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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14. 2022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40

최선을 다해 빛나고 아름답게 저물고 싶었다.

난 행복하지 않습니다.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행했으니까 벌은 조금만 주세요.
지금 벌 받고 있으니까, 제발, 좀!




어머니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고향에 와서 예금 하나를 개설해 달라고 하셨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었다. 팔순이신 아버지가 기초 노령 연금을 받지 못하셨는데 재산과 예금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라도 예금을 줄여서 연금을 받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평생을 쪼들리며 사신 분들에게 갑자기 여유 자금이 왜 생겼나 했더니 전세 보증금 때문이라고 하셨다. 3층짜리 건물을 지어 남은 두 층은 임대를 주고 계셨는데 언제라도 이사 나가면 돌려주어야 한다며 보증금을 계속 갖고 계신 거였다. 보증금으로 받은 돈은 대출을 갚았어야 할 돈이었지만 갑작스레 돈이 또 언제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며 저이율로 받은 대출을 굳이 갚지 않으셨다. 이사 들어오는 사람에게 받은 보증금을, 이사 나가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면 되는 것을 '혹시 몰라서'라는 이유로 2년 동안 저축해 두고 있다가 먼저 내어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예금 잔액이 초과했고 그래서 혜택을 못 받고 계시는 거라며 당장 집을 팔 수는 없으니 예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굳이 고향까지 오라고 하는 건 또 무슨 상황인가 했더니 부모님이 거래하는 곳에서 고금리로 정기예금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설명을 들으니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고금리 상황이라 연 3.5%의 정기예금이 넘쳐나고 있는데 연 3.0%를 받겠다고 굳이 거기 가서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맞추어야 하는 거였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

같이 지내면서 생활비 한번 안 낸다고 불만이었던 아들에게 30평대 아파트를 사주셨을 때도 난 불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당연한 듯 딸을 찾으셨다. 남들 다 가진 것을 내 자식만 못 가지면 주눅이 들까 봐 결국 사 주고 마는 부모처럼, 나는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것의 대부분을 사드렸다.

어머니의 통신요금을 대신 납부해 드리던 때에도 난 기본요금제를 썼지만 어머니는 고액 요금제에 가입해 드렸다. 그럼에도 통신 요금이 초과하기 일쑤라 무제한 요금제로 바꾸려고 하니 통화량이 많지 않다고 거부하셨다. 이런저런 신경전이 자꾸 오가게 되어 실버요금제 가입을 위해 결국 어머니 명의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제야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요금을 실감하셨고 많이 쓰지도 않는데 기본요금이 왜 이렇게 많냐고 하셔서 일반 요금제로 바꾸기도 했지만 그 후 요금 폭탄을 맞으셨고 그제야 무제한 요금제로 변경하는데 동의하셨다.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하고도 집 전화는 있어야 한다며 해지하지 않으셨고 쓰기도 하셨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뒤늦게 가르쳐 드린 카카오톡을 사용하면서 친구들과 단체 톡방에서 사진들을 주고받기도 하셨는데 사진이 어느새 동영상이 되면서 데이터 요금 폭탄을 맞기도 하셨다. 그때마다 많이 쓰지 않았다고 우기셨다. 집에 컴퓨터가 없으니 차라리 집 인터넷을 해지하고 그 돈으로 사용 패턴에 맞추어 휴대전화 요금제를 변경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돈이 아깝다고 거부하셨다. 와이파이가 되는 집에서만 쓰기로 했지만 바깥에서 불편하다고 해서 최소한의 데이터 요금제를 쓰셨지만 끝내 인터넷을 해지하지 않으셨고 케이블 방송을 보지도 않으면서도 다른 집에 다 있는 거라며 당연한 듯 방치하고 계셨다. 나는 그런 불필요한 지출이 아까웠다.

부모님 집 명의를 내 명의로 돌리겠다며 서울 집을 팔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어차피 아들에게 물려줄 그 집을 아파트가 있는 아들들 대신 임시로 딸 명의로 하겠다는 건데 그 재산세는 백수인 내가 고스란히 내야 하는 거였다.

3층을 내어줄 테니 고향에 와서 같이 살자며 지었던 집인데, 나에게 전세 보증금을 내라고 하셨을 때는 서운한 마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집에서 살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 말은 농담이었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이제는 그 집과 보증금이 든 예금 때문에 연금을 못 받게 되었다고 하소연하셨다.

젊어서 아끼고 모으며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연체금이 있어도 자신들의 생활이 우선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그 빚마저 탕감받는단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끼지 말았어야 했나 싶다. 대출을 받으려면 은행에서는 내 연봉보다 재산세를 얼마나 내는지를 먼저 물었다. 그래서 재산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 재산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모으지 않고 쓰고 살았던 사람들이 정작 나보다 삶의 질이 더 높은 게 아닐까 싶다.

전시 상황도 아닌데 매 끼니를 걱정하던 나는 언제나 공과금이 우선이었다. 전기요금에 누진세가 있었을 때는 나처럼 적게 쓰는 사람은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살았다. 누진세가 폐지되면서 그동안 받았던 혜택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매번 사용하는 전기 사용량은 같았지만 작년에 비해 딱 4배 더 많이 청구되었다. 세상은 전기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제품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전등조차 무선 스위치를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에어컨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고 버틴 지도 어언 십 년이 되었다. 한 달 전기 사용량이 70 kWh 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어떻게 아끼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제는 나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원한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고, 좋아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만 없으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가지려고 하지만 막상 가졌다고 좋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좋아한다는 이유로 구입하지 않게 되었고 필요한 것만 구입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욕심 때문에 구입하는 것들은 어차피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명품백을 구입한 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걸 나만 가지고 있지 않으니 왠지 그래서 가지고 싶었던 거지 필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가졌다는 것 자체에 위안은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런 일탈을 제외하면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라는 그들처럼 살아보지 못했다. 차라리 집을 사지 말고 남들처럼 제대로 쓰고 살다가 기초수급이나 받으며 살 것을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욕심이 나에게도 다시 생길까 봐 무서워졌다.




전쟁은 머나먼 과거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핵전쟁을 동반한 세계 3차 대전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어느 나라도 전쟁을 먼저 시작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명분이 없는 나라 간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뜻밖이었다. 미국에서 러시아의 전쟁을 예측하고 있었지만 러시아 푸틴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실제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니 그때라도 그만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러시아는 보란 듯이 전쟁을 시작했고 강대국들의 만류에도 지금까지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최소한 유엔이 있으니 제재를 할 거라 기대했고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멈추게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보다도 그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사정이 궁금했다. 러시아가 막강한 것일까? 우크라이나가 먼저 침공을 했다고 우길 때는 6.25 당시 북한을 보는 듯했다.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 전쟁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나라가 막강하게 버티고 있다면 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힘이 없으면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공공의 적이 나타나는 수밖에 없는데 이미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었다. 하지만 공공의 적이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미 그 힘을 다했고 전혀 두렵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코로나 시국의 완전한 종식은 어렵다는 것을 인지해서일까?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지,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것일까? 사람마다 증상도 다르고 후유증도 다르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위드 코로나로 돌입한 분위기다.

집콕이라 살아남았지 만약 내가 사회인이었다면 그 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 같다. 초기에는 왜 자꾸 입국을 내버려 두는 것인지 불만이었다. 감당할 수 있으니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냥 막무가내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 포기한 것처럼 방치하는 분위기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으니 그냥 개인 방역을 믿었으면 좋겠다.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는 강제적으로 검사받는 분위기였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은 비용이 부담되어 그냥 참고 넘기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감기 한번 걸려본 적 없는 사람에게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지킬 사람은 알아서 지킬 것이고 안 지킬 사람은 제약이 있어도 법망을 피해 교묘히 빠져나갈 것이다. 어차피 확산이 반복되는,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강요해도 반발이 생기고 방치해도 반발이 생길 것이다.

백신 부작용이 생겼을 경우에 혼자서 대처할 자신이 없어서 백신을 맞지 않았지만 만약 책임지고 해결해 주겠다는 누군가의 확답만 있었다면 나는 백신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것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지만 만약 백신 접종 증명서가 필요하다면 맞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생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열에 시달렸지만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밤에만 열이 났고, 몇 년째 가라앉지 않던 온몸의 두드러기는 원숭이 두창이 발병하면서 가라앉았다. 내 몸도 눈치껏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재방송조차 중단되었던 여행 프로그램이 요즘 다시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지만 나는 아직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생기지 않았다. 형편이 되지 않아서 갈 수 없었던 때처럼 지금은 또 다른 이유로 갈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 대응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있다. 각종 증명서가 있어야 했으니 지금이라도 백신을 다 맞아야 하나 싶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세계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나는 관심이 없었고 그럴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꾸만 거슬리는 것이, 머지않아 나라 탓을 하고 정부 탓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그냥 조용히 지내다 사라지고 싶은데 그마저도 내 뜻대로 되지 않으려나 보다. 새로운 공공의 적이라도 나타나길 기다리게 될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좋은 풍경을 보면,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눈으로든 사진으로든 이번이 마지막이니 잘 기억해 두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오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으니 가는 곳마다 다시는 가지 못하는 곳이 되고 있었다.

'난 도대체 누굴 기다리는 거야!'

어느 순간부터 혼자만을 위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시작은 갑작스러웠다. 나에게 여행이란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었으니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누군가를 설득하고 눈치를 봐야 했다. 심지어 경비를 모두 내가 부담하고 떠나게 된 여행에서 트래블 메이트는 공항까지 와서 일이 생겼다며 여행을 포기해 버렸고 졸지에 공항에 홀로 남겨지게 된 나는 무섭지만 그 여행을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곳을 보면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동행자를 찾는 게 더 힘들었던 나는 혼자가 되고 나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혼자만의 여행이 좋았다. 불안하지 않은 곳이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갔다. 새로운 곳이 아닌 이미 가봤던 곳, 익숙한 곳만 찾아가다 보니 같은 나라, 같은 도시만을 방문하는 일이 늘어갔다. 여권에 국가 방문 스탬프를 찍어주는 일조차 없으니 새로운 나라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보다 익숙하고 편한 곳에 한 번이라도 더 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철저히 혼자만의 여행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서 여행하기 좋은 곳을 만나게 되면 자동적으로 여행 리스트에 올렸다. 누구와 같이 오면 좋은 곳이 아닌 나 혼자 여행하기에 좋은 곳으로 리스트는 채워졌다.

외국에서만큼은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었고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하는 해외여행이 좋았다. 이게 내가 원하던 바였다. 그게 행복이었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악몽 같은 순간이 와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극복할 용기가 생겼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니 내 마음에도 조금은 평화가 생겼다. 그러나 그때부터 또 다른 불안이 생긴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내가 그렇게 힘들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이렇게 평화를 느껴도 되는 걸까?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참고 지내온 내 삶이 불쌍했고 나에게 잘못이 있어서 그런 일들을 겪은 거라면 지금 이 작은 행복조차 누릴 자격이 없는 거였다. 심지어 그런 행복조차도 오래가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은 그 작은 마음의 평온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여전히 힘들다. 굳이 이렇게 버틸 필요가 있을까? 나는 늘 충동적이지 않는 방법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미련이 남는 일들이 생각나고 죽을 각오로 그 미션들을 수행하다 보면 이렇게 사는 것도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 일들이 끝나고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지는 순간이 오면 아마도 나는 또다시 무의미한 삶을 지겨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또 왜 이렇게 버티고 있지?'

버티지 않아도 된다. 이 또한 나의 선택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사라졌지만 잊히고 싶지 않은 누군가와는 달리 나는 존재하지만 잊히고 싶었다.

고단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정해진 길이라도 있으면 조금은 견디기 편했을까? 오늘도 이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내일이 되면 또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고 있을 테니 내일이 온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아플 만큼 아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았나 보다. 그 끝은 어디일까? 끝이 있기는 한 걸까? 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정신없이 뛰다 보니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나중에 보상해 주겠다던 그 약속이라도 모두 지키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켜보는 사람만 있어도 죽지 않는다지만 충동적이지 않은 결말이라면 누군가 있든 없든 계획된 길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싶다.

언제가 한 번쯤은 나에게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그런 날이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그날이 정말 올까?'

아쉽게도 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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