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마치면 산띠아고 주교회에서 보증하는 순례 인증 증서인 Compostela를 발급받게 된다. 세요가 찍혀있는 끄레덴시알을 Oficina del Peregrino에 제출하고 심사를 받은 후에 라틴어로 쓰인 꼼뽀스떼라를 받을 수 있다. 이때 끄레덴시알에 적혀있는 순례의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꼼뽀스떼라를 받게 된다.
피스떼라 가기 전에 알베르게 리셉시온에서 구입했던 꼼뽀스떼라 케이스를 가지고 9시 반쯤 순례자 사무소로 갔다. 긴 대기시간을 거쳐 안으로 들어갔고 빈 창구로 가서 끄레덴시알을 제출했다. 이미 지난주에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끝이 났고 이틀 전에 모든 순례가 마무리 되었음에도 오늘까지 기다렸던 것은 내 생일에 맞추어 꼼뽀스떼라를 발급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일엔 항상 집에서 혼자 보냈는데 올해는 스페인에서 보내고 싶었고 생일에 맞추어 까미노를 끝내려고 노력했다. 앞 뒤로 빼곡히 찍힌 세요를 보며 직원이 축하해 주는데 마치 생일을 축하받는 느낌이었다. 오늘 날짜가 적힌 순례 완주 인증서가 내 손으로 전해졌다. 이제 정말 끝이 난 거였다. 순례자 사무소 한편에 마련된 기념품 샵에서 조가비 모양의 5단 묵주를 샀다. 내가 나에게 전하는 생일 선물이었다. 도비야, 생일 축하해~
순례자 사무소를 나와 Praza do Obradoiro를 지나 산띠아고 대성당으로 갔다. 12시 순례자 미사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산띠아고 상 그리고 지하 묘소에 차례로 방문했다. 오늘은 한산해서 천천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사 시작 전에 순례자석 맨 앞줄에 앉아서 기다렸다. 혹시라도 아는 얼굴이 있을까 둘러보았으나 이미 어긋난 인연들은 모두 떠났을 무렵이었다.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여 인사하니 건너편에 앉는다.
순례자 미사는 매일 낮 12시에 산띠아고 대성당 대성전에서 진행된다. 미사 시작 시 환영의 상징으로 지난 24시간 동안 산띠아고에 도착해서 꼼뽀스떼라를 받은 순례자의 국적과 출발지를 낭독한다는데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꼬레아만 간신히 알아들었다.
매일 정오에 시작되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서는 Botafumeiro 강복 의식을 하기도 하는데 8명의 수사들이 힘을 다해 흔드는 거대한 은빛 향로가 대성당의 천장을 크게 비행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보따푸메이로는 은도금이 된 놋쇠로 제작된 거대한 향로 (53kg, 1.5m의 높이)로 그네를 태워 밀듯이 대성당 안을 움직이는데 tiraboleiro가 필요하다. 보따푸메이로는 20미터의 높이에 매달려 있으며 도드레를 이용하여 작동하며 속도는 시속 68km에 이른다.
보따푸메이로는 깔리스띠누스 사본(Codex Calixtinus)에 이미 Turibulum Magnum 으로 등장하는데 성당 내에 모여든 대중들을 정화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보따푸메이로 행사는 영성체 이후에 산띠아고 사도의 성가를 바로크식 오르간으로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숯과 향을 담으면 100kg이 넘는 본 성유물은 그 오랜 역사 중 두어 번의 사고를 겪었다. 1499년 7월 25일 아라곤의 까딸리나 대성당에서 밖으로 날아가 프라테리아스 광장 문에 충돌했고 1622년에는 지탱하고 있던 줄이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졌으며 20세기 들어서는 순례자 한 명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 갈비뼈와 코가 부러진 적이 있단다.
산띠아고의 해가 아닌 경우, 보타푸메이로 전통 의례를 진행하는 특정일은 주현절 (1월 6일), 부활절 주일, 예수 승천일, 산띠아고의 끌라비호 전쟁 출현일 (5월 23일), 성령강림절, 산띠아고 축일 또는 산띠아고 순교일 (7월 25일), 성모승천 대축일 (8월 25일), 만성절 (11월 1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12월 8일), 성탄절 (12월 25일), 산띠아고 유해 이동일 (12월 30일)이다.
위에 언급된 날짜에 올 수 없는 경우에는 순례자 사무소에 신청을 하고 금액을 지불하면 보따푸메이로 행사를 볼 수 있다.
오늘은 생일이기도 해서 보따푸메이로 전통 의식을 꼭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소원이 이루어졌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향로를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구경했다.
나의 공식적인 순례자 미사 시간이었지만 이미 여러 차례 다녀간 대성당이라 그런지 울컥하진 않았지만 내가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처음 마드리드에 왔을 때 바르셀로나에 계시는 어느 수녀님께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서 예정에 없던 바르셀로나에 갔었다. 다음날은 바쁜 수녀님 대신 현지 교민 한 분이 수녀님의 부탁으로 하루 동안 나를 안내해 주기로 했고 유명한 수도원에 데리고 간다는데 거기가 어딘지는 몰랐지만 가자고 하니 함께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혼자 가라고 나를 버스에 태워버렸다. 어딘지도 모르고 정보도 몰라 불안해하니 도착하면 버스 승객들을 따라가면 된다고 안심시켰으나 그 대형버스에 승객은 나 하나뿐이었고 기사가 건네주는 캔디도 불안해서 먹지 못한 채 도착할 때까지 긴장했었다. 어느 산 정상에 버스가 멈추었는데 자욱한 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다. 기사는 17시까지 오겠다며 주차장에 내려주고 가버렸고 승객이 없으니 따라갈 사람도 없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그 흔한 안내판도 찾을 수 없었다. 거기서 불안에 떨며 한참을 서있다가 넓은 주차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데 어린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막 도착했다. 내리는 아이들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따라갔다.
성당에 앉아있는데 마침 미사가 시작되었고 미사가 시작되자 긴장이 풀리면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눈물을 닦아내고 그치려고 노력했지만 어느새 통곡을 하고 있었다. 관광을 시켜준대서 아침에 일어났을 뿐인데 영문을 모르는 일들이 벌어져 지금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혼자 있는 상황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을 성당에 우두커니 앉아있었고 오후 세시쯤 날씨가 개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주변의 엄청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이 바로 몬세랏이었다. 뒤늦게 안내도를 발견했고 산을 따라 이어진 주요 명소에 가보기로 했다. 네시 반까지는 주차장에 가야 해서 돌아올 시간을 확인하며 산을 따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시간이 부족해서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가진 곳 중의 한 곳임은 틀림없었다.
까미노에서의 일들이 생각날 줄 알았는데 3년 전 그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생일이니까 진수성찬을 먹으려고 생각했으나 먹는 게 귀찮아졌다. 디아에 가니 갈리시아 파이가 있어서 엔사라다 미스따와 같이 사 왔다.
알베르게에 돌아와서 씻고 빨래를 해서 널다가 옷핀 하나를 떨어뜨렸는데 모레에 파묻혀서 안 보였다. 이젠 없어도 그만이라 그냥 돌아왔으나 무언갈 잃어버리면 계속 찝찝할 것 같아 다시 가서 찾아보았고 한참만에 기어이 찾아냈다.
혼자 먹기 싫은 날이기도 하고 혼자 먹게 될 아주머니가 신경이 쓰여서 같이 저녁 먹으러 내려가자니까 나중에 혼자 먹겠다고 거절하신다. 식당에 내려가서 갈리시아 파이와 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있으니 아주머니도 그사이 식당에 내려와서 조용히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커플이 사라진 옆 침대엔 새로운 서양인이 체크인했는데 그에게서 냄새가 너무 났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엔 오물이 잔뜩 묻어있었는데 맨발로 화장실에 다녀오고 맨발로 외출을 다녀왔다. 그가 나가고 아무도 없는 침대에서도 여전히 냄새가 났는데 침대 아래에 놔둔 그 사람의 신발에서 나는 냄새였다. 도대체 무얼 밟고 다닌 것인지 손을 댈 수 없어 자리를 피했다가 그가 돌아오자 조심스레 얘길 하니 내 말엔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강하게 얘기를 하니 그 사람의 친구가 와서 대신 신발을 치워주었고 그 사람은 짜증을 내며 나가버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고향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던 동네 선배가 그냥 보내지 않고 걱정해 주던 그 친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가족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고 좋아하던 사람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따뜻함이었다. 난 그저 그거면 되는 아이였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데 아이답지 못한 아이를 보면 참 서글퍼진다. 어려서 철들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어릴 적 반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아쉬움에서인지 후회는 평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집을 떠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함께였다. 남자만 사람이었던 우리 집, 그걸 만든 것은 분명 아버지였지만 어머니는 방조를 했기에 그래서 크고 작은 차별이 난무했고 어떠한 차별이라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눈치 보는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너무 뻔히 보이는 차별조차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고 나중에 크면 물어보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참아야 했다. 하지만 커서도 분위기가 좋으면 그 좋은 기운을 방해할까 봐, 분위기가 나쁘면 괜히 불화를 자초할까 봐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덧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조심히 얘기를 꺼냈다. 그때 왜 그랬냐고,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적이 없으시단다. 사과는커녕 당신이 그런 사람인 줄 아냐고 되려 야단만 치셨다. 화낼 정도로 부당한 일임을 아신다는 것이 더 마음 아팠다. 나한테 그랬을 리가 없다고 여전히 단호한 어머니,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걸까? 아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하찮은 기억이었을까?
마음이 아프면 울어도 된다는 걸 먼저 배웠으면 어땠을까? 우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제대로 울고 보통 아이로 자랐을 텐데. 내가 울면 뭘 잘했다고 우냐며 다그치던 어머니의 호통은 잘못했을 땐 절대 울면 안 된다는 걸로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몰래 숨어서 울어야 했고 울기 위해 혼자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가 되어 마음껏 울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편지였고 글로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우편물이 분실되어 제대로 가지 않으면 어떡할까 했던 불안이, 어느 순간엔 가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었고, 은근히 도착하지 않길 바란 적도 많았다. 물론 부치지 못한 편지도 많았다. 속이 터질 것 같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과연 내가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난 어릴 때부터 먼저 얘기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란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여행지에서 쉽게 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임을 알기 때문에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나 보다. 내가 그런 것처럼.
산띠아고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Albergue de Peregrinos Seminario Menor -12.00€ Rosario Conchas y 5 Mistetios -6.00€ Catedral de Santiago Misa -1.00€ Ensalada Mixta 400g -2.00€ Cake Stracuatella 400g -0.99€ Mini Bocata atun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