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34

Rabanal del Camino→Ponferrada

by 안녕
Day 32.
Saturday, June 27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뽄페라다까지 가는 것 같았다.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 뽄페라다까지 한 번에 가기 힘들다고 판단한 사람은 어제 폰세바돈까지 가서 오늘 일정을 줄였다. 오늘 가야 할 길은 거리도 문제지만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져 있어서 더 힘들 수도 있다기에 나는 오늘 중세의 분위기가 살아 숨 쉬는 몰리나세까까지만 가기로 계획했다.




인구가 50명밖에 되지 않는 작고 쾌적한 마을인 라바날 델 까미노는 무려 4개의 알베르게가 운영되고 있으며 마을의 출구는 흙으로 만들어진 까미노가 시작된다.

7시쯤 이미 모두 떠나고 조용해진 알베르게를 나서니 마을도 한적했다.

마을의 출구에서는 흙으로 만들어진 까미노가 시작되고 마을 출구에서 1km를 전진하면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오는데 폰세바돈까지는 언덕을 올라야 한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왠지 돌아가는 것 같아 원래 길로 들어서니 자잘한 돌이 있는 흙길이라 조금 불편했다. 걸으면서 지켜보니 길은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어서 차도를 따라 걸었다.

계곡을 오를수록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은 점차 사라지고 송전탑이 내려다 보이는 낭떠러지 길을 따라 걸었다. 항상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황량한 마을 폰세바돈에 도착하면 폐허의 집이 늘어선 길을 지나 너덜지대를 걸어야 한다.




Foncebadón (1,431M)은 가스뜨리요 데 로스 뽈바사레스를 나와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온다. 오래전부터 버려진 집으로 가득했던 이 마을은 순례자의 수가 증가하며 점점 회복하기 시작해서 몇몇 알베르게가 생겼다. 산속의 위치한 작은 마을이지만 중세 레온의 왕 라미로 2세가 10세기에 회의를 개최했었던 곳이었고, 수도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후 11세기에 수도원장이었던 가우셀모가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세웠고, 그의 이름을 따서 병원과 성당, 수도원의 이름을 바꾸었다. 분수와 종탑 이외에는 현재 남아있는 것은 없다.




산매자 나무와 금작화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면 어느덧 철 십자가상이 있는 평평한 지역에 다다르게 된다. 이 부근이 평평한 이유는 천 년간 수많은 순례자들이 돌멩이를 주워 십자가 주위에 쌓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 십자가 주위에는 돌멩이가 거의 없으므로 원하는 순례자는 자신의 소망을 담은 돌멩이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La Cruz de Ferro
폰세바돈을 지나는 언덕의 정상에 올라가면 가장 상징적인 기념물 중 하나인 철 십자가상이 나타난다. 십자가는 심플한 형태로 오래되어 녹이 잔뜩 슬어 있고 5m 정도 높이의 지주에 올라가 있다. 원래 이 언덕의 정상은 선사시대의 제단이 있었고 로마 시대에 길과 교차로의 신이자 죽음의 신인 메르쿠리우스를 모시는 사제들의 제단이 있었다. 로마 여행자들은 메르쿠리우스에게 자칼을 제물로 바쳤고 이 풍습은 갈리시아 인들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당시 그들이 까스띠야를 여행할 때도 자칼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그 후 가우셀모 수도원장이 이곳에 첫 번째 십자가를 세우면서 중세의 순례자들은 십자가에 경배하며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봉헌했다. 현대의 순례자들은 고향의 돌을 가져오곤 했던 옛날의 관습을 바꿔서 자신의 물건이나 사진, 쪽지, 기념물 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한 달이 가까운 시간 동안 까미노를 걸으면서 수많은 십자가상을 보아온 순례자에게 단순한 모양의 철 십자가상은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이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 쌓인 순례자들의 사연이 적힌 돌멩이들이 가득 쌓여 있다. 끝나지 않은 순례자의 소망들은 앞으로 세월이 지날수록 크게 쌓일 것이다.

라 끄루세 페로에서 부드러운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약 30분을 내려가면 폐허가 된 오래된 마을이 순례자를 맞아줄 것이다. 독특한 모양의 깃발과 표지판으로 순례자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만하린에 도착했다.




Manjarín (1,433M)에서 순례자를 반겨주는 것은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들이다. 이 길을 지나던 오스삐딸레로가 폐허가 된 집을 재건하여 순례자용 숙소로 만들었다. 이 숙소는 템플 기사단을 상징하는 장식물로 꾸며져 있다. 숙소 이외에 만하린은 황량한 폐허에 가깝다. 그래서 슬프게 보이는 십자가를 볼 수 있다. 만하린에서 나오는 길인 현재의 고속도로 아래에는 옛날의 까미노가 있는데 바위와 방어벽으로 덮여 있으며 일부만 발굴된 상태이다.




만하린은 중세의 순례자를 지켜주던 템플 기사단의 깃발로 장식된 사설 알베르게와 환상적인 풍경이 있는 마을이다. 좁고 불편한 알베르게지만 이곳의 소박한 종은 안개에서 헤메는 순례자에게 등대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이곳의 알베르게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각 도시까지의 거리가 적혀있는 안내판에는 서울도 있어 반가웠다.

만하아름다운다시 커다란 안테나가 서 있는 언덕의 정상까지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마침내 엘 비에르소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순례자의 앞에는 길고 위험한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은 끊임없이 순례자를 괴롭힌다.

7km 정도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히 내려오면 소박한 꽃들로 장식된 테라스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다. 마침내 엘 아세보에 다다른 것이다. 이 길에서 사고로 생을 마감한 독일인 순례자인 하인리히 클라우스의 기념비가 경고하듯 순례자는 속도를 조절하여 운행하여야 한다.




El Acebo (1,139M)의 이름은 켈트의 영향을 받은 이름이다. 이라고 골짜기에서 내려가는 곳에 위치해 있고 테라스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발을 뻗고 쉴 수 있기도 한다. 돌과 석판 지붕으로 만든 전통 집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으며 목재로 만든 테라스에서 돌계단을 통해 소박하고 예쁜 길로 내려갈 수도 있다. 엘 아세보는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어서 지친 순례자를 편히 쉬게 해 준다. 엘 아세보는 몇 백 년 동안 가톨릭 왕에 의해 세금과 군대 징집을 면제받았다. 대신 그들은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이 가는 산속 길이 눈으로 사라졌을 때 골짜기에 길을 표시하는 말뚝 400쌍을 박아놓아야 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Miguel
산 미겔 교구 성당은 전원풍의 건축물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띠아고 상이 보존되어 있는 성당이지만 이 성당의 조각상에는 사도 야고보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인 조개껍데기와 표주박이 보이지 않는다.

Ermita de San Roque
마을 입구에 있는 산 로께 성소는 까미노의 과거를 떠올리게 해주는 소박하고 단순한 성소다.

Monumento a Heinrich Krause
하인리히 크라우스 기념비는 산띠아고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인 순례자 하인리히 크라우스를 기리는 자전거 모양의 철 기념물이다.




엘 아세보에서 리에고 데 암브로스까지는 도로를 따라서 약 2km 정도를 지나야 하며 여기에서 까미노 사인을 따라 도로를 벗어나 내리막길을 내려와야 한다.

엘 아세보에서 한 시간 가량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아름다운 밤나무 사이로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 보인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의 오래된 주택들은 엘 아세보와 흡사하다.




Riego de Ambrós (919M)는 울창한 밤나무 숲 사이에 있는 전형적인 산속 마을로 목가적인 풍경이 살아있다. 숲에서 더위를 식히고 샘 옆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마을에는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전통 시골 건축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목재로 만든 발코니는 엘 아세보와 비슷하다.

Iglesia Parroquia de Santa Maria Magdalena
산따 마리아 막달레나 교구 성당은 내부에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있는 전원풍 성당 건축물이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를 나서려면 메루엘로 시내를 지나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중세의 돌로 만든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제 몰리나세까까지는 4km 정도 남았다.

밤나무가 아름다운 내리막길과 부드러운 흙길은 고된 일정에 지친 순례자를 위로해줄 것이다. 또한 이라고 계곡에서 내려오는 까미노와 메우엘로 강의 비옥한 평원과 만나는 몰리나세까는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몰리나세까까지 계속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까미노는 가파른 내리막이지만 직선에 가까웠고 차도는 완만한 내리막이지만 산허리를 빙 둘러 돌아내려와서 거의 2km 이상은 더 걸린 것 같았다. 가야 할 길이 건너편 산허리로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는 걸 보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렇게 묵묵히 걷다 보니 마을 입구에 있다는 안구스띠아스 성모의 성소가 보였다.

14시 반, 지겹도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급한 내리막길은 몰리나세까에서 끝났다.




Molinaseca (585M)는 까미노 프란세스에서 중세의 외관과 분위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다리, 문장으로 장식된 집이 많은 마요르 거리와 궁전, 전통 건축 때문에 몰리나세까는 자연스럽게 산띠아고 가는 길에 손꼽히는 명소가 되었다.

마요르 거리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다리와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분위기를 간직한 발코니와 문장이 있는 전통 건축과 발보아의 저택, 16세기에 만들어진 순례자 병원 등이 모여 있다. 다리가 있는 곳에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수영장이 있어서 이곳 주민과 순례자들이 여름 동안 이용할 수도 있다. 여름에 순례를 떠난다면 꼭 수영복을 챙기길 바란다.

이 지역 음식은 식도락을 즐기는 순례자라면 충분히 별 다섯 개를 주고도 남을 정도이다. 몰리나세까를 대표하는 여섯 가지 음식에는 Vino, Manzana Reineta (사과), Pimiento (고추), Botillo (소시지), Cecina (육포), Pera (배)가 있다. 레스토랑과 선술집에서는 비에르소의 여러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 소시지, 육포, 돼지족, 다양한 엠빠나다, 구운 고추, 붉은 고기, 양과 염소 고기, 송어, 비에르소식 수프, 이곳 과수원에서 키운 야채, 비에르소 식 문어 요리 등이 유명하다. 또 후식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견과류, 로스까 빵, 군밤, 시럽에 재운 밤, 사과파이, 시럽에 재운 무화과, 치즈 등이 있다. 또한 순례자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술로는 비에르소 포도주나 지역에서 빚는 Aguardientes (증류주)를 곁들이면 좋다.

Santuario de la Virgen de las Angustias
안구스띠아스 성모의 성소는 마을 입구에 위치한 18세기의 건축물로 이 성소의 문은 금속 덮개로 단단히 덮여 있다. 그 이유는 중세의 순례자들이 이 성소의 나무문에 돌을 던지면 순례 도중 행운이 따른다는 미신으로부터 나무로 만든 현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Parroquial de San Nicolas de Bari
산 니꼴라스 데 바리 교구 성당은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어진 성당으로 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십자가상이 있다.

Monumento El Peregrino
마을이 끝나는 길 끝에 위치한 순례자 상이다. 조그만 분수에 서서 멀리 까미노의 끝을 응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중세의 분위기가 살아 숨 쉬는 Río Meruelo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쳐다보다가 근처 띠엔다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있는데 땅콩을 건네준다. 인심 좋은 곳이었다. 강가 수영장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더 이상은 무리라 판단했고 계획대로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알베르게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강가로 나오려고 일단 공립 알베르게로 갔다. 가다 보니 30분은 더 걸려서 도착했고, 여기서 다시 강가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 멋진 풍경을 포기하고 외진 이곳에서 묵어야 하나 싶어 고민하는데 왠지 억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걷자! 그렇게 세요만 받고 일어섰다. 뽄페라다로 가기 위해 또다시 무리한 도전을 시작했다.




지겹도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급한 내리막길은 몰리나세까에서 끝났다.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한 순례자는 알베르게에서 약 100m 정도 직진하여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야 한다.

테니스장과 주택가, 공장지대를 지나 이곳에서 까미노 사인을 따라서 약 500m를 직진하다 보면 싱그러운 포도밭 사이로 까미노가 이어진다. 이곳에서 순례자는 까미노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LE-142 도로와 만나게 된다. 이 길을 통해서도 뽄페라다에 도착할 수 있으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로 지나치는 차량의 위험과 단조로움에 따른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까미노를 따르는 것이 좋다.

몰리나세까에서 뽄페라다까지는 약 8km 정도이며 2시간 정도면 도착이 가능하다.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에 무리하게 걸었지만 걷다 보니 걸을 만했다. 16시쯤 특별한 건축물이나 이야기가 없는 평범한 농촌 마을인 깜뽀를 지났다. 버스정류장이 보이니 이제 한눈에도 도시에 들어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을을 빠져 나와서 좁은 도로의 왼쪽으로 걷다 보면 멀리 뽄페라다와 빠하리엘 산이 보인다. 포도주 저장 창고 앞을 지나면 특별한 샛길의 유혹 없이 뽄페라다 도심의 시작점인 마스까론 다리에 다다르게 된다.

까미노 사인들을 따라서 뽄페라다의 중심을 향해 들어간다. 템플 기사단의 성에서 시작된 까미노는 까라스꼬 도로로 이어지고, 성 안드레스 성당, 엔시나 바실리카 성모 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이어진다. 계속하여 까미노는 렐로흐 거리를 통해서 시청 광장까지 이어진다.

뽄페라다는 엘 비에르소의 수도였으며 까미노 프란세스의 주요 도시 중 하나다. 이 도시는 근처의 금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며 1082년부터 까미노 프란세스의 주요한 루트가 되었다. 도시에서 가장 순례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템플 기사단의 성이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를 향하는 지친 순례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부여 받아 1178년에 건축된 이 성은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암호이자 템플기사단의 비밀스러운 기호가 숨어있다고 전해진다.




철로 만들어진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Ponferrada (544M)는 산업 도시이며 비에르소 지방의 경제적 수도다.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 탓에 농산물 생산이 좋고 도시에 필요한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현재 도시의 중심지는 로마 시대 이전의 주거지 위에 세워졌다. 뽄페라다는 11세기 아스또르가의 주교가 순례자들이 실 강과 보에사 강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건설하면서부터 발전했다. 페르난도 2세는 순례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이 도시를 템플 기사단에게 맡겼고 뽄페라다는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때문에 도시에는 템플 기사단의 성벽이 세워졌다.

뽄페라다는 마법과 아름다운 풍경, 역사로 가득한 땅인 비에르소 지방을 맛보기에 가장 좋다. 비에르소 지방의 음식은 스페인에서도 아주 훌륭한 편인데 비에르소의 수도인 뽄페라다는 이 음식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밤 크림으로 구운 쇠고기, 고추를 곁들인 쇠고기, 비에르소식 소시지가 뽄페라다를 대표하는 요리이며 여기에 비에르소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와 후식으로 사과파이를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Castillo de los Templarios
12~13세기에 지어진 템플 기사단의 요새는 8000평방미터에 달하는 일정하지 않은 형태로 총안과 방어용 망루, 맹세의 탑 등이 있다.

Iglesia de San Andres
산 안드레스 성당은 중세에 세워진 성당이었으나 17세기의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습니다.

Basilica de Nuestra Senora de la Encina
엔시나 바실리까 성모 성당은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라틴십자가 평면의 성당으로 1573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 있던 자리에 다시 지어졌다. 성당의 내부에는 13세기 고딕 양식의 그리스도상이 있다. 수많은 순례자들과 신자들이 성당을 찾는 이유는 이 성당이 떡갈나무의 성모와 템플 기사단의 전설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성당 안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비에르소의 수호성인인 엔시나의 성모상이 있다.

템플 기사단
뽄페라다에서 가장 커다란 유산은 기사단의 성채다. 당시 기사들은 세 겹의 성벽에서 세 번의 맹세를 해야 했고 성벽에 있는 열두 개의 탑은 별자리를 의미했다. 기사단의 가장 중요한 보물인 성배와 성궤에는 전통에 따라 후세의 기사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템플 기사단의 기도문 속에는 이 두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비밀스러운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뽄페라다에서는 매년 7월 중순 여름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뜰 때 중세의 템플 기사단을 기리며 밤을 보내는 축제를 벌이는데 중세식 복장을 한 사람들이 템쁠라리오 광장부터 성채까지 행진을 하고 템플 기사들에게 성배와 성궤를 헌납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떡갈나무의 성모
어떤 템플 기사단원이 성의 건설에 대들보로 쓸 나무를 베어오라고 나무꾼에게 명령했다. 대들보로 사용할 커다란 나무를 베기 위하여 숲 속으로 들어간 나무꾼들은 이상한 빛을 보았고 그 빛은 신비스러운 광채를 뿜고 있는 떡갈나무로 그들을 인도했다. 나무꾼의 제보를 듣고 숲에 다다른 기사는 커다란 떡갈나무 구멍에 성모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템플 기사단은 이 성모상을 위해 성전을 짓기로 했고 엔시나의 성모를 이 지역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당시 나무를 자르는 과정에서 성모상이 안고 있던 아기 예수의 다리 부분이 도끼에 상처를 입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뽄뻬라다의 사람들은 항상 성 모자에 기도를 올린다.

눈물의 호수
라스 메둘라스 유적 근처에는 눈물의 호수(El Lago de Las Lagrimas) 라고 불리는 까루세도 호수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호수는 로마 장군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까리시아가 흘린 눈물이 모여 생긴 호수라고 한다. 매년 성 요한의 날 밤에 호수 위에서 연인을 찾아 헤매는 까리시아의 보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호수에는 또 다른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이 있다. 수사들이 키운 한 고아 젊은이가 한 처녀를 사랑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마을에 살던 어떤 귀족 청년도 같은 처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귀족 청년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고아 젊은이는 의심을 받게 되자 마을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후에 훌륭한 수도원장이 돼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을로 돌아가던 중 수도원장은 마을 근처에 유령이 나타나 마을이 공포에 떤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유령의 진실을 찾아 나선 수도원장은 그 유령이 자신이 사랑하던 그녀임을 알게 되었다. 수도원장은 그 처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성직자로서 하느님께 맹세한 서원을 깼고 이에 분노한 하느님이 산을 무너뜨려 이 근처를 모두 물에 잠기게 했다. 그 후 매년 성 요한의 날 밤에는 이 호수 밑에 잠긴 수도원의 종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30분쯤 더 걸어 뽄페라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내 다리는 오늘도 잘 버텨주었다. 몰리나세까 알베르게는 6€였는데 이곳은 기부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5€를 내고 등록했다. 정원이 큰 멋진 곳이었다. 주방을 지나 이어진 방으로 안내받았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짐을 내려놓고 수뻬르메르까도에 갔다. 오늘은 많이 걸었으니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로 하고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피자를 사 왔다. 샤워하고 빨래를 널어두고 피자를 먹으러 주방에 갔는데 어딜 가나 꼭 있었던 전자레인지가 이 큰 주방에는 없었다. 결국 프라이팬으로 굽는데 불 조절하기가 힘들어 바닥이 타는데도 치즈는 제대로 녹지 않았다. 그래도 먹고 싶었던 피자라 입에 넣어보는데 입맛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냥 수분이 필요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음료와 우유 등 1리터는 마신 듯 싶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갈증이 났고 열이 났다. 주방에 조금씩 남아있는 채소를 모아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니 살 것 같았다. 피자 한판은 구워서 내일을 위해 포장해 두고 한판을 먹고 있으니 지나가던 한 서양인이 신기한지 말을 건넨다.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이미 먹었단다.




H와 J가 보여서 피자를 나누어 주려고 했더니 뭔가 불안해 보이면서 분주해 보였다. 그제야 베드 버그와 전쟁 중이라고 실토했는데 배낭 속 짐들을 모두 꺼내어 건조기에 넣고 돌리고 있단다. 매일 같이 이렇게 하는데도 계속 물리고 있다는데 정작 배낭은 아무런 처치를 안 하고 있었다. 배낭을 빨 수가 없어서 짐만 그렇게 하고 있다는데 베드 버그가 배낭에 붙어있는 거라면? 어디선가 베드 버그에 물렸고 지금도 계속 물리고 있는데 자기네는 보아디야 알베르게가 의심스럽단다. 하긴 벌레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긴 했다.

아스또르가에서 그녀들과 같은 방을 쓴 이후로 나도 무언가에 자꾸 물리고 있는데 혹시나 싶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그날 입은 옷은 모두 빨래해서 햇볕에 말렸고 다 마르면 지퍼백에 넣어 밀봉해서 배낭에 넣기 때문에 오염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배낭에 붙어있다면 걷는 내내 물릴 수는 있다. 도착해서 빨래할 때까지 말이다. 배낭 속 짐들은 안전하긴 하지만 더 조심해야 할 듯하다.

아직까지도 내 배낭엔 흙 한번 묻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배낭을 땅에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베르게에서도 가급적이면 의자나 침대에 올려두었고 그럼에도 침대에는 발 쪽으로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하지만 아스또르가에서는 침대 2층을 배정받아서 바닥에 둘 수밖에 없었는데 바닥은 닦았지만 공간이 좁아 그녀들의 배낭과 나란히 놓아두었으니 이거 찝찝하게 되어버렸다. 미리 얘기라도 해주었으면 조심했을 텐데 그녀들 또한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베드 버그에 오염되면 입실을 막는 알베르게도 있으니 속시원히 말 못 하는 사정도 이해는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풀밭이나 흙바닥에 내려놓았던 배낭을 알베르게에 도착해서는 침대에 올려놓고 짐을 정리한다. 바닥에 끌고 다니던 캐리어를 침대에 올려놓고 정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베드 버그도 문제지만 성격상 그런 것들이 용납되지 않았다. 아예 침대에 배낭을 올려두지 못하게 하는 알베르게도 있었다. 부상으로 힘들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가급적 1층 침대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자리를 비우면 위층에 있는 사람이 자기 배낭을 내 침대에 당연한 듯이 올려두거나 가끔 앉아있기도 하는데 시트에 흙이 묻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신발을 신고 침대에 눕는 이들에겐 어쩜 일상인지 모르겠다.

늦게 도착한 터라 모든 게 지연되었지만 오늘 할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짧은 시간에도 잘 마른빨래를 걷어 정리하고 나니 9시다. 하지만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워서 자정까지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너무 덥다. 아니 다시 열이 나고 있었다. 게다가 팔이 너무 가려웠다.




Rabanal del Camino→Ponferrada 32.9km

○Rabanal del Camino (1,152M)
●Foncebadón (1,431M) 5.6km
●Cruz de Ferro (1,495M) 2.2km
-La Cruz de Ferro
●Manjarín (1,433M) 2.3km
●El Acebo (1,139M) 7.0km
-Iglesia Parroquial de San Miguel
-Ermita de San Roque
-Monumento a Heinrich Krause
●Riego de Ambrós (919M) 3.4km
-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ía Magdalena
●Molinaseca (585M) 4.7km
-Santuario de la Virgen de las Angústias
-Parroquial de San Nicolás de Bari
-Monumento El Peregrino
- Río Meruelo
●Campo (531M) 4.3km
●Ponferrada (544M) 3.4km
-Castillo de los Templarios
-Iglesia de San Andrés
-Basilica de Nuestra Señora de la Encina

207.3km/775.0km




Albergue de San Nicolás de Frue D-5.00€
Pizzaa Tomate y Queso -2.00€
Naranja Zumo 1L -0.55€




초코 비스킷, 생수
치즈, 아이스티, 오렌지 주스, 우유, 샐러드, 피자, 카카오죽
(천도복숭아)


Cocina
Refrigerador
WI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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