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37
O Cebreiro→Triacastela
Day 35.
Tuesday, June 30
어둠 속에서 다들 일어나 준비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아직 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불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준비를 하거나, 식당이나 주방에서 짐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는 거의 마지막으로 일어나 준비를 하곤 했는데 나 때문에 불을 켜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을 켜주고 다시 자곤 했었다.
오늘도 어둠 속에서 준비를 하는 소리에 잠이 깼고 눈을 떠보니 거의 대부분이 일어난 것 같아 불을 켜주었다. 난 일어나서 불을 켜는 게 익숙해졌지만 그들에겐 낯선 일이었기에 그런 나를 보며 고맙다고 소리쳤다.
항상 불이 켜진 후에 정리를 하곤 하는 나는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선물을 발견하곤 한다. 깜빡하고 두고 간 누군가의 런치 박스, 무거워서 포기하고 놓고 간 음료 등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군가가 흘리고 간 10€ 지폐 한 장을 주웠다.
어제 걷는 동안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음료를 소진했고 이 산꼭대기에 수뻬르메르까도가 있을 리 만무하기에 남은 물 300ml만을 가지고 나섰다. 가진 물이 부족해서 불안한데 지나치는 마을마다 식수대는 없었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식수대 찾기는 힘든 일 같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이 시작되기 전에 부지런히 걸어야 했기에 6시 반쯤 출발했다.
알베르게에서 나와 걷게 되는 까미노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뽀소 데 아레아 산으로 오르는 짧은 오르막길로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리냐레스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언덕의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삐오르날 산맥의 나비아 고개의 정상이 보이고 안까레스 산의 봉우리들도 보이며 남쪽으로는 로우사라 계곡과 실 분지, 꼬우렐 산맥이 보인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리냐레스로 이동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알베르게에서 돌아 나와 마을 출구에서 LU-634 도로를 따라서 멀리 돌아가는 것이다. 한 겨울 눈이 아주 많이 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첫 번째 까미노를 추천한다.
40분쯤 지나자 길 아래로 리냐레스가 보였다. 리냐레스는 오 세이브로에서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로 고속도로와 인접해 있는 바르와 몇 개의 건물이 전부다.
자작나무가 마치 터널을 이룬 듯 우거져있는 까미노는 산 로께의 언덕까지 이어진다.
7시 40분쯤 Alto San Roque (1,222M)에 도착했다. 산띠아고 가는 길을 걸은 순례자치고 산 로께 언덕의 근사한 순례자 조각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조각가 아꾸냐가 만들어놓은 바람을 뚫고 걸어가는 거대한 순례자의 동상이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구름이 능선 위를 흐르며 동상 주위를 지나면 그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진다.
Monumento al Peregrino
거대한 자연 앞에서 바람에 날아갈 듯한 모자를 잡고, 힘차게 지팡이를 잡고 걸어가는 순례자 모습의 기념물이다. 이 조각은 계곡에 눈이 와서 봉우리가 모두 눈에 덮여도 순례자의 앞길을 밝혀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까미노를 계속 걷기 위해서는, 순례자 동상에서 도로의 맞은편으로 넘어와야 한다. 이어지는 좁은 까미노는 뻬네도 봉우리까지 이어지며 안까레스와 꼬우렐 산맥의 비탈길이 보인다.
8시쯤 Hospital da Condesa (1,242M)에 도착했다. 현재는 그 자취도 찾아볼 수가 없으나 9세기 이 마을에는 가똔 백작의 부인이었던 에힐로 백작부인이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만들어서 Condesa (백작)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에는 오 세브레이로에서 보았던 성당의 건축 양식과 유사한 성 후안 성당이 순례자를 맞아준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산 후안 교구 성당은 1130년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검은 돌을 이용해서 만든 성모상이 있다.
마을 출구에서 도로를 돌아가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걷다가 왼쪽으로 빠지면 수수한 전원마을인 빠도르네로에 도착하게 된다.
뽀이오 언덕의 산자락에 위치한 전원 마을인 Padornelo (1,297M)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지붕에 해당하는 작은 마을이다. 이 지방의 전통 가옥 지붕에 많이 사용되는 평평한 검은 돌이 많이 나오는 곳이며 초록색 평원에 목동들과 소들이 띄엄띄엄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Xoan de Padornelo
산 쇼안 데 빠도르네로 교구 성당은 빠도르네로에 있던 산 후안 기사단이 관할하던 전원풍 성당이었다. 16세기 재건축을 할 때에도 성당 내부의 심플한 바로크 양식 제단화를 보존했으며 성당 건물 옆으로는 타원형 평면의 특이한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지붕이 덮인 공동묘지
San Juan de Padornelo 라고도 불리는 빠도르네로는 중세 성 요한 기사단의 본거지였다. 기사단이 사용하였던 오래된 성당은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묘지가 사용되고 있다. 오래된 건물 내부에 공동묘지를 만든 것은 흔히 볼 수 없는데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고인들의 무덤을 위해 사용되어 오랫동안 귀족이나 성직자에게는 거의 개방되지 않았다.
빠도르네로에서 뽀이오 언덕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짧으나 매우 가파르고 험하다. 중세의 뽀이오 언덕에는 성 후안 기사단의 기사령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고속도로의 양쪽에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한 2개의 바르와 알베르게가 있다. 정상을 올라온 순례자에게 뽀이오 언덕은 또 다른 축복을 선사한다.
9시쯤 언덕에 있는 바르를 지나가는데 커다란 셰퍼트 한 마리가 목줄도 없이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계속 따라오니 무서웠다.
갈리시아를 지나는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뽀이오 언덕은 겨울에 눈이 쌓여있을 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상의 고원에 오르면 멀리 안까레스 산맥과 꼬우렐 산맥의 그림 같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뽀이오 언덕에서 뜨리아까스떼라의 오르비오 계곡에 이르기까지 숲 속의 좁은 산길과 밤나무 숲 사이를 내려오면 된다. 앞으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은 존재하지 않는다. 갈리시아는 순례자를 위해 산티아고가 선사하는 선물이다.
산티아고 성인이 잠들어 있는 갈리시아 지방의 특색을 잘 나타내 주는 길이며 비옥한 땅과 목장, 시원한 샘물이 흐르는 길이다.
뽀이오 언덕에서 폰프리아까지는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아름다운 고원지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길을 지나면서 코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원지대라 그런지 피로가 누적되어 그런지 잘 모르겠다. 고작 1,335M에 이렇게 무너지나? 손이 너무 새까맣게 타서 토시를 손에 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쏟아진 코피는 하얀 토시를 붉게 물들이며 한참 동안 쏟아졌고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는 코피를 자주 쏟았고 한번 쏟아지면 30분 이상 쏟아져서 기진맥진할 때가 많았다. 급기야 핏덩어리를 토해내고 끝이 나던 그 코피는 성인이 되고서는 사라졌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에 한동안 지혈에만 열중하며 계속 걷고 있는데 머리를 임시로 묶어두었던 버프가 헐거워지는 게 느껴졌고 왠지 신경이 쓰였지만 두 손은 피로 물들어 있고 지혈하느라 그대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폰프리아에 도착할 무렵 코피는 간신히 멎었다. 배낭을 마을 입구 낮은 돌담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다시 묶으려고 보니 버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오는 길 어딘가에서 흘려버렸을 것 같았는데 그냥 버려도 그만이었지만 이 길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싫어 찾으러 나서기로 했다. 전진만 있는 이 까미노에서 처음으로 후진을 하게 된 거였다. 근처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배낭은 돌담 위에 그대로 올려두고 피에 젖은 토시도 벗어두고 홀가분한 상태로 찾아 나섰다. 거의 2km가량을 되돌아갔을 무렵이 되자 이제 그만 포기하고 돌아와야 하나 싶었는데 저 멀리 길에 떨어져 있는 버프를 발견했다. 다시 찾았음에 감사를 드리며 돌아오는데 그제야 40분 동안 내버려 두었던 길 가의 배낭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멀리 갔다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코피가 잔뜩 묻은 팔토시까지 얹어두었으니 누군가 봤다면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분실물로 알고 처리했을 수도 있고 사건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왕복 4km를 걸어 마을로 돌아와 보니 배낭을 올려두었던 폰프리아의 낮은 담장 위가 텅 비어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뒤쫓아가야 하나? 아니지 지나가는 차가 싣고 갔을 수도 있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을 안쪽도 살펴보았지만 내 배낭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렇게 모든 걸 다 잃게 되는 건가. 혹시나 담장 뒤편을 내려보니 배낭이 거기에 굴러 떨어져 있었다. 앞쪽으로 아슬하게 세워두었는데 넘어져도 왜 뒤쪽으로 굴러 떨어졌을까? 풀 속에서 토시까지 건져 올리고 나니 담장 위에 기어 다니는 붉은 진드기가 잔뜩 보였다. 풀 속에 방치된 배낭에 혹시 진드기가 붙은 건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되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Fonfría/San Xoán (1,283M)는 좁은 고원지대의 마지막에 위치하여 골짜기로 내려가기 직전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몇 백 년 동안 순례자들에게 Fria Fuente (차가운 물)를 제공해 주었던 샘터가 있었는데 현재에는 가축 용수로만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Fonfria del Camino 였으나 지금은 델 까미노라는 부분이 없어지고 폰프리아로 불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해서 이 마을을 지나가야만 한다.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드나 16세기 이 마을에는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순례자에게는 불, 소금, 물, 담요 두 장과 침대를 제공했으며 환자에게는 이 외에도 빵 네 조각과 계란, 버터를 제공했다고 한다.
폰프리아 성당에는 은으로 도금된 성작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성작에는 Soy de Fonfria (난 폰프리아 출신이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 성작의 기원이 언제이며 새겨진 문구가 무슨 뜻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폰프리아는 좁은 고원지대의 마지막에 위치한 마을로
이 마을을 지나고부터 가파른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이곳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허기진 순례자에게 크레페를 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선의로 착각한 순례자가 크레페를 한 조각 베어 무는 순간 아주머니가 터무니없이 비싼 크레페 가격을 요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폰프리아에서 비두에도까지는 까미노가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는데 라마스와 빌라르를 통과해 먼 길을 돌아가는 오른쪽 까미노는 오래된 LU-634 도로를 따라가는 루트로 자전거 순례자가 이용하기에 좋다. 도보 순례자들이 선택하는 왼쪽의 까미노는 오르비오 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뜨리아까스떼라를 멀리 조망할 수 있는 매력적인 루트다.
비두에도는 허름한 시골 주택 이외에는 인적도 드물며 순례자를 위한 특별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마을을 통과하여 깔데이론 산의 중턱의 목축지 사이를 지나는 까미노는 상당히 가파르며 계곡을 지나야 한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오르비오 산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으며 뜨리아까스떼라가 멀리 내다보이는 피요발까지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야 한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더니 걸어가면 갈수록 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12시 넘어 도착한 피요발은 주민이 10명도 되지 않는 초미니 마을로 여기에서 여정의 목적지인 뜨리아까스떼라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금작화가 가득한 평화로운 숲을 걷다 보면 LU-634 도로 만나게 되고 도로를 건너면 돌담에 둘러 쌓인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게 된다. 이 길은 중간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작은 마을인 빠산떼스와 라밀까지 이어진다. 라밀은 뜨리아까스떼라와 거의 붙어있는 마을로 마을의 입구에는 1993년 산티아고의 해를 맞아 만들어진 4층짜리 알베르게가 있다.
주민이 10명도 되지 않는 초미니 마을로 금작화가 가득한 평화로운 숲을 걷다 보면 LU-634 도로 만나게 되고 도로를 건너면 돌담에 둘러 쌓인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게 된다. 이 길은 중간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작은 마을인 빠산떼스와 라밀까지 이어지는데 라밀은 뜨리아까스떼라와 거의 붙어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에는 1993년 산티아고의 해를 맞아 만들어진 4층짜리 알베르게가 있다.
갈리시아는 마을마다 소똥이 널려있어 도로를 따라 걷기도 했는데 오는 내내 물이 부족할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13시 뜨리아까스떼라에 무사히 도착했다.
마을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중세의 Triacastela (662M)는 세 개의 성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이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하나도 없다. 10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이 마을은 13세기 알폰소 11세에 의해서 재건되고 부흥했다고 전해진다. 과거 이 마을에는 석회암이 많아서 중세의 순례자들은 이 마을에서 돌을 날라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의 대성당을 건축할 수 있도록 도왔다. 뜨리아까스떼라에는 수많은 숙소와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가 넘쳐나고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순례자를 환대한다. 추위와 피곤함에 지쳐 들른 순례자는 뜨리아까스떼라의 작은 바르에서 가슴 따스한 친절과 배려를 받을 것이다. 뜨리아까스떼라는 오 세이브로의 급한 내리막길에 지친 순례자들이 하룻밤을 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세 뜨리아까스떼라는 숙소 주인들과 아내들, 일꾼들이 합심하여 순례자들에게 사기를 쳤다고 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벌을 받아 하느님의 감시하에 평생토록 순례자들에게 공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야 했다고 한다.
Iglesia Romanica de Santiago
산띠아고 로만시아 성당은 3개의 아케이드가 지탱하는 견고하고도 아름다운 탑이 있는 성당이다. 정확하게 몇 년도에 만들어진 건축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입구의 공동묘지 가운데에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돌로 건축된 소박한 전원풍 성당으로 성당의 내부에는 복음서를 들고 있는 산티아고 성인의 순례자상이 보관되어 있다.
뜨리아까스떼라 공립 알베르게는 4인실인데 위쪽 침대가 배정되었다. 여자 샤워실은 지하에 있는데 여기는 샤워부스 칸막이조차 없었다. 탈의실은 어제처럼 공용이었다.
오는 동안 먹은 것은 땅콩뿐이라 허기는 지는데 알베르게에 주방은 없었다. 근처 Tanty에 갔지만 씹는 것도 귀찮아서 우유와 콜라만 사 왔고 오자마자 우유 1리터를 다 마셔버렸다. 한국에서는 우유 한잔에도 배탈이 났는데 스페인 우유는 배탈은커녕 한통을 다 비워도 거뜬했다. 포만감이 오며 갈증도 해소되었다.
빨래는 건물 뒷마당 풀밭에 있는 빨랫줄에 널고 왔는데 발목 부근이 풀벌레에 쏘였는지 부풀어 올랐다.
15시쯤 이제 좀 쉬나 싶었는데 또 코피가 쏟아진다.
O Cebreiro→Triacastela 21.1km
○O Cebreiro (1,286M)
●Liñares (1,222M) 3.2km
●Alto San Roque (1,222M) 0.9km
-Monumento al Peregrino
●Hospital da Condesa (1,242M) 1.6km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Padornelo (1,297M) 2.4km
-Iglesia Parroquial de San Xoán de Padornelo
●Alto do Poio(1334M) 0.4km
●Fonfria/San Xoán (1,283M) 3.4km
●Biduedo (1,191M) 2.4km
●Monte Caldeiron
→135.5km
→134.0km
●Fillobal (964M) 3.0km
→134.5km
●As Pasantes (799M) 1.5km
→132.0km
●Lamil
●Triacastela (662M) 2.3km
-Iglesia Romanica de Santiago
133.7km/775.0km
Bonus +10.00€
Albergue de Peregrinos Triacastela -6.00€
Supermercado Tandy Alimentación 2.20€
Cocacola zero 2L -1.45€
Leche 1L -0.75€
땅콩
우유 1L, 콜라, 호두
Supermercado Tandy Alimentació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