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36

Villafranca del Bierzo→O Cebreiro

by 안녕
Day 34.
Monday, June 29


모두들 서두르는 탓에 나도 덩달아 일어나 준비하고 보니 이제 겨우 6시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사방이 깜깜하지만 딱히 남아서 할 일이 없어서 출발하려는데 길이 헷갈린다. 어제 내려왔던 길과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디로 나가는지 지켜보기로 하고 냉동실에 하나 남아있던 초코 아이스바를 꺼내먹었다.

일단 가보면 되겠지만 무거운 배낭 메고 헤매긴 싫어서 마냥 앉아서 기다리는데 아무도 떠나지 않는다. 어제 체리를 나누어 준 일본인 아저씨가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출발할 것 같지는 않아서 물어보니 아래로 내려가란다. 그렇게 6시 30분에 출발했다.




까스띠야에서 갈리시아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 오 세브레이로를 오르는 발까르세의 계곡 마을을 지나게 된다.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에서 발까르세 계곡을 지나는 길을 따라 나란히 걸어야 한다. 도로의 왼쪽으로 시멘트 구조물과 구분된 좁은 까미노를 따라서 걷다 보면 뻬레헤다.


오 세브레이로의 수도원과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의 산따 마리아 수도원이 분쟁을 벌였다는 밤나무 숲이 둘러 싼 마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뻬레헤에는 도냐 우라꺄가 허름한 오레오에서 출산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중세풍의 작은 마을 Pereje (536M)는 왕과 교황의 싸움이 일어났던 곳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밤나무 숲은 순례자들에게 평온함, 휴식, 명상을 선사한다. 중세에 뻬레헤 주민은 세금과 군대 징집을 면제받았는데 여왕 도냐 우라까가 뻬레헤의 허름한 오레오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두 수도원의 싸움
뻬레헤는 중세 때에 오 세브레이로의 수도원장과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의 산따 마리아 수도원이 분쟁을 벌인 곳이었다. 분쟁의 시작은 뻬레헤에 오 세브레이로의 수도원장이 순례자를 위한 병원과 성당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비야프랑까의 수사들은 자신들이 뻬레헤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며 반대를 했다. 이 분쟁은 레온 왕 알폰소 9세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끼어들면서 더 격해졌다. 결국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의 수사들이 이기게 되어 병원 건축의 독점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8시쯤 뻬레헤를 지나는데 사람은 없고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아깝지만 며칠 째 가지고 있던 치즈를 개봉해서 통째로 던져주었다. 치즈 보카디요를 만들어 먹겠다는 생각에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맥주 안주로라도 먹어버릴 것을 그랬다.

이곳은 소박한 알베르게가 있고, 출구에는 순례자를 위한 샘터와 휴식을 위한 돌로 만들어진 테이블도 있다. 이곳에서 다시 순례자는 N-6 도로의 보행을 만나게 된다.

뻬레헤에서 뜨라바델로까지는 4km 정도이다. 도로를 따라서 걷다가 오른쪽 밤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새롭게 만들어진 까미노를 따라가면 쉽게 뜨라바델로에 도착한다.




Trabadelo (562M)에서는 검고 넓적한 돌로 지붕을 올린 전통 가옥 만날 수 있다. 뜨라바델로는 바위투성이의 좁은 절벽이 있는 계곡에 있다. 이러한 지형 때문에 부패한 귀족들이 순례자들을 강탈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귀족들은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통행료를 걷었고 이를 거부하는 순례자들에게는 강도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도둑떼와 귀족에게 사주받은 강도들 때문에 순례자들이 두려워하던 뜨라바델로에는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아욱따레스 성에 도둑과 강도들의 은신처가 있었는데 알폰소 6세와 템플 기사단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이들을 토벌하여 오랜 악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Nicolas
산 니꼴라스 교구 성당은 종탑이 있는 전원풍의 성당으로 13~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자상이 있는 파사드와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있다.




검고 넓적한 돌로 지붕을 올린 전통 가옥이 있는 마을에는 신라면 세트를 팔고 있는 알베르게가 있어서 많은 한국인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

중세에는 부패한 귀족들이 순례자를 약탈했던 장소로 악명이 높았으나 현재는 뻬레헤보다 근대적인 건축물들이 시원한 계곡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9시쯤 마을을 통과하여 커다란 밤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가면 고속도로의 밑을 지나게 되고 다시금 N-6 도로와 만나게 된다. 계속해서 까미노는 고속도로 밑으로 이어지고 계속 걸으면 레스토랑과 주유소를 지나게 된다.

도로에서 빠져나와 언덕의 반대쪽인 왼쪽 까미노 사인들 따라 조금만 걸으면 라 뽀르떼라가 나온다.




발까르세 계곡 근처의 작은 마을인 La Portera의 이름은 작은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발까르세 계곡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문과 같은 좁은 길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단다.

10시 반쯤, 산띠아고까지 190km 남았다는 라 뽀르떼라 조각상 부근에서 단체로 걷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는데 대규모 이동 중이라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학교에서 단체로 까미노를 걷는 모양이다. 가벼운 가방 하나씩 메고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는데 이처럼 이들에게 까미노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부러웠다.

마을을 지나 도로를 벗어나면 자동차의 소음은 들리지 않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시원한 바람소리만 들린다. 밤나무의 그늘과 함께 목장지대를 지나 발보아 계곡과 발까르세 계곡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암바스메스따스에 11시쯤 도착했다.




Ambasmestas (614M)는 발보아 강과 발까르세 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을로 울창하고 그늘진 숲이 있어 더위로 고생하는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마을이다.

암바스메스따스를 뒤로하고 베가 데 발까르세로 걸음을 옮긴다. 두 마을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머리 위를 지나는 거대한 고속도로가 보이면 오래된 성터 사이에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는 베가 데 발까르세에 도착한 것이다.




발까르세 계곡에서 가장 큰 마을인 Vega de Valcarce (629M)는 편의시설이 더 많이 갖춰져 있다. 이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오 세브레이로까지 가는 가파른 길을 힘차게 출발하기 위해 이곳에서 묵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이다. 두 개의 요새 유적과 성 때문에 전설이 가득한 중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Castillo de Sarracín
사라신 성은 마을의 남쪽, 밤나무 숲 사이 경사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재는 모두 형체를 알기 힘든 석재와 검은 돌기와만 남아있다. 사라신 성은 10세기 아스또르가의 영주였던 사라신 백작의 성이었다. 한편 베이가 성은 11세기에 돈 네사노 구데스떼이스라는 봉건 영주의 소유였다. 그는 주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순례자들에게 보호비로 통행료를 요구했다. 이 영주는 알폰소 6세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사라신 성곽을 왼쪽으로 두고 이어지는 편안한 까미노를 걷다 보면 다시 N-6 도로와 합류하게 되는데 12시쯤 루이떼란에 도착했다.

Ruitelán (656M)은 작은 마을로 밤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몇 채 없는 집과 오래된 성당이 고풍스러운 마을의 분위기를 풍기고 동굴 위에 세워진 성 프로일란 성당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 성 프로일란은 이 성당에서 기도와 명상으로 여생을 보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세례자 요한 교구 성당은 12세기경에 지어진 작은 성당으로 내진은 직사각형이고 궁륭은 석재로 만들어졌다.




베가 데 발까르세에서 루이뗄란까지는 30분밖에는 걸리지 않으며 오르막길의 경사도 심하지 않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라스 에레이아스까지도 3km 정도임으로 한걸음에 이동하는 것이 좋다. 사라신 성곽을 왼쪽으로 두고 이어지는 편안한 까미노를 걷다 보면 다시 N-6 도로와 합류하게 된다. 순례자는 어렵지 않게 성 프로일란으로 알려진 루이뗄란을 지날 수 있다. 여기에서 약 1km 떨어진 라스 에레리아스로 들어가기 위해 왼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야 한다.

라스 에레리아스는 페레리아스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발까르세 계곡의 마을이다. 이곳은 까미노의 발달과 함께 마을의 모습이 바뀌었다. 라스 에레리아스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난 여정의 출발점인 까까벨로스에서 고도를 200미터밖에 올리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 세브레이로를 향한 워밍업이다.




Las Herrerías (682M)에는 발까르세 강이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순례자들은 계절에 따라 푸른 초원과 길가로 목동들이 몰고 나온 소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라스 에레리아스에서는 오래된 전통 가옥들과 물레방아와 같이 오래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마을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마을은 중세부터 대장간이 있던 곳이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대장간은 지금도 완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간혹 15세기에 지어진 대장간 터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에 이 지역을 지나가던 라피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순례자는 대장간에서 사용되는 커다란 망치와 불꽃에 매료되어 순례를 포기하고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대장간은 지난 세기까지 운영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대장간의 큰 건물을 볼 수 있다.

마을을 나오는 출구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삐까르디 고개가 시작된다. 알뻬스 데 라 파바, 말라파바라고도 부르는 이 오르막을 오르면 도로의 오른쪽으로 자전거 순례자를 위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보인다. 길이 조금 힘들지는 몰라도 도보 순례자는 원래의 까미노를 걷는 것이 좋다.

다시 조그만 개울을 따라가다 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밤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급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라 파바 마을이다. 라스 에레이아스에서 라 파바는 4km 떨어져 있다.

라 파바는 전통적인 목축업에 종사하는 작은 마을로 순례자를 위한 조그마한 바가 있다. 이 바의 이름은 엘 울띠모 리꼰 데 엘 비에르소(El Último Rincón de El Bierzo, 엘 비에르소의 마지막 모서리)인데 외로운 산촌 마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장소이다.




La Faba (906M)는 삐에드라피따 골짜기를 오르는 숲 속의 오르막길에 아늑하게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과거 이 언덕은 소들을 방목하던 초원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초목이 덮인 산으로 변하여 마을의 모습을 더욱 비밀스럽게 만들어 준다.

Iglesia de San Andres
산 안드레스 성당은 18세기에 종탑을 세우면서 재건된 성당으로 내부에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봉헌화가 있다.




이제 목적지인 오 세브레이로까지는 5km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까미노 주위의 밤나무는 없어지고 아이가 산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비탈길을 오르는 순례자의 호흡을 더욱 헐떡이게 만든다. 오솔길을 따라 2.5km를 전진하면 레온 지방의 마지막 마을인 라구나 데 까스띠야에 도착한다.

15시쯤 라구나 데 까스띠야에 도착했다.




La Laguna de Castilla (1,156M)는 해발 1000미터 이상 되는 초원 위에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순례자는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 건축물인 Horreos를 처음 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산꼭대기와 그늘진 계곡이 물결처럼 펼쳐지는 라구나 데 가스띠야는 언덕을 오르는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럼 느껴진다.




라구나 데 까스띠야에서 자전거 순례길과 만난 까미노는 마을의 출구에서 다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순례길은 차오 다 뽀사 언덕을 휘감으며 커다란 위성 수신탑의 아래까지 올라간다.

도보 순례자를 위한 까미노를 따라 마을을 나오면 머리위로 보이는 초록색의 가파른 언덕 너머에 오 세브레이로가 있다. 언덕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순례자를 괴롭히던 철 십자가상이 있는 이라고 산이 멀리 보인다. 이제 괴로운 오르막은 끝난 것이다.

오 세브레이로에 이르는 길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향하는 길에서 고통과 환희를 한꺼번에 선사하는 길이다.

라스 에레이라스부터 오르막길을 오르면 오를수록 가파른 산길과 마주할 것이며, 운이 좋다면 안개로 뒤덮이지 않을 때 벤또사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또한 밤나무 숲 물결을 따라서 오르는 이 언덕길은 고생만큼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라구나 데 까스띠야를 지나면 순례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레온과 루고를 구분하는 경계선에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152.5km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까미노석이 있다. 앞으로 까미노 여정의 목적지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잔여 거리를 알려주는 까미노석은 계속 나타난다.




LUGO
루고에서 순례자들은 대조된 풍경을 볼 수 있다. 북쪽의 아름다운 해안과 동쪽의 산악지대, 가운데 지방에 넓게 펼쳐진 Terra Cha (평원), 남쪽의 미뇨 강과 실 강을 따라 펼쳐진 포도밭이다. 북쪽 지방은 A Marina 라고 부르며 이곳 해안에서는 부드러운 모래밭과 광활한 바닷가를 즐길 수 있다. 홀로 낚시하기에 좋은 바다, 울퉁불퉁한 해안선, 깎아지른 듯한 절벽, 작은 섬들, 무수한 항구 등등 환상적인 바다를 경험할 수 있다. 어느 마을에서든지 낚시나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그저 늦은 시간이 되도록 칸타브리아 해에서 갓 잡아 올린 맛있는 가재, 바닷게, 바지락조개, 성게, 삿갓조개 등등의 생선과 해산물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산을 좋아하는 순례자들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를 찾을 수 있다. 레온 지방과 맞닿아 있는 Os Ancares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대뇌조, 사슴, 노루, 멧돼지 서식지가 있다. 오 세브레이로와 피오르네도 데 앙까레스에는 전통적인 건축물인 빠요사가 있다. 또한 사슴으로 변한 처녀가 살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엘 까스띠요 데 도이라스도 아름답다. 동남쪽에는 O Courel 지방이 있는데 이곳에는 아름다운 원시림, 옛 성과 성터의 흔적, 전통 건축이 남아 있는 작은 마을, 로마인들이 실 강을 비켜가기 위해 몬떼푸라도 성벽에 뚫은 특이한 터널 등을 만날 수 있다. 부드럽고 온화하게 흐르는 루고의 강은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연못들을 채워주고 있으며 이 연못에는 매우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또한 루고 지방의 오래된 로마시대 성벽이나 라또 강변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로마 시대의 대중목욕탕,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있는 대성당을 방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포도주와 Pinchos (간단히 집어먹을 수 있는 안주)를 먹으러 주점에 들려서 아름다운 루고의 방문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루고에서는 자연과 문화 예술을 한 번에 탐방할 수 있다.

이곳은 선사시대부터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고 신화와 전설이 많은 곳이다. 루고는 광물이 풍부한 곳이기 때문에 늘 인구가 많았고 상인과 정복자들로 붐볐다. 또한 해안선을 따라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와 내륙길을 이용한 순례자들이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루고의 까미노 곳곳마다 거석 유물과 빌라동가 같은 켈트인의 유적, 산따 에우랄리아 데 보베다 같은 로마 시대의 흔적, 산 미겔 데 데이레 수도원 같은 로마네스크 시대의 보석, 수많은 수도원과 성, 성당, 십자가상, Horreos, Pallozas 같은 전통 건물을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오래된 격언에는 식도락을 위해서는 루고로! 라는 말이 있다. 깐따브리아 해의 생선과 해산물 말고도 이곳에는 빌랄바의 감자 요리, 부드러운 무순으로 만든 요리인 Grelos와 Cachelos (갈리시아 지방에서 고기나 생선과 감자, 후추 등으로 한 요리), 루고식 갈비, 문어요리 Pulpo, 산 시몬과 우요아 및 오 세브레이로의 치즈, 호두와 밤으로 채운 파이와 생크림을 얹은 술 등이 있다. 이 같은 음식에는 Vinos Ribeiro를 곁들이면 좋고 식후주로는 Aguardiente de Portomarin이 좋다. 루고 지방에서는 시골의 카니발 축제와 수많은 가톨릭과 이교의 축제를 즐길 수 있으며 이 축제에는 뿔나팔과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 춤인 무녜이라가 빠지지 않는다.




이제 신비로운 성체와 성배의 기적이 일어났던 오 세브레이로 성당의 종소리를 따라 편안히 걸으면 된다.

오 세브레이로에 이르기 전까지 주위의 풍경은 건조하고 황량한 갈리시아의 모습으로 바뀌지만 레온과 루고의 환상적인 풍경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중세의 마술사가 나타날 것 같은 바람의 마을 오 세브레이로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갈리시아를 향해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O Cebreiro (1,286M)는 성체와 성배의 기적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에게 오 세브레이로는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기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 세브레이로에서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부활시킨 선구자 돈 엘리아스 발리냐의 흉상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오 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로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노란색의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 표시를 처음 만들었으며 까미노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까미노의 친구 협회’를 설립하고 강화한 인물이다. 실로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소수의 신앙인의 순례길로 남아있을 것이다. 단 한 명의 노력으로 까미노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작지만 매년 수많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린다는 이 마을은 로마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소박한 전통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더욱이 오 세브레이로 근교에는 오스 안까레스 산맥이 펼쳐져 있다. 울창한 숲을 가로지며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이 있고 2000미터에 달하는 고지엔 대뇌조, 곰 같은 동물들이 산다. 가벼운 등산로가 여러 개 조성되어 있어 등산을 좋아하는 순례자들이 행복해질 수도 있다.

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성당은 오래된 아스뚜리아스 왕국의 라미레스 양식이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이전의 건축물로 세 개의 신랑에 궁륭으로 덮여 있는 지붕과 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의 내부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 성모상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체 접시와 성배, 가톨릭 왕 뻬드로 2세가 산띠아고로 순례하는 동안 봉헌했던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다.

Museo Etnografico
빠요사를 재건축하여 만든 민속 박물관이다. 몇 백 년 동안 사용되었던 갈리시아 지방의 삶의 양식을 보여준다. 빠요사는 스페인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원시적이고 오래된 구조물이다. 먼저 돌로 원형이나 타원형의 작은 구조물을 쌓고 가운데에는 길고 둥글게 땋은 밀짚으로 원추형 지붕을 세운다. 지붕은 직접 돌 벽에 닿아 있으며 꾸미오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기둥이 원추형 지붕을 지탱하며 한가운데에 솟아 있다. 고대 켈트인들이 주거용 만들어 사용했던 빠요사에는 가축이 함께 생활했으며 굴뚝도 없이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우는 극단적 형태의 원시 건축물이었다. 오 세브레이로에 남아있던 세 채의 빠요사 가운데 나머지 두 채는 알베르게로 재건축되어 사용되고 있다.

오 세브레이로의 기적
오 세브레이로에서 일어난 기적은 까미노 순례자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 날이 궂은 어느 날 한 순례자가 마을에 도착하여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할 것이라고 하자 순례자는 기도를 올리며 성체의 신비가 실제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가 하늘에 성체를 바친 후 경배하고 눈을 뜨자 성체는 고기 한 조각으로 변해있었고, 성배에는 포도주가 피로 변하여 가득 차 있었다. 이 기적은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참배객이 이 성당을 찾아와서 크리스털로 장식한 주전자와 은으로 만든 유물함을 봉헌했다. 그런데 욕심 많고 고집 센 이사벨 여왕은 기적의 성배와 성체를 담은 접시를 탐냈다. 여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은 성배를 바쳐야 했는데, 성배를 등에 실은 노새가 라 파바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아 결국 성배는 다시 오 세브레이로의 성당 안에서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다.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에서 오 세브레이로까지는 하루 일정으로 다소 무리가 될 수도 있어 대부분 베가 데 발까르세에서 하루를 묵고 출발한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겐 이틀이었을 일정을 나는 하루 만에 걸어온 셈이다. 물론 가파른 비탈길이 싫어 포장된 길을 따라 걷느라 병풍처럼 둘러서 있던 산을 몇 개나 돌아서 왔는지 모르겠다. 엄청난 거리를 돌아서 오느라 늦긴 했다. 오는 동안 체리와 땅콩, 스낵으로 버텼고 땀을 너무 흘린 탓에 아이스티 330ml, 오렌지주스 400ml, 이온음료 350ml, 콜라 350ml, 맥주 500ml 등 마신 음료만 해도 엄청나다.

16시에 오 세브레이로에 들어섰고 오늘도 무사히 도착했다.




갈리시아 지방의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무조건 시트 커버가 제공되고 숙박비는 6€로 정해져 있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가 있는 갈리시아답게 까미노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알베르게 시설도 좋은 편이다. 주방도 훌륭하지만 지금은 화재를 예방한다는 명분 하에 취사가 어려운 곳이 많다. 주방 시설은 갖추고 있으나 주방 도구가 전혀 없어서 취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코펠이라도 갖고 다니면 가능하겠지만 몇 g에 예민해지는 이 길에서는 힘든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대부분 위피가 되지 않아 인터넷은 포기해야 한다.

오 세브레이로 공립 알베르게는 커다란 공간에 수십 개의 2층 침대가 놓여있었다. 난 아래 침대를 배정받았지만 두 개의 싱글 매트리스가 붙어있는 침대였다. 왜 이렇게 붙여두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별은 구별해서 배정하겠거니 기대했고 다행히 가족이 들어왔다. 부모와 함께 걷고 있는 딸이 당연히 내 옆으로 올 거라 생각했지만 당연한 듯 아버지가 내 옆으로 와서 눕는다. 코골이도 걱정이지만 너무 거구라서 팔 하나가 이미 내 침대로 넘어와 있었다. 밤에 자다가 조금이라도 몸부림을 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에 그의 부인에게 무언의 시위를 해보지만 자신의 남편이 누구와 눕든 상관없다는 분위기다. 게다가 이 뚱보 아저씨는 감기까지 걸려서 기침까지 하고 있었다. 다른 침대로 옮기려고 보니 침대는 어느새 가득 차 버렸다.

취사를 못하게 막은 주방이었지만 코펠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저녁을 해 먹고 있어서 다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코펠을 빌려 커피와 파스타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H와 J도 이곳에 묵고 있었다. 나는 걱정과 고민으로 해가 질 때까지 침대에 가보지도 못했고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기 직전에 침대 하나가 비어서 자리를 옮겼다.




Villafranca del Bierzo→O Cebreiro 28.4m

○Villafranca del Bierzo (527M)
●Pereje (536M) 5.2km
●Trabadelo (562M) 4.5km
-Iglesia Parroquial de San Nicolás
●La Portela de Valcarce (603M) 4.0km
●Ambasmestas (614M) 1.2km
●Vega de Valcarce (629M) 1.6km
-Castillo de Sarracín
●Ruitelán (656M) 2.1km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Las Herrerías (682M) 1.5km
●La Faba (906M) 3.4km
-Iglesia de San Andrés
●La Laguna de Castilla (1,156M) 2.4km
-Horreos
《Lugo》
●O Cebreiro (1,286M) 2.5km
-Iglesia de Santa María la Real
-Museo Etnografico

154.8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O Cebreiro -6.00€




스낵, 체리, 땅콩, 아이스티, 오렌지 주스, 이온 음료, 콜라, 맥주
라면, 호두, 미소


Coc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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