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Dec 24. 2022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52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in 다낭




나도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그런 낭만을 꿈꾸기도 했고, 누군가와 함께 해외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겐 꿈이었는지 남자 친구가 있든, 없든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나 혼자였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그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만을 위한 여행을 다니게 되었지만 크리스마스를 다른 나라에서 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성수기에 해당하는 그 기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여행 계획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언젠가 한 번은, 큰 비용을 각오하고 연말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크리스마스 연휴에 쓰나미로 초토화된 그곳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해외에서 새해를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에게 낭만적인 곳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집에만 있으니 괜한 용기가 생겼다. 이번 연말에는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여행으로 나는 또 살아내야 했다. 이제는 뭐가 힘든지도 모른 체, 살아야 하니 살았고, 살라고 하니 또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직장 생활 중에는 계획적인 휴가를 쓰지 못했다. 직장인으로 떠난 여행은 오기로 떠난 여행이 대부분이었고, 퇴사를 각오한 여행이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지도 못했다.

처음으로 베트남 호찌민에 갔다가 돌아올 때였다. 즐겁지도 않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입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귀국 편 비행기에서는 운이 좋게도 비상구 쪽 창가 좌석을 배정받았다. 바깥 풍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데다 발까지 자유로워지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모처럼의 여행에 심취해서 말동무가 필요했는지 낯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혼자 태국을 여행하고 베트남을 거쳐서 귀국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망감에 그 대화에 동참할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고 점점 취하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경계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남자가 술에 취해 잠이 들자, 잠결에 나에게 실수라도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뜬 눈으로 지새우고 말았다. 아침에 한국에 도착하면 바로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끝내 잠들지 못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운명적인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불편하지 않은 만남으로만 남길 바랄 뿐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버스, 지하철, 택시, 기차 등 모든 곳에 그들이 있었다. 비행기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그 어떠한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지난 시절 고향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값을 아끼기 위해 여섯 시간이 걸리는 무궁화호를 탔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고향 다녀오는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통일호를 타기도 했다. 명절에는 좌석 티켓을 구하지 못해 매번 입석 티켓을 끊었으니 여섯 시간, 때로는 일곱 시간을 서서 가야 했다. 그래서 고향 가는 길조차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운이 좋으면 기차 차량의 맨 뒷좌석, 뒤편 공간에 신문지를 깔고 앉을 수 있었다. 무릎을 펴지 못해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서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통로까지 꽉 찬 인파로 인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공간마저 빼앗기는 상황 탓에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고향에 가는 것도 싫었지만 가는 그 여정도 지옥이었던 명절 연휴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점차 입석 기차 여행이 힘들어지자 퇴근하고 밤 기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자정에 출발하면 자는 사이 새벽녘쯤 고향역에 도착했다. 앉아서 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마저도 변수가 있었다. 새마을호와 달리 무궁화호나 통일호 좌석은 칸막이가 없었다. 옆자리에 덩치가 큰 사람이 앉으면 내 좌석까지 침범하기 일쑤였고 남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허벅지가 내 몸에 닿았다. 허벅지를 통해 낯선 이의 체온을 느끼기 싫어서 창가로 몸을 붙여서 나름 여유 공간을 만들면 자신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는지 그만큼 다가왔다. 그러다 가방을 사이에 두고 칸막이로 쓰기도 했다. 그나마 낮에는 경계를 할 수 있었지만 야간기차에는 술을 마시고 타는 사람이 많았다. 술김에 아침까지 푹 자겠다는 뜻이겠지만 그런 사람 중에는 그런 취기를 이용해 옆자리 여성 승객에게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주변의 각종 소음을 버티며 간신히 잠이 들었을 때였다. 내 허벅지 위로 누군가의 손이 느껴졌다. 옆에 앉았던 아저씨의 손이었다. 너무 놀라서 본능적으로 손을 치우고 쳐다보니 그 아저씨는 자고 있었다. 처음엔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실수로만 생각했다. 내 옆에는 매번 그런 남자만 앉는다는 생각을 떨치고 싶었다. 하지만 잠이 들자 누군가의 손은 다시 내 허벅지로 올라왔다. 아무래도 잠결 인양 시도하는 것 같아서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내가 계속 깨어있으니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승무원이 지나가면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할까 고민도 했다. 그 남자를 사이에 두고 승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그 상황도 무서웠지만 막상 그 남자가 자고 있었다고 우기면 그뿐이었다. 승무원을 찾아가서 얘기하려면 통로에 앉은 그 남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지나가겠다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켜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리만 살짝 돌리고는 지나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도와주는 척 내 엉덩이에 자연스럽게 손을 갖다 대는 그런 이가 많았다. 그래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루 일을 마치고 탄 기차라 몸은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지만 아침까지 뜬 눈으로 깨어있어야 했다. 야간기차는 나에게 지옥 열차였다.




약속 하나가 생기면 더블로 약속이 생기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또 다른 곳에 가야 할 일이 생기고, 여행을 떠나려고 하면 그 여행을 포기할 만큼 솔깃한 제안이 오곤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매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그런 일은 전혀 없었으니 이제는 그 모든 기대감을 버리고 떠나기로 했다. 당장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단숨에 연말에 베트남 여행을 결정했고 그 과정이 다소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내 기준에서는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고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기회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새해에는 그 섬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의욕만으로 결정했던 베트남 여행이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다. 남들은 좋은 일이 겹쳤다며 좋아했겠지만 나는 커다란 일 두 가지를 한 마음에 담아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유난히도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연말 여행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행기간은 왜 14일씩이나 되는 건지, 모든 게 후회가 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이렇게라도 다녀올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당분간 여행은 어려울 테니, 마지막 휴가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잘 다녀오기로 했다.




Đà Nẵng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최대 상업 및 항구도시이자 베트남의 다섯 개 직할시 중 하나이고 베트남에서 호찌민시, 하노이, 하이퐁 다음으로 네 번째 큰 도시이다.

다낭의 이름은 참어 Da Nak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다낭은 남중국해와 맞닿아 있다.

미케(My Khe) 비치는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중의 하나이다. 20km에 이르는 백사장이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휴양소로 사용되었다.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목에서 유래하여 차이나 비치(China Beach)라고도 한다.

박 미 안 해변(Bac My An, 北美安)은 응우하인선 군 미안의 북쪽에 위치한다. 시내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7km 떨어져 있는 박 미 안 해변은 4km에 이르는 해안과 백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응우 하인 선(Ngũ Hành Sơn 五行山)은 다낭을 대표하는 산이다.

다낭 시내와 호이안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5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목썬(MocSon 木山), 호아썬(HoaSon 火山), 터썬(ThoSon 土山), 낌썬(KimSon 金山), 투이썬(ThuySon 水山)이고 이들이 오행(목ㆍ화ㆍ토ㆍ금ㆍ수)을 관장하는 산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한다. 응우하인선 중에는 물을 관장한다는 투이썬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투이썬에는 많은 동굴이 있는데 동굴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 156개의 계단 위에 있는 정상 전망대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다. 이웃한 4개의 봉우리와 기슭에 자리한 마을 풍경이 그림 같다.




다낭은 두 계절이 있는 열대 몬순 기후이다. 9월부터 3월까지는 태풍과 우기, 4월에서 8월까지는 건기다. 전반적으로 기온은 높은 편이며, 기온이 가장 높은 시기는 6월에서 8월이며 기온이 가장 낮은 시기는 12월에서 2월이다.

다낭의 강수량이 늘어나는 시기는 보통 10월에서 11월 사이이며 1월에서 4월 사이에는 가장 적은 강수량을 기록한다. 다낭은 남중국해로부터 북상하는 태풍 피해에 자주 노출된다.




그래서 나는 예정대로 서울을 떠났고,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서 지금은 다낭에 와 있다. 연말에 홀로 한국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비로소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오롯이 혼자 보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서울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우울하고 가장 불안한 시간을 보내다 한국을 떠나왔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도 그 우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서 오는 불안인지 알 수 없어서 더 불안했다.

그래서 도착하는 순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고작 사흘 만에 여기서 해야 할 미션을 모두 완료했다. 하루 평균 7~8km를 걸어 다녔다. 시원하지만 따뜻한 다낭의 겨울 날씨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국은 최강 한파로 고심이라지만 베트남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문득 긴장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에는, 내 불안조차 잠시 사라졌지만 그 일이 해결되고 나면 언제나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어렵게 떠나온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은, 모든 기억을 잠시 잊기로 했다.

안녕? 다낭!



매거진의 이전글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5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