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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14. 2022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48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둘이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단다.

사랑받으면서 태어나고
사랑받으면서 죽을 수 있다면
그 사이에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그냥 다 잊을 수 있을 텐데.




나는 마흔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발적인 백수가 되었다. 연금 받기 전까지는 가진 돈으로 버텨보기로 했다. 연금을 얼마나 받게 되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지긴 하지만 내 인생 계획은 70이 최대치였다. 그전에 죽게 되면 감사한 일이지만 아니라면 그때까지는 자력으로 버텨야 했다.

파이어 족이니 뭐니 나름 포장을 하고는 있지만 나의 계획은 그랬다. 이 세상에 그다지 미련이 없었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남아있는 돈이 아까웠다. 어떻게 번 돈인데, 어떻게 모은 돈인데 하면서 말이다. 그 돈이라도 다 쓰고 다시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마지막이라고 흥청망청 쓰지는 않았다. 물려줄 자식은 없지만 가족은 있으니 장례비용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남겨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여행을 다녀오면 기분 전환도 되고 자존감도 살아났다. 죽기 위해 떠난 여행이지만 좀 더 살아도 되겠구나 싶은 그런 용기를 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매일 저녁 '채소 떨이'를 했다. 슈퍼 주인 입장에서는 당일에 팔리지 않고 남은 채소가 있으면 그렇게라도 처리해서 좋았고, 나는 싸게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비싼 과일을 먹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무엇을 사러 가기보다는 무엇을 사 오느냐에 따라 그날의 반찬이 달라졌다. 그날의 가격이란 것이 있으니 채소값이 비싼 날은 떨이를 해도 비쌌지만 저렴하다 싶은 날엔 한꺼번에 많이 사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사 오는 다음날은 가격이 떨어졌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내일은 오늘보다 더 저렴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구입을 미루기도 했지만 그때는 가격이 오르곤 했다. 나의 기대와 상관없이 추측은 매번 어긋나기만 했다.

채소 가격이 폭등하고도 한동안은 저렴했지만 여전히 채소 떨이를 기대하게 되었, 비싸다 싶으면 다음을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동네조차 채소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기다리던 채소 떨이조차 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런 채소마저 사 먹을 기회가 없었다. 작년에 실수로 구입했던 바나나가 마지막으로 먹었던 과일이었는데 과일 대신 사 먹었던 채소는 가격이 오르고 사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일흔까지 잘 버티려면 지출을 줄여야 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버틸 수 있었다.

절약이 일상이었으니 나름 인생 계획에는 별문제 없었지만 한정된 돈으로 살아야 하다 보니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그 금액에 따라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여행을 간다는 것은 살아야 가야  시간이 줄어도 상관없을 때였다. 한 번씩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몇 살까지 생활할 수 있을지 다시 정하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무언가 할 때마다 그만큼 버틸 수 있는 나이대가 줄어들었으니 돈이 드는 일이라면 시도하기 전에 고민부터 해야 했다. 삶이 너무 지겨워서 살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도 떠나야 했고, 억누르고 있는 마음의 짐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떠나야 했다. 떠날 수 있음에 위안이 되었지만 한동안은 떠날 수도 없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떠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후회하며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줄어들면 그때는 마음껏 여행을 다녀보겠다고 결심했다.

10년짜리 여권은 4년을 간신히 사용했고 3년 반은 꺼내보지 못했다. 남은 기간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기한 안에 한 번이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어쩌면 나의 여행은 이대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사용하지 못하고 이 여권의 기한종료되어 버리면 새로운 여권을 발급받을 자신이나 있을까? 지금 제주도에 가게 되면 그 여권을 사용할 기회는 없을 테니 우선은 여행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한 번씩 내 삶이 가여워서 돈을 갈망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르바이트 삼아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분명 주 5일 근무였지만 출퇴근 시간까지 하루 평균 14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투자한 시간에 비해 받은 돈은 석 달 동안 삼백만 원이 전부였다. 그 돈은 나에게 제법 큰돈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장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돈이 생긴다고 먹고 싶은 을 마음껏 사 먹지는 못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생업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여행은 꿈도 꿀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나는 돈이 필요 없었다. 돈이 생기면 그 돈이 아까워서 그만큼 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벌겠다고 고생한 걸 생각하니 그 돈을 잘 써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얼마가 있어야 남들처럼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먹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내 눈앞에 머니백이 떨어져 있다고 해도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고, 그 상황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으니 나는 애써 외면했을 성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을 걸만한 액수의 블랙머니라면, 아마 그 돈을 들고 도망갈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Y 언니와는 어렵게 약속을 정했지만 한차례 약속이 미루어졌다.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마리아는 알바로 인해 시간이 제한적이었고 직장과 가정이 있는 언니도 자유롭지 못했으니 내가 그들의 시간에 맞추는 게 당연했다.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까지의 20여 일의 시간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설렘은 사라지고 숙제를 남겨둔 기분이 되어버렸다. 빨리 숙제를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 아침,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전날 밤, 이태원 핼러윈 축제로 모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코로나도 이겨낸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또 한 번 사라졌다.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사람은 놔두면서, 왜 자꾸 행복한 삶을 누리겠다는 이들을 데려가는 걸까? 하늘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대화를 하기 위해 모일 때, 식사 자리는 늘 불편했다. 레스토랑을 예약하고도 먹는 일보다 말하는 것에 더 집중하자니 비싼 음식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점심시간을 피해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화문까지 버스로 45분 거리라 버스 기다리는 시간, 걷는 시간 등등을 고려해 1시간 반 이전에 집을 나섰지만 3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시간에 딱 맞추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주말이니 길이 막힐까 싶어 여유 있게 나섰지만 또 30분 전에 도착했다.

여유가 느껴지는 광화문 광장은 아직은 평화로웠다. 이제 곧 이곳에도 소란스러운 광경이 다시 펼쳐지겠지. 2층 할리스, 그곳에서 20년 전의 인연을 다시 만났다. 여전히 미소가 예쁜 언니였다.

달콤한 케이크와 카페라테로 브런치 시간을 가졌다. 지나온 시간들을 추억하다 보니 그 자리가 어느새 편해졌는지 나도 모르게 가족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이내 순간 아차 싶었다. 꺼내기 힘든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우울증이라고 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꺼낼 수 있게 된 용기에 격려를 해주면 되는 거였지만 언니는 자신도 똑같이 가족으로 인해 힘들었고 이제는 상담으로 극복했다고 했다. 또다시 상담을 받으라는 말을 들으니 이제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해야겠다 싶어졌다. 나는 내가 멀쩡하다고 우기면서 상담을 거부하는 게 아니었다. 상담받으러 다닐 형편이 안 되는 것뿐이었다.

여행 다닌 얘기로 화제를 돌리니 그래도 생각보다 정신은 건강하다며 이내 나를 치켜세웠다.

'아직은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 당장은 죽지 않아도 되거든요.'

차마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톡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느닷없이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언니가 은근히 불편했다. 여행 이야기를 꺼내면 언니는 성지순례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순례길 이야기를 꺼내면 언니는 느닷없이 성경 구절을 읊는 식이었다.

'그래요, 다음에 성지순례나 함께 다녀와요.'

그 만남이 올해의 마지막 외출이겠거니 싶었지만 또다시 약속을 만들었다. 한번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다른 누군가를 또 만나고 싶어졌다. 이마저도 끝나고 나면 예전보다 더 큰 외로움에 힘들어질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만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만나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마리아와 함께 청년 밥상 문간에 가 보기로 했다. 1호점 정릉점에는 이미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2017년 오픈 이후부터 코로나 이전까지는 3,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러 자주 갔었지만 지난 3년 동안은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은 청년 카페 문간이 있어서 자주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그곳까지는 여러 번의 환승을 거쳐야 했고 가는 데만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과정이 힘들어서 자주 가겠다는 마음을 애초에 쉽게 가질 수는 없었다.

유 퀴즈 방송 출연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서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 있었다. 한꺼번에 기부받은 쌀은, 제 때에 소비하지 못하여 다른 곳에 다시 기부해야 했단다. 쌀처럼 식재료일 경우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기부보다 적더라도 꾸준한 기부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청년 밥상 문간 2호점, 3호점이 오픈하고는 가까운 곳으로 봉사하러 가려고 했다. 가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기에 열감기에 자주 걸려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런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가는 것 같았다. 한차례 자리를 바꾸어서 재 오픈한 이대점은 학생 식당으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그래서 일손이 부족하단다.

처음에는 혼자 코로나에 걸려서 고생하기 싫었으니 무던히 조심했고 2년쯤 잘 피해 다녔다. 하지만 결국엔 나도 힘든 시기를 거쳤다.

이제는 숨어 지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볼까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기는 걸 보니 무언가 하고 싶은, 아니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시기가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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