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41

Palas de Rei→Ribadiso da Baixo

by 안녕
Day 39.
Saturday, July 4


아르수아까지 가려면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눈을 뜨니 벌써 6시 반이다. 오늘은 어쩔 수없이 리바디소 다 바이소까지만 가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 준비하고 7시쯤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65.0km 까미노석이 반긴다. 오늘도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다.




빠라스 데 레이에서는 평지 없이 계속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길과 계곡이 이어져 순례자의 발걸음은 절로 무거워질 것이다. 이 루트에서 루고 땅을 지나 꼬루냐 땅을 밟게 되어 변화된 풍경과 지방색을 느껴볼 수 있다.




까미노는 빠라스 데 레이의 라 뜨라베시아 도 뻬레그리노 거리의 샘터에서 다시 시작된다. 까르바얄 (64.5km) 거리에 들어서기 전 까미노는 오른쪽으로 빠져 알데아 데 리바, 가이올라 데 리바 지역을 가로지르게 된다. N-547 도로를 건너 라구아 연못을 지나면 산 시아오 도 까미뇨로 내려가게 된다.

산 시아오 도 까미뇨에서 까미노는 아스팔트 포장길로 바뀐다. 유칼립투스 나무와 소나무가 터널처럼 드리워진 시원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빰브레 강을 만나게 되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평범한 다리를 건너면 인적이 없는 뽄떼깜빠냐에 도착한다.

까사노바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또한 이 구간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60.5km가 남았다는 까미노석을 만날 수 있다.




Casanova (485M)는 빽빽한 떡갈나무 숲 가운데에 목가적인 풍경을 간직한 루고 지방의 마지막 마을이다. 오래된 학교를 고쳐서 순례자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까사노바를 지나면 오래된 로마 가도가 나오며 이 길을 따라가면 꼬루냐 지방이 나온다. 라 꼬루냐는 산띠아고로 가기 위한 마지막 지방이다.

까사노바 근처의 뽀르또 데 보이스 (58.5km)는 엔리께 데 뜨라스따마라의 군대와 잔인 왕 뻬드로 1세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레모스 백작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이 전투는 엔리께 데 뜨라스따마라의 승리로 끝났으며 레모스 백작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레모스 백작은 스페인에서 조국과 왕에 대한 충성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 인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까사노바에서 까미노 데 마또를 지나 2km 정도 오솔길을 걸어 내려가면 뽀르또 강을 만나게 된다.





CORUÑA
꼬루냐는 헤라클레스가 거인 헤리온을 물리친 세상의 끝이면서 전설적인 켈트인들의 왕이었던 브레오간이 태어난 마법 같은 곳이다. 풍성한 문화와 신비주의가 섞여서 오래된 풍습으로 남아 있으며 거석 문화인 Dolmen de Dombate, 페니키아 인의 바레스 부두, 켈트인의 바로냐 등 특이한 거주지 형태가 남아있기도 하다. 로마의 정복자, 바이킹, 전설에 등장하는 해적, 다양한 양식을 전달한 예술가 등은 꼬루냐 지방의 풍부하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역사, 문화, 예술을 만들었다.

꼬루냐는 광활한 대양을 향한 진정한 발코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곳의 해안은 암벽 타기를 즐기는 클라이머와 서핑족들로 넘쳐난다. 반대로 미라도르 데 비시아 데 에르베이라 지역에는 외부인의 발길이 뜸한 바다와 어부들의 평온한 일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항구와 작은 섬 등이 있다. 또한 리아스 바이샤스와 두나르 데 꼬루베도 그리고 시마 아 꾸로따의 황홀한 자연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릴 수도 있다. 덧붙여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대서양 식 숲이 있는 프라가스 도 에우메 자연공원이 있다.

꼬루냐엔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로마식 등대인 Torre de Hercules, 헤라클레스의 탑이 있고 도시의 거리에는 로마네스크의 풍취가 흐르며 해안선을 따라서 마리띠모 산책로와 마리아 삐따 광장이 있다.

빠드론은 19세기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작가 로살리아 데 까스뜨로와 198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까밀로 호세 셀라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유명하다. 순례자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이 문학 여행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꼬루냐 지방의 주요 도시는 꼬루냐와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이다. 꼬루냐의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장엄한 대성당에는 다양한 예술 양식의 황홀한 조화를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 또한 산띠아고 대성당은 가톨릭 신앙의 상징이면서 로마네스크 미술의 절정을 이룬 곳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곳의 해산물은 세계 최고다. 해산물 수프, 파드론식 고추요리, 스페인식 만두인 Empanadas de Arteixo, 이집트 콩인 가르반소와 무를 넣은 돼지다리 요리가 허기진 순례자들을 유혹한다. 후식으로는 떼띠야 치즈와 아르수아 치즈, 그리고 순례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Tarta de Santiago가 있다.

꼬루냐의 다양한 해산물과 어울리는 마실 거리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훌륭한 백포도주 Albarino가 있다. 꼬루냐에서는 열리는 축제와 행사에는 가톨릭적인 요소와 이교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가장 특이한 축제로는 꼬루냐 지방 곳곳에서 열리는 Rapa das Bestas가 있는데 산 페르민 축제와 더불어 스페인의 남성미를 뽐내는 이 축제에서는 한 해 동안 산에서 자유롭게 살던 말을 잡아들여 가두고 갈기를 자른다.




완만한 경사로를 걸어 우요아 강가의 작은 마을인 깜빠니야 (58.0km)를 지나면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아스팔트 포장길을 지나 꼬루냐 지방의 첫 번째 마을인 오 꼬또 (57.5km)에 도착하게 된다.

오 꼬또에서 오래된 로마 길을 걸어 500미터만 가면 꼬루냐 지방의 아름다운 전원마을인 레보레이로에 다다르게 된다.




O Leboreiro (445M)는 작은 마을로 라 꼬루냐 지방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이곳의 깨끗한 로마 가도는 지친 순례자를 반겨주고 양 옆의 견고한 집들과 오래된 십자가상은 매력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마을에서 나오다 보면 돌로 포장된 오래된 길과 과수원, 세꼬 강을 가로지르는 중세 시대의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된다. 56.5km 까미노 표지석이 있다.

레보레이로라는 마을의 이름은 Campus Levurarius 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이 말은 산토끼의 들판이라는 뜻인데 이 지역에 산토끼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La Iglesia de Santa Maria de las Nieves
산따 마리아 데 라스 니에베스 성당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첨두아치 문의 팀파눔에는 아름다운 성모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으며 성당의 내부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그림과 요염한 성모로 알려져 있는 중세 시대의 성모상이 있다.

Cabeceiro
까베세이로는 가난한 이들의 오레오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창고 구조물이다. 현재에는 레보레이로에 남아있는 것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둥 위에 버드나무 가지로 엮은 커다란 광주리를 올리고 짚으로 덮은 형태로 전통적으로 식량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다.

성모의 샘터
전설에 따르면 원래 산따 마리아 데 라스 니에베스 성당 자리에 낮에는 신비로운 향이 나는 샘물이 솟아 나왔고 밤에는 신비로운 빛이 퍼져 나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생각했고 그 주변을 파헤치자 아름다운 성모상이 나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성모상을 마을의 성당으로 옮겼으나 다음 날 성모상은 원래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계속해서 성당으로 옮겨도 계속해서 샘 옆에서 성모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 샘터에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샘터에서 발견한 성모상과 똑같이 생긴 성모상을 만들어 마을 성당의 팀파눔에 놓았다. 그 후 성모상은 움직이지 않고 제단 뒤에 계속 자리 잡았다. 레보레이로 사람들은 아직도 어두운 밤에 아무도 없을 때 성모가 샘물에 나타나 목욕을 하고 머리를 빗는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레보레이로 출구의 십자가상을 지나 까미노를 따라 세꼬 강을 건너면 아 마그다레나 (55.5km)를 지나면서 굉장히 큰 공장지대를 지나게 된다. 까미노의 주위에는 부근의 조림사업에 참여한 인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여기를 지나 푸렐로스 강 쪽으로 내려와 4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를 건너면 푸렐로스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걸어 조금만 더 가면 멜리데에 도착하게 된다.

꼬루냐의 도시인 멜리데는 순례자를 위한 모든 편의 시설을 제공한다. 멜리데와 아르수아는 경쟁적으로 순례자를 위한 시설에 투자를 하고 있어서 훌륭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Melide (456M)에는 꼬루냐 지역에서 가장 위풍당당한 성과 오래된 광장이 있다. 주요 산업은 관광객과 순례자를 위한 서비스로 삼고 있으며 이 지역의 경제 발전에 중추 역할을 하는데 역사적인 유산과 풍성한 먹을거리가 특징이다.

멜리데는 Camino de Francés와 Camino de Oviedo가 만나는 곳이다. 중세의 많은 순례자들은 오비에도의 Catedral de San Salvador에 있는 Camara Santa의 유물을 경배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 전성기의 까미노 데 오비에도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병원이 많이 있었고 마을들은 수많은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산띠아고는 가고 살바도르에 안 가는 건 주인은 내버려 두고 하인을 섬기는 것이다!” 라고 산띠아고 성인을 모욕하다시피 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Iglesia de San Pedro
산 뻬드로 성당은 14세기에 순례자를 위한 상티 스피리투스 병원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부속 성당이다. 고딕 양식의 요소와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추가되고 증축되어 산 뻬드로 성당이 만들어졌다. 현재 정확히 주인을 알 수 없는 중세 시대의 무덤과 봉헌화 등이 보존되어 있다.

Iglesia de Santa María
산따 마리아 성당은 원래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하나의 신랑과 반원형의 후진부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의 문은 두 개로 아름다운 부조가 조각되어 있으며 성당 내부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

Cruceiro
갈리시아에 있는 십자가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14세기에 세워진 이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는 산띠아고 대성당의 영광의 문에 있는 그리스도 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뿔뽀 먹으며 하루 쉬고 싶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라도 일정을 미루고 싶긴 했으나 또 다른 문제가 생길지 몰라 그냥 걷기로 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근처 성당으로 피신했는데 잠시 쉬다 세요를 받고 나오니 그새 해가 비쳤다. 시간은 이미 12시가 넘었지만 아르수아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으나 침대수가 적은 알베르게라 괜한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순례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멜리데를 뒤로 하고 N-547 도로를 건너 50.0km 까미노석 옆으로 오래된 십자가상이 있고 바로 옆에는 산따 마리아 성당이 있다. 산따 마리아 성당에서 사람들이 세요를 받고 있었지만 이미 받은 세요가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아침에 지나쳐 온 까르바얄과 동명의 까르바얄 (49.5km) 마을이 또 있었다.

까따솔 강을 지나는 다리를 넘어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한 길을 지나면 떡갈나무, 자작나무, 오리나무가 서 있는 순례자 쉼터가 나오고 라이도에 도착한다.

N-547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까미노를 걷다가 빠라비스뽀 (46.8km)로 내려가면 발데르베 시내를 만나게 되고 여기에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바로 보엔떼가 나온다.

보엔떼 강을 향해서 내리막을 내려와 계곡을 거치면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나온다.

언덕의 끝에는 산띠아고 대성당의 석회를 만들기 위한 가마가 있었던 까스따녜다가 있다. 까스따녜다는 순례자들을 위한 시설이 적은 마을이다. 그러나 중세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시설이 많고 산띠아고 대성당을 짓기 위한 석회 가마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항상 순례자로 넘쳤던 활기찬 마을이었다.

까스따녜다에는 산띠아고 대성당을 짓기 위해 필요한 석회를 굽는 가마가 있었다. 중세의 순례자 전통 중에는 뜨리아까스떼야의 채석장에서 돌을 가져와 가스따녜다의 가마까지 옮겨 놓는 것이 있었다. 순례자들은 대성당을 짓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돌을 옮기는 것은 성인을 위해 희생 봉헌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순례길을 비밀스러운 의식의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 돌이 현자의 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현재에도 많은 순례자들이 자신의 집 근처에서 가져온 조그만 돌을 까미노에서 만나는 기념탑이나 십자가상 주위에 가져다 놓곤 한다. 이 조용하고 역사적인 마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은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리베이랄 강으로 향하는 내리막을 내려가면 작은 마을인 리오 (42.2km)를 지나게 되고 주위에는 갈리시아의 전통적인 곡식창고인 오레오를 볼 수 있다.

꼬우또 데 도로냐 산을 지나 보렐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넌다.

아름답게 펼쳐진 이소 계곡을 지나 초목이 자란 길, 목동이 가축을 돌보는 곳, 검은 돌로 기와를 얹은 시골집을 따라 이어진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 사이를 걷다 보면 순례자 병원을 개조한 알베르게가 있는 리바디소 다 바이소에 도착하게 된다.




Ribadiso da Baixo (305M)는 이소 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데, 나바라 지방의 뜨리니닷 데 아레의 순례자 숙소처럼 다리와 순례자 숙소가 가까이 있다.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한 강물이 지친 순례자들을 달래준다. 근처에 40.4km 까미노 표지석이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단체 순례자를 따라다니던 급식차량으로 인해 알베르게 간판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한참 후에야 무언가 잘못되었단 걸 깨달았고 되돌아오기 싫어 그냥 아르수아로 갈까 고민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되돌아왔다.




15시 반, 리바디소 다 바이소 공립 알베르게에 40번째로 체크인했다. 아르수아로 갔으면 침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래쪽 침대를 달라하니까 아래 룸의 위쪽 침대를 준다. 순례자 병원을 개조한 오래된 건물인데 마당에 소똥 자국이 보여서 설마 했더니 소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샤워실은 수압이 너무 약해서 불편했다. 침대에 누워서 강 가와 다리가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굳이 다시 오고 싶은 알베르게는 아니었다. 이곳에 나와 같은 거북이들은 다 모여있었다.

빨래가 안 마를까 걱정했는데 바람이 불어서 잠깐 비치는 햇볕에 그럭저럭 말랐다. 갈리시아의 어둡고 습한 날씨 탓인지 몰라도 계속 우울했다. 이제 40km 남았다.




Palas de Rei→Ribadiso da Baixo 25.8km

○Palas de Rei (548M)
→65.0km
●Carballal
→64.5km
●San Xulián (463M) 3.4km
●Ponte Campaña (423M) 1.1km
●Casanova (485M) 1.2km
→60.0km
●Porto de Bois
→58.5km
●Campanilla
→58.0km
《Coruña》
●Coto (476M) 2.8km
→57.5km
●Provancia A Coruña
●Leboreiro (445M) 0.7km
-La Iglesia de Santa María de las Nieves
-Cabeceiro
→56.5km
●Disicabo
→56.0km
●Magdalena
→55.5km
●Melide (456M) 5.6km
-Iglesia de San Pedro
-Iglesia de Santa María
-Cruceiro
→51.0km
●Carballal
→49.5km
●Parabispo
→46.8km
●O Raído (451M) 3.2km
●Boente (393M) 2.5km
●Peroxa
→45.5km
●A Castañeda (380M) 2.2km
●Rio
→42.0km
●Doroña
●Ribadiso da Baixo (305M) 3.1km
→40.0km

42.2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Ribadiso da Baixo -6.0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Camino de Santiago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