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39

Sarria→Portomarín

by 안녕
Day 37.
Thursday, July 2


밤새 퍼붓던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자욱했다. 어제처럼 안개비가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는 개고 있었다.

다들 불을 켜지 못하고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준비하고 있었다. 자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 오늘은 나도 가만히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조용해질 무렵 나도 일어나서 준비했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자고 있어서 불은 켜지 못하고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준비하는데 그 시간에 숙면이라도 취하시려는지 할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베란다 문을 쾅하고 닫아버렸다.

스페인은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자 유리창에 나무로 된 덧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덧문을 닫으면 방 안이 암흑이 되어버린다.

모두 떠난 룸에는 할아버지와 나 밖에 없어서 덧문을 살짝 열어놓고 그 빛에 의지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너무 대놓고 짜증을 내신다. 하지만 알베르게 퇴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라 나도 짜증이 났다.




111km 까미노석과 막달레나 수도원을 지나 도시를 빠져나와 약 1킬로미터 정도를 걷다 보면 중세에 만들어진 네 개 아치의 뽄떼 아스뻬로 다리를 통해서 셀레리오 강을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서 까미노는 과수원과 목장 사이의 평화로운 숲길로 이어진다. 오래된 기찻길을 건너서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다리를 건너면 목가적인 마을, 가스뜨로 데 빠레데스다.

까미노는 비레이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아스팔트로 포장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수도원의 유적이 남아있는 마을 바르바데로다. 바르바데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옆에 친절하고 소박한 알베르게가 있다.




Barbadelo (546M)는 중세시대에 수도원을 중심으로 번성했었지만 지금은 오래된 수도원의 유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수도원 때문에 바르바데로는 O Mosteiro, 수도원이라고도 불린다. 수도원의 유적에는 현재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요새의 약간 부분만 남아 있다. 팀파눔에는 어떤 남자가 장미와 십자가로 둘러싸인 채 팔을 펼치고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장면이 템플 기사단의 입회자가 로사끄루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Iglesia de Santiago
산띠아고 성당은 갈리시아 지방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적인 성당이다. 강인해 보이는 탑과 팀파눔과 주두의 부조가 돋보인다. 성당 안에는 순례자 산띠아고의 상이 있다.




순례자 산띠아고 조각상이 있는 성당을 지나면 바르바데로에서 렌떼까지는 1km 정도이다. 마을 출구에서 부드러운 오르막을 걸어가면 멀리 아름다운 오르비오 산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내 까미노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왼쪽으로 만들어진 흙길을 따라 렌떼에 도착하게 된다. 바르바데로에서 페레이로스까지는 렌떼를 포함해서 메르까도 다 세라, 뻬루스까요, 꼬르띠냐스, 라반데이라, 아 브레아와 모르가데 같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마을을 통과하여야 한다.

렌떼 출구의 떡갈나무 숲을 통과하는 까미노를 지나면 곧바로 메르까도 다 세라에 이른다. 평범해 보이는 뻴레그린 다리를 건너면 오래된 물레방아를 지나게 된다. 물레방아 앞에서 까미노 싸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사리아에서 뽀르또마린까지 이어지는 C-535 도로를 건너게 된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시원한 떡갈나무 숲 사이에 있는 뻬루스까요에 도착한다. 마을을 빠져나와 커다란 떡갈나무가 자라 있는 오솔길을 지나가면 멀리 직사각형의 곡식 창고가 흩어져있는 꼬르띠냐스가 보인다.

꼬르띠냐스의 출구에서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걸으면서 까미노 사인을 신중히 따라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라반데이라로 향하는 까미노에는 오래되고 커다란 밤나무가 순례자를 맞이한다.

라반데이라와 아 브레아에 이르는 길은 돌멩이 투성이의 너덜지대와 시내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순례자의 발바닥과 무릎을 괴롭힌다.

아 브레아 출구의 농장을 지나면 페레이로스에 도착하기 전에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100km가 남았다는 까미노석을 만나게 된다.




10시 20분쯤 100km라고 새겨진 까미노석이 보였다. 갈리시아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가 있는 지방답게 산띠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해 주는 까미노석이 길 가에 세워져 있는데 비석처럼 생긴 까미노석엔 주변의 마을 이름과 남은 거리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100km 남았다는 까미노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하는데 이 까미노석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어서 마을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고 온갖 낙서만이 가득했다. 누군가 빨간펜으로 써넣은 가짜 100km 까미노석도 부근에 있으니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시원한 샘물에서 휴식을 취한 뒤 모르가데까지 걸어가면 페레이로스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숲은 로이오 강의 계곡까지 펼쳐져 있다.

로이오 강의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페레이로스는 중세의 순례자들에게 꼭 필요하고도 훌륭한 대장간이 많았던 곳이다. 페레이로스에 이르기까지 길게 이어지는 상쾌한 숲길은 신비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페레이로스에는 순례자를 유혹하는 수제 세공품을 파는 상점과 맛있는 음식을 파는 바르가 있다.




Ferreiros (659M)는 전형적인 갈리시아의 마을로 로이오 강의 계곡을 따라 조성된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중세부터 순례자들에게 뽀르또마린에 도착하기 전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마지막 마을이었고 아직까지도 순례자들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있다.

마을의 이름인 페레이로스는 이 마을에 옛날부터 순례자들을 위한 Herreria, 대장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마을을 지나는 순례자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의 순례길을 위해서 이 마을에 머물면서 신발을 수선하고 징을 박고 말의 편자를 갈고 갑옷을 수선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을 지나가기 이전에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100km가 남았다는 유명한 까미노석을 보게 된다.

Iglesia Santa María de Ferreiros
원래 Mirallos 라는 마을에 있던 산따 마리아 데 페레이로스 성당은 18세기 말에 성당의 돌을 하나씩 하나씩 옮겨서 페레이로스로 이전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을 보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자의 머리와 농부의 도끼 모양의 장식이 되어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내리막길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을 가지고 있는 산따 마리아 데 페레이로스 성당을 지나면 특별하게 힘든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고 떡갈나무와 밤나무 숲 속의 그늘에서 편안히 걸을 수 있다. 루고 지방을 통과하는 까미노에서 가장 쾌적한 구간으로 비옥한 땅과 향기로운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미라요스, 아 뻬나, 아스 로사스, 모이멘또스, 몬뜨라스, 아 빠로차와 비라차와 같이 작은 마을을 지나야 한다.

미라요스는 페레이로스와 거의 붙어있는 마을이다.

아 뻬나를 향하는 길에는 마을 사람들이 부활절 축제의 행진 때 산띠아고 성인의 성상을 놓고 쉬는 장소가 있다.

아 뻬나를 지나 아스 로사스로 가는 아스팔트 포장길 주위에는 소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고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모이멘또스가 나온다.

모이멘또스는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을 이어가는 전형적인 돌들로 만들어진 집들과 성당 건물이 있다.

시멘트로 대충 만들어져 있는 십자가상을 따라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진 내리막을 내려가면 몬뜨라스다.

몬뜨라스에서부터는 미뇨 계곡을 쫓아가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아 빠로차에 도착하기 조금 전부터 멀리 커다란 미뇨 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빠로차를 거쳐 단단한 흙으로 만들어진 까미노를 걸으면 비라차다.

비라차에 다다르면 강폭이 넓은 미뇨 강 맞은편으로 벨레사르 댐 때문에 도시 자체를 온전히 이동했다고 알려진 뽀르또마린이 보인다.

소나무 숲 사이로 만들어진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 미뇨 강 위의 긴 다리를 건너 계단을 통해 언덕을 오르면 바로 뽀르또마린이다.




Portomarín (387M)은 몬떼 데 끄리스또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마을로 미뇨 강에서 이 마을을 바라보면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다. 1966년 이 마을은 벨레사르 저수지를 건설하면서 수몰되었고 현재의 뽀르또마린은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오랫동안 건너오던 다리 역시 저수지에 잠겨 있으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은 새로운 주거지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술적 풍성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뽀르또마린은 과거와 현재의 조합이 잘 이루어진 매력적인 곳이 되뽀르또

역사적인 건축물 이외에도 뽀르또마린에서 벨레사르 저수지까지 산책과 자전거 일주를 하기에 알맞은 Paseos en Catamaran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벨레사르 저수지 주위의 길과 페레이라 강 계곡의 길에서 여러 개의 다리와 풍차 등을 보며 산책과 승마를 즐길 수도 있다. 덧붙여 뽀르또마린은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서비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맛있는 전통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뽀르또마린에서는 특히 아몬드와 밀가루, 계란, 설탕을 넣어 생일 케이크처럼 만든 Tarta de Bizcocho와 스페인의 전통 브랜디인 Aguardiente가 유명하다. 부활절에는 아구아르디엔떼를 알리기 위해 Fiesta Alquitara가 열린다. 또한 여름철에는 가까운 벨레사르 저수지에서 다양한 수중 스포츠와 레저를 즐길 수 있다.

과거 뽀르또마린은 로마인들이 미뇨 강 위에 다리를 놓았을 때부터 강가에 위치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편 알폰소 1세와 맞섰던 도냐 우라까의 명령으로 마을의 다리는 파괴되었다. 후에 이 다리는 산띠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거장 마떼오 데우스땀벤의 아버지이자 순례자 뻬드로로 불렸던 뻬드로 데우스땀벤에 의해 재건되었다. 1940년대에 스페인 역사 예술단지로 지정된 뽀르또마린이었지만 근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다리는 수몰되었지만 산 니꼴라스 요새 성당, 산 뻬드로 성당의 파사드, 마사 백작의 집, 베르베또의 궁전 등은 자리를 옮질 수 있었다.

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ás
산 니꼴라스 요새 성당은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이 12세기 말에 설립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망루가 있는 벽과 건물의 높이가 요새로서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장미창과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대성당과 매우 비슷한 외양의 정문 장식이 아름답다. 이 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24명 인물상은 산띠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거장 Mateo Deustamben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태고지 장면을 조각한 부분을 보면 성모와 천사 사이에 다산과 불멸을 상징하고 가톨릭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세 개의 솔방울이 있다. 주두 장식에는 왕관을 쓴 사람 머리에 새의 몸통을 한 동물의 부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마떼오 데우스땀벤의 아버지이자 까미노의 가장 훌륭한 건축가 Pedro Deustamben의 작품이다. 원래 성당 건축의 규칙은 제단이 있는 곳이 동쪽이나 예루살렘을 향해 있고 파사드가 서쪽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을 하나씩 옮겨 성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성당의 제단과 파사드의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이 때문에 다른 성당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빛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Iglesia de San Pedro
산 뻬드로 성당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축으로 현재에는 성당의 문을 포함한 정면 부분만 옮겨져 남았다.




갈리시아는 소똥, 산길과 더불어 단체 순례자로 기억될 것 같다. 며칠째 같이 걷고 있는 학생들 무리는 오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뽀르또마린까지 걸어왔다. 그들이 지나가고 고요함 속에 안정을 겨우 되찾나 싶으면 단체로 쉬고 있는 그들을 지나치게 되고 발이 빠른 그들이 어느새 쫓아와 나를 앞질러 가곤 했다. 마을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조용한 까미노는 힘들었다.

산띠아고 순례길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 직전의 100km 이상만 걸으면 완주 증명서를 주기 때문에 이 길에는 유독 사람이 많았다. 특히 방학이나 휴가철에 접어들면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많아져서 자신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알베르게 전쟁도 치러야 한다.

그렇게 산만한 하루를 보내고 뽀르또마린 공립 알베르게에 등록하니 13시 반이다. 뚱보 아저씨와 같은 방이지만 자유 배정이라서 먼저 온 그들이 방 안쪽에 단독으로 떨어져 있는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간 부족으로 인해 이곳에도 매트리스가 붙어있는 침대가 많았고 남은 침대는 붙은 침대뿐이라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 침대를 옮겨 사이를 떼어놓았다. 짐을 풀자마자 단체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침대는 가득 찼다.

여기도 WIFI는 안된다. 걸으면서 필요한 것은 취사할 수 있는 주방과 WIFI였지만 갈리시아 공립 알베르게는 그게 안되어 있다. 시설 좋은 주방은 실질적인 사용은 못하게 해 두었고 인터넷은 사용할 수 없었다. 다음 날의 지도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이 필요했지만 갈리시아에서는 화살표만 충실히 따라가길 바라나 보다.

씻고 사과나무가 있는 뒷마당에 빨래를 널어두고 마을 산책을 나갔지만 순례길 위에서의 관광은 즐겁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90km도 안 남았다!




Sarria→Portomarín 22.4km

○Sarria (443M)
→111.0km
●As Paredes
●Vilei
→108.0km
●Barbadelo (546M) 4.5km
-Iglesia de Santiago
●Rente (592M) 0.8km
●Peruscallo (629M) 3.9km
●Cortinas
→102.0km
●Lavandeira Casal
→101.5km
●A Brea
→100.0km
●Morgade (644M) 2.8km
●Ferreiros (659M) 1.1km
-Iglesia Santa María de Ferreiros
→98.5km
●A Pena
●Cotarelo Mercadoiro (540M) 3.7km
→95.0km
●A Parrocha (486 M) 1.9km
→93.0km
●Vilachá (540M) 1.3km
●Río Miño
→90.0km
●Portomarín (387M) 2.4km
-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ás
-Iglesia de San Pedro
→89.5km

93.0km/775.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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