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ego del Camino→Granja de Moreruela
Domingo, 6 de Abril
5°~19°
옷을 갈아입으러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떨어져서 박살 난 내 폰을 보았다. 앞뒤로 깨진 폰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갔다.
눈을 뜨니 5시 반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먹은 건 없지만 장을 비웠다. 사람이 사는 동네인가 싶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였다.
계속 잠을 설치다가 시계를 보니 8시다.
양치하고 짐을 정리했다. 라디에이터는 조절이 가능한 거였는데 온도가 낮아서 추웠던 거였다. 항상 뒤늦게 깨닫게 된다.
8시 반 알베르게를 나섰다. 그때 뒤에서 누가 부른다. 오스삐딸레로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섰다.
뒷길로도 차도로 나가는 길이 있겠거니 싶어 그냥 걸었다. 하지만 마을 끝 성당에 다다랐지만 길이 막혔다.
되돌아오면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돌아다녔지만 도로로 나가는 길은 없었다. 마을의 바르도 찾았고, 알베르게 찾아가는 화살표도 찾았지만 계속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오스삐딸레로가 마을 입구로 들어왔다는 건 도로로 나가는 길이 입구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한참만에 마을을 벗어났다.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한 순례자가 배낭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 알베르게는 하나뿐이니 폰타니야스에서 자고 출발한 모양이다.
도로를 따라 걸었는데 마을 끝부분에 다다르니 불안해졌다. 화살표가 보여서, 까미노 루트를 따라 걷기로 했다.
고양이 서너 마리가 있는 어느 길목에서, 순례자가 따라왔고 이내 앞질러 갔다. 올라 인사하는데 한국 청년이다. 하지만 말없이 지나가버렸다.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가는 거면, 그란하는 그냥 지나칠 테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순례자가 앞서 지나가니, 어느 집 마당에 있던 마을 주민이 부엔 까미노! 하고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선 순례자는 답하지 않아, 내가 대신 답했다.
"그라시아스!"
그러고 쳐다보니 알베르게 오스삐딸레로였다. 내가 마을을 뱅뱅 도는 동안, 그는 알베르게를 정리하고 집에 온 거였다.
인사하고 지나치다가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 순간, 제주도에서 넘어질 때의 그 순간이 떠올랐고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때 도로로 나가는 마지막 통로가 보였다. 아까 그대로 진행했어도 이 길에서 만나는 거였다. 큰 고속도로가 아닌 것 같아서 그대로 도로로 빠져나갔다.
Guardias Civil을 만날까 걱정하며 걸었다. 저만치 까미노 루트가 보였고, 두 번째 순례자가 보였다.
3km 거리 자날 무렵, 10시였다. 벌써 힘들다. 걷고 또 걸었다.
내일은 걸을 수 있을까? 이 마을에서 하루 더 버티다가 버스를 탈까? 버스 타는 방법이라도 물어볼 것을 그랬다.
리에고에서 버티다가 그란하에서 버스 탔어도 되었겠다.
10시 50분 그란하 데 모레루에라 마을 간판이 보였다. 하지만 11시가 넘어서야 마을에 들어섰다.
바르를 먼저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가다 보니 알베르게 앞이다. 문이 닫혀있어서 돌아섰다.
지도를 검색하니 체크인하는 Tele Club 바르는 길 건너편에 있었다. 다행히 바로 보이는 거리였다.
건물로 들어서니 복도가 나왔다. 원래 알베르게였던 곳을 바르로 쓰고 있는 걸까? 지도에는 알베르게라고 나왔다.
복도 끝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르다. 동네주민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12시 오픈이란다. 와이파이 비번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바르 안에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기다렸다.
눈치가 보여서 밖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안에 있어야 빨리 체크인시켜 줄 것 같아서 버텼다. 그리고 밖은 추웠다.
어느덧 시간이 되었다. 체크인을 하니 문이 열려있단다. 다시 알베르게로 가니 이제 문이 보였다.
절반으로 나누어진 윗문을 열고 아랫문 잠금을 해제하는 육중한 문이다.
2층 침대 4개 남녀 샤워부스 딸린 화장실, 위층에는 다이닝 공간과 두 번째 방이 있었다. 냉장고에 미니 맥주 2병이 있고 테이블에는 호두가 남아있었다.
안쪽 침대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구석 침대에 짐을 풀었다.
라디에이터가 가까이 있지만 벽에 콘센트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와이파이가 없다. 바르에서 쓰고 올 것을 그랬다.
병뚜껑을 간신히 따서 맥주를 생수병에 담았다.
그리고 샤워하고 왔다. 인기척에 내다보니 한 순례자가 배낭을 두고 체크인하러 간 모양이다.
얼마 후에 방에 들어오더니 킁킁거린다. 다른 방은 없냐고 해서 위층에도 있다고 했다. 갔다 오더니 다시 노골적으로 킁킁거리다가 배낭을 들고 올라갔다. 도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걸까?
위층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인터넷이 안되니 방법이 없다. 버스가 있다면 여기서 버티려고 했는데 아쉽다. 국도를 따라가면 16km 버틸 수 있을까?
서양인 순례자가 들어와서 한참 동안 인사하더니, 위층에 방이 있다고 하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15시 밖으로 나갔다.
맞은편에 정류장처럼 보였지만 버스는 없고 택시 영업 광고지만 붙어있었다.
바르로 갔다. 분주한 듯해서 기다렸다가 비번을 물었다. 체크인했던 여직원에게 물었는데 남자에게 얘기한다. 남자가 종이를 내미는데 글자가 헷갈렸다. 그래서 여직원에게 종이를 내밀자 그녀도 헷갈려했다.
밖에서 인터넷 접속하니 엄마에게 보이스톡이 들어와 있었다. 내용이 없으니 더 불안했다.
앙헬라에게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버스 질문을 했지만 답이 없어서 조회해 보니 알사버스 16:53~18:00 바로 앞에서 탑승한다고 뜬다.
정류장으로 보이는 그곳일 확률이 높다. 티켓을 끊으면 확실히 정차해 줄까?
협회에 메일을 보냈다. 시간이 되면 나가서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일요일은 23:23~00:30
일단 알람을 설정해 두었지만 알베르게로 오면서 동네주민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먼저 인사해서 물어보니 잘 모른단다. 그사이 주민은 사라졌다.
저녁이 되니 순례자가 여럿 들어온다. 하지만 다들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또 한 무리도 올라갔다.
17시 사프라에서 같이 병원에 갔던 한국인 청년이 나타났다. 오늘 40km 걸었단다. 아침에 한국인을 만났다고 하니 김유빈일 거란다.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 서양인 사이에서 유명해서 지신도 이름을 들어서 안단다. 19살이냐고 하니 그렇단다. 자신도 궁금해서 혹시 앞지를까 싶어 오늘 무리를 한 거란다.
소시지를 나누어 주어서 단백질 보충했다.
20시 다들 식사하러 갔다.
2층 12인실은 가득 찼다. 주방으로 쓰는 다용도실이 바로 옆이라 편해서라고 굳이 2층을 쓴다고 했다.
원래 10인실 방이 2개인데 1층이 더 넓은데도 침대 하나를 2층으로 옮겼다. 2층은 12인실, 1층은 8인실.
다들 식사하고 돌아오면서 여자 순례자 두 명이 들어왔다. 그런데 방에 빨래를 널었다고 난리다. 난로가 밝다? 위험하다? 뭐라는 거지?
빨래를 가까이 두어서 위험하다고 해서 멀찍이 두는 것으로 종료했다.
23:23 알사버스는 오지 않았다. 늦을 수도 있겠지만 29분까지 기다리다가 들어왔다. 버스는 없는 걸까?
Riego del Camino→Granja de Moreruela 6.5km
-Riego del Camino
-Granja de Moreruela 6.5km
Albergue de Peregrinos de Granja de Moreruela 6.00€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