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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4. 2022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46

이제껏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걸까?

부정적인 기억이 오래 남는다.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꾸역꾸역 먹는다. 토하지는 않지만 거의 매일 이런 식으로 먹었다. 토할 만큼 음식을 밀어 넣는 일을 반복하는 것, 그게 나의 식사 습관이었다.

평생을 그렇게는 살 수 없었으니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으로 조금씩 개선했다. 하루에 먹을 양을 정해두고 쪼개고 쪼개서 계속 먹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먹었지만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일찍 잠드는 생활습관 덕에 낮시간 동안만 먹는, 어찌 보면 간헐적 단식인 셈이다.

그래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스스로 정한 기준을 어길 때도 있었다.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냉장고부터 비웠다. 냉동실까지 모두 비워질 때까지는 필요한 것이 생겨도 장보기를 멈추었다. 그렇게 남은 재료를 모두 먹어치울 때까지 폭식은 이어졌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그 허전함을 얼음으로 달랬다. 무언가 입에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버텨야 했다.

식사란, 누군가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했으니 혼자서는 맛있는 음식이 필요 없었고, 좋은 레스토랑도 의미가 없었다. 생존을 위한 섭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단체 대화방에 있던 K가 '그 상황'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다. 나를 위해서라고 하는 말을 믿고 싶었지만 아마도 그런 상황이 불편해서인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나 때문에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말로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빈말임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그마저도 신경이 쓰여서 K를 집으로 초대했다. 한 번은 얼굴을 맞대고 웃으면서 "저, 괜찮아요."라고 해야 이 상황이 종료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람이 그립기도 했다. 밖에는 나가고 싶지만 비싼 외식 비용이 부담되어 집으로 불렀다. 하지만 K의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냥 밖에서 밥 먹고 헤어지는 편이 편했던 모양이다. 밥을 사주겠다며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얻어먹는 입장에서 부담되지 않는 특식은 패스트푸드였으니 목동역 써브웨이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이어트를 하는 K를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고 K도 좋다고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 했다. 장소를 바꾸어도 된다고 했지만 당일까지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출발한다는 연락이 와서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갔다.

30분을 걸어서 써브웨이에 도착했는데 K가 보였다. 오는 길에 검색했는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으니 K가 원하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K가 찾아낸 샐러드 식당은 내가 걸어온 쪽으로 20분 거리였으니 바로 집 부근에 있었다. 30분 정도는 걸어도 문제없을, 나름 편한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50분을 내리 걸었더니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고 식당에 도착할 무렵에는 물집이 터져서 진물이 나고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다.

계속 날씨가 좋았지만 이날은 하필 소나기 예보가 있었는데 걷는 내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챙겨간 우산을 꺼냈지만 쓰기엔 빗방울이 약했고 그냥 맞기에는 빗방울이 굵었다. 쓰는 둥 마는 둥 그렇게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바람까지 동반한 폭우로 돌변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데 만 원짜리 샐러드가 옵션을 거치자 제법 큰 금액이 되었다. 밥을 사는 언니의 선택이니 잠자코 있었다.

식사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굶고 나갔다. 평소에도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먹었으니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폭식을 하지 않았고 굶는다고 해서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여행지에서 매 끼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였다.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이유도 있고 앉아있는 그 자체로도 복부의 압박이 심해져서 최대한 속을 비우고 나가야 했다.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의 대화로 수다를 떨면서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K는 그날의 소동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화해의 자리를 만들려고 했던 모양인데 문제의 당사자인 R은 바빠서 다음 달에나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단다. 나는 세상에서 바쁘다는 핑계를 제일 싫어했다. 악마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비밀 연애를 하는 세상에, 자기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핑계를 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오해였고 오해를 풀고 싶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했을 텐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그럴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는 너는 왜 연락하지 않았니? 네가 먼저 연락하면 되는 거잖아!"

"대꾸도 하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굳이 제가 왜요?"

R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심지어 남편에게 확인했는데 남편조차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단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했다는데, 하지도 않은 일로 당하는 입장이 어떻겠느냐며 K조차도 나를 나무랐다. 그냥 전 남자 친구가 나쁜 놈인 거고 그 남자의 말 한마디에 내가 오해한 거라고 했다.

내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그랬을까? 무척이나 따르던 언니였는데, 확인도 없이 그렇게 누군가의 이간질에 놀아났을까? 나도 나름 R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남편이 그럴 때 언니가 내편을 들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을 뿐이다. 따지지도 못하는데 확인을 해서 뭐 하나 싶기도 했다.

기억을 하지 못하면 없던 일이 되는 건가? 그들 말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이제 와서 따지고 들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일이니 더 이상 언급하기 싫어서 단체 대화방에서 나온 건데 나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동생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탈퇴해 버리면 남아있는 R의 입장은 뭐가 되냐고 했다.

'동생들 앞에서 그런 말을 들은 내 입장은?'

걱정하는 K의 마음을 생각해서 좋게 좋게 넘어가고 싶었다. 안 보고 살 것도 아니고 어디에선가 다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고 지나치고 싶었다. 불쑥불쑥 그런 취급을 받기 싫어서 그런 건데 자신들이 기억하지 못하니 그런 일은 애초에 없던 일이라고 했고, 그래서 나의 일방적인 잘못이라는 거였다.

나를 싫어하는 눈빛 정도는 안다. 그 술자리에 있었던 또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말을 했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런 일은 없었던 일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언급할 필요는 없겠구나 싶었다.

피해자가 기억하는 일을, 가해자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애초에 없던 일이었다고 하는 건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으니 이제 그만 잊겠다고 하는데 자꾸 언급을 하면 또 다른 사건이 되는 거였다.

상처받은 이에게 먼저 연락하라고 다그치니 마음이 더 복잡했다. K는 내가 걱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당에는 우리까지 두 테이블이 전부여서 한참을 머무르다 나왔다. 이대로 헤어지는 건가 싶었으나 바로 옆, '빵오뉴'로 들어가길래 커피를 마시자는 건 줄 알았다. 빵을 고르라는데 비싼 빵값에 놀라 뒤로 물러나서 구경만 하고 있으니 K가 가족에게 줄 빵을 주문하고 포장하면서 내 것도 골라주었다. 여긴 커피를 마시기엔 어둡다며 밖으로 나왔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곳은 집에서 고작 10분 거리였지만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과거의 언니들은 무엇보다 직설적으로 말을 해서 어렸던 나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마저도 익숙해지니, 뒤에서 그러는 것보다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편이 솔직해서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새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때문에 내가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미안함도 사라졌다. 그냥 불편할 뿐이지 솔직히 지금은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 대화방에 있었던 마리아는 자신이 R이라면 오해를 받는 게 싫어서라도 먼저 연락해 볼 것도 같은데 똑같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냥 나에게 잊으라고 했다. 마리아는 그들보다 나와 더 친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좋았다.

수십 번을 생각해 봐도 내가 먼저 사과하고 싶진 않았다. 동생들 앞에서 언니에게 망신을 주었다고 하면서도 내가 동생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고는 생각해 주지 않았다. 동생이니 먼저 연락하라는데 언니가 동생에게 먼저 손을 내밀면 안 되는 걸까? 그럼에도 자꾸 강요한다면 우리 인연도 여기서 끝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과의 인연은 그저 과거 속의 인연으로만 남기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대화방에 있던 자매가 신경 쓰였다. 그들과는 불편한 사이로 남고 싶지 않았다. 항상 멀찍이 서서 지켜보듯, 그다지 동참하지 않는 자매였다. 그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면서도, 어쩌면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첫째는 무조건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려고 할 것 같아서 둘째에게 연락했다.

잘 지내냐는 말에 한동안 답이 없었다. 할 말만 남기고 끝내려다 기다렸다. 바빴었다며 저녁쯤 답이 왔다. 그런데 조만간 할아버지 신부님을 만나기로 했다며 그때 오라고 했다. 답을 할 틈도 없이 대뜸, 자기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이라면서 R에게 연락했냐고 물었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R과 이야기할 생각은 있냐고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 몰라서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 신부님과의 모임에 대해서는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버려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고, 자매들과는 어떤 감정도 남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매들도 내가 R에게 연락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그들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숨이 막혔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는 걸까? 자매에게도 연락하지 말고 그대로 잊히도록 내버려 두었어야 하는 거였을까?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말자고 하면서도 여전히 신경 쓰고 있었다.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내 생각이 아무리 확고해도 모두가 내 잘못이라고 하면 나조차도 혼란스러워진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싶어 후회하게 된다. 그러는 내가 싫었다.

그 이후의 전개 상황에 대해서는 모든 게 의문스럽다고 하면서도 모두에게 조심스러워서 잠자코 있던 마리아에게 연락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끼어서 난처한 입장이다 보니 왜 연락했냐고 다그칠 줄 알았지만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날은 달랐다.

R이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거의 20년 만에 만난 사람에게 대뜸 우울증 같다고 했고 심지어 그 사람이 걱정된다면서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이해할 생각은 1도 없는 그녀의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라고 했다. 자신이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답답해서라도 연락 한번 할 텐데 오히려 자신은 잘못이 없으니 남일처럼 방관하고 있었고 도리어 주변 사람들이 R의 눈치를 보면서 나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한 명이라도 그렇게 말을 해주니 내가 무조건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싶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 모임에서 그나마 내편인 마리아는 중립을 지킬 모양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도 바른 소리를 하지 않을 테니 R은 영원히 자신이 옳다고 믿을 것이다.

'살다 보면 갑자기 내리는 비처럼 피하지 못하는 비를 맞을 수도 있지만, 빗속에 서 있어도 우산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면 젖어도 금방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가을은 유난히 춥다. 벌써 코끝이 시큰거렸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에 고생하고, 누구에게나 힘든 열대야를 거치게 되면 가을이 기다려지고 환절기가 힘들지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힘든 걸 보면 이번 여름은 그다지 덥지 않았던 걸까 싶다. 하지만 에어컨, 선풍기 없이 견뎌낸 이번 여름이 힘들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이 아프다. 그저 계절이 바뀌는 것뿐인데 몸은 새로운 계절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적응하기까지 너무나 오래도록 힘들었으니 계절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고 어느 순간 다음 계절이 다가와 버리곤 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올 것만 같다.

모두가 공감하는 큰 재난이 오면 자잘한 근심쯤은 아무 일이 아닐 텐데 싶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여행 못 가는 게 무슨 대수며, 당장 죽고 사는 일을 걱정해야 하는데 누구랑 싸운 게 고민거리나 될까? 그래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그런 재난이 오길 바라기도 했었다. 세계 전쟁? 아니 모두의 적이 있어야 우리가 한마음이 될 수 있으니 우주전쟁? 그런 게 필요한 걸까?

글 소재를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있었지만 그런 식의 새로운 만남은 잡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를 위해서 살아보겠다고 했지만 어떨 때는 그동안 살아왔던 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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