 쉬고 있으니 배가 욱신거리기 시작했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저녁 먹으러 가지 않고 쉬기로 했다.

해가 질 무렵, 빨래를 걷으러 나가니 다들 내 건강을 걱정하셨다. 일행 중에 가장 무서웠던 K신부님이 의외로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체했나 싶어 손까지 직접 따주시는, 의외로 자상한 분이셨다. 뉴욕 K는 가루로 된 미소된장을 한 봉지 주며 자기 전에 마시라고 주었는데 뜨거운 물을 구할 데가 없었다. 안 먹어도 될 것 같았지만 왠지 먹었는지 확인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찝찝하지만 세면대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서 미소된장을 풀어서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속이 한결 편해지기는 했다.




Castrojeriz→Boadilla del Camino 19.3km

○Castrojeriz (806M)
●Itero del Castillo (788M) 1.2km
●Puente de Fitero (766M) 9.3km
-Ermita de San Nicolás
-Puente de Itero
《Palencia》
●Itero de la Vega (770M) 1.8km
-Rollo Juridiscional
-Ermita de Nuestra Señora de la Piedad
●Boadilla del Camino (782M) 8.2km
-Rollo Jurisdiccional
-Iglesia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429.4km/775.0km




Desayuno -1.10€
Albergue de Peregrinos En El Camino -7.00€




비스킷, 꼴라까오, 까페꼰레체
커피, 육포, 스파게티
바게트, 우유, 미소 된장


WI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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