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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2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61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그날은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가끔 내린다던 비가 하루종일 내리던 금요일이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있었을 뿐 여느 때와 같이 퇴근을 했다. 평소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에코백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있어서 조금 번거로웠을 뿐이다.

그날도 제주시청 방향으로 가기 위해 중앙로에 들어섰다. 첫 번째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이었지만 제주의 횡단보도 신호가 유난히 짧아서, 다 건너기 전에 빨간불로 바뀌는 일이 잦았다. 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제 때에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나마 운전자들이 재촉 없이 느긋하게 기다려주곤 했다. 어차피 건너지 못할 것이 뻔한 데다 비까지 오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지나쳤다.

경사가 심해서 눈이라도 오는 날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마다 힘겹게 오르던 그 길을, 조심스레 내려오고 있었다. 구 세무서로도 불리는 4ㆍ3 트라우마 센터를 지나서 경사가 조금 더 심해지는 구간에 들어섰을 때였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빗길에 왼쪽 발을 앞으로 쭉 뻗은 채 그대로 미끄러졌다. 경사가 심해 왼쪽 다리는 가속도가 붙었지만 오른쪽 다리는 무릎이 접힌 상태라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무게중심이 비탈길 따라 앞으로 쏠리면서 내 몸이 무릎을 누르고 있었다. 내 체중과 가방 무게가 합쳐져 그대로 오른쪽 무릎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얼굴이 거의 무릎 부근에 다다른 순간, 오른쪽 무릎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상황을 바로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되었다. 피부 속에서 무언가 쩍 하고 반으로 갈라지더니 또 다른 뭉툭한 무언가가 불룩하고 튀어나왔다. 마치 트랜스포머가 변신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빗길에 나동그라져 있는 상황이 창피해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통증도 심했고 무엇보다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공포가 밀려왔다. 이곳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보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그때 누가 내 팔을 잡아서 부축해 주었다. 누군지도 모를 그녀에게 의지하며 일어나려고 해 보았지만 너무 아파서 그만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붙잡더니 기어이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런데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으니 조금 전처럼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고맙다며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또다시 통증이 밀려왔고 그만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녀가 안 되겠다며 자기 집이 '요 아래'라고 했다. 나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는 말 같았지만 의아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낯선 그녀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고 당장 움직일 수도 없으니 길에서 조금만 쉬었다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는 비가 닿지 않는 계단 위에 가방을 올려다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비를 피해 얼른 올라가라고 했다. 하지만 올라갈 수가 없었다. 신경 쓸까 봐 연신 괜찮다고 했지만, 안 괜찮아 보인다며 계속 옆에 서있었다.

가라고 하니 가는 것 같았지만 내가 계단을 아예 오르지도 못하고 비를 계속 맞으며 서 있으니까 이내 되돌아왔다. 비라도 피하라면서 나를 어느 건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일단 비는 피할 수 있었으니 계단에 앉아있다가 괜찮아지면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한국인이 아니라서 어디다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저기가 자기 집이라며 지하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녀의 호의는 거기까지만 받기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들여보냈다. 그녀 역시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고 온 상태였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데 그제야 무릎이 눈에 들어왔다. 내 무릎 주변으로 무언가 불룩 솟아있고 무릎 한가운데는 있어야 할 게 없는 것처럼 쑥 꺼져있었다. 15시 50분이었다. 퇴근한 지 10여 분 만에 벌어진 이 상황이 도대체 믿기지 않았다. 내 무릎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버리는 게 더 무서워서, 아닐 거라며 애써 외면하고 계단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이대로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그녀가 다시 나와서 걱정할까 봐 서둘러 떠나야 했다.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나왔다. 우산을 지팡이 삼아 무릎을 펴고 다리를 바닥에 붙이고 끌면서 걸으니 또 걸을만했다.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지 않고, 짚고 가는 내가 이상했는지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 그래서 다시 우산을 쓰고 오른쪽 무릎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내 의지와 달리 무릎이 꺾였고 난 그대로 고꾸라졌다. 다친 무릎을 다시 땅에 박았으니 그때부터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혼자서는 절대 일어설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나를 부축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들 외면하고 지나쳐 갔다.

그제야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119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응급실 비용을 생각하면 응급 상황만큼은 아니길 빌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응급실에 가야 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를 맞으며 계속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피해 다녔다.

시간이 흐르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자, 이제는 이 모든 걸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었다. 두 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붙들고 억지로 폈다. 왼쪽 다리와 두 팔만으로 버티며 간신히 일어섰다. 이미 옷은 다 젖었으니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걷기로 했다. 남들 시선 따위는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나는 이 번화가 한가운데서 평생 동안 받을 시선을 다 받은 상태였다. 바로 걸으면 무릎이 꺾이니 오른쪽 무릎을 펴고 옆으로 질질 끌면서 걸었는데 그래도 왠지 불편했다. 아예 몸을 돌려 왼쪽 다리를 게걸음으로 옆으로 걸었고 오른쪽 다리는 발뒤꿈치 쪽으로 질질 끌었다. 이렇게 하자 무릎이 꺾이지 않아 제법 걸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순간에도 119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호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릎을 굽힐 수 없으니 버스는 탈 수도 없었고, 속옷까지 비에 흠뻑 젖은 마당에 택시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호텔까지 고작 1km 남짓 거리인데 태워 줄 리도 없었다. 택시를 타본 지가 몇십 년 전이니 그 흔한 택시 호출 어플이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호텔이 저 멀리 보였다.

1.2km 거리니 걸을 만하다고 생각했으니 그렇게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땅을 보며 걷고 있었다. 한참 걸은 듯싶었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고작 눈앞이었다.

한 청년이 다가와서 어디까지 가는지 물었다. 아마도 가방을 들어주거나 부축이라도 해주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도움이 필요 없었다. 몰골이 엉망이어서 괜찮다고 했더니 그러면 가는 곳까지 우산이라도 씌워주겠다고 했다. 거듭된 호의에 진심인가 싶어 순간 고민했지만 거듭 사양했다. 제주시청 부근까지 가방을 들어달라고 했으면 조금 수월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호의를 무작정 거절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내 후회했다.

어느 순간, 우산을 잡고 있는 손에서 무언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빗물인 줄 알았는데 우산 안에 시뻘건 물이 고여있었다. 손가락 세 개에 살점이 뜯겨나가서 움푹 파인 상처가 있었고 거기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걸어온 거리가 꽤 되었으니 한동안 피를 흘리며 걸어온 셈이다. 온 신경이 무릎에 가 있어서 아픈 줄도 몰랐다. 살필 겨를이 없으니 티슈로 감아쥐고 다시 우산을 꼭 잡았다.

평소라면 20분 걸렸을 거리를 결국 2시간이 걸렸다. 오는 내내 사람들이 흘깃거렸다.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쓰지 않고,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고 가는 게 이상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원망스러웠다.

첫 번째 정형외과를 만났을 때 잠시 고민했지만 호텔에서 멀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쳤다. 두 번째 정형외과도 그랬다. 다행히 호텔 바로 옆에도 정형외과가 있었다. 자주 볼 수 없는 정형외과가 같은 길에 이렇게나 많이 있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가방이라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병원에 가기로 했다.

로비에서 호텔 직원을 만났지만 여전히 무관심이다. 나도 오늘은 밝게 인사할 기분이 아니어서 조용히 지나쳤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객실 앞까지 이어진 복도 또한 길게만 느껴졌다. 청바지는 물을 머금어 묵직해졌고 천 가방과 오리털 경량 패딩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 병원 문이 닫힐까 봐 가방만 놔두고 바로 내려왔는데 그제야 호텔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아하니 무릎을 다친 것 같은데 빨리 병원에 가보란다. 자신도 작년에 인대가 파열되어 수술받고 엄청 고생했단다. 18시가 다가오고 있어서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오는 길에 봐두었던 강 정형외과로 갔다. 호텔에서 2분 거리였지만 이번에는 또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역시나 비를 맞으며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걷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또 쳐다본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대뜸 내 팔을 잡고 부축해 준다. 괜찮다고 말해보았지만 안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부축을 받으니 앞으로 걷게 되었고 난 또다시 무릎이 꺾이면서 휘청거렸다. 그러자 보라며, 아주머니는 자기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했다. 비를 맞아서 옷은 다 젖었는데 이 지경이 되어서 혼자 병원에 가고 있냐며 가족은 어디 있는지 물었다. 가족이 멀리 있다니까 병원 앞까지 기어코 데려다주고 가셨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 접수하는데 손에 쥐고 있던 티슈는 피에 젖었고 얼굴은 비와 눈물로 엉망이고 신발도 다 젖은 상태라 화장지 좀 달라고 하니 직원은 쌀쌀맞게도 지금 마감해야 하니 진료부터 받으란다. 의사에게 퇴근길에 있었던 사건을 대략 설명하니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고 오란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그제야 간호사가 화장지를 가져다주었다. 얼굴과 손을 닦고 발을 막 닦으려는데 촬영 준비가 다 되었다며 들어오란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기 위해 베드 위에 올라가려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데 또다시 통증이 몰려왔다. 두 팔로 들어 올리고 보니 발에는 온갖 이물질이 다 묻어있어서 지저분했다.

슬개골이 두 조각이 나있었고 조각난 뼈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현재로선 수술밖에 답이 없단다. 전원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서 빨리 수술을 받으란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의 수는 캐스트/깁스였다. 하지만 수술이란 말에 이미 멘털이 나가서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러자 직원과 간호사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벽을 짚고 서 있는 나에게 대뜸 부목을 다리에 대고 목발을 손에 쥐어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 걷기 편할 거라던 부목은 덜렁거렸고, 손에 힘이 없어 목발을 놓치자 다시 무릎이 꺾이면서 휘청거렸다. 더 단단히 고정시켜 주었지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목발은 익숙하지 않으니 들고 걸어야 했다. 큰 병원이 어디 있냐고 묻는데 다들 퇴근 준비로 바쁜지 건성으로 대답한다.

제주대학교병원은 멀어서 근처에 있는 한국병원으로 가라고 했지만 오늘은 진료가 끝났을 거라며 내일 가보든가 힘들면 응급실로 가란다. 그러면서 78,100원 결제하란다. 사람이 이 지경이 되어서 병원에 왔는데 오늘밤은 버티라면서 약도 주지 않고 쓸데없는 부목에 목발만 강매한 셈이다. 병원에 괜히 갔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은 더 지옥이었다. 부목이 있으니 다리를 돌릴 수가 없어서 통증은 심했고 목발도 익숙지 않으니 고스란히 짐이 되어 더 힘들게 호텔로 돌아왔다. 나를 본 직원이 다시 말을 건넨다. 자신도 주말에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병원에서도 딱히 해주는 게 없었단다. 월요일까지 기다렸다가 수술받았다는 말에 일단 방으로 올라왔다.

월요일에 가더라도 바로 수술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통증에 괴로워하고 있는 나조차도 고민만 하고 있었다. 일단 젖은 옷을 벗고 더운물에 샤워부터 했다. 옷을 갈아입자 일단은 살 것 같았다. 감기에 안 걸리고 지금까지 버틴 게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난방을 켰다. 비가 오는 날씨라 빨래를 해도 잘 마르지 않겠지만 난방을 켰으니 조금이라도 마르지 않을까 싶어, 그 와중에 급한 빨래까지 했다. 그리곤 침대에 간신히 누웠다.

일단 일하는 곳에 연락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당장 내일은 출근을 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내일뿐일까 싶었다.

한 달 일하고 번 돈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쓰게 생겼다. 앞으로 몇 달을 더 벌어야 이번 수술비와 입원비 그리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미치자, 그냥 버텨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침대에 눕자 통증이 시작되었다. 청바지에서 벗어난 다리는 한없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무릎을 굽힐 수가 없어서 완전히 펴고 누운 상태였지만 마치 무릎을 굽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토요일에도 진료가 있었다. 진료받다가 그대로 입원하게 될 수도 있어서 입원 시 필요한 물품 목록을 메모하고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단체장에게 전화가 왔다. 당장 응급실로 가란다. 그리고 가까운 병원이 아닌 정형외과 잘하는,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가란다. 내가 그런 병원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알아봐 주겠단다. 그럼에도 내가 망설이자 혹시 병원비 때문에 병원에 안 가고 버티고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미련하다며 꾸짖었다. 하지만 그들도 나의 병원비를 해결해 줄 능력은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미 통증은 시작되었고 심지어 열이 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장애라도 생기면 어쩔 거냐는 말에 겁을 먹었다. 119를 부르기로 결심했다. 입원을 하더라도 짐을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메모해 둔 물품을 챙겼다. 하나뿐인 에코백은 비에 젖어서 창가에 널어두었지만 짐을 챙겨갈 유일한 가방이었다. 짐을 지퍼백에 담아서 젖은 에코백에 넣었다. 잠옷인 원피스 차림으로 가야 했다. 신지 못할 것 같아서 슬리퍼도 가방에 챙겨 넣었다. 현관문에 목발을 끼워서 혹시라도 잠기지 않도록 빼꼼 열어두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부르지 못한 119 구급차를 드디어 불렀다. 전원서까지 받아 들고 왔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응급실에 가기로 마음먹자 열이 심해지고 있었다. 정신도 몽롱해졌다.

여자 구급대원에게 전화가 왔고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스스로 집에 돌아올 정도였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 일단 올라와서 확인부터 해보겠단다.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고 구급차의 위치 조회도 되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은 한참 후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보곤, 사고 경위에 대해서 다시 물었고 나는 퇴근하면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다시 설명했다. 느긋하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물어보더니 한참 후에 이불을 걷어내고 내 무릎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조금 전의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모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무릎이 이 지경인데 집으로 왔냐며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게 정말 가능한지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베드를 펼칠 수 없어서 고생했다. 베드는 접어야 해서 앉은 채로 옮겨졌는데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어서 아슬하게 간신히 실렸다. 1층 로비에 도착해서 이동 베드를 펼쳤고 나는 베드에 누운 채 호텔을 나섰다. 흩뿌리는 정도의 비가 살짝 내리고 있는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제주의 밤하늘을 누워서 보는 상상은 했었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드디어 구급차로 옮겨졌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이송되는 도중에 기본적인 체크를 했는데 열이 38도가 넘어서고 있었다.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아직 코로나 시국이었던지라 38도가 넘었으니 경계 대상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가고 있는 병원 응급실에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이송을 허가받았다.

코로나 확진받은 적도 없고, 백신을 맞은 전력이 없었던 나는 응급실 밖에서 한참을 대기하다가 응급실 베드를 배정받았지만 코로나일 수도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무릎 부상에서 오는 발열 같았지만 어쨌든 병원 규정을 따라야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반깁스 하자 부목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보호자가 없으면 일반병실에 갈 수 없다며 응급실 간호사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으로 알아봐 주겠단다. 비용을 걱정하니 보호자 또는 간병인이 없으면 일반 병실 입원은 어려운데 당장 보호자가 없으니 간병인을 구해야 하는데 간병인 비용보다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나을 거란다. 한번 선택하면 도중에는 변경이 불가능하다지만 신청했다.

응급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약을 먹고 실려와서 횡설수설하는 사람,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자신의 팔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 기침을 하다 구토까지 하는 사람 등으로 가득 찼다. 반 깁스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통증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나는 무릎의 통증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의료진들이 먼저 다가오기 전까지는 얌전히 누워서 기다리기로 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슬리퍼를 넣어둔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119 이동 베드에 실려있었는데 구급대원이 서두르다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가버린 모양이었다. 신발이 없어서 화장실을 가지 못했는데 솔직히 혼자서는 갈 수도 없었다. 간호사가 이 상태로는 화장실에 갈 수 없을 거라며 좌변기를 가져다주겠다고 했지만 선뜻 답하지 못했다. 멀쩡한 정신으로 응급실 한가운데서, 커튼을 쳤다고는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좌변기를 사용한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방법이 없어서 결국엔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구급대가 다시 와서 가방을 갖다주고 갔다. 내가 챙겼어야 했는데 두 번씩이나 번거롭게 해서 죄송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4시간 만에 CT 찍고 병실로 올라갔다. 원하는 베드를 선택할 수 있어서 창가로 배정받았다. 5인실이었지만 나 혼자였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이때가 새벽 1시 30분이었다.




슬개골 골절(Patella Fracture)
동의어 : 슬개뼈 골절, 슬관절 골절, 접시뼈 골절

슬개골 골절은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무릎 관절을 보호하는 슬개골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 상태를 의미한다.

슬개골 골절의 발생률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증가로 인해 높아지고 있다. 슬개골 골절의 주요 원인은 교통사고, 추락, 점프, 달리기 등.

슬개골 골절은 심한 통증과 압통을 동반한다. 슬개골이 골절된 사람은 일어서기 힘들다. 골절 부위를 손으로 누르면 그 부위가 함몰된다. 골절된 직후부터 부종이 나타난다.

슬개골 골절은 진찰과 소견을 통해 진단할 수 있다. 방사선 촬영도 시행한다. 진단이 불확실하거나 슬관절에 통증이 있다면 관절경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전위가 없거나 분쇄 골절이 아닌 슬개골 골절에는 석고 고정 등과 같은 보존적 치료를 시행하지만 슬개골의 골절이 심하다면 수술적 방법을 시행한다. 관절면을 정확히 맞춘 후 이를 견고하게 고정하여 무릎의 관절 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슬개골 골절의 합병증으로는 외상성 관절염 및 슬관절 강직 등이 있다.

슬개골 골절이 발생했을 때 해야 할 응급처치.
① 너비가 10cm 이상인 부목을 허벅지에서 발뒤꿈치까지 닿게 하여 헝겊으로 잘 싼다.
② 부목을 곧게 편 다리의 밑에 둔다.
③ 무릎과 발꿈치에는 고임을 댄다.
④ 붕대 하나는 슬개골 바로 위에, 또 하나는 바로 아래에 부목과 함께 돌려 묶는다.
⑤ 무릎이 부어오르기 쉬우므로, 붕대를 둘러 싸매지 말고 여유 있게 묶는다.
⑥ 부목이 없다면 베개, 담요를 대신 사용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병원에 있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어렵게 얻은 기회를 다시 잃게 될까 봐, 수술이 끝나면 목발을 짚고서라도 다시 출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여전히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그 또한 나의 희망사항일 뿐 현실적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그 긴 거리를 걸어오면서 나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병원에 데려다준 이름 모를 아주머니도 물론 고마웠지만, 비를 맞으면서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끝까지 애를 쓴 이름 모를 외국인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갈 생각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지만 따뜻한 밥 한 끼는 꼭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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