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16

Paris, France

by 안녕
Day 11.
Friday, May 5


멕시코 인이 리셉션에 얘기를 했으면 확인이든 조치든 하러 왔을 텐데 오지 않았다는 것은 호스텔에서도 이 방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이 호스텔 전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멕시코 인이 떠난 아래 침대에는 아무런 조치 없이 누군가 바로 체크인했지만 밤새 조용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역시 여자였고 이태리에서 왔단다. 체크아웃하지 않는 걸로 보아 오늘 밤도 이 조합일 것 같아 다행이다.

모두 나가고 난 뒤 3층 침대 부근 벽에 붙어있는 작은 점을 보았고 혹시 몰라 휴지로 떼어보니 피를 머금은 베드버그였다. 어제 그 벌레와 동일했지만 크기만 더 작았다.

매트리스뿐만 아니라 벽에도 기어 다닐 수 있다면 이 방 전체는 이미 점령당했다는 의미라 내 매트리스를 다시 살펴보다가 점보다 더 작은 벌레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침대도 안전하지 않다 생각하니 룸을 옮겨야 할까 고민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옮긴 것이 아닌 이 호스텔에 자체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거라면 다른 방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더구나 그 더러운 방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망설이게 되었다.

속으로만 수십 번 고민했지만 쉽게 결론을 낼 수 없었고 호스텔에 항의하는 것조차 두려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 인이 어느 룸으로 옮겼는지, 다른 룸 컨디션을 어떤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룸은 잠긴 상태라 확인할 수 없었다.

옮기는 것은 그다지 의미 없다고 어느 순간엔 합리화하고 있었다.




호스텔에 도시세 환불 요청을 했다는 부킹닷컴의 답변 메일을 가지고 리셉션으로 가서 있었던 일을 부킹닷컴에 알렸다.

보스라는 사람이 내가 옆에 서 있는데도 내 예약서를 직원에게 집어던지며 폭언을 했고 들어오던 손님들이 다 나갈 정도로 한참 동안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결국 직원은 자기네 최저가는 19유로라며 두 번째 예약 건도 3박 57유로를 지불했다고 했다.

혹시 부킹닷컴에서 숙박업소의 승낙 없이 특가를 제시한 것은 아닌지, 또한 업소가 예약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폭언을 해도 전화가 아니라 메일로만 독촉하는 걸로 끝이라면 어떤 업소가 부킹닷컴의 요구에 응할지 강력하게 항의했다.

체크아웃할 때쯤에 부킹닷컴조차도 내가 파리를 떠났기 때문에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이번 여행의 모든 숙박은 부킹닷컴에서 예약한 상태인데 앞으로 남은 내 모든 일정이 잃어버린 부킹닷컴의 신뢰성으로 인해 불안하게 되었다.

난 더 이상 제이콥스 인 호스텔과는 어떤 얘기도 하지 못하겠다. 부킹닷컴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이번 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제가 파리를 떠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부킹닷컴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솔직히 남은 4박을 취소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10시 반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기 위해 호스텔을 나왔다.

혹시 몰라 비옷을 챙겼고 월요일에 가게 될 리옹 역 방면으로 마냥 걸었다. 바스티유 광장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Place de la Bastille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광장이다. 4구, 11구, 12구에 걸쳐 있으며 광장 주변 지역은 바스티유라고 불린다.

원래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이지만 1789년 7월 14일에 프랑스혁명의 발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발생하여 해체되었기 때문에 감옥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는 광장 중앙에 1830년에 일어난 7월 혁명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주변에는 바스티유 역이나 생 마르탱 운하가 있다. 또한 예전에는 국철 바스티유 역도 있었지만 현재는 철거되었고 부지에 오페라 바스티유라는 극장이 건설되었다.




Bastille Saint-Antoine, Bastille de Paris는 프랑스 파리에 있던 감옥이다. 바스티유는 원래 성채, 요새를 뜻하는 보통명사지만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있었던 바스티유 습격과 관련하여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은 19세기에 공원과 광장이 되었다. 바스티유 옛터(Place de la Bastille)가 파리 시의 7월 광장에 있으며 인근에는 혁명 200주년 기념일에 맞춰 1989년 개관된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이 있다.

또 파리 메트로 5호선 바스티유 역에는 해당 요새의 벽 일부가 남아 있다. 사드 후작, 볼테르,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감된 걸로 유명하다.




오늘은 걷는 것이 목적이라 무작정 걸었다. 다리를 건너 판테옹으로 갔다.




Panthéon 혹은 Panthéon de Paris는 파리 카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 지역에 있는 건축물이다.

입구에 있는 삼각형 부조 아래에는,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다.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데 팡테옹은 원래 생 주네비에브에게 봉헌된 교회였으나 수많은 변화를 거쳐 현재는 예배 장소와 위인들의 묘지의 역할이 복합되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초기 신고전주의 건물로 Façade는 로마의 판테온에서 따온 것으로 브라만테의 템피에토와 비슷하게 생긴 돔이 위에 얹혀 있다.

파리 5구에 위치한 팡테옹에서는 파리 전체를 내다볼 수 있다.

이 건물의 건축가인 자크 제르맹 수플로는 고딕 성당의 가벼움과 밝음을 고전적인 원리들과 복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수플로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하였고 그의 설계안은 완전히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그가 이 걸작을 위해 계획한 건물의 투명성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의 중요한 건축적 성과들 중 하나였고 최초의 기념비적인 신고전주의 건물이었다.

루이 15세는 병석에서 자신이 회복되면 후원할 가치가 있었던 파리의 성자인 성 주네비에브를 위해 폐허가 된 성 주네비에브 교회를 바꿀 것이라고 맹세를 했다. 그는 병상에서 회복되었고 그는 아벨 프랑스와 프와송에게 그의 맹세를 이행하도록 맡겼다. 1755년 그는 자끄 제르맹 수플로에게 교회의 설계를 맡기고 2년 후 건축에 들어갔다.




별 의미 없이 사진만 찍었다.

생 제르맹 거리를 향해 걷는데 우측 골목으로 눈에 익은 성당이 얼핏 보였다. 파리의 성당은 다 똑같이 생긴 건가 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돌아서서 강변을 향해 갔는데 눈에 익은 그 성당은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13시 오늘의 여정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가려워서 다리에 물린 상처를 확인하다 들고 있던 커피통을 떨어드렸는데 정신이 없다 보니 주워준 사람이 한국인임에도 순간 영어로 말해버렸다. 누가 봐도 서로 한국인으로 보였을 텐데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제 파리에서 가고자 하는 곳은 다 가 봤고 이제부터는 시간만 빨리 가길 빌게 되었다. 만약 14유로를 환불받게 된다면 헌금으로 내기로 했다. 집 근처에 성당이 신축 중이었는데 미사에 참여할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다시는 파리에 오지 않겠다면서도 이곳을 밟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제로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었다.

여전히 넋이 나간채로 돌아왔고 라면을 먹으며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샤워하고 방으로 돌아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어서 더 무서운 침대에 누웠다.

메일을 확인하니 부킹닷컴에서 답변이 와 있었다.

문제 해결이 지연된 것에 대한 사과와 호스텔 측에 환불 요청을 해두었지만 만약 체크아웃 전에 해결되지 않으면 부킹닷컴에서 책임지고 나에게 환불해 주겠으니 영수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낸 메일로 문제가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Place de la Bastille
●Panthéon de Paris
●Place du Panthéon
●Boulevard Saint Germain
●Cathédrale Notre Dame de Paris
●Le Point Zéro




Jacobs Inn Hostel +B -19.00€


Cuisine
Réfrigérateur
Four à Micro-On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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