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ía de la Plata #95

Hospitalera en Madrid

by 안녕
Lunes, 09 de Junio


21°~34°
7시 반, 눈이 떠졌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사람이 싫어지니 방법이 없었다.

떠나는 한국인들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찾는 사람이 나일지도 모르지만 착각이겠거니 싶어서 굳이 나가지 않았다.

9시, 모두가 떠나고 알베르게가 조용해졌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제 이틀 남았다고 하는 걸 보니 오늘부터라도 자신들이 청소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자신들이 대신 청소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가 맡은 구역은 대신 청소해주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제는 누가 청소했을까 싶어 청소 일지를 보니 역시 디에고가 청소했다.

비어있는 사인지를 보니 그동안 내가 청소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수에리가 뒤죽박죽 써놓은 날짜를 제대로 수정하고 사인을 했다.




오늘은 나도 그들처럼 청소가 끝나고 바로 샤워했다.

그들은 오늘따라 청소가 굼떴고,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청소가 끝나더라도 외출하기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까르푸 마켓에 잠깐 다녀왔다.

항상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지만 돌아오니 알베르게 문이 닫혀있었다. 웬일인지 불길했지만 설마 했다. 초인종을 눌렀다. 열리지 않았다.

다들 외출했나 보다. 30분 사이에 청소 마무리하고 샤워하고 단장하고 외출했다고? 열쇠 들고 일부러 나갔나 싶어 분노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래서 디에고에게 원격으로 문을 열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빨리 읽지 않았다. 이전에 쓰던 도어록 어플을 작동시키니 만료되었다고 뜬다. 시간이 지나자 막막해져서 디에고에게 보이스톡을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디에고가 톡을 읽든지, 그들이 돌아오든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땡볕에 서있는데 10분 후, 갑자기 문이 열렸다.

수에리가 서있었다. 안에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도 일부러 모른 체 했단 말이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쳐다보길래 나도 쳐다봤다.

빵을 먹을 기력이 없어서 사과를 먹었다.




Suely가 자신은 물걸레 청소기를 돌릴 거고 Jean은 청소기를 돌리기로 했다며, 나에게는 화장실 청소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길래 그러자고 했다.

주방도 자신들이 청소할 거니까 나에게는 화장실 두 곳만 청소하면 된다고 했다. 청소기로 화장실 바닥 돌리고 물걸레용 청소기 달라고 하니까 수에리가 그건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자신들은 전날과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화장실 바닥은 자신들이 할 거니까 변기 세면대 거울만 청소하면 된다고 했다.

주방 청소는 자신들이 한다고 했는데 바닥 청소만 했길래 나머지는 내가 청소했다.

청소는 순탄하게 되는 것 같았지만,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면 수에리가 물걸레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니까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청소하다 말고 수에리의 청소가 끝날 때까지 바깥에 우두커니 서있는 게 매일 반복되어서 어느 날은 항의하니까 잠시 산책을 다녀오라고 했다. 청소하다 말고 어디에 산책 다녀오라고?

항의한 다음날, 화장실 바닥 청소는 나에게 하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니까 무선 물걸레 청소기 쓰지 말고 막대 걸레로 바닥 청소하라고 했다.

무선 청소기를 쓰지 못하게 했지만 사용해 본 적도 없으니 알겠다고 했다.

청소일지. Jean이 오기 전엔 수에리가 자신과 제 이름을 같이 적었지만 그 뒤로는 수에리가 사인하라는 날에만 나에게 이름을 적게 했는데 날짜와 시간은 본인이 적고 나에게는 이름만 적게 했다. 이유는 모른다.

오늘 보니까 날짜도 밀려 썼고 사인도 부분적으로 빠져서 펜으로 죄다 수정하고 사인했다.

그리고 나갔다 왔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안 열어주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그들이 돌아오길 계속 밖에 서있었더니 10분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다.

조만간 떠날 사람이 따지고 들어봐야 나만 손해란 생각에 조용히 있었고, 남은 이틀도 저들에게 따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라...

밤에 끙끙대더라며 약국 다녀오라고 할 때도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고작 몇 시간 후에, 병원에는 왜 안 가냐고 의료보장이 안되어서 못 가는 거냐고 따지고 드는 걸 보고 두 손을 들었다.

나보다 그들이 기침을 먼저 시작했고, 감기보다 더운 게 싫은 Jean은 창을 여는 쪽에 찬성이라 밤에만 창문 닫아달라는 것도 안 통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제는 눕자마자 짜증을 내면서 창문을 열었다. 나는 무서워서 닫을 생각조차 못했고 새벽에 열이 올라서 아침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어제 아침 인사하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도 수에리는 따라와서 지켜보더니 화장실 불을 끄고 가버렸다. 소리 지를 뻔했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내내 숨도 못 쉬고 있었다.

31일에 나를 처음 보자마자 한 질문이, 가족이 지원해 준 돈으로 지금 여기에 온 거냐고 했었다. 무례하다고는 느꼈지만 초면이라 웃고 넘겼는데 그때 따지고 들 걸 그랬나 보다.

수에리가 외출하길래 청소가 끝난 줄 알았는데 아무도 하지 않아서 직접 청소했단다. 미안했다.

디에고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있었지만 자원봉사자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에게도 아무 말하지 못하겠구나 싶어서, 괜히 미안했다.




돌아온 Jean이 식사 준비를 했다. 같이 먹겠냐고 해서 놉!

13시 바게트에 고다치즈를 올려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간신히 장을 비웠다.

초인종이 울려서 문을 열었다. 그때 Jean이 나와서 인사했다. 그리곤 들어와서 얘기하길래 지인인가 싶었더니 봉사자 숙소에 데리고 들어왔다.

놀라서 누군데 우리 숙소에 데리고 들어오냐고 하니 대꾸를 안 한다. 그래서 나가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도리어 나에게 네가 누군데 자기에게 나가라고 하냐며 화를 낸다. 그제야 Jean이 그 사람을 데리고 나갔다.

스페인어가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는 건 그들 마음이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봉사자 숙소에 데리고 들어오는 건 좀...

누군지 모르는 그 사람이 나가고 Jean에게 얘기하니 순례자가 아니어서 괜찮다고 했다. "여기 네 방 아니야!" 하니까 자기 친구라서 괜찮단다. 인사만 나누면 다 친구란다. '너는 그 사람 이름도 모르잖아!'

그 사람들은 지나가는 관광객이었고, 아침에 왔었는데 아직 오픈 안 했다고 한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일리가 없었다.

혼자 와서 질문하는 여자 관광객과 전화번호 교환하는 거야 제 맘이지만 22시 되기도 전에 순례자들은 방으로 들여보내고 관광객과는 23시까지 리셉션에서 큰소리로 떠들면서 얘기하는 게 맞는 걸까?




한국인 목소리가 들려서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했는데 안 받아준다. 한국인이 아니었나 보다.

머쓱해서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도미토리룸 사바나 수거함에 쓰레기 버리는 걸 목격했다. 익스큐즈미 하면서 따라가니 주방으로 가셨다.

그런데 같이 체크인한 아주머니와 한국말로 얘기하고 있었다. 일행은 아니었고 아침에 같이 수에리에게 봉변을 당해서 전우가 된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다시 와서 정보를 묻자 Jean이 나를 부른다. 영어가 되는 분인데 굳이 왜 불렀나 싶었더니 이탈리아 여성이 체크인 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약을 얻었다.

이제 이틀 남았는데 무언가 무섭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아프다고 연락하시는 어머니, 이제 퇴원했다며 언제 오냐고 물어서 14일, 하지만 다시 스페인에 온다니까 왜냐고 묻는다. 여기서 살려고 그런다고 하니 아무 말이 없었다.




Jean이 독감에 걸렸다며 나에게 감기약을 달라고 했다. 맡겨놓은 것처럼 당당하게 요구하니 어이가 없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있어도 줄 생각이 없지만 약이라서 못 줘! 내가 새벽마다 창문을 닫아서 그나마 너희들이 그동안 무사했던 거야! 어젯밤에는 내가 창을 닫아주지 않아서 네가 감기에 걸린 걸 거야.'

4박 예약한 한국인이 현금이 없다고 이따가 주겠다며 나갔는데, 저녁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밥 먹고 왔단다.

숙박비는요? 하니 돈을 못 찾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어쩔 건데 하는 분위기다. 성격은 시원한데 말투가 굉장히 무섭다. 디에고가 오고 있다고 했다.

수에리는 종일 도미토리룸에서 노트북 하다가 나온다. 감기 환자 두 명을 피해 도망가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게 협조를 하지 그랬니?




20시 수에리와 교대했다. 그런데 리셉션이 비어있었다. Jean도 없더라니 갑자기 둘이서 접시 더미를 들고 왔다.

처음에는 사 오거나 기부받은 줄 알았지만 갑자기 어디서 가져온 건가 싶었더니 길에서 주워온 거란다.

약국 갔다 오던 Jean이 길에서 버려진 접시를 보고 수에리에게 얘기했단다. 디에고가 왔는데 좋아한다.

내일이나 모레, 언제쯤 접시를 사 오면 좋을지 고심 중이었는데, 이것도 알베르게의 운이거니 싶다.

새 접시를 기부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내가 떠나고 수에리가 사용할 거라 생각하니 괜히 심술이 났다. 그렇다고 수에리가 떠난 후에 사용하라고 하기에는 웃긴 선물이라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치약이 아슬해서 아껴 쓰고 있는데 이도저도 아니다. 떠날 날이 다가온다.




한 아주머니가 Jean에게 무얼 부탁하면서 보답으로 감기약을 주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Jean은 거절하고 약을 사러 갔었다.

아주머니가 나에게 오더니 감기약을 줄까요? 물었다. 나에게 준다는 말인 줄 알고 감사합니다, 했는데 내가 아니라 감기에 걸린 남자에게 준다는 말 같았다. 옆에서 내막을 다 듣고도 그런 말을 하니까 순간 멍했던 것 같다.

그래, 주는 거야 맘이지. 한국인의 정을 어쩌겠어? 그런데 외국인에게 약을 줬다가, 밥을 먹고 탈이 나도 약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지 뭐.

하지만 그는 이미 약을 사 왔다. 나에게 약을 달라고 한 것은 내가 먹고 있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달라고 하지 않은 사람이 주는 약을 선뜻 먹을 사람은 없었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일단 양이 많다. 그걸 한꺼번에 먹기엔 불안할 수 있었다.

침대로 돌아와서 누웠다. 이미 양치는 했지만 만사나 수모 한 모금에 약을 먹었다. 께소 보카디요를 먹고 싶었지만 넘기기도 힘들었다.

Jean이 커피를 사다 두었다고 생색을 냈나 본데, 디에고가 디아 커피는 맛이 없다고 슬쩍 말했다. 퇴근한다고 해서 나갔는데 한국인 숙박비는 송금받았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다시 조용해지나 싶더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방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조용해졌다.



Jean은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2시 수에리가 들어오더니 오늘은 창문을 꼭 닫았다.

나를 위해서는 창을 닫지 않더니, Jean을 위해서는 창을 닫아주나 싶었더니, 수에리도 훌쩍이고 있었다.

'쌤통이다! 내 감기가 옮은 거라고 우기기만 해 봐."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니? 뒷일은 생각하지 마. 나는 심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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