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17

Paris, France

by 안녕
Day 12.
Saturday, May 6


19호실의 사람들에게 Bedbug에 대해 경고해 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 조합이 깨지는 게 싫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파리에 와서도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7시쯤 잠에서 완전히 깨버렸고 8시에 아침을 먹으러 갔더니 나 혼자였다.

결코 먹고 싶지 않은 허술한 조식이었지만 빵을 가져다 꾸역꾸역 먹었다. 직원이 뽑아준 믹스커피를 마시며 어머니와 통화하려고 했더니 이미 톡이 들어와 있었다.

동생이 신혼집으로 짐을 마저 실어갔는데 내가 사 준 책상도 잘 챙겨갔단다. 어머니는 동생의 빈 방을 청소하시다 집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는 중이라며 내 책들을 어떻게 할 건지 물으셨다.

오빠와 동생은 남자라 통금시간이 없었지만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와야 했다. 나가서 노는 일에 익숙해지기 전에 집에만 있었으니 유치원생 때부터 자연스레 책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를 위해 사 주었던 세계 문학 전집 60권은 자연스레 내 차지가 되었다. 오빠는 나가서 놀기 바빠서 책을 읽지 않았으니 어머니는 더 이상 책을 사주지 않으셨다. 난 얼떨결에 차지한 그 동화책을 수십 번은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독립을 하고 고향에 갈 때마다 내 어린 시절 추억들을 챙겨 왔다. 나중에는 그 낡은 동화책도 가져오려고 했으나 이미 다락방으로 들어간 후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에 고향에 갔을 때도 어머니는 누구를 줬는지, 버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다락방을 정리하면서 책 박스를 찾게 된 거였다.

그 자체가 내 어릴 적 친구였다. 곧 가지러 갈 테니 꺼내기 쉬운 곳에 두라고 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책이라 내 손에 들어오면 아마 울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호스텔에 어울리지 않는 고상한 옷을 입고 봉지빵과 얇은 플라스틱 컵에 든 믹스커피를 마시던 모습이 묘하게 웃겼던, 어제 봤던 그 서양인 아줌마가 시끄럽다고 나가서 통화하라고 한다.

여기 휴게실인데? 좋은 말로 얘길 해도 되는데 화를 내는 모습이 무서워서 그냥 피하기로 했다. 통화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한 빵을 챙겨 나오려는데 직원이 빵은 두고 가라며 제지한다. 20개 한 팩에 1유로도 하지 않는 몇십 원짜리 빵이라는 걸 나도 이젠 안다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벽에 붙어있는 붉은 작은 점이 의심스러워 휴지로 닦으니 피가 터지면서 붉게 물들었다. 베드버그였다. 증거를 남기려 사진을 찍는 중에도 내 시트 위를 기어 다니는 또 다른 베드버그를 발견했고 역시 또 피가 터졌다. 이젠 베드버그를 확실히 구분할 지경이 되었다. 옆에서 보면 바퀴벌레 축소형이지만 피를 먹으면 빵빵한 진드기 같은 모습 그러나 이곳의 베드버그는 너무 작아서 작은 점처럼 보였다. 새 시트의 얼룩들은 결국 베드버그 사체의 얼룩이었나 보다. 벽의 여기저기 얼룩들도 결국 베드버그 자국이니 호스텔에서 모를 리가 없었고 그 방역도 결국 베드버그 방역이었던 셈이다.

쌀쌀한 날씨라 오늘은 정말 나가기 싫었는데 침대에 있기가 더 두려웠다. 내 배낭은 어쩌지? 영국에서는 깔끔 떠느라 비닐로 싸서 침대 위에 올려두었는데 왠지 유난 떠는 것 같아 파리에 와선 그냥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게다가 의심스러운 이불 뭉치도 그 옆으로 나란히 두었으니 어느 것 하나 안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람은 하던 대로 살아야 하나보다. 원래 하던 대로 그냥 깔끔 떨고 조심했더라면 최악의 상태는 면하지 않았을까? 하느님 도와주소서. 이번 여행에선 유독 그분을 자주 찾고 있었다. 힘들 때만 찾는 나에게 벌이라도 주시는 것 같았다. 나의 믿음이 이렇게 강했던가?

장을 비우고 나니 허기가 져서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였는데 어제부터 냉장고에 들어있던 피자는 누군가 두고 간 듯하여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라면을 먹고 피자를 챙겨 올라오니 방문이 잠겨있어 다시 내려가 열쇠를 가지고 올라왔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을 줄이며 포기했었던 몽 생 미셀에 갔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으려나?




Mont-Saint-Michel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코뮌인 섬이다. 프랑스 북서부 해안에서 약 1km 떨어져 있는 이 섬은 고대로부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는 요새들을 가지고 있으며 8세기 이후로 이 섬의 이름을 딴 수도원이 있다. 이곳의 구조적 배치는 이것을 건설한 봉건사회를 잘 보여준다. 가장 꼭대기에 신이 있고 그 아래 수도원 그리고 큰 홀이 배치되고 그 아래 상점과 주택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성벽 바깥 가장 아랫부분에는 농부와 어부들의 거처가 있다. 해안에서 6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독특한 위치는 간조기에 육지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수도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만조기에는 이곳에 침투하는 적들이 좌초하거나 물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쉽게 방어가 가능한 위치이다. 이런 천연적 지세에 의해 이 섬은 백년전쟁의 대부분 기간 동안 불파의 요새로 남아 있었다. 적은 수의 경비대가 1433년 잉글랜드 군의 총공격에 대해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이런 양면적인 이점은 루이 11세가 이곳을 국립 감옥으로 만들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몽생미셸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만조시에만 섬(Tidal Island)인 이 몽생미셸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나 선사시대에 이곳은 건조한 땅 위에 있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침식이 해안의 경치를 새로 만들었고 화강암과 백립암(Granulite)의 몇몇 노두가 만에 드러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바위섬이 되었다. 이 섬의 둘레는 960m이며 가장 높은 지점의 높이는 해발 92m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큰 곳으로 최대 14m에 이른다. 둑길이 아니라 주변 해안의 위험이 많은 모래밭을 건너 방문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위험을 줄 수 있다. 가끔 발생하는 홍수와 간척사업은 해수 소택지(海水沼澤地, Salt Marsh) 초원을 형성하여 양이 풀을 뜯는데 이상적인 곳이었다.

몽생미셸은 이전에는 간조 때 드러나고 만조 때 바다에 잠기는 길을 통해 본토와 연결되었었다. 이 길은 수세기에 걸쳐 개조되어 왔다. 해안의 습지는 목초지를 만들기 위해 간척되었기 때문에 해안과 몽생미셸 섬 사이의 거리는 날로 줄어갔다. 1879년에는 상시적으로 통행할 수 있는 길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섬 주위의 침니(沈泥, Silt)가 조수에 씻겨나가는 것을 막았다. 2006년 6월 16일 프랑스 총리와 지방 당국은 1억 6400만 유로의 사업인 Projet Mont Saint Michel을 발표하고 수압식 댐의 건설 계획을 밝혔다. 몽생미셸을 다시 섬으로 만들 이 계획은 2015년 완성되었다. 그 계획은 주차장과 둑길을 없애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주차장은 2km 떨어진 본토에 만들어질 예정이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지만 침대에도 못 올라가고 한참을 서성이다 베드버그를 연속으로 세 마리를 더 잡았는데 누구의 피인지 모르지만 이미 모두 배가 빵빵한 상태였다. 나도 피자로 연이어 배를 채웠다. 오늘은 체크아웃하는 사람이 없는지 뽀글이 아저씨가 청소하러 오지 않아 침대에 그냥 누워버렸다. 여기저기 따끔거리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2박이 남아있다는 현실이 나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니스에 예약해 두었던 Nice Art Hotel도 왠지 불안해져 다른 호텔을 알아보는데 평가 좋았던 Meyer Beach가 17유로에 나와 있고 니스 아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Hotel Altair는 15유로다. 절반이라도 취소하고 싶었지만 이미 취소 불가한 시점이라 마음을 접었다. 여기처럼 작은 방이긴 하나 여성 전용이라는 점을 믿어보기로 했다. 목덜미 쪽에 여러 군데 물린 자국이 있어서 다른 곳도 살펴보니 손목에도 발목에도 이미 많이 물려있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더 심해지면 앞으로의 모든 일정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니스에서도 리옹에서도 숙소에만 있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순례길에 앞서 쉬고 싶었던 여정이 제대로 지옥이 되어버렸다.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16시, 무력감에 강제로 오늘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But 니스 아트 호텔도 최악이라는 후기를 보게 되었고 평점은 여기보다 더 안 좋았다. 주변 분위기는 여기랑 비슷하지만 그래도 믿어보려고 했는데 그곳도 역시 사진빨이었다. 이 호스텔도 휴식 공간에 원색으로 페인트 칠 해놓고 뭔가 예술적인 것 마냥 위장해 놓았었다. 니스에선 방안에 욕실까지 있는데 바퀴벌레가 나오고 더럽단다. 니스에서도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지? 좋은 후기만 오픈하고 안 좋은 후기는 오픈하지 않은 부킹닷컴은 나쁘다. 그나마 리옹 숙소만 비싼 만큼 후기가 좋았다. 내 여행은 이제 끝인가 보다. 절망의 연속이다. 따끔거리던 엉덩이도 이미 점령당한 상태였다. 물린 모든 곳들이 한꺼번에 발진을 일으키면 견딜 수나 있을까? 약을 먹었다. 몸은 이미 버렸고 내 배낭만이라도 무사하길 바랐다. 배낭에 왜 비닐을 깔지 않았는지 계속 후회가 되었다. 런던에서는 혹시라도 내 배낭이 깨끗한 침대를 더럽힐까 조심스러웠지만 이곳은 배낭보다 매트리스가 더 지저분해서 그냥 올려두었던 거였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길 바라며 늦었지만 비닐을 꺼내어 씌워본다.

이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창을 열지 않으려 했는데 감기 걸린 이태리 인이 들어오자마자 창을 열어버렸다. 그리곤 가족과 통화를 하는데 소리가 너무 크다. 나는 통화하다 휴게실에서 쫓겨났지만 가족과 통화하는 모습이 부러워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폴란드 인이 들어와서 노트북으로 영상통화까지 했다. 서로의 통화 소리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자 폴란드 인이 먼저 룸을 나가는데 웬일인지 울고 있었다. 호스텔 앞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단다. 그러고 보니 난 이 우범지역을 그렇게 다니면서도 돈을 잃진 않았다. 조심하고 조심했던 결과이기도 하지만 만약 돈을 잃어버렸다면 난 아마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사람은 여행 와서도 평상시에 하던 대로 하는 법이니 생존을 위해서 먹는 나에겐 맛있는 음식이 필요 없었고 대중교통 이용이 두려운 나는 걸을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만약 경비를 모두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최악의 경우의 수를 항상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라 당연히 해답도 없는 상태였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마지막인 내일은 마지막 1박 연장하고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한 후에 16시 30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를 듣고 돌아오는 걸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Jacobs Inn Hostel +B -19.00€


Cuisine
Réfrigérateur
Four à Micro-On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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