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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12

Uterga→Puente la Reina

by 안녕
Day 10.
Friday, June 5


7시, 이제는 혼자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가다가 문을 연 바르가 있으면 까페라도 한 잔 하고 헤어지자고 했다. 그래서 오늘도 수시로 기다리고 있었다.

우떼르가를 빠져나오면 작은 돌들이 빼곡히 깔려있는 야트막한 언덕 능선을 연이어 계속 넘어야 한다. 야트막한 언덕의 능선이라고 하여도 지대는 상당히 높은 듯 멀리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아스라히 내려다 보인다. 산티아고까지 747km가 남아있다는 손으로 쓴 표지판을 지나 언덕을 넘으면 무루사발이 보인다.




Muruzábal (435M)은 뿌엔떼 라 레이나 가까이에 위치하여 아몬드 나무와 포도나무가 많은 아름다운 농촌 마을이다. 소박하면서도 은근한 전통가옥의 아름다움과 포도주 창고의 열기가 느껴지는 무루사발은 편하게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고 여기서 생산되는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보관하는 포도주 창고를 방문해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무루사발에는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 있었다. 이 마을을 대표했던 이 궁전은 이후 포도주 창고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여기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는 Palacio de Muruzábal, 무루사발의 궁전이라는 라벨을 달고 출시된다. 마을 근교에 있는 12세기에 지은 팔각형 평면의 신비로운 건축물인 산따 마리아 데 에우나떼 성당을 방문하기 위한 숙소로도 적당한 곳이다.

Iglesia de San Esteban
여러 시대에 걸쳐 건설된 석조 건물로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이 성당엔 순례자 산띠아고 성인의 상이 보관되어 있다.




무루사발에서 약 2.5km 정도 떨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팔각형 성당인 산따 마리아 데 에우나떼 성당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마을 중앙의 벽화는 순례자에게 이 성당으로 향하는 샛길을 알려준다. 에우나떼 성당을 찾아가면 이미 아라곤 루트로 들어선 것이다. 계속 길을 따라가면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만나게 된다. 넓은 밀밭 가운데 팔각형의 매력적인 모습으로 외롭게 서있는 산따 마리아 데 에우나떼 성당은 12세기 성당 기사단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데 커다란 로마네스크 형식의 석주가 역시 8각형의 성당 건물을 감싸고 있는 상징주의 디자인이다. 지붕에는 18개의 줄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장례식에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맑은 날보다 오히려 비나 눈이 오거나 안개가 자욱할 때 멀리서 보이는 성당의 모습은 신비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Iglesia de Santa María de Eunate
마을에서 왼쪽으로 약 2km 떨어진 산따 미리아 데 에우나떼 성당은 신비로운 성당이라고도 불리며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외딴곳에 있는 이 성당이 어떻게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상징이 되었는지에 대한 것은 알 수 없다. 론세스바예스의 상티 스피리투스 성당, 또레스 델 리오의 성묘 성당과 비슷한 구조이다. 현재 성당은 장례식과 공동묘지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나 나바라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성당이며 나바로의 산띠아고 길에서 장례 예식을 하는 대표적인 성당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는 사랄레끼 후작의 궁전으로 알려졌으며 현재는 맛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는 무루사발을 떠나 오바노스를 향하면 생장 삐에드뽀르에서 출발한 루트와 다른 루트에서 출발한 순례자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향하는 유일한 까미노를 따라 까미노 프란세스에 오른 수천 년 전의 순례자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이다. 무루사발에서 오바노스로 이동하면 에스떼반 뻬레스 데 따파야 도로를 따라 창고 건물과 십자가상 뒤로 나있는 길을 통해 오른쪽으로 까미노 사인을 따라가면 된다.

중세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오바노스까지는 무루사발에서 멀지 않아 마을 입구의 포장된 오르막 길을 제외하면 힘들지 않게 길을 걸을 수 있다.




발디사르베 포도원이 있는 Obanos (412M)는 역사적, 종교적 유산이 많고 관광객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것도 많은 마을이다. 특히 오바노스는 고관대작과 왕으로부터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나바라 토호들의 모임인 인판소네스 회의(Junta de Infanzones)가 열리는 장소가 되면서 나바라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바노스에서는 여름 축제 오바노스의 신비를 관람하고 포도주 창고와 아름다운 전통가옥과 성당을 감상하면서 중세의 분위기를 느끼는 산책을 할 수 있다.

오바노스는 중세부터 시골 귀족의 마을이라고 불릴 정도로 나바라의 토호들의 모임이 있었던 장소로 유명하며 14세기 펠리시아와 기엔이라는 남매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유명하다.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1912년 11월 17일에 완성된 20세기의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세례자 요한 성당은 14세기 고딕 시대에 지어진 같은 이름의 성당을 대체하여 건축되었고 과거의 성당에서 문과 가구를 옮겨와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14세기의 고딕 양식 문은 건물 끝에 위치하며 현관이 문을 보호해 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 13세기 후반 로마네스크 양식의 블랑까 성모상과 오바노스 전설의 주인공인 기옌의 두개골이 보관되어 있다.

오바노스의 신비
여름에 열리는 축제 ‘오바노스의 신비’는 스페인 관광 축제 중 하나이며 정식 명칭은 ‘성 펠리시아의 순교와 성 기옌의 회개’(Del Martirio de Santa Felicia y la Penitencia de San Guillén). 이 축제의 기원에는 슬픈 전설이 남아있는데 14세기에 오바노스에 아끼따니아 공작에게는 펠리시아와 기옌이라는 젊은 남매가 있었다. 어느 날 펠리시아는 종교적 소명을 받고 나바라의 영지인 에구에스 계곡에 있는 아모까인으로 은둔해 들어갔고 오빠인 기옌이 동생을 데리러 그곳까지 쫓아갔으나 펠리시아가 계속해서 돌아갈 것을 거부하자 분노하여 그녀를 죽였다. 그 후 기옌은 회계하여 신의 용서를 구하며 산띠아고까지 순례를 떠났고 마침내 수사가 되어 오바노스 근처의 아르노떼기에서 여생을 보내며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도와주었다.

이와 비슷한 전설은 피스떼라에서도 나타나는데 기예르모 데 아끼따니아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피스떼라에서 은자로서 삶을 마감했다는 전설이 있다.




오바노스에도 바르는 보이지도 않았고 이 시간에 문을 연 곳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거의 같이 걷는다 싶더라니 벤치에 앉아서 잠깐 쉬자고 한다. 내가 보내준 자료를 이미 확인했는지 대뜸 자신의 일정에 대해서 얘기하며 오늘은 에스떼야까지 가겠다고 했다. 거의 30km 이상을 걷겠다는 말인데, 혼자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프랑스 길만 생각하고 온 Y는 조금의 여유 없이 귀국일이 이미 잡혀있었다. 대륙의 서쪽 끝, 피스떼라까지 걸을 거라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이나 아쉬워했었는데 서두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갈 모양이었다.

나는 한 시간 거리인 뿌엔테 라 레이나까지만 가려고 했는데 아직 8시 반이라 너무 이른 감이 없진 않았다. 로르까까지는 가라고 해서 일단 알았다고 하곤 일어서는데 대뜸 여기서 그만 헤어지잔다.

작별을 하려고 쉬자고 한 거였구나. 바르에서 헤어지자고 했으니 당연히 그러는 걸로 생각하는 성격이라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안수를 해 주시고 평화를 빌어주셨다. 같이 출발하려다 아무래도 어색해서 먼저 보내드렸다. 오늘 이별 인사만 몇 번째인지.

자주 가는 별다방에서도 익숙한 직원이 안 보인다 싶으면 걱정되었고 다시 보지 못하게 되면 왠지 서운해졌다. 이별은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 5박 6일을 같이 걷고, 같이 먹었는데 왜 정이 들지 않았겠나 싶었다. 세례자 요한 성당에서 한참 동안 떠나질 못했다. 그렇게 난 혼자서 마음을 추스르고 9시가 넘어서야 오바노스를 떠났다. 일단 뿌엔떼 라 레이나에 가서 다시 생각하자.




오바노스에서 나오는 길은 세례자 요한 성당과 오바노스의 신비를 공연하는 성문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계단을 내려오면 고속도로가 나오며 이 길을 통과하면 붉은 황토밭에 포도나무가 가지런히 자라고 있다.

뿌엔떼 라 레이나는 나바라에서 까미노의 상징적인 도시 중의 하나로 마을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산티아고 가는 길인 전형적인 까미노 마을이다.




Puente la Reina/Gares (352M)는 까미노를 위해 까미노로 인해 발달한 전형적인 까미노 도시이다. 순례자들이 아르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여섯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다리를 세웠고 그 주변으로 도시가 발달하여 도시 이름이 다리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다리를 짓도록 한 사람은 산초 엘 마요르의 부인인 도냐 마요르라고 알려져 있다.

뿌엔떼 라 레이나는 까미노 역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도시였다. 아르가 강 주변으로는 순례자용 숙소와 병원이 있었으며 론세스바예스 까미노 길과 솜포르트 까미노 길에서 오는 순례자들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여 많은 순례자들로 붐비는 도시였다.

현재는 주로 포도를 재배하는 조용한 마을로 나바라의 훌륭한 포도주를 생산한다.

중세에 뿌엔떼 라 레이나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정부에 통행료를 내야 했다고 한다.

특산물로는 강낭콩과 아스파라거스가 있으며 이것으로 만들어진 뜨거운 수프가 일품이다.

7월에는 엔시에로 행사와 함께 산티아고 관련 축제가 열리고 9월에는 농기구와 관련되어 있는 전통 축제가 열린다.

뿌엔따 라 레이나에서 저녁을 즐기는 순례자라면 해 질 녘에 마흔 번의 종이 울리는 것을 듣게 된다. 이것은 도시밖에 있는 순례자들에게 밤이 되어가니 도시의 문을 닫겠다는 예고로 중세부터 계속되어 온 전통이라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순례자를 표현한 철제 조각상이 론세스바예스와 솜포르트에서 오는 순례자를 환영해 준다. 시가지를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띠아고 성당과 13세기 건축물인 산따 까딸리나와 산 로만 성당을 만나게 된다. 이어 중세 기사단의 성당인 십자가 성당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며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에 이 도시의 이름이기도 로마네스크 양식의 뿌엔떼 라 레이나를 만날 수 있다.

리오하 산 포도주가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나바라의 포도주가 까미노 최고의 포도주였다고 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현지의 포도주 저장고를 방문해서 나바라 지역의 포도주 제작 과정을 보고 향기로운 와인을 맛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Iglesia de Crucifijo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십자가상 성당에는 원통형 궁륭으로 덮여있는 로마네스크식 신랑이 있으며 산따 마리아 데 로스 우에르또스 상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은 풍성한 장식으로 빛나며 중앙의 아치에는 순례자의 조개껍데기 장식이 눈에 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Y자 형태의 고딕 양식 그리스도상이 있다.

Iglesia de Santiago
산띠아고 성당은 장식이 많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두와 모사라베의 영향이 확실히 드러나는 아치가 있다. 주두의 밑에는 괴물 머리 장식이 있으며 내부에는 바로크 양식의 장엄한 제단화가 있다. 또한 순례자 복장을 한 야고보 성인의 고딕 양식 조각상이 있는데 채색된 이 목조 조각상은 Santiago Beltza (검은 산띠아고)라고 부르는데 보수 전에 성인 상이 거무스름한 색을 띠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Iglesia de San Pedro
산 뻬드로 성당은 원래 14세기에 만들어진 신랑이 하나인 중세의 건물이었으나 후대에 네 개의 소성당이 증축되었다.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뉜 신랑의 끝은 다각형으로 되어 있고 단순한 고딕식 아치로 덮여 있다. 내부엔 바로크 양식 제단화가 있고 측면의 제단에는 초리의 성모상이 있다.

Puente la Reina
라 레이나의 다리로 불리는 이 중세의 다리는 뿌엔떼 라 레이나 출구에서 아르가 강에 순례자의 길을 따라 건축된 다리이다. 11세기에 지어진 이 석조 다리는 순례자들이 거친 아르가 강을 건너기 쉽도록 지어졌으며 까미노 중 가장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 다리이다. 일곱 개의 아치로 되어 있으나 가장 동쪽의 아치는 땅 속에 묻혀 여섯 개의 아치로 된 다리로 보인다. 양 끝과 가운데에 방어용 탑이 있으며 가운데 탑에는 뿌이의 성모 혹은 초리의 성모라고 하는 르네상스 양식의 성모상이 있었다.

Monumento Peregrino
프랑스 길과 아라곤 길이 만나는 뿌엔떼 라 레이나로 들어가는 입구에 순례자를 형상화한 기념물이 있다.




초리의 전설
“Codex Calixtinus에서는”에서 까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칭했던 뿌엔떼 라 레이나 다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성모상을 보관했던 작은 탑이었다. 바스크 지방의 텃새인 초리가 날아와 날개로 성모상에 쳐진 거미줄을 거둬내고 부리에 물을 축여와 성모상을 닦았다고 한다. 1834년경 첫 번째 까를리스따 전쟁 때에 자유파 군대의 장군이 이 이야기 듣고는 미신이라고 말하며 비웃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장군은 까를리스따 파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하자 사람들은 그것이 초리의 기적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 년 후 성모상은 산 뻬드로 교구 성당으로 옮겨져 오늘날에도 성모상을 볼 수 있다. 신앙심을 기리던 성모상을 기리는 신성한 축제가 현재는 폭죽을 터뜨리고 소몰이를 하는 빰쁘로나의 엔시에로 축제로 발전했다.

움직일 수 없는 십자가상의 전설
십자가상 성당에는 장엄한 고딕식 십자가상이 있다. 중세 독일의 순례자들이 그들의 도시에서 창궐했던 전염병이 사라진 것에 감사하며 십자가상을 들고 순례했다고 하는데 뿌엔떼 라 레이나에 이르자 십자가가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십자가를 옮길 수가 없어서 그들은 십자가상을 이곳에 두기로 결정하고 14세기부터 십자가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어느 순례자가 까미노를 걷던 중 병이 나서 뿌엔떼 라 레이나에 머물게 되었고 같이 길을 떠난 순례자들은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계속했는데 마을에 있던 수도원의 수사들이 극진하게 병든 순례자를 돌봐줬고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던 동료 순례자들이 이에 감사하여 이 십자가를 만들어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오롯이 혼자 걷는 길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뿌엔떼 라 레이나 초입에 있는 철제 순례자 조각상을 지나고 보니 마을의 모습이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성당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이 알베르게라 생각했는데 아직 문이 닫혀있었다.

나바라와 아라곤의 왕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마을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사각형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고 까미노를 따라 내려가는 마을의 중간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커다란 현관을 가지고 있는 산띠아고 성당과 삼위일체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음료수라도 사 오려고 물어물어 찾아가는 도중에 길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던 한국인 두 명을 만났다. H와 J.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습관처럼 나오는, 어디서 출발했는지 며칠째 걷고 있는지를 물었다. 생장에서 걷다가 빰쁘로나에서 버스를 타고 점프해서 방금 도착했단다. 이렇게 일정이나 부상 등으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시간을 단축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잠깐 얘기를 나누다 여기에 계속 앉아있을 거라고 해서 배낭을 맡기고 근처 디아로 갔다. 당장 먹을 오렌지 한 망과 소다수를 사 왔다. 감사의 인사로 오렌지를 나누어 주는데 왠지 시큰둥하게 받았다. 오렌지를 싫어하는 걸까? 그들은 계속 앉아있을 것 같아 보여서 그만 인사하고 돌아섰다.

아까 보아두었던 알베르게로 갔다. 바깥문이 열려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니 휑한 공간에 의자만 놓여있었다. 오렌지를 까먹고 앉아있는데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러다 우떼르가에서 물집 밴드를 주었던 제인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인사하니 안으로 들어왔고 오렌지를 나누어 주고 같이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던 그녀가 마침 안으로 들어가던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니 여긴 알베르게가 아니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긴 Iglesia de Crucifijo, 성 십자가 성당이었다. 오래된 순례자 병원과 십자가상 성당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있다더니 알베르게로 착각한 거였다.

직원이 가르쳐 준 위치는 바로 옆이었는데 가서 보니 그제야 알베르게 간판이 보였다. 이렇게 커다란 간판을 아까는 왜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걸까 싶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고 배낭을 대기줄처럼 세워두었지만 갈 곳이 마땅히 없어 옆에 같이 앉아있었다. 이렇게 인기 있는 마을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잘 곳이 없어 다음 마을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드디어 세요를 받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한국인이라 그런가 첫 번째 방은 모두 한국인으로 가득 찼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며 오렌지를 나누어 주었다. 고맙다며 바로 까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왠지 묘한 반응도 있었다. 오렌지가 싫으면 거절하면 될 텐데 대뜸 무거워서 주시는 거죠?라고 되물었다. 조금 전에 사 와서 반은 까먹고 지금은 내일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있는데 그런 오해를 하니 기분이 상했다. 음식을 나누는 게 여기서는 정이 아닌가 보다. 이제 조심해야겠다.

며칠 동안 같이 걸었던 인연으로 다들 친분이 있단다. 디아에 간다니까 또 다른 한국인 Y가 따라나선다. 냉동피자를 사려다가 알베르게에 전자레인지용 그릇이 없을까 봐 불안해서 인스턴트 파스타로 눈길을 돌렸는데 이것도 용기가 플라스틱이라 불안했다. 급기야 즉석 빠에야를 고르다 빠에야 사진이 있는 쌀을 사버렸다. 빠에야를 만들 수 있는 반조리 식품이겠거니 하면서도 혹시라도 그냥 쌀일 경우, 라면 수프를 끓여 라밥을 해 먹기로 했는데 역시 그냥 쌀이었다.

그런데 먼저 주방이라도 둘러보고 갈 것을 그랬다. 주방에 리브레라고 쓰인 나눔 칸에는 쌀과 스파게티 면이 많이 남아있었다. 냉장고에는 전날 누군가 두고 간 식재료가 꽤 많이 남아있었지만 냄비 밥을 하는 동안 남아있던 재료는 사라지고 새로운 식재료가 들어있었다.

한국인들이랑 같이 앉았지만 이미 자기네끼리 친분을 쌓은 후라 내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은근히 외톨이가 되고 보니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라밥조차 맛있지가 않았다. 쌀을 두고 가기엔 아까웠지만 들고 가자니 왠지 다시 해먹을 일이 없을 것 같아 남은 쌀은 주방 나눔 칸에 넣어두었다. 저녁엔 누군가 넣어두고 간 치킨 맛 컵면을 꺼내먹었다.

내일은 어디까지 가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는데 다들 에스떼야까지 간다고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반가웠던 한국인이 뭔가 불편해지려 하고 있었기에 그들과 어긋난 일정을 걸으려고 내일은 로르까에서 묵기로 했다.

오늘은 많이 걷지 않아 힘들지도 않았다. 알베르게에 일찍 들어왔으나 여유를 즐기지도 못했다. 난 왜 여유를 즐기지 못하나 싶어 자책도 했다. 무언가 자꾸 힘들어지고 있었다.




Uterga→Puente la Reina 7.2km

○Uterga (489M)
●Muruzábal (435M) 2.7km
-Iglesia de San Esteban
■Santa María de Eunate (393M) 2.5km
-Iglesia de Santa María de Eunate
●Obanos (412M) 1.8km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Puente la Reina/Gares (352M) 2.7km
-Iglesia de Crucifijo
-Iglesia de Santiago
-Iglesia de San Pedro
-Puente la Reina
-Monumento Peregrino

683.6km/775.0km




DIA 2.80€
Naranja 2kg -2.35€
Dia Con Gas Zumo 2L -0.45€
Albergue de Peregrinos Padres Reparadores -5.00€
DIA 0.99€
Arroz 1kg -0.99€




오렌지, 탄산수
라밥
컵면


Cocina
Refrigerador
Microondas
WIFI
Supermercado 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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