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13
Puente la Reina→Lorca
Day 11.
Saturday, June 6
느지막이 일어나서 로르까까지 갈 것이냐 아님 새벽같이 일어나서 에스떼야까지 갈 것이냐 계속 고민하고 있었지만 5시부터 일어나 준비하는 사람들로 인해 덩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장을 비우고 샤워하고 느릿느릿 준비해도 6시였다. 샤워하느라 물집 소독을 다시 하게 되어서 6시 반에야 길을 나섰다.
좀 더 일찍 도착하기 위해 걷기 편한 도로를 따라 걸어볼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루트 따라 걸었다. 적응하기까지 힘들긴 했지만 걷기에는 오전이 좋았다. 그래서 사람들도 점점 일찍 출발하게 되나 보다.
돌로 만들어진 긴 다리를 건너 고속도로를 건너가 좁은 비포장도로를 통해서 계곡의 끝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계곡을 통해 마녜루 입구의 십자가상까지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은 오래된 수도원과 성당 건물 사이에서 시작된다. 아르가 계곡을 통해서 오르는 마지막 구간은 상당히 험하다. 중세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마녜루에는 향기로운 로즈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유명한 바가 있으며 언덕 위에 외롭게 서있는 산따 바르바라 성당이 있다.
Mañeru (447M)는 고대 로마인들이 정착했던 마을로 대문마다 붙어있는 가문의 문장들이 이 마을의 자유로우면서도 고상한 성격을 드러낸다. 마녜루에서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별한 로즈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포도주 저장고를 방문하고 맛있는 전통 수프를 맛보길 권한다. 마을을 벗어나면 넓은 포도밭과 양 떼를 모는 목동이 등장하는 근사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시라우끼와 마녜루의 두 노파 이야기
마녜루와 시라우끼의 사이 교차로에는 두 마을의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시라우끼와 마녜루는 두 마을의 경계를 정하는 문제 때문에 다툼이 많았다. 그래서 나이 많은 두 노파가 두 마을의 경계선을 결정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표로 선출되었다. 둘 중에 상대편 마을 사람들이 채운 포도주 한 단지를 먼저 다 마시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정하기로 했다. 마녜루 사람들은 시라우끼의 노파가 마실 포도주에 죽은 쥐를 넣었다. 두 노파는 단지에 든 것을 모두 마셨는데 마녜루 노파가 단지를 깨끗이 비우는 동안 시라우끼의 노파 역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단지를 비웠다. 몇 번의 내기를 하다가 결국 시라우끼의 노파가 승리했는데 마녜루 주민들은 시라우끼의 노파가 쥐까지 먹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뭔가 이상한 것을 못 느꼈냐고 묻자 시라우끼의 노파는 목에 무슨 파리 같은 것이 걸린 것 같았으나 다 마셔버렸다고 했다고 한다.
마녜루 쉼터에 앉아서 쉬었다. 평소에도 잘 안 먹는 아침을 그동안은 쉴 곳을 찾다 보니 바르에 들어갔고 일행이 아침을 먹어야 하니 함께 했을 뿐이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기보단 뭔가 심심해서, 앞에 음식이 있으니 먹는 편이었는데 걷다 보면 힘들어서 무언가를 먹기 싫을 때가 더 많았다. 억지로 먹다가는 탈이 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이럴 때는 과감하게 굶어주어야 한다. 그동안 굶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었다. 더 이상 먹을 게 필요하지 않거나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으면 바르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앞으로 바르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수뻬르메르까도에 가면 내가 먹고 싶은 과일이 많은데 차라리 과일이나 실컷 먹자 싶었다. 여행을 가면 그 나라 현지인들이 자주 먹는 걸로 사 먹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점심 대신 마시는 까페라떼 한 잔의 여유가 나의 유일한 사치였지만 여기서 굳이 그럴 여유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마녜루에서 나오는 길은 에스뻬란사의 수도원과 포르소사 수도원을 통해 이어진다. 거대한 포도밭을 지나다 보면 두 개의 기둥이 남아있는 공동묘지에 도착하게 된다.
이 길에서 나에겐 햇볕 내리쬐는 곳에 위치한 의자 하나면 충분했다. 음지에는 왠지 벌레의 습격을 받을 것 같아 일부러 양지를 택한다. 양지에 사는 벌레라면 적어도 해충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에서 가장 기피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베드 버그였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빈대. 한번 물리면 가려움도 문제지만 나 같은 경우엔 알레르기까지 걱정해야 했다. 배낭에 단 한 마리라도 있으면 온몸을 기어 다니며 물어대서 걷는 내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저 멀리 살모사의 둥지라는 시라우끼가 보이는 길목에서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벤치를 발견하고 다시 배낭을 내려놓았다. 프랑스에서 샀던 바게트 반쪽은 먹지도 않으면서 계속 배낭에 꽂혀있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음식을 버리기 싫어 입에 욱여넣었는데 너무 딱딱해서 이가 아팠다. 잘라지지도 않아 쓰레기 통에 버려야 했다. 이 또한 언젠가는 후회하겠지.
Cirauqui (479M)의 기원은 마을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의 길을 볼 때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은 언덕 위에 세워져 방어적인 기능이 있었고 주거지는 동심원 고리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시라우끼는 까미노의 전통, 문화, 예술적인 면에서 흥미로운 곳이고 로마, 이슬람, 기독교 문화가 혼합된 곳이다. 시라우끼에서는 중세의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며 성벽, 문, 집을 감상하고 로마 가도를 산책하면서 과거의 시간에 푹 빠져볼 수 있다. 시라우끼라는 이름은 바스크어로 ‘살모사의 둥지’라는 뜻이다. 로마 시대와 중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 마을의 전략적인 위치 때문에 지나가기가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시라우끼 남쪽엔 아니스 폐허(Despoblado de Aniz)가 있다. 1537년부터 폐허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 성벽 일부와 산따 마리아 성당의 일부만 남아 있다.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마을인 시라우끼에는 12세기와 13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두 개의 성당이 있다.
Iglesia de San Roman
산 로만 성당은 1200년경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17세기 후반에 재건축되었으며 이때 성당의 제단 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었다. 12세기 후반의 로마네스크식 아치는 뿌엔떼 라 레이나의 산띠아고 성당과 비슷한 구조로 로마네스크 양식이 남아 있는 부분은 정문뿐인데 건축 양식으로 에스떼야의 산 뻬드로 성당과 매우 유사하다.
Iglesia de Santa Catalina
산따 까딸리나 성당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건물로 내부가 세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제단 부분은 다각형이고 16세기에 건물 측면에 소성당들이 추가로 증축되었다. 합창단석은 낮은 아치 위에 감실은 제단 쪽 벽에 붙어 있다.
시라우끼의 마을 출구에는 기분 좋은 놀라움이 순례자를 기다리고 있다. 보르도와 아스또르가를 연결하는 이 아름다운 로마시대의 길은 이제 그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그 길을 걷는 순례자의 마음에 아스라한 중세의 나바라를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이 길에는 로마시대의 도로 건축양식이 예술성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마차가 다니기 위해서 폭이 최소 5m가 넘었던 길은 빗물을 잘 빠져나가게 한 배수로를 가지고 있었으며 바닥에는 커다란 돌을 토대로 기초공사를 하여 아직까지 희미하게나마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중세의 로마 길을 지나온 순례자는 현대에 만들어진 다리와 빰쁘로나와 로그로뇨를 이어주는 고속도로를 만나게 된다. 순례자는 몇십 미터 사이에서 중세와 현대의 도로를 동시에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원래 로마시대의 길은 현재 N-11 고속도로의 밑에 잠들도 있다고 하는데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고속도로를 왼쪽에 두고 평행하게 지난다. 포도밭 사이로 직진하면 실개천 위로 지나는 조그마한 돌로 만든 다리를 건너게 되며 잠시 후 고속도로의 아래로 나있는 샛길을 따라 잠시 아요스(Alloz)로 향하는 NA-1717 고속도로로 올라서야 한다. 이 고속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왼쪽으로 살라도 강을 건너는 중세의 다리를 넘을 수 있다.
너덜지대의 좁은 길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면 로르까에 도착한다. 과거 로르까의 주민들은 돈벌이를 위해 소금기가 많은 강물을 독이 있는 강물이라고 순례자들을 속여서 포도주를 팔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맛 좋은 포도주 인심이 좋은 친절한 마을이다. 산띠아고 길과 함께 만들어진 이 마을은 마요르 길 주위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으며 중세의 순례자들이 걸었던 마을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는 도로의 중간에는 작은 우물과 정원이 있어서 순례자들에게 평화로운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Lorca/Lorka (463M)를 방문했던 순례자들은 주민들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리 계곡의 초입에 위치한 이 마을은 경관이 아름답고 기념물이 많이 있다. 로르까의 주요 거리는 까미노의 일부이며 이 길의 주변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전통 포도주 저장고에서 지방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까미노를 따라 로르까로 가다 보면 나바라 왕국의 첫 번째 영토였던 예리 계곡이 나온다. 이곳의 이름은 전투라는 뜻의 아랍어 Al Aurque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 계곡에서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의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Salvador
산 살바도르 교구 성당은 롬바르디아 양식의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내부는 13세기 고딕 양식으로 되어있다. 신랑은 크기가 다른 구획으로 이뤄져 있고 제단 부분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다. 창문 위는 아치, 제단 위는 원형 궁륭으로 덮여 있으며 18세기에 증축된 성구실은 외벽에 붙어 있다. 정문과 탑은 20세기에 지어진 현대 건축물이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순례자 야고보 성인의 제단화가 있다.
Iglesia de Santa Catalina
산따 까딸리나 성당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건물로 내부가 세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제단 부분은 다각형이고 16세기에 건물 측면에 소성당들이 추가로 증축되었다. 합창단석은 낮은 아치 위에, 감실은 제단 쪽 벽에 붙어 있다.
어느덧 12시가 넘어선다. 일찍 도착해도 멍한 상태라 오늘은 무리해서 더 가볼까 했는데 하늘이 너무 뜨겁다. 게다가 에스떼야에 머무를 예정인 어제의 그 한국인 일행을 생각하니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로르까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한 알베르게로 들어서니 한국말로 반겼다. 여기에 한국인이 왜 있나 싶었더니 스페인 남편을 만나 여기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단다. 인상 좋은 모습에 마음이 풀려 여기에서 묵기로 했다. 1층은 바르, 2층은 주방, 3층은 숙소였는데 3층 2인실을 배정받았다. 원래 이곳은 8€, 맞은편은 10€로 알고 있었는데 그곳이 7€라고 적혀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여기도 7€를 받았다. 뻬르돈 언덕에서 보았던 과체중녀와 한방을 쓰게 되었는데 왠지 침대가 불안해 보였다. 오다가 마주친 또 다른 한국인들도 여기에 묵고 있었다. 걸어오는 도중에 두꺼운 털 니트로 된 미니 원피스를 입고 걷던 노랑머리 여자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그 커플도 여기에 묵었다.
저녁을 예약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엄지발톱과 발바닥의 염증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양 쪽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서 더 힘든 것 같았다. 몸은 염증과 싸우는 중이었고 열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머리카락이 마르기 전에 누워본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씻자마자 바로 누웠고 머리카락이 젖은 채로 잠이 들었다. 어느새 한기가 들었는지 온몸이 떨렸다. 그래도 일어나지 못해 한참을 더 누워있었고 너무 떨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침낭을 꺼냈지만 약 기운에 이내 정신이 들었다.
마을 끝자락에 띠엔다가 있다지만 나가기는 힘들었다. 약을 먹으려면 무언가는 먹어야 할 것 같아 2층에 갔더니 주방이 있었다. 누군가 남기고 간 쌀 한 줌이 남아있어 일단 쌀을 씻으니 알베르게 이름의 그 호세 사장이 한국말로 인사하며 들어온다. 마음껏 써도 좋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공용 주방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내가 허락도 없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긴 했다. 가스불을 켜지 못해 1층 바르로 내려간 호세 사장에게 가서 부탁했더니 흔쾌히 올라와서 도와주었다. 항상 미소 짓는 모습이었다. 알베르게 등록을 해주었던 한국인 부인도 그렇고 얼굴 가득 평안한 미소가 끊이질 않는 것 같아 부러웠다.
죽을 끓이려다 정신이 들어서 라밥을 만들었다. 오늘은 제대로 된 라밥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좋았다. 한국에서는 라면을 안 먹는데 혹시 몰라서 챙겨 온 라면 수프 몇 개가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디저트는 믹스커피와 오렌지였다. 일단 오늘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상점이 문 닫을까 봐 걱정이지만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제부터 배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는데 가라앉질 않았다. 통증이 심해지지 않길 빌고 또 빌어본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은 일찍 출발해야겠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Puente la Reina→Lorca 13.3km
○Puente la Reina (352M)
●Mañeru (447M) 5.2km
●Cirauqui (479M) 2.6km
-Iglesia de San Roman
-Iglesia de Santa Catalina
●Lorca/Lorka (463M) 5.5km
-Iglesia Parroquial de San Salvador
670.3km/775.0km
Albergue de Lorca José Lamon -7.00€
믹스커피, 소다수
라밥, 믹스커피, 오렌지
Cocina
WIFI
Tienda
2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