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England
Day 5.
Saturday, April 29
어제 체크인 이후 마주친 사람들은 여자뿐이라 남녀 구분된 호스텔이라 생각을 했었다. 한 명이 코를 골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는데 아침에 보니 남자는 다섯 명이나 자고 있었다. 12인실에 비어있던 침대는 대부분 남자였던 셈인데 그럼에도 밤새 조용했던 게 신기하다. 삐걱거리는 철제 침대와 울퉁불퉁한 매트리스가 불편하긴 했지만 다인실에 묵게 될 경우엔 투숙객에 따라 호스텔의 이미지가 정해지는 편이라 아직은 괜찮았다.
7시 1층 펍으로 내려갔다. 시리얼과 우유, 잼, 버터, 식빵과 커피가 전부였지만 커피잔이 테이크 아웃 컵이고 뮤즐리가 있어서 좋았다. 오늘도 빵은 그다지 당기지 않아 토스트 두 조각에 버터와 잼을 발라 놓고 뮤즐리 시리얼만 먹었다. 한 시간 이상을 뒹굴대다 그리니치 천문대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10시에 오픈이라고 해서 또 한 시간 이상을 졸았다. 영국이라 그런가 누가 자꾸 튀어나온다. 비 옷을 챙기려다 오전에는 날씨가 좋대서 사과만 챙겨서 10시쯤 그리니치 풋 터널을 건너갔다.
Royal Observatory, Greenwich는 1675년에 세워진 영국의 천문대이며 세워질 당시의 이름은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Royal Greenwich Observatory)였다. 찰스 2세는 천문대를 설립할 때 존 플램스티드를 초대 천문대 대장으로 임명하면서 왕실 천문관이라는 호칭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그리니치 천문대는 그리니치 공원에 위치해 있다.
영국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그리니치 천문대를 위치 측정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네 개의 자오선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경도의 기준이 되는 본초 자오선은 1851년에 정해져서 1884년에 국제회의를 통과했다. 이 자오선은 그리니치 공원에 황동, 지금은 스테인리스 강으로 표시되었으며 1999년 12월 16일 이후로는 초록색 레이저도 함께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정해진 천문학적 본초 자오선은 현재는 지오이드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본초 자오선으로 대체되었다. 이 본초 자오선은 원래 자오선보다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니치 평균시(GMT)는 그리니치에서의 관측을 토대로 계산되는 시각이었다. GMT 역시 1954년 이후로는 그리니치가 아닌 다른 천문대의 관측을 토대로 정해졌으며 현재는 협정 세계시를 비롯한 세계시들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GMT와 협정 세계시와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GMT를 협정 세계시의 뜻으로 쓰기도 한다.
Greenwich Meridian, 그리니치 자오선은 영국 런던 교외 그리니치의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는 에어리 자오환의 중심을 지나는 자오선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본초 자오선 (경도 0도 0분 0초 자오선)은 그리니치 자오선을 계승한 IERS 기준 자오선이다. 그리니치 자오선의 경도는 서경 0도 0분 5.3101초이기 때문에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자오선은 전 지구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지금도 통속적으로 그리니치 자오선이 본초 자오선의 의미로 사용기도 한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기준 자오선을 결정하는 관측을 위해 1675년에 설치되었다. 초대 천문관 존 플램스티드는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관측한 엄격한 별 그림을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그리니치 관측 시간의 차이를 측정하면 그리니치 천문대와의 경도 차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플램스티드 천구도보라는 별자리를 제작했다. 이 별자리는 항해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다른 나라도 각 나라의 천문대를 기점으로 한 별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1750년대 영국이 세계적인 해운국가가 되면 플램스티드가 만든 것을 전 유럽으로 사용되는 것이 많아졌다. 세계 해도도 일찍부터 그리니치 자오선을 기준으로 채용했다.
1851년 조지 비델 에어리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당시 본관에 자오환을 설치했다. 이것은 그리니치 자오선의 기준이 되었다. 에어리 자오환의 위치는 WGS84는 북위 51도 28분 40.1247초 서경 0도 0분 5.3101초이다.
1884년 기준으로, 세계의 3분의 2 이상의 배가 그리니치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 차트를 사용했다. 1884년 10월 미국 대통령 체스터 A. 아서 제창으로 25개국 41대표가 워싱턴 D.C. 에 모여 국제 자오선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그리니치 자오선을 육지도 대상으로 하는 세계 공식 본초 자오선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평결을 기권하여 이후에도 1911년까지 파리 자오선을 계속 사용했다.
1999년 12월 16일부터 야간에 녹색 레이저를 북쪽 런던의 방향으로 비추어 그리니치 자오선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니치 자오선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알제리, 말리, 부르키나파소, 토고, 가나, 남극의 퀸모드 랜드를 통과한다.
커다란 나무와 잔디밭이 펼쳐진 푸르른 그리니치 공원을 지나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몇몇이 정문 앞에 줄을 서 있었고 나도 그 뒤로 줄을 섰는데 정문이 열리며 입장을 했다. 그때 등산화 끈이 풀려 잠시 고쳐 매는 사이 정문은 닫히고 직원이 한쪽을 가리키며 거기로 들어가라고 했다. 무료로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 티켓 판매소였고 4.5£라고 적혀있다. 정문 앞 시계와 옆문으로 삐쳐 나온 자오선이 전부일 텐데 유료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와서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철문 안으로 들어가 자오선에서도 사진을 남겼다.
영국은 환상이 없어서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만약 가게 되더라도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래도 생각난 곳이 그리니치였다. 다행히 런던 중심부와 멀지 않아 한번 와보기로 했던 곳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곳인데 의외로 느낌이 좋아 만약 다음이 있다면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특별함이 있는 곳이랄까, 그냥 쉬러 오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니치 천문대 뒤로 이어진 공원을 따라 걸었는데 길 가에 클래식한 스포츠 카들이 주차해 있었다. 각양각색의 스포츠 카 수십대가 늘어서 있으니 무슨 행사라도 있나 싶다. 그리니치 공원의 또 다른 문으로 나가니 레이싱 복장의 선수들과 스태프가 탄 승합차가 연이어 도착했다. 잔디밭 너머로 뾰족탑이 보여 사과를 먹으며 걸어가 보는데 다가갈수록 점점 작아지고 그러고도 또다시 벌판 지평선 너머로 한참 뒤에 서 있는 교회탑이 보였다. 걸어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으니 별거 아닐 거라며 허무하게 돌아섰는데 Blackheath의 All Saints였다.
천문대로 다시 돌아와서 언덕을 내려왔고 그리니치 공원을 지나 그리니치 마켓으로 갔다. 혼자라 그런가 무언가 구경하는 것이 재미가 없어 바로 돌아왔다.
아침에 남겨두었던 토스트를 먹고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모두 해치웠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 그러고 보니 런던에서 믹스커피를 챙겨 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 누군가 두고 간 캔 세 개를 발견했다. 주방이 있는 줄 알고 가져왔다가 두고 간 모양인데 모두 체크아웃한 상태라 일단 챙겼다. 배고프니까 더 생각나는 통조림 푸드, 하지만 요리해 먹을 곳이 없어 나에게도 그림의 떡이었다. 더 이상의 일정은 없기에 마지막으로 아스다에 다녀오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새로운 길로 가다가 밀월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놓쳐 반도 끝까지 가다 보니 초고층 빌딩 숲이 있는 Canary Wharf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Canary Wharf는 런던 템스 강 도크랜즈에 위치한 신도시다. 현재 영국의 초고층 건물의 대다수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런던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명은 개를 의미하는 라틴어 Canis에서 따왔다.
길고 높은 빌딩 숲을 보니 또 다른 세상이었다. 무언가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바로 돌아서서 아스다로 갔다. 오후라 그런가 바게트는 동이 나 있었고 소스까지 동봉된 치킨 샐러드를 사들고 돌아오는데 햇살이 비치는 따뜻하고 화창한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있었다. 밀월 공원을 가로질러 오는데 한산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산책 나온 주민들이 많이 보였다. 돌아와서 씻고 빨래하고 샐러드를 먹고 누우니 17시다.
낮에 그리니치에서 양복을 갖춰 입은 북한 사람을 봤었다. 공원 한쪽에 서서 몇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영국 땅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이곳에 올 정도면 아마도 고위층이겠지 싶었다.
몇 년 전까지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남한 정착을 돕는 지원 봉사를 오랫동안 했었다. 그때 가정을 방문하다 보면 부모님과 면담을 하기도 했었는데 얘기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자유를 꿈꾸며 오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착금은 브로커에게 모두 줘버려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집에 있었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처음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나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개인적인 문제라 생각했다. 우리도 취직하기 힘드니 그들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종교 단체에서 물류 창고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는데 10시부터 17시까지 주 5일 근무에 초봉이 월 150이었단다. 심지어 일이 힘들지도 않았다는데 왜 그만두었냐고 물어보니, 그까짓 150 받겠다고 목숨 바쳐 온 줄 아냐며 격분을 하셨는데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남한 사람들은 비싼 월급을 받고 일하고 북한 사람들은 차별을 하는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요즘엔 누구나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고 남한 사람들도 초봉은 적으나 일하다 보면 월급도 오르고 기회가 있으면 이직을 하며 그렇게 산다고 설명해 드렸다. 하지만 자기가 브로커에게 들은 얘기는 그렇지 않다며 거짓말로 선동하지 말라고 하셨다. 확고한 그의 생각은 그 어떤 얘기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더 이상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을 바꾸고 일을 하고 있을지 아님 아직도 부인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Greenwich Park
●Greenwich Observatory
●Greenwich Meridian
●Blackheath
●Canary Wharf
Asda 0.84£
Chicken Salad -0.84£
The Great Eastern -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