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9
Roncesvalles→Zubiri
Day 7.
Tuesday, June 2
아저씨는 적응이 되셨는지 먼저 출발하셨고 Y와 나는 7시쯤 출발했다. Santiago de Compostela 790km 표지판을 지나 조그만 샛길을 따라 걸었다. 이 숲길은 부르게떼까지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낙엽송이 우거진 근사한 숲의 터널로 이어져 있다. 발톱을 살리기 위해 등산화는 배낭에 매달고 슬리퍼를 신고 걸었는데 등산화가 더해진 배낭이 제법 묵직해졌다. 슬리퍼가 얇은 실내용이라 살짝 불안했다. 그래도 양쪽 엄지발톱이 부어있는 상태라 여차하면 발톱이 빠질 것 같았다. 어떻게든 까미노가 끝날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Burguete/Auritz (895M)는 신비로우면서도 조용한 마을이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머물렀던 유명한 작가들이 계속 이어져 왔는데 빅토르 위고(Victor Hugo),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Gustavo Adolfo Bécker),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헤밍웨이는 산 페르민의 도시 빰쁘로나의 소음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그의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하였다. 그래서인지 부르게떼는 론세스바예스와 가까운 작은 마을이지만 휴가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시간이 있다면 부르게떼 근처의 낀또 레알(Quinto Real)이라고도 부르는 몬떼 아에스꼬아(Monte Aézcoa)의 거대하면서 신비로운 숲을 거닐어볼 수도 있다.
또한 부르게떼의 거리에서는 이 지방의 역사, 문화, 풍습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부르게떼는 론세스바예스의 오래된 마을로 나바라의 전통 문양을 가지고 있는 붉은색의 커다란 창문과 돌로 만들어진 집을 볼 수 있는데 오래된 집을 보고 있노라면 중세로 시간이동을 하는 것 같다.
9월에는 16세기부터 이어져 온 가나도 축제(Feria de Ganado)를 즐길 수 있다. 부르게떼는 롤랑의 전설과 론세스바예스 전투가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며 이베리아 반도와 현재의 프랑스가 연결되는 나바라의 역사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뽐뻬요, 샤를마뉴, 롤랑, 샤를 7세 등이 스페인 원정 전투 중 부르게떼를 거쳐 갔다. 또한 Burdeos에서 Astorga로 이르는 로마 가도, 나폴레옹의 길, 이주로, 전설적인 묵시록의 길이 모두 부르게떼를 지나간다.
Iglesia de San Nicolás de Bari
바리의 산 니콜라스 성당은 부르게떼의 교구 성당으로 바로크 양식의 정문이 있는 16세기 건물이다.
50분쯤 부르게떼에 도착했는데 길목에 수뻬르메르까도가 있어서 0.79€ 레몬주스 한 병을 골라 계산하려는데 Y가 채소 믹스, 바나나 두 개를 고르고 3€를 주면서 같이 계산하란다. 2L 레몬주스를 물통에 옮겨 담고 Y의 물병도 채웠는데 남은 것을 마셔보니 너무 맛있었다. 천원도 안 되는 금액인데 너무 상큼하고 달콤했으며 탄산이 들어있지 않은데도 정신이 번쩍 드는 청량감이 있었다. 냉장고에 들어있지 않았는데도 너무 시원했다.
기운을 차리고 다시 출발했다. 사이즈가 큰 실내용 슬리퍼는 양말 때문에 미끄러운지 자꾸 벗겨졌다. 결국 양말을 벗었으나 계속 이어진 자갈길을 걷기엔 슬리퍼가 너무도 얇았다. 마을 중간에 있는 Banco Santander Central Hispano 옆길을 끼고 내려가서 두 개의 조그만 시내를 지나 넓은 농장 길을 지났다.
9시쯤 피레네 산맥의 전형적인 마을로 1269년 나바라의 왕인 떼오발도 2세에 의해 만들어진 에스삐날에 도착했다.
Espinal/Aurizberri (873M)은 나바라의 가장 아름다운 계곡에 있으며 피레네의 풍경과 풍부한 고인돌 유적이 특징인 곳이다. 마을의 주요 길 양쪽에 아름다운 피레네식 주택이 늘어서 있는 전형적인 까미노 데 산띠아고식 마을로 이 마을은 1269년 나바라의 왕 떼오발도 2세(Teobaldo II)가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 프랑스인 상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웠다. 이 마을에서는 멀리 나가지 않아도 주거지 근처에서 피레네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데 로마 가도(Calzada Romana)를 산책할 수도 있으며 근처의 돌메네스 단지 (Conjunto de Dólmenes)를 찾아가 숲을 거닐 수도 있다.
마을 주거지에서는 전통 가옥들과 13세기에서 18세기까지 만들어진 무덤과 비석들을 볼 수 있다. 오래된 성당에 부속으로 있는 Estelas Funerarias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 비석들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13세기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측되며 가장 최근에 생긴 것은 18세기의 것이다. 장례용 비석은 처음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지만 나중엔 경계를 표시하거나 까미노의 십자가를 보호하는 역할, 순례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길잡이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건축물로는 현대 건축물인 산 바르똘로메 성당(Iglesia de San Bartolomé)과 농촌의 전통 석조 가옥 등이 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현대적인 교구 성당인 산 바르똘로메 성당에 들어가 잠깐 쉬었는데 여기에서 크로모르메 8이라고 불리는 파이프 오르간 선율을 감상할 수 있단다.
에스삐날 근처에는 이뚜리사 (Iturissa)라고 하는 1세기 로마제국의 공동묘지가 있다. 그리고 에스삐날은 포도 수확에 사용하는 목재 광주리를 생산하는 장인들이 사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곳의 광주리는 개암나무로 만들어져 튼튼하고 아름답다.
Estelas Funerarias
현재 오래된 성당에 부속으로 있는 장례용 비석들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 비석들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13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측되며 가장 최근에 생긴 것은 18세기의 것이다. 장례용 비석은 처음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지만 나중엔 경계를 표시하거나 까미노의 십자가를 보호하는 역할, 순례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길잡이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Iglesia de San Bartolomé
산 바르똘로메 성당은 1961년에 만들어진 현대적인 교구성당으로 크로모르메8 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선율을 감상 할 수 있다.
화장실을 이용할 겸 근처에 있는 바르 또끼오나에 들어갔다. 까페꼰레체를 주문하면서 Y의 까페도 같이 계산하고 대신 바나나를 얻어먹었다. 변비로 고생하는 Y는 매 끼니마다 바나나와 믹스 채소를 먹고 있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10시쯤 다시 출발하면서 등산화로 바꿔 신었다. 그러나 이미 발바닥에 작은 물집이 생기고 있었고 걷다 보니 자꾸 커지는 게 느껴지더니 한 시간 만에 물컹거리며 마치 물풍선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멈추고 물집을 터뜨리고 싶었으나 바르에서 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또다시 멈추기엔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혼자였다면 멈추었겠지 싶다. 어느덧 발바닥 절반에 물집이 생겨버렸다. 수비리에 도착하면 물집을 터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냥 강행하고 있었는데 그만 물집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자 되려 홀가분한 느낌에 계속 걸어가는데 터진 피부가 찢어지며 양말에 달라붙어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쓰라림과 욱신거림이 시작되었다. 껍질이 홀랑 벗겨진 발로 걷는 느낌이라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따가움에 움찔거렸지만 참아야 했다.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흙 알갱이 하나하나가 발바닥으로 느껴졌다.
너도밤나무 사이의 좁은 숲길을 지나고 두 개의 골짜기를 넘으니 도로가 나왔다. 메스끼리츠 고개 정상이었는데 길가에 있는 비석에 “여기에서 론세스바예스의 성모에게 구원을 기도한다” 라고 쓰여 있단다. 도로를 가로질러 회양목과 떡갈나무로 가득 찬 터널 같은 좁은 숲길로 들어간다. 숲길을 지나면 콘크리트로 돌을 흉내 내어 포장한 길을 만나게 되고 포장도로의 단조로움에 지칠 무렵 비스까렛에 도착하게 된다.
Viscarret/Guerendiain (781M)은 과거에는 상당히 큰 마을이었으나 론세스바예스에 숙박 시설이 많이 생기고 나서는 순례자 길 마을로서의 역할이 줄어들었고 인구도 점차 감소했다.
비스까렛은 소로가인(Sorogain) 자연공원으로 가는 길에 있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의 유적을 보거나 산악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고 전통적인 목축 방법을 보고 푸른 목장을 볼 수도 있다.
소로가인 공원은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가 많은 푸른 초원이며 이 자연의 천국을 조용하게 지켜주는 신비로운 아디 산(Monte Adi)에 둘러싸여 있다.
에로 강이 소로가인에서 발원해서 송어가 많은 리오 이라띠 (Río Irati)로 흘러 들어가는데 레저를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비스까렛이라는 지명의 어원은 바스크어로 등이라는 뜻인 비스까르(Bizcar)에서 나온 것이다. 에스삐날 언덕의 산등허리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비스까렛은 목축을 주로 하는 마을로 12세기까지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콘크리트로 돌을 흉내 내어 만든 이 길은 발을 피곤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과거 우기의 진흙 길과 소의 배설물이 깔린 길을 걷는 것보다는 훨씬 쾌적하다.
Iglesia Parroquial San Pedro
13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 산 뻬드로 교구 성당
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지난 후에 왼쪽으로 있는 조그만 상점 옆으로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나있는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린소아인에 다다르게 된다.
Linzoáin/Lintzoain (744M)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비문과 문장이 새겨진 방패 등이 있는 위풍당당한 집들이 있고 까미노에 대한 역사와 카롤링거(Carolingios) 왕조에 대한 전설과 신화가 섞여 있는 곳이다. 에로 계곡 중앙에 위치한 린소아인은 아직까지도 목동들이 그들의 풍습을 지키며 살고 있다. 중세 에로 계곡 위에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있었다고 한다. 에로 골짜기에는 숟가락과 구두 틀을 만드는 마지막 장인들이 살았는데 마르꼬스 사라구에따(Marcos Saragüeta)라는 사람이 최후의 숟가락 만드는 기술자로 알려져 있다.
린소아인은 론세스바예스 전투의 경합이 벌어졌던 곳 중 하나이다. 오늘날에도 에로 골짜기에서 ‘롤랑의 발자국(Huella de Roldán)’을 볼 수 있다. 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너럭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론세스바예스에서 패한 샤를마뉴 소속의 프랑스 군대의 말이 지나간 바위라고 한다.
Iglesia de San Saturnino
성 사뚜르니노 성당은 13세기에 지어져 16세기에 재건되었으며 현대에 들어 보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현대적이고 단순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로 견고한 외양과 창이 없는 사각형 탑을 볼 때 과거에는 요새 역할을 겸했던 성당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롤랑의 발자국에 관한 전설이 있는 이 마을을 지나면 그 이후로는 매우 좁은 길을 통해 에로 고개의 정상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론세스바예스 전투의 경합이 벌어졌던 곳 중 하나인데 오늘날에도 에로 골짜기에서 ‘롤랑의 발자국 (Huella de Roldán)’을 볼 수 있다. 길이가 3m에 달하는 너럭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론세스바예스에서 패한 샤를마뉴 소속의 프랑스 군대의 말이 지나간 바위라고 한다. 길은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좁은 숲길로 이어지며 산기슭에 다다르면 떡갈나무, 자작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진 넓은 숲이 나온다. 에로 고개는 100년은 넘어 보이는 오래된 소나무와 떡갈나무, 자작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높은 통신용 철탑이 있다.
중세시대 순례자를 위협하는 도둑들의 보금자리였을 에로 숲을 지나 언덕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가로지르면 오래된 유적지인 벤따 델 뿌에르또(Venta del Puerto)로 향하는 길로 접어든다. 이후 뽀르띠요 데 아고레따 계곡의 뒤로 가파른 내리막 길이 이어졌다.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눈은 부시고 자잘한 돌이 흙, 모래와 섞여 미끄러운 길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친 다리로만 버틸 수 없어 스틱을 의지하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면 아마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 수비리 마을 안내판이 너무나 반가웠다.
Zubiri/Esteribar (530M)는 에스떼리바르 계곡(Valle de Esteríbar)의 주요 도시이고 나바라를 지나는 까미노 길에서 인구가 많은 도시 중 하나이다. 수비리는 바스크어로 다리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 도시가 아르가 강(Río Arga)을 끼고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다리가 많아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아르가 강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수비리에는 까미노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큰 교차로가 있으며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묵으면서 거슬러 올라가서 아르가 강의 발원지와 에우기 연못(Pantano de Eugui), 낀또 레알 숲(Bosque del Quinto Real) 등을 보러 갈 수도 있다. 또한 깨끗한 수질의 아르가 강 특히 에우기 연못에서는 송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수비리 입구에는 까미노와의 경계에 라 라비아(La Rabia)라는 중세 시대의 다리가 있고 산 에스테반(San Esteban)에게 봉헌된 교구 성당이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순례자라면 호르헤 오떼이사 박물관(Fundación Museo Jorge Oteiza)을 방문할 수도 있다.
또한 수비리는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철학자 하비에르 수비리(Xabier Zubiri)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El Puente de La Rabia
수비리에서 빰쁠로나로 향하는 길에 있는 라 라비아 다리에는 농부들 사이에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공수병에 걸린 동물이 이 다리의 중앙 기둥을 세 바퀴 돌게 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다리의 이름인 라 라비아(La Rabia)도 스페인어로 ‘공수병’이라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강 하류의 산따 끼떼리아(Santa Quiteria)의 무덤을 동물이 밟고 지나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고딕 양식 다리의 교각대에는 끼떼리아 성인(Santa Quiteria)의 유물을 모셨다고 한다.
Iglesia de San Bartolomé
산 바르똘로메 성당은 까를리스따(Carlista) 전쟁(페르난도 7세가 죽은 후 왕권이 그의 딸 이사벨 2세에게 넘어가고 이사벨의 어머니 끄리스티나가 섭정을 시작하자 페르난도 7세의 동생 까를로스가 일으킨 전쟁)에 요새로 활용되었고 1836년의 전투에서 파괴되었다.
Iglesia de San Esteban
성 에스테반에게 봉헌된 교구 성당
15시, 수비리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곳은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철학자 하비에르 수비리(Xabier Zubiri)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마을 초입의 라 라비아 다리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El Puente de La Rabia에는 공수병에 걸린 동물이 이 다리의 중앙 기둥을 세 바퀴 돌게 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 다리의 이름인 La Rabia도 스페인어로 공수병이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강 하류의 끼떼리아 성인(Santa Quiteria)의 무덤을 동물이 밟고 지나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고딕 양식 다리의 교각대에는 끼떼리아 성인의 유물을 모셨다고 한다.
공립 알베르게가 보이지 않아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아저씨를 만났다. 일찍 도착하셔서 근처 사립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쉬고 계셨단다. 땡볕이라 사립으로 따라 들어갈까 하다가 공립으로 갔다. 공립은 거의 마을 끝에 있었다.
끄레덴시알에 세요를 받고 계산하려는데 Y가 8€를 지불하며 대신 저녁을 사란다. 저녁은 먹고 싶지 않았고 이러면 돈 관리가 힘들어지는데 싶어 거절하려다가 너무 힘든 상황이라 알았다고 했다. 건물 2층에 있는 2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평소에는 2층 침대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2층까지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고 게다가 지금은 물집으로 침대에 오르는 게 너무 힘든 상황이라 마냥 싫었다.
등산화를 벗으니 따가움은 더 심해졌다. 샤워할 때 물이 닿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이 상태로 걸을 수 있을까? 통증보다 불안감이 더 컸다. 이미 발바닥 절반이 벗겨진 상태라 물집 치료는 의미가 없었다. 상처 면적이 넓어서 소독을 하고 혹시 몰라 가져온 거즈를 펼쳐 붙여서 진물을 흡수시키고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Y는 세탁기를 돌린다고 셰어 하자는데 공용 세탁기는 쓸 마음이 없었기에 거절했더니 1€가 모자란다고 1€를 달라더니 세탁기 사용료가 3€라며 다시 1€를 더 가져간다.
빨래를 하고 널기 위해 마당으로 내려가는데 자갈 마당이라 죽을 맛이었다. 어기적 걷는 모습에 순례자들이 괜찮냐고 한 마디씩 한다.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잔뜩 찌푸린 얼굴이 나도 느껴졌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마당 건너편 건물에 세탁기가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취사 가능한 주방이 있었다. 가지고 온 짜장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도저히 먹을 기력이 없어 Y에게 주고 난 커피를 마셨다. 솔직히 드러눕고 싶은데 침대에 올라가는 게 겁나서 계속 식당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침대 사다리 발판을 딛고 올라가야 하는데 발바닥이 다 까진 상태라 체중을 실어 오른다는 게 두려워 밟는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내일 점심은 사과 하나면 충분할 것 같았다. 내가 저녁을 사기로 했는데 Y는 짜장라면을 먹고 나니 저녁은 안 먹어도 된다고 해서 대신 먹거리를 사기로 하고 근처 띠엔다로 갔다. 사과를 하나씩 고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더 사라고 했더니 바나나, 음료, 초코빵, 채소 등을 고르니 7.94€다.
혼자라면 딱 내가 먹을 것만 사면 되는데 공용으로 사게 되면 계산도 그렇지만 이걸 다 누가 들고 갈지도 애매해진다.
힘들어도 어제는 산이라서 그러려니 했지만 오늘은 배낭의 무게 하나에도 무척 예민했었다. 발목 보호대나 스틱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음식은 모두 먹어치우고 가볍게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땡볕 아래에서 걸을 때는 빨리 흡수시킬 수 있는 달달한 음료만 있으면 굳이 먹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일행이 있으니 좋은 점도 있지만 먹기 싫어도 매 끼니 같이 먹어야 해서 불편해졌다.
Roncesvalles→Zubiri 21.5km
○Roncesvalles (953M)
●Burguete/Auritz (895M) 2.8km
-Iglesia de San Nicolás de Bari
-Monte Aezkoa de Quinto Real
●Espinal/Aurizberri (873M) 3.7km
-Iglesia de San Bartolomé
-Estelas Funerarias
●Alto de Mezkiritz (922M) 1.7km
●Viscarret/Guerendiain (781M) 3.2km
●Lintzoain (744M) 1.9km
-Iglesia de San Saturnino
●Alto de Erro (801M) 4.5km
-Venta del Puerto
●Zubiri (530M) 3.7km
-El Puente de La Rabia
-Iglesia de San Bartolomé
727.9km/775.0km
Burguete Mercado 3.62€
Limon Zumo 2L -0.79€ (Y 0.17€)
(Y Plátano, Vegetales Mixtos 2.83€)
Espinal Bar 2.40€
Café -1.10€
Café con Leche -1.30€
Albergue Municipal de Zubiri Y 8.00€
Zubiri Tienda 7.94€
Plátano -0.59kg×3.6=2.12€
Manzana -0.40kg×2.8=1.12€
Yogurt -1.60€
Vegetales Mixtos -1.30€
Pan de Choco -1.00€
Con Gas Limon Zumo -0.80€
Bonus +0.01€
레몬주스
카페 콘레체, 바나나, 믹스 채소
Cocina
WIFI
Tie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