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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0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56

최선이 힘들 때는, 차악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때는 힘들다고 말할 힘조차 없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오면 자연스럽게 잠에서 깼다. 청소를 하고 장을 비우고 샤워하고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 여유를 즐길 일만 남았으니 이 시간이 참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시간이, 시작이 아니라 하루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자연스럽게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푹 자고 일어나면 되는 일만 남았으니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잠들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아침을 맞이할 거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꿈속에서도 편하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나는 계속 긴장 속에 살고 있었다.

한 번은 집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일 정도였지만 점점 물방울이 커지고 있었다. 하필 책장 바로 위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책장뿐만 아니라 이미 책 일부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책장을 거실 중앙으로 이동시켰다.

밖에선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건물이 잠기고 있다며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리로 복도와 계단이 소란스러웠다. 나도 나가야 했다. 그런데 책이 신경 쓰였다. 물이 차오르면 바닥 부분에 있는 크고 무거운 책이 먼저 잠길 것 같았다. 책장 하단에는 주로 묵직한 전시 도록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구하기도 쉽지 않은, 내가 아끼는 것들이었다. 물론 건물 전체가 물에 잠기면 소용없는 일이지만 5층이니 집 전체가 잠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희망은 보여서 일단 아끼는 책은 책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 집에서 건져야 할 것이 책뿐인가 싶었다.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멍하니 지체하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이 건물에는 이제 나밖에 없었다.

꿈에서 깼을 때 이 집에서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결정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베트남 항공사 중에는 다낭까지 직항이 아닌 호찌민이나 하노이를 경유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연말에 이용했던 뱀부 항공 Bamboo Airways도 그랬다.

한때는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자, 인천공항에서 이륙하고 국내 상공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패키지도 있었던 터였다. 시간도 많고 그동안 타보지 못했던 비행기를 두 번이나 연이어 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굳이 직항이 아닌 경유여도 상관없었다.

보통은 인천공항에서 체크인하면 어디를 경유하든 최종 목적지에서 캐리어를 찾으면 되었다. 그래서 하노이를 경유하더라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천공항에서 하노이를 경유하여 다낭으로 가는 항공편인 경우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하고 수하물을 부치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서 '반드시 캐리어를 찾아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대신 하노이 공항 특정구역에 캐리어를 놔두면 직원이 따로 짐을 옮겨준다고 했고, 돌아올 때는 번거로운 그 과정 없이 다낭에서 짐을 부치면 인천공항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그 글을 썼던 이는 비즈니스 석을 이용한 승객이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고 이코노미 석을 이용하는 승객일 경우엔 많이 달랐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수하물을 부치고 하노이행 티켓 한 장을 받았다. 하노이에서 다낭까지는 베트남에서 보면 국내선이므로 외국인 승객 입장에선 하노이 공항에서 입국신고를 하고 수하물을 찾아서 셀프로 베트남 다낭행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국제선과 국내선이 같은 터미널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는 경우엔 당황하고 헤매느라 긴 경유시간도 누군가에겐 촉박할 수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엔 경유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되어서 그 시간 동안 시내라도 다녀올까 하고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꺼번에 도착한 항공기에서 내린 여행객들로 하노이 국제공항 통로가 거의 마비되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 뒤에서 영문도 모르고 마냥 서 있었다. 앞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데 뒤에서 새로운 인파가 밀려오자 압사당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대길래 어디 유명인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어이없는 그 상황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이었을 뿐이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자 점점 불안해졌다. 솔직히 그 줄은 입국심사대로 가는 통로의 대기줄이었고 안내판 없는 통로에 마냥 서있으니 긴가민가했다. 수많은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가서 눈앞 코너를 돌자 익숙한 입국심사대 안내판이 보였다. 마음은 놓였지만 거기서 또 한 시간을 기다렸다.

한국인 단체팀 뒤로 줄을 섰는데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나를 지나쳐 앞서갔다. 한 명 정도의 새치기쯤은 눈감아 줄 수 있어서 내색하지 않고 서 있었는데 그 사람은 또 다른 팀의 가이드였고 자기 팀을 한 명씩 앞으로 부르더니 결국 그 팀 모두가 나를 앞서 나가버렸다. 그날따라 여행객이 많았던 것인지 평소의 풍경인지는 모르지만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해야 하는 입장에선 너무도 불안한 시간이었다.

하노이 국제선 터미널에서 무사히 입국신고를 했으면 빨리 수하물을 찾아서 셀프로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아야 했다. 내 옷에 환승 스티커를 붙여주길래 특별한 서비스나 안내가 있을 줄 알았으나 어디까지 형식적인 것뿐이었다. 공항 건물 1층 밖으로 나가서 우측 기둥 사이를 잘 살펴보면 셔틀버스 안내판이 보이지만 은근히 멀어서 가까이 가봐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불안하다 싶으면 공항 직원에게 '터미널 원, 프리 셔틀버스'라고 말하면 알아듣고 손짓으로 가르쳐준다. 이때 먼저 다가오는 이는 대부분 택시기사이므로 반드시 제복 입은 공항 직원에게 물어야 한다.

눈앞에서 버스 한 대를 놓쳤다. 그래도 실물을 보았으니 마음은 놓였다. 셔틀버스 배차시간은 딱히 정해진 기준 없이 대략 30분 만에 왔고 대기하고 있는 승객이 타면 버스는 지체 없이 바로 출발했다. 터미널 거리는 버스로 5분 거리라 짐이 많지 않고 눈앞에서 셔틀버스를 놓쳤는데 경유 시간이 촉박하다면 도보로도 이동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터미널 2 국제선에서 터미널 1 국내선으로 이동해서 다낭행 비행기 체크인을 하면 된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제주도에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고 수하물을 찾아서 김포공항으로 이동하여 제주도행 국내선을 타는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했다. 물론 인천공항에서도 제주항공편이 있긴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돌아올 때는 더 힘들었다. 갈 때는 캐리어가 비어있었지만 돌아올 때는 캐리어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낭에서 체크인하고 수하물을 부치면 끝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티켓 한 장을 주면서 하노이에 내려서 수하물을 다시 찾으라는 통보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직원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다낭공항에서 부친 30kg짜리 캐리어를 하노이 공항에서 다시 찾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하노이 국내선 터미널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또다시 국제선 터미널로 이동해야 했다. 하노이 국제선에서 인천행 티켓을 수령하고 수하물을 부치고 나서야 비로소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1월은 그 무엇도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제주행을 계획하고 냉장고를 비우고 있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냉장고가 텅 비게 될 경우, 남은 기간 동안 버틸 식량으로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라면까지 사다 두었다. 아껴먹던 김치도 혹여나 남을까 봐 아낌없이 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설 연휴에는 굶을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 일이 무산되자 먹어치우던 것들을 중단하고 다시 아껴먹기 시작했다.

미련인지 희망인지 오픈식 당일에 가서 봉사활동이라도 해보기로 하고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런 나를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지만 나에겐 그만큼 절실한 일이었다. 처음엔 당일치기를 할 예정이이른 새벽 비행기 편을 예약했지만 오랜만에 가는 제주 아일랜드라 하루라도 자고 오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숙소를 예약했다. 다시 돌아오는 항공권을 예매하려고 보니 어쩜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23년 만에 가는 제주도였다. 가는 김에 하루만 더 있다 오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숙소를 하루 더 연장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다. 하루만 더! 그러다 결국 돌아오는 항공편은 보류하게 되었다.

문득 제주에서 집을 구하는 것보다 호스텔에 장기투숙하는 편이 가성비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겨울엔 난방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아끼느라 제주에서도 추위에 떨고 싶지는 않았다.

한 숙소에서 연박을 하는 게 편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게스트하우스를 미리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장기투숙을 하게 되더라도 나한테 맞는 호스텔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찜해둔 호스텔마다 1박씩 예약하다 보니 돌아오는 날짜를 선택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가는 것도, 포기한 것도 아닌 불확실한 상황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 날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원이 2월 첫째 주까지만 일하겠다고 했다며 와서 일할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오픈식 날부터 바로 일하겠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일을 이어받으면 될 것 같았다.

제주도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려고 예매했던 편도 티켓은 리턴 없는 제주행 티켓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제주시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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