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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2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58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그러나 외부에 적이 있으면,
내부는 똘똘 뭉치게 된다.




다시 아침이 두려워졌다. 내가 원하던 것은 단순히 사람들 속에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에서 나름 인정받는 거였나 보다. 아무런 기대감 없이, 그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되는 거였는데 자꾸만 차별받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겠거니 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씁쓸했다.




첫 직장이었던 아트 센터에서는 명성만큼이나 크고 작은 전시회가 끊임없이 열렸었다. 그러다 보니 문화부 기자가 취재하러 오기도 하는데 작은 전시회는 인터뷰 없이 관람 모습을 풍경에 담아 가기도 했다. 보통 출근 시간 이전에 촬영을 나오니 전시장에 관람객이 있을 리가 없었다. 보다 나은 연출을 위해 가끔은 직원이 관람객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뒷모습을 살짝 노출하는 선에서였다.

지금 이곳이 언론에 노출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자 방송사에서도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봉사자로 왔다가 일하던 직원이 그만두고 그 뒤를 이어서 직원으로 출근을 한 첫날이었다.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에 조금은 긴장되는 날이었는데 그날은 운이 좋게도 봉사자 한분이 자원봉사하러 오셨다.

그날 마침 A 방송사에서 촬영을 나왔는데 그들은 점장과 봉사자의 인터뷰를 원했다. 봉사자는 그 또한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건 뭐지?' 싶었다. 봉사자의 신분에서 직원의 신분이 된 첫날이었기 때문에 은근한 질투심이 생겼다. 설령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해도 인터뷰에 응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매스컴 노출을 싫어하는 점장도 그날은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아직은 방문객이 많지 않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B 방송사와의 인터뷰도 2주 후로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날부터 방문객의 숫자가 급속도로 많아지기 시작했다. 봉사자는 그날 하루만 왔다 갔으니 그다음 날부터는 점장과 둘이서 감당해야 했다. 점장은 주방장으로서, 나는 홀 관리자로서 각자의 업무로 정신이 없었다. 하루 방문객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점심시간에 집중되어 들이닥치니 그 시간에는 둘이서 감당되지 않았다. 일시적인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라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고 나름 묵묵히 잘 이겨내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쁘면 쓸데없는 생각할 틈이 없어서 그건 좋았다.

때마침 소문을 들은 C 방송사에서도 취재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점장이 단칼에 거절했다.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이런 일시적인 관심이라면 차라리 시간차를 두고 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장이 인터뷰를 거절하자 서울 사무실로 연락했던 모양이다. 사무실에서도 이곳의 의사를 반영해 인터뷰는 정중히 거절했단다. 그러자 C 방송사는 또 다른 관계자에게 연락을 했는데 이곳의 상황을 모르는 그분은 홍보가 될 거라 생각하고 단숨에 승낙해 버렸다. 이 기분 좋은 소식을 알리려고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고 싫다는 점장 대신 결국 그분이 인터뷰를 하기로 매듭지었다.

촬영 당일, C 방송사 PD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왔던 모양이다. 점장도 직원도 아닌 제삼자가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으니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인터뷰를 이어갔고 그분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봉사하기 위해 다른 지점을 다니며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던 나로서는 꽤 답답한 경우도 있었지만 괜한 오지랖은 자제하고 있었다. PD는 점장의 인터뷰를 원했지만 영업 준비로 바쁜 점장은 계속 거부하며 가끔은 가벼운 실랑이도 이어졌다.

이미 B 방송사의 편성을 알고 온 C 방송사 PD는 집요하게 설득 아닌 강요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봉사자가 있어야 그림이 된다며 봉사자 섭외까지 요구했다. 그렇게까지 필요하않다는데도 방송을 위해서라며 나름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렴 그래도 인터뷰를 조작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식의 홍보는 누구도 원치 않았다.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내가 거슬렸는지 PD가 나가면서 취재 당일에는 점장과 봉사자의 인터뷰만 할 것이니 나에겐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모든 봉사자가 갑작스러운 매스컴 노출을 원할까요?"라고 묻자 PD는 그렇다고 답했다. 좋은 의도로 왔으니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매스컴 노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일까 싶었다.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라도 인터뷰는 해내고 말 것 같았다.

어제까지는 나도 봉사자였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왔다고 하더라도 나는 매스컴 노출이 싫다고 말할 뻔했다. 이곳에서 봉사하려고 서울에서 왔다는 나의 이야기는, PD가 원하던 큰 그림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였다. 어쩌면 그 얘기를 해버렸다면 나는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직원의 마지막 근무날에 그녀송별식 겸 나의 환영회가 있었다. 자신보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나를 보곤 자신과 같은 조건에서 근무시간만 줄어든 걸로 오해한 모양인지 날을 세웠다. 하지만 자신이 받던 페이의 절반을 받고 일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자 이내 안도하더니, 오히려 나에게 왜 이런 조건에서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은 힘든 곳이니 이런 식으로 나의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방문객이 많아져서 제 때에 퇴근이 힘들어졌고 근무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심지어 나는 월차도 수당도 없었고 휴가도 없는 4개월짜리 단기 계약이라, 두 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도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점장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이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였지만 언젠가는, 힘들었던 날에 버텨준 나의 노고를 인정해 줄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점장 역시 주 5일 근무를 꿈꾸고 있었다. 가끔은 사무실에 앉아서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험담을 하기도 하면서, 같은 적을 둔 처지에 서로 의지하며 나름 잘 지내고 있었다.

3주 정도 지났을 때였다. 누군가 면접을 보러 왔다. 방문객이 많아지긴 했지만 지금은 여유를 되찾았으니 둘이서도 가능한 상태인데 뜬금없이 새로운 직원이라니 의아했다. 나름 점장의 큰 그림으로 인해 충원된 인력이었다. 일손이 늘어서 좋아하는 점장과 달리 나는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하여 악조건 속에서도 일하고 있는 터라 조금은 의아했다. 게다가 정직원으로 왔단다.

너무 바빠서 지금 근무시간으로는 하루치 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근무시간을 늘려달라고 했던 나의 요청은 묵살당해서 초과 근무 수당은 포기하고 일했다. 어렵다던 이 상황에 새로운 직원이라니 '이건 뭐지?' 싶었다. 지금 나는 사. 배. 자에게 역차별을 받으며 그들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B 방송사가 촬영하기로 예정된 날에 C 방송사 같이 촬영하겠다고 하여 결국 그날 두 방송사 PD가 동시에 왔다. 섭외는커녕 예정되어 있던 봉사자도 오지 않았지만 대신 신입 직원의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았다. C 방송사의 PD는 넘치는 자신감에 막무가내식 스타일이었고, B 방송사의 PD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유도하는 스타일이었다. 점장과 신입의 인터뷰는 카메라에 담았지만 나는 화면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관계자가 와서 B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가면서 나를 소개했다. 서울에서 봉사하러 다니다가 도와주러 제주까지 와서 일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자, B 방송사의 PD가 반색을 하며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카메라가 돌지 않은 상황이라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그러자 뒷모습으로 인터뷰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싫다고 거절하니 그럼 목소리만이라도 방송에 내보내는 건 어떻겠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슨 범죄사건 재연 상황도 아닌데 뭘 굳이 그렇게까지... 단순히 인터뷰가 싫다기보다 지금 내 포지션이 애매한 상황이라 나설 수가 없을 뿐이었다.

어쨌든 이날은 모두가 원하는 그림으로, 해피엔딩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남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일하싶었을 뿐이다. 주변에서는 멀리까지 가서 뭐 하러 그 고생을 하고 있느냐며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내뱉는 하소연이라도 그냥 들어주면 좋을 텐데, 그들은 그만 두면 되지 않느냐면서 오히려 반문했다. 그만두면 나는 이제 저 바다, 벼랑 끝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버티고 있는 중이란 걸 그들은 모른다. 누구라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해 주면 작은 힘이라도 쥐어짜 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매일매일이 온통 적들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알지 못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이 일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유리로 된 방 안에 갇힌 느낌이다.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게 들이마시는 공기도 그들과는 달랐다. 나는 또다시 세상과의 차별 속에서 힘겹게 싸워야 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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