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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4. 2024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86

사람은 모든 일을 다 마음에 담아둘 수는 없다.

근로장려금의 역습




"우리 5:5로 나누자!"
"누가 5야?"

"그럼 우리 5:5로 나누자!"
"싫어, 어차피 내가 5잖아?"

그 말에 빵 터졌다. 정말 오랜만에 웃었다. 그런 내 모습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꼈지만, 정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도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대부분 팔아서 모두 현금화하고 있었다. 중고마켓을 통해 거래하던 몇천 원, 몇만 원짜리 거래가 수백 건으로 이어지자, 어느덧 백만 원을 넘어서고 천만 원 가까이 되었다. 정말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돈이 생겼으니 나를 위해 쓰면 좋을 텐데, 보름간 다녀온 베트남 여행에 50만 원도 채 쓰지 않았고 나머지는 노후를 위해 고스란히 예금을 했다. 그랬더니 일어난 일은, 정말 어이없었다.

언젠가 콜센터가 궁금해서 석 달간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도 소득이 생겼고, 그렇게 받은 300만 원으로 그다음 해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100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국세청에서 우편물이 와 있었다. 의례적인 우편물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서 돌아온 여행이었기에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행 후유증은 정말 길었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해가 바뀔 무렵, 문서들을 정리하면서 그 우편물을 열어 보게 되었다. 그것은 근로장려금 신청 안내문이었다.


●근로장려금 제도 (2024년도 기준)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 사업자(전문직 제외) 가구에 대하여 가구원 구성과 근로소득, 사업소득 또는 종교인소득에 따라 산정된 근로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근로를 장려하고 실질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 제도.
근로장려금은 가구원 구성에 따라 정한 부부합산 총 급여액 등을 기준으로 지급액을 산정.

단독가구의 총소득 기준 금액 : 2,200만 원 미만
최대지급액 : 165만 원

홑벌이가구의 총소득 기준 금액 : 3,200만 원 미만
최대지급액 : 285만 원

맞벌이가구의 총소득 기준 금액 : 3,800만 원 미만
최대지급액 : 330만 원


개인 소득이 평균 소득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근로장려금을 준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신청기간은 5월까지였다. 그때는 한국에 없었으니 미리 알았다고 한들 신청할 수 없었다. 어차피 기회가 없었던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선뜻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 그 당시엔 최대지급액이 백만 원이었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 우편물을 읽고 또 읽었다. 뒤늦게 신청할 경우, 일부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기회도 이미 하루가 지난 후였다.

그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었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그랬다. 아까웠다. 매사 꼼꼼하던 내가 여행의 충격으로 인해 손을 놓고 있던 였지만 안내문을 읽어보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어쨌든 그런 지원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1원이라도 소득이 있어야 지원받을 수 있었으니, 나 같은 백수에겐 흔한 기회는 아니었다.

작년, 제주도에서 일했던 기간 중에 봉사활동 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한 달간은 시급을 받고 일했으니 드디어 나에게도 소득이 생겼다. 이번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5월, 드디어 근로장려금 안내문이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신청할 수 없었다. 저축예금이 으면 지급되지 않는 조항 때문이었다.

입주자 대표를 하면서 빌라 공금을 내 명의로 가지고 있었고, 가족 예금도 내가 관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팔아서 현금화하고 있었으니 올해는 내 인생 최고의 금액을 예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내년이면 몰라도 올해는 정말 불가능했다.

포기하고 신청하지 않자, 메시지가 왔다. 그래도 신청하지 않자 직원에게 전화까지 왔다. 예전에는 우편물 한 장으로 끝났는데 올해는 끈질기게 연락이 왔다.

소득이 적은 사람을 위한 지원금이 아니라, 돈을 다 써버린 사람들을 위한 지원금인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일 년 동안 2,200만 원을 받았던 누군가는 아껴서 저축하고 누군가는 다 써버렸다면, 누구를 더 격려해 주어야 하는 걸까? 아끼고 모아서 저축한 사람을 위한 지원금은 아니었다. 근로장려금 신청을 재촉하는 직원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것만 같아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돈이 없다는 기준은 재산이었으니 한 달에 몆백을 벌어도 다 써버리면 돈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치 돈을 모으면 안 되는 나라인 것 같았다. 나중에는 국민연금도 이런 잣대로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쓰지 못하고 모으기만 했던 나 자신을 책망하며,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쓰면서 살아보자며 다짐을 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결코 사지 않았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것은 사 먹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 샀던 적이 없었다. 더위에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아도 길가 자판기에서 시원한 콜라를 사본 적도 없었다.

돈을 벌지 않으니 그만큼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난 거의 십 년 만에 달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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