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Aug 24. 2022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41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게
얼마나 지옥인 줄 알아?




아직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걸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인연을 끊을 수는 없으니 가족이란 이름으로 버티기 위해, 최대한 거리를 두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모이게 만들려고 애쓰셨다.

어느 때부터인가 오빠는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자고 가지 않았다. 가족 모임이 있어도 점심때쯤 와서 같이 밥을 먹고 모님에게 용돈을 챙겨드리고 저녁이면 서울로 돌아갔다. 그건 명절 연휴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차를 먼저 구입했지만 오빠는 차 대신 집을 먼저 구입했다. 오빠에게도 집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부모님은 집이 낡아서 아들이 그런 거라 생각했는지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었지만 그럼에도 오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빠는 자신의 집에 가족을 초대하지도 않았다. 가족 중에서 오빠 집에 가 본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오빠는 이사 때마다 나를 불렀고 이사하는 동안 나에게 귀중품을 맡겼다. 그렇게라도 오빠가 이사했던 모든 집에 가 봤지만 다른 가족은 가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서울에 오실 때마다 아들 집 가려고 지만 그때마다 오빠는 밖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대체하곤 했다.

그런 오빠에게는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하면서 어머니는 나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뱉어내셨다. 물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끊이지 않았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며 다그칠 때는, 그전처럼 가족을 위해 돈을 벌라는 건가 싶어 혼자서 분노했었다.

어머니와 지난 일을 털어버리고 싶어서 어린 시절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억에는 잊힌 일들인지 그런 일이 있었냐고 반문하셨다. 이제는 어머니의 사과 한마디면 다 용서될 것 같은 마음에 차근히 설명해 드렸지만 조용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래서 뭐? 이제 와서 복수라도 하게?"

어머니의 그 말에 난 더 큰 충격을 받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미워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겐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지만 그 후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힘들 때, 힘들다고 얘기하지 못했다. 참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어머니는 또다시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오셨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내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집에서 놀고먹으면서 뭐가 힘들어?"

어머니는 평생 동안 남편에게 들어오던 말을 딸에게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가족을 버리고 싶었다. 나를 버려주길 빌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본 적 없는 나의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서울에서 처음 찾아갔던 성당의 주임 신부님이 어느새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깥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잊고 있었으니 그 '이임 미사'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고 갈 신발이 없었다. 여름엔 슬리퍼, 겨울엔 낡은 등산화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은 십 년 가까이는 별 문제없었다. 여행지에서도 그 두 켤레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그런 것에 욕심이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신을지 모르는데 새로 사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 신으라고 슬쩍 건네주면 못 이기는 척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찜통더위에 등산화를 신고 갈 수는 없었고 성당에 슬리퍼를 신고 갈 수도 없었다. 그날 얼굴이나 보자는 사람들의 말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신발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한 언니가 따로 연락이 왔다. 낯선 성당에서 다 같이 모이는 것뿐이었지만 오랜만에 있는 모임 소식에 조금은 부담이 되었단다. 언니도 안 갈 핑곗거리를 찾고 있는 눈치였지만 그럼에도 갈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언니가 가자고 했다. 그래서 신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언니는 자신도 운동화를 신고 간다며 아무거나 신고 오라고 했다.

'그 흔한 운동화도 없어요.'

새로 사 신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했다. 난 그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가고 싶었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신발장을 뒤져보았다. 집 안의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신발장의 수많은 신발들도 이미 처분해서 나의 신발장은 거의 비어있었다. 15년 전에 구입했지만 신지 않고 방치해 둔 토오픈 구두가 보였다. 물론 하이힐이다. 구멍에 발톱이 쓸려서 신지 못하던 탓에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다.

신어보니 여전히 구멍으로 발가락이 빠져나와서 엄지발톱 뿌리 부분이 구두 가죽 솔기에 쓸렸다. 테스트 삼아 집 앞 슈퍼에 갈 때 잠깐 신어보았지만 역시나 피부가 벗겨지고 진물이 흘러나와 바로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이 구두만이 최선이었다.

드디어 그날, 밴드 몇 겹을 붙이고 기어이 신고 갔다. 이미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 대중교통은 인천공항에 갈 때 타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3년 전이었다.

은퇴하시는 신부님이 현재 주임으로 계신 낯선 성당에 도착하니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미사가 시작되었다. 중년의 신부님은 어느덧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있었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분이라 호불호가 갈리는 성격이었지만 내 눈에는 따뜻한 분이셨다. 얼마 전에 큰 수술도 받으셔서 많이 힘들어 보이셨다. 이제 40여 년의 사제직을 마감하신단다.

서울 생활이 막막하고 힘들어서 단체 활동이라도 하면 나을 것 같아 무작정 성당을 찾아갔다. 처음 갔을 때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미사가 끝나고도 멍하니 앉아만 있다 왔었다. 그리고 8월 마지막 날, 오늘도 안 잡아주면 다시는 성당에 안 올 거라며 하느님한테 협박도 하고 사정을 하느라 신자들이 거의 돌아간 후에야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없는 마당에 신부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왔냐"며 나한테 말을 걸어 주셨고 그때 한 청년 단체를 소개해 주셨다. 그날은 지금도 눈에 선한데 벌써 25년이 지나있었다. 신부님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날도 신부님 덕분에 예전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신부님, 다시 찾아뵐 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미사에 참석하려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그녀의 기일이기도 했다. 사망시간은 자정 무렵이라니 정확한 기일은 알 수 없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21일로 기억하기로 했다.

우울한 시간을 보낼 때 그녀는 나의 버팀목이 되었고 또한 내가 그녀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멀어지면서 그녀와도 직접적인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주변 정리를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고통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보다 먼저 가버린 그녀의 소식에 오랜 시간 방황하고 있었다.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들이닥친 코로나로 온 세계가 폐쇄적인 삶을 살다 보니 더 오랜 시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동안 찾아가 볼 용기가 없었지만 서울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찾아가고 싶어서 3년 만에 용기를 내어 수소문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용인 어느 사찰의 수목장에 있단다. 시외버스를 타고 그곳 버스터미널에 내리더라도 3km 정도 떨어진 산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라는데 나에겐 그게 더 무서웠다. 고민을 하다가 차라리 걷기로 하고 로드뷰로 열심히 거리를 익혔다. 버스로 왕복 5~6시간에 도보로 왕복 1~2시간, 거기서 한두 시간 정도 머물러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나에게는 아주 긴 여정이었다. 9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배차시간이라도 안 맞으면 당일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아니, 왠지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 함께 갈 사람이 있으면 그때 가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멀리서나마 빌어주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아들 손 꼭 잡고 행복해야 해."



매거진의 이전글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4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