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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14. 2024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84

우리가 악마를 우습게 여긴다면 악마는 그때 가장 기뻐한다고.

내가 무얼 잘못해서 이런 일을 겪고 있을까?
ㆍㆍㆍ
그냥 내가 힘이 없어서라고 한다.




추운 것보다 더운 것을 좋아했던 나는 여름에 활동적이었다. 의욕이 넘쳐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로 여름에 여행을 다녔다.

두 번째 베트남에 갔을 때였다. 뭉게구름이 하얗게 빛나는 새파란 하늘은 내가 참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그런 멋진 풍경 속에서 기분 좋게 숙소를 나섰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하지만 열기가 너무도 뜨거웠다. 얼마가지 못해 난 그렇게 길 한가운데서 멍해졌다.

뜨거운 햇볕 속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몇 시간씩이나 잘 걸었던 나였는데, 등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가던 길을 멈추고 숙소로 돌아왔다.

날씨를 고려해서 한번 더 갔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덥고 힘들었던 곳이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변명하며 추운 나라로 눈길을 돌렸다. 그렇게 가을에 떠난 러시아 여행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전쟁 중이다.

결국 물가며 편의성을 따지면 모든 것이 나에게 적당했던 베트남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 뜨거운 날씨만 피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 한 겨울에 같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었지만 짐을 줄이기 위해 샌들을 신고 공항으로 향했다.

우기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한낮에도 걷기에 좋았다. 네 번째 방문이 되어서야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을 마냥 돌아다녔다. 그러고 남은 대부분의 시간은 바닷가에서 보내려고 했지만 차가운 바다 바람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너무 추웠다. 장기간의 여행이었으니 간단한 빨래를 해야 했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으니 빨래가 마르지 않아서 그 또한 불편했다.

단점이 있으면 새로운 다른 곳으로 시도해 보기 마련이지만 나는 큰 문제가 없으면 늘 같은 곳을 선택하곤 했다. 그 단점만 보완하면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완벽한 여행만을 꿈꾸고 있었다.

예전의 단점을 보완하면 매번 같은 곳으로 갔으니 당연히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떤 식이로든 힘든 과정은 있었다. 늘 무언가가 따라다녔다.




지난 일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점이 오겠구나 싶었다. 나도 나이를 먹고 있었다.

칠순이 넘은 이모는 여전히 일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일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며 일을 그만 두면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그럼 언제쯤 일을 그만둘 거냐고 하니 벌 수 있을 때까지 벌겠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그때가 언제일까?

내가 조기은퇴를 처음 생각했을 때, 과연 나는 그만둘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행히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흔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새로운 삶이었지만 희망이 있었고 용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봉사활동의 기회가 찾아왔다. 내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그 일에 몰두했지만 결국 그 기회는 사라졌다. 다시 내 길로 돌아서려고 했지만 돌아서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나름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얼마가지 못했다. 악몽 같은 여행에서 살아서 돌아왔고, 간신히 추스르고 다시 일어섰을 때는 코로나가 발생했다.

내내 후회했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했었다며 후회했고 코로나가 끝나면 무조건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3년간의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그때 기회가 왔다. 난 다시 여행의 꿈을 접었다.

여행지에서 빈둥거리며 일상을 즐기는 것이 어쩌면 마음에 걸리기도 했으니,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일을 돕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 또 찾아왔다. 내 무릎은 부러졌고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여권 만료를 앞두고 다시 용기를 냈다. 후회하더라도 가기로 했다. 이제는 쉽게 흔들리지 말자며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티켓팅만 남겨두고 일정을 다시 체크하고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 어느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대해 듣게 되었다.

장거리 여행은 싫다던 어머니가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에는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에겐 다소 무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 더 음식을 가리고 한식을 고집하시는 어머니가 그곳에서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엔 내가 솔깃해졌다.

그렇게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내가 찜해두었던 항공권은 매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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