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29

Lyon, France

by 안녕
Day 24.
Thursday, May 18


날씨가 은근히 더워지니 모기도 극성이다. 모기의 존재를 확인하고서야 적어도 내 발가락을 문 것은 모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8시, 창밖 건물 1층이 공사를 시작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장을 비우고 샤워하고 이를 닦은 후에도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공사 구경을 하고 있었다.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주방으로 갔다.

과자를 득템하고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콘을 먼저 먹었다. 순서가 뭐가 중요해. 아무리 맛있는 바게트라도 하루를 넘기면 맛이 없어진다는 논리에 어젯밤에 다 먹어버려 오늘은 아침부터 밥이다.

기본 채소가 들어가 있는 동남아식 프라이드 라이스에 냉동실에 있던 홍합과 머시룸, 포테이토, 믹스 베지터블까지 추가로 넣고 볶았더니 너무 맛있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함께 먹었을 텐데 오늘도 나 혼자다.

망고 아이스바를 디저트로 먹으며 마리아와 톡을 하다가 침대로 돌아왔다.




날씨가 좀 흐렸는데 리옹에 왔으면 가봐야 하는 떼뜨 도르 공원엘 가야 되나 말아야 하나 아직 고민이다.

한량처럼 이렇게 지내는 게 좋으면서도 왜 가끔씩 죄책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여행 와서 무조건 유명 관광지를 다 누비고 다니란 법은 없는데 말이다.




이미 외출하고 보이지 않던 유끼는 직업이 웨이트리스였다. 캐리어를 도둑 맞고 급히 사 온 제품들이 모두 고급이었다. 여행지에서 임시로 쓸 것들로만 사더라도 예산이 부족할 텐데 싶지만 이것도 편견이겠지 싶다.

12시 직전에 돌아와서 짐을 싸는 것 같더니 인사도 없이 체크아웃해 버렸다. 우리가 인사할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룸 클리닝 시작하기 전에 다시 주방으로 피신했다.

점심으로 피자를 먹기로 했다. 얼마나 방치되어 있던 건지 너무 건조해져 있어서 그냥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냉동이니 조금만 꺼내 구웠는데 이게 또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스태프들이라도 먹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스페인 순례길에서의 오스삐딸레로들도 순례자가 남기고 간 식재료는 다음 순례자를 위해 그냥 놔두곤 했었다.

아무도 먹지 않아 며칠째 방치된 식재료를 내가 먹어치운 적도 많았다.




음식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머니도 나와는 생각이 달랐다. 열 가지 넘는 밑반찬을 준비해 놓으시지만, 한 번에 한 달 동안은 먹을 정도의 양을 만드신다. 며칠만 지나면 똑같은 반찬에 질려서 결국엔 손을 대지 않고 버리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가 먹다 남긴 밥그릇에 밥을 채워 주는 밥이 정말 싫었다. 손님이 와도 그랬다. 밥이 많다는 사람들에게 먹을 만큼 먹고 남기라고 했다. 누군가 먹고 남긴 밥은 여자인 어머니와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집밥이 그립진 않았다. 맛있는 식당보단 깨끗한 식당을 선호한다.

나는 밑반찬을 만들어도 당일에 먹을 것만 만들었고 멸치볶음을 만들어도 딱 하루치만 만들었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김치 외의 밑반찬이란 것은 거의 없다.

냉장고 파먹기를 해서 재료가 소진되면, 내부 소독을 하고 다시 장을 봐서 채우곤 한다. 그래서 어딘가에 처박혀서 찾지 못한다거나, 유통기한을 넘기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냉동실도 문을 열면 모든 재료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런 걸 용납하지 못하신다. 냉장고는 항상 가득 차 있어야 하고 우유를 싫어하시면서도 꼭 두 개씩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신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드시지도 않는 걸 굳이 왜 두통씩을 사냐고 하면 나이를 먹으면 우유를 먹어야 한대서 샀단다. 그럼 드시라고 하니 우유는 먹기 싫단다. 그렇게 매번 우유는 유통기한을 넘겼고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셨다.

고향집에 갈 때마다 냉장고 정리를 해드렸지만 정리된 냉장고를 보아도 뭐가 좋은지 모르셨다. 되려 찾던 물건이 안 보이면 나 때문이라고 타박이셨다. 이미 미어터지는 냉동실은 그 누구라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며 맞서 보기도 했다.

까만 비닐에 넣지 말라고 해도 습관을 못 버리신다. 같은 종류의 반찬통을 쓰면 냉장고에 정리하기도 편하지 않겠냐고 해도 같은 종류가 없다고 우기셨다.

싱크대 여기저기에 박혀있는 반찬통을 한 곳에 모아서 종류별로 크기별로 정리해 놓고 반찬을 다시 옮겨 담아 정리해 놓아도 이튿날이 되면 소용이 없었다.

꺼낸 그대로 넣는 게 힘드냐고 하면 잔소리하지 말라고 하신다. 정리는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고 하면 나의 수고가 도움이 되겠지만, 정리를 왜 하냐고 따지면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의 스태프는 모두 프랑스 현지인 같았다. 대부분 숙박업소에서 아시아인들을 채용했고 니스에서도 챔버 메이드는 그랬다. 그들의 위생 관념에 따라 청소하는 방식은 달랐고 그 숙소의 청결이 결정되었다. 파리에선 남미계였는데 그들도 다를 바는 없었다.

특급 호텔이라고 해도 요즘은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있는 추세였다. 그래서 한 번 정도는 외출하지 않고 그들의 청소하는 방식을 살펴보곤 했다.

변기 닦던 걸레로 룸에 있는 컵을 닦는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오기 전부터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봉사 활동하던 때에 주방과 가사 일을 위해 고용된 현지인 둘이 행주와 걸레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행주가 이상하리만큼 까맣게 더러워져 있어서 삶아서 하얗게 빨아놓았다.

화장실에도 맨발로 다니는 그들이 지나간 주방 바닥에 얼룩이 남아서 닦으라고 하니 삶아놓은 행주로 닦았다. 그 행주로 다시 싱크대를 닦고 심지어 접시를 닦기도 했다. 식탁을 닦으려고 하니 바닥에 있던 걸레를 집어주기도 했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지만 봉사자들 말처럼 그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내가 보이면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니 눈치를 보며 구분하는 시늉을 하긴 했지만 없으면 행주를 들고 건물 바깥 창틀을 닦아서 까맣게 만들어 놓곤 했었다.

한국인이 하얗게 삶아놓으면 그들은 걸레를 만들어 놓았다. 그 과정이 되풀이되다 보니 결국 포기하게 되었고 결국 하얀 행주는 숨겨놓고 써야 했었다.




장이 예민한 편이라 동남아에만 가면 설사는 이어졌다. 끓인 음식만을 사 먹어도 마찬가지라 처음엔 물 탓이라고 생각했다.

쌀국수 가게에서 행주로 접시를 닦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행주로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나서야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남은 피자도 마저 돌리려고 꺼냈으나 너무 커서 접시에 담기지 않았다. 반으로 자르려는데 너무 꽁꽁 언 상태라 결국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고 졸지에 주방 청소를 하게 되었다.

피자에 콜라를 먹으려고 했으나 콜라는 잊어버렸고 피자만으로도 과식이었다. 불과 두 시간 전에 먹은 볶음밥이 소화되기도 전이라 남길 수밖에 없었다.

룸 클리닝이 늦어져 주방에 계속 있었더니 너무 졸려서 결국 룸으로 갔다. 체크아웃한 침대 청소는 끝난 것 같아서 내 침대에 올라가 누웠더니 바닥 청소를 하러 다시 들어왔다.

비몽사몽 간에 인터넷 폭풍 검색하느라 잠은 못 잤다. 오늘도 여자 셋 뿐이라 샤워실 사용은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다.

스낵이 먹고 싶어 챙겨 온 포테이토 칩은 유통기한이 빠듯해서 오래된 것인가 싶었으나 내가 사 온 것도 유통기한은 그다지 길지는 않았다.

이틀을 뒹굴거렸더니 나가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비 소식이 있으니 날씨가 개이면 나가봐야겠다.




요즘 너무 미련스럽게 먹고 있는 게 아닌지 싶어 브런치로 볶음밥을 해 먹고 저녁에는 칩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루르드 호텔에서는 조식이 있지만 주방이 없어서 저녁엔 무얼 먹게 될지 모른다. 니스에선 베드버그로 인해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탓도 있었지만 니스에서처럼 너무 굶지 않았으면 싶다.




19시쯤 피자를 마저 먹어 치웠다. 오늘도 무슨 모임이 있는지 테이블 배치를 다시 하고 있었다.

먹고 자는 것 빼면 나처럼 거의 누워있는 장기 투숙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디서 왔을까?




20시쯤 나가보니 휴게실은 그새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콘서트와 맥주가 빠지긴 했지만 엄청난 인파의 소음에 귀가 먹먹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들어와야 했다.

그러나 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갔더니 주방까지 복잡했다. 한참을 기다려 냉동실에서 콘을 꺼내는데 새로 들어온 서양인이 요리하다 말고 기분 나쁘게 슬쩍 쳐다본다. 네 거 아니거든!

휴게실엔 앉을 공간이 없어서 침대에서 몰래 먹었는데 푸석한 딸기맛이라 별로였다.

21시 반쯤 주방을 점령한 서양인이 룸으로 들어오길래 주방이 비었으려나 싶어 나갔다. 머시룸 볶음밥을 만들었는데 어느새 그 서양인이 따라 나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또 쳐다본다. 괜히 감시당하는 느낌이라 급히 먹고 젤리를 챙겨 룸으로 들어왔다.

유일한 내 공간인 침대에 누워서 간식을 먹는 게 여유롭고 좋지만 여기선 금지였다. 그래서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는 건지 모른다.




너무 덥다. 많이 먹어서 그런가?

바지를 벗어도 더워서 이불 커버만 덮었는데도 더웠다. 티셔츠를 벗고 민소매만 입었다. 열린 창으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더웠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 건지 리옹이 유독 더운 건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바람 소리가 요란한 걸 보면 비가 올 거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잠시 졸다 깼더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열이 나기 시작했다.




Le Flâneur Guest House -19.00€


Cuisine
Réfrigérateur
Four à Micro-On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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