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France
Day 9.
Wednesday, May 3
과달루페 인이 나가고 난 바로 잠이 들었는데 다시 들어오는 인기척에 잠이 깼다. 3층 침대로 올라가는 것 같더니 3층은 무리인지 다시 내려와 1층 침대로 가서 눕는 것 같았다.
또다시 누군가 들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고 이번엔 아예 짐을 챙겨들고 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새벽 1시 반의 일이었다.
은근히 추워서 한쪽으로 치워두었던 이불속으로 다리를 집어넣었다. 뭔가 찝찝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추운 밤이라 어쩔 수 없었다.
눈을 뜨니 8시, 어제와 똑같은 아침을 먹었고 그 작은 빵도 오늘은 얼마 없어 빵 2개와 카푸치노를 마셨다.
금발의 백인 두 명은 처음 보는 브렉퍼스트에 당황한 듯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역시 오늘은 잔뜩 흐리다. 예보되었던 비는 오지 않는다더니 방으로 돌아올 때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센 강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런 날 강변 산책이 가능할까? 빠뜨린 짐을 챙기러 잠시 들어온 과달루페 인은 다른 방에서 잤단다.
오늘도 체크아웃 상태를 확인하러 온 룸메이드 뽀글이 아저씨, 남자 룸메이드는 처음이라 청소는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엔 날씨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이라 같은 곳을 두 번 가더라도 일단 나가긴 해야 할 듯싶다. 내일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10시 반쯤 나섰다. 큰길을 따라가다 골목 사이로 건축물이 보여 가보니 포르떼 생 드니였다. 메트로를 탔으면 보지 못했을 위치에 있었다.
골목 사이를 지나가다 보면 이름 모를 건축물이 많이 보인다. 구경하다 보니 퐁피두 센터에 도착했다.
Centre Georges Pompidou는 1971년에서 1977년에 걸쳐 준공된 복합 문화시설로 파리 4구의 레 알(Les Halles)과 르 마레(Le Marais) 지역 인근의 보부르(Beaubourg) 지역에 있다. 이곳의 위치를 따서 현지인들은 이곳을 보부르라고도 부른다. 퐁피두 센터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의 이름을 딴 것이며 1977년 12월 31일에 문을 열었다. 렌조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 잔프랑코 프란키니 등이 설계했다.
퐁피두 센터에는 거대한 공공 도서관인 Bibliothèque Publique d'Information, 20세기의 중요 미술품들이 있는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IRCAM (Institut de Recherche et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가 위치해 있다. 이 외에도 영화관, 극장, 강의 홀, 서점,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있다. 이 건물의 분관인 퐁피두 메스 센터(Centre Pompidou-Metz)는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의 설계로 메스에 들어서 있다.
건물 유지를 위한 지지 구조와 파이프들은 건물 바깥에 눈에 띄게 정렬되어 있다.
지지 구조와 공기 공급 파이프는 흰색으로 채색되었으며 운송 수단(계단, 에스컬레이터)은 붉은색으로 전기 배선은 노랑, 수도관은 녹색, 공기 조화 시스템과 관련된 파이프는 파랑 색이다.
이리하여 내부에는 지지 구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유연한 기능을 가진 거대한 효과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건물 엔지니어링의 관이 동쪽(후면)에 위치하며 붉은색의 에스컬레이터가 서쪽(앞면)에 있는데 이 에스컬레이터는 건물의 전면을 사선으로 지나간다.
새로운 입면 유형과 그 구성은 처음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퐁피두 센터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건축적 담론에서 처음으로 이탈한 중요한 건물로 여겨진다.
건물의 남쪽과 서쪽에 있는 광장에는 거리 예술가들이 나타나 공연을 하기도 한다. 건물의 남쪽에는 장 팅겔리(Jean Tinguely)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작품들이 있는 스트라빈스키 분수가 있다. 동쪽으로는 파리 메트로 11호선의 랑부토 역이 있다.
퐁피두 센터엔 이미 대기줄이 엄청났다. 무언가를 감상할 기분이 아니라 건물만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골목 사이를 걷다 보니 라파예트가 보였다.
Galeries Lafayette는 프랑스의 백화점이다.
1893년 테오필 바드르와 그의 사촌인 알폰스 칸이 파리의 라파예트 가에 작은 옷가게를 열었는데 3년 뒤 옷가게는 회사로 성장하면서 라파예트 가에 있던 한 건물을 구입하게 된다.
이에 테오필은 조르헤 쉐단과 그의 수제자였던 페르디난 샤에게 건물의 건축 디자인을 맡기는데 유리와 철제로 된 돔형과 계단 부분은 1912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Boulevard Haussmann 40에 위치하는 이곳이 10층짜리 본점이다.
파리 시내는 멋진 건물들만 구경해도 좋았다.
걷다 시테섬으로 향했고 12시쯤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Cathédrale Notre Dame de Paris는 프랑스 파리 시테 섬 동쪽 반쪽에 있는 프랑스 후기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지금도 로마 가톨릭 교회의 건물로서 파리 대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대성당은 최초의 고딕 성당 가운데 하나이며 고딕 전 시대에 걸쳐 건설되었다.
노트르담에는 5개의 종이 있다. 가장 큰 종인 Emmanuel은 남쪽 탑에 있는데 무게가 13톤이 넘으며 하루의 시각을 알리기 위해서나 여러 행사나 전례를 알리기 위해 울린다. 북쪽 탑에는 바퀴 위에 부가적으로 4개의 종이 붙어 있는데 이 종들은 흔들리면서 종이 울리는데 전례나 축제 때에 울린다.
대성당의 맨 위에는 13개의 변색된 조각상들이 있다. 그들 중 12개는 열두 사도를 나타낸 것으로 바깥을 향하고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건축가 자신의 조각상으로 안쪽을 향하고 있으며 팔을 뻗고 있다.
파리에서 시작하는 고속도로에서 거리를 나타내는 참고점인 프랑스의 Point zéro가 노트르담 대성당 앞의 광장에 있다.
보안검사를 거쳐 성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미사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이번 여행의 첫 미사가 시작되었다. 봉헌 그리고 영성체. 미사는 30분 만에 끝났고 성당을 구경했다.
성당 지을 때의 모습을 재현한 미니어처도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사면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모두 다르다.
헌금 대신 대성당 기념주화를 샀는데 이곳에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ont Neuf를 건너는데 퐁 뇌프는 센 강을 가로지르는 파리 시에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지만 모순되게도 그 이름은 프랑스어로 새로운 다리라는 뜻을 가진다.
날씨가 좋았다면 강변 산책이라도 하겠지만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우울하기만 해서 오늘은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다.
Le Musée du Louvre는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 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지금의 건물은 루브르궁을 개조한 것으로, 파리의 세느강변에 포함하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은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한때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었다.
프랑스어로 뮈제 뒤 루브르, 그랑 루브르, 또는 단순히 루브르라고도 불린다.
다빈치 코드를 보면서 상상해 봤던 그 길을 따라 걸었다.
Place du Carrousel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공공 광장으로 루브르 박물관 안마당 한쪽이 열린 부분에 있어 한때 1871년까지는 그곳에 튈르리 궁전이 있었다.
미술관과 튈르리 정원 사이에 위치하며 튈르리 정원의 동쪽에 있다. 서쪽으로는 콩코드 광장이 있다.
Carrousel은 원래 군사용 마장마술의 종류를 뜻하는 것이었다. 카루젤 광장이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1662년의 일로 루이 14세가 그곳에서 마장마술 시범을 보이게 하여 관람한 것에서 유래한다.
Place de la Concorde는 프랑스 파리의 광장으로 샹젤리제 거리 동쪽과 튈르리 공원 사이에 위치한다. 파리에서는 가장 넓은 광장이다.
1755년 앙제 자끄 가브리엘에 의해 설계된 이 광장에는 원래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었다. 이후 프랑스혁명의 발발로 기마상은 철거되고 이름도 혁명 광장으로 바뀌었다.
1793년 1월 21일 프랑스혁명 중에는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0월 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형장이기도 했다.
1795년 현재의 콩코드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공식 이름이 된 것은 1830년이다.
Concorde는 화합, 일치라는 뜻으로 이 광장의 이름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넘어 평화와 화합으로 나가자는 프랑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광장의 중심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룩소르(Luxor) 오벨리스크(클레오파트라의 바늘)가 놓여 있다.
기원전 12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집트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것으로 1829년 이집트의 총독이자 군사령관이던 알바니아 출신의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다.
오벨리스크에는 프랑스로의 운송 과정이 묘사되어 있으며 4년의 운송 기간이 걸렸다. 최상단 부분에 소형 피라미드 모습의 금박이 있었으나 아시리아인의 침입과 페르시아인의 점령 과정에서 분실되었는데 프랑스 정부에서 복원 작업을 벌여 1998년 5월 14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복원 자금에는 약 1백50만 프랑이 소요되었으며 수명은 약 40년이다. 복원으로 인해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이전보다 2m가량 높아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스타벅스가 보였고 그 옆으로 가르니에 궁이라고 불리는 오페라 가르니에가 보였다.
Opéra Garnier 라고도 불리는 Palais Garnier는 프랑스 파리 시 9 아롱디스망, 오페라의 거리 북쪽 끝에 위치한 2200석의 오페라 극장이다. Opéra de Paris, Paris Opéra로도 알려져 있다.
신 바로크 양식 하에 샤를 가르니에에 의해 설계된 건물로 그 당시 건축학적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1875년 칙령 하에 이 오페라 극장은 Académie Nationale de Musique-Théâtre de l'Opéra로 명명되어 1978년까지 유지되었으나 Théâtre National de l'Opéra de Paris로 재명명되었다.
1989년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완공으로 이 오페라단이 바스티유 오페라를 선택한 이후 가르니에 궁의 국립 음악 무용 아카데미가 여전히 극장 파사드 정면 기둥 위에 붙어있으나 이 극장은 가르니에 궁으로 재명명되었다. 이름이 바뀌고 오페라단이 바스티유 오페라로 재이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르니에 궁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파리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설립 이후 오페라와 발레의 주요 공연장 역할을 담당하였다. 객석은 약 2,160석 정도이며 그밖에 보조의자가 40개 정도 있다.
이곳에서 장 밥티스트 륄리, 장 필립 라모,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오페라가 공연되어 프랑스 오페라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밖에 <빌헬름 텔>, <타이스>, <돈 카를로스>를 공연했고, 오늘날까지 오페라 600편 이상, 발레 300편 이상을 공연했다.
루이 14세는 장밥티스트 륄리에게 1672년 음악 국립 아카데미를 설립하도록 감독권을 주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현상 모집에 입상한 가르니에의 설계에 의하여 1862년에 착공, 3,500만 프랑을 들여 1875년에 개장하였으나 1936년에 일부가 소실되어 그 후 수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14시 반쯤 되었는데 룸에 무슨 방역 작업을 하는지 못 들어가게 했다.
주방에 가 있겠다고 일단 푸드 가방만 들고 나왔는데 방 안 가득 약품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정기적으로 하는 소독 작업인가? 그렇게 깔끔한 호스텔은 아닌 것 같아 이상했지만 어쨌든 잠깐 맡은 냄새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급히 서두느라 라면을 빠뜨리고 나왔다.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캔에 든 Potato & Leek Soup를 데워 먹었는데 조금 느끼했다. 면을 넣고 파스타로 만들어 먹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약 냄새로 보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땅콩버터 토스트까지 먹고 여유를 부렸더니 주방 사용시간이 07:30~14:00와 18:00~22:00로 정해져 있다며 주방에서 나오라고 직원이 와서 독촉한다.
나도 룸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못 들어가게 해서 이러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더니 알겠단다. 한 시간쯤 후에 룸에 들어가 보니 냄새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를리 공항에서 트램 7을 타고 시내까지 오기까지 여러 가지 환승 방법이 있었는데 굳이 RER-C를 타려고 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고 생 미셀 역에서도 굳이 RER-B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M4 표지판을 보고 의아하다 싶었는데 M4로 환승하면 되는 거였다. T7을 타고 종점까지 가서 M7을 타고 Poissonnière 역에 내려걸어도 되었다. 혹시 다음이 있다면 참고해야겠다.
저녁은 안 먹으려고 일단 씻었는데 커피물 때문에 주방에 가야 해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커피 물을 같이 끓이려고 한 냄비를 끓였는데도 물이 모자라서 라면 물은 다시 끓여야 했고 넉넉하게 끓였더니 이번엔 싱거웠다.
프랑스 도시세는 등급에 따라 다르단다. 제이콥스 인 호스텔도 0.83€가 적당한 수준이었고 이들의 주장대로 숙박비에 포함된 가격이 아니라 하더라도 2€는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리셉션에 적힌 금액은 19€, 사이트에 올라온 금액은 17€이니 싸게 올려두고 손님을 끌어들인 다음 자기네 가격에 맞춰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부킹닷컴에는 17€로 호객하고 있었다.
난 3인실 3박, 4인실 3박, 3인실 1박으로 예약한 거지만 그때 보았던 4인실로는 도저히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 기존 방 쓰는 걸로 합의 보려고 했는데 어차피 호스텔에 계속 항의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 예약한 부킹닷컴에 메일을 보냈다.
21시가 넘자 흑인이 들어왔다. 빈 방이 있음에도 일부러 이 방으로 보내는 건지 여자 투숙객도 많더구먼 여자는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도 편한 밤은 틀린 듯하다.
24시간 오픈 호스텔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한밤 중에도 불쑥 들어오는 투숙객으로 인해 매일 밤 수시로 깨야 했다. 그런데 이 흑인도 방이 맘에 안 드는지 바로 나가버렸다.
아무 데나 잘 것 같은 남자들도 기피하는 그런 룸에 계속 머물고 있는 나는 뭔가? 나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Porte Saint Denis
●The Centre Pompidou
●Galeries Lafayette
●Cathédrale Notre Dame de Paris
●Pont Neuf
●Palais Garnier
●Le Musée du Louvre
●Place du Carrousel
●Place de la Concorde
Paris Missa -0.20€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2.00€
Jacobs Inn Hostel +B -19.00€
Cuisine
Réfrigérateur
Four à Micro-O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