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앞 '제주버스터미널' 버스정류장에 나가서 '제주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아서 같은 정류장에 내리면 되는 그 간단한 일조차 며칠을 고민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아니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기도 했지만 쉬는 날이었던 삼일절에 맞추어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날에 두 가지 일을 진행한다는 건 나에겐 다소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한달살이를 끝내고 비즈니스호텔로 옮기기로 했다. 경제적인 면에서 선택한 게스트하우스는 나름 유용한 면은 있었지만 투숙객들의늦은 체크인과 이른 체크아웃으로 인해 수시로 잠에서깨곤 했다. 매너 없는 투숙객이 있을 때는 밤새도록고통받아야 했다. 여러 사람이 머무는 곳인 만큼 평소에도잠을설치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숙면을 위해 싱글룸으로 옮기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편의성을 포기하니 합리적인 가격에 비즈니스호텔 싱글룸을 구할 수가 있었다.
호텔에는 10시에 체크인을 하기로 했으니 이사 후, 상황을 보고 시티투어를 해보기로 생각했지만 하루 전날, 호텔로부터 14시~15시 체크인을 통보받았다. 아무래도 짐을 정리하고 나면 저녁이 될 텐데 늦은 시간에 굳이 나가고 싶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게스트하우스 체크아웃 시간인 11시 이후부터 비즈니스호텔 체크인 시간인 15시까지 할 일이 없었다. 게다가 비소식이 있으니 어딜 갈 수도 없었다. 차라리 9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시티투어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제주도에 온 지 한 달 만에 집과 일터를 벗어나서 시티 투어를 떠났다.
9시 39분 제주 버스 터미널 정류장에서 도심코스 시티투어 버스에 올랐다.1일 프리패스 블루띠를 손목에 둘러주었다. 2층은 실내와 실외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라 실내로 들어갔다. 맨 앞 좌석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인해 시야가 뻥 뚫려있었다. 한 시간 반동안 2층 버스를 타고 구제주와 신제주를 거쳐 11시 다시 제주국제공항으로 갔다. 내린 정류장에서 바로 해안코스 버스로 환승했다.어영공원, 도두봉, 이호 목마등대를 거쳐 다시 제주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도심코스 버스를 타고 또다시 한 바퀴 더 돌았는데 오후가 되자 길이 막히면서 15분 정도 지연 도착했다.
정류장에 내려서관광지를 돌아보고 해안코스는 1시간, 도심코스는 1시간 반 후에 같은 자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날의 목표는 버스에서의 시티 투어였으므로 하차는 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인지 나처럼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해안코스에는 이호 목마등대에서 10분 정차했고 사진 찍을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솔직히버스 2층에서 관광 명소를 내다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저 부근을 지나는 수준이었다.
날씨라도 맑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카페에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