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on, France
Day 25.
Friday, May 19
그렇게도 무더웠던 지난밤엔 비가 내리는 걸 보고서야 잠이 들었다. 찬바람도 제법 불었으니 나만 더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공사하는 소음에 눈을 뜨니 벌써 8시 반이다. 어젯밤 늦게 먹은 저녁으로 인해 밤새 속이 불편했던 터라 일단 장부터 비웠다.
어제는 열량 과잉으로 열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9시쯤 주방에 갔다. 직원과 함께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어제 그 서양인이 보였다.
기본 볶음밥에 남은 머쉬룸, 포테이토, 믹스 베지터블까지 모두 털어 넣고 볶았다. 큰 프라이팬에 볶았지만 맛있게 다 먹었다.
친구의 성의 없는 톡이 들어와 있어서 나도 건성으로 답하고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뭔가 자꾸 눈치가 보였다.
금요일은 냉장고 청소하는 날이라 주방을 정리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식재료는 개별 보관해야 했다. 하지만 내것은 냉동식품이라 그대로 두었다. 누군가 두고 간 아스파라거스 피클과 초코칩 쿠키를 챙겨두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인지 좀 쌀쌀했다. 아니 추웠다. 어제 너무 더워서 홑이불로 덮으려고 벗겨내었던 이불 커버를 다시 씌우고 두툼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비는 그친 것 같았지만 나가기는 싫고 청소는 언제 끝날지 몰라 12시쯤 주방으로 갔다.
아침의 그 서양인이 휴게실에 있었는데 스태프에게 오피스를 가리키며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자꾸 마주치는데 왜 이리 신경이 쓰이는 건지 모르겠다.
아침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점심을 먹으니 매번 소화불량이라 오늘은 13시 반까지 기다렸다.
생선가스를 튀기고 브로콜리와 채소 모둠을 곁들이니 이 또한 맛있었다.
서양인도 주방으로 와서 점심을 준비했고 안면 있는 여자가 등장하니 같이 먹자고 꼬시더니 나중엔 함께 와인까지 곁들이고 있었다. 불어를 쓰고 소액결제에 카드를 쓰는 걸 보니 프랑스인인가 보다. 좋을 때다.
그런데 어제부터 계속 마주치던 이 서양인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명을 혼동해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 자꾸 마주친다고 느꼈던 거였다.
비슷한 나이의 백인 남성에다 헤어 스타일까지 비슷하니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했던 거다.
한 명이 체크아웃하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둘 다 침대가 비어 있었다. 진작에 인사나 할 것을 그랬나 싶었다.
자주 마주치지 않을 줄 알고 인사하지 않았다가 계속 마주치게 되면 괜히 어색해지고 불편해진다. 그 어색함이 싫어서 매번 먼저 인사를 하곤 했는데 멀뚱히 쳐다보던 한국인 그녀로 인해 생략했던 결과였다.
세 시간 동안 맨발로 있었더니 발이 시려서 이불속으로 들어왔는데 오늘은 시간차를 두고 먹어서인지 소화가 잘 되었다. 냉동실에 생선 필레도 있었는데 오후엔 생선구이? 오로지 먹을 생각뿐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배낭을 새로 구입했다.
첫번째 까미노 때는 한번으로 끝날 거라 생각하고 친구에게 35L +10L 배낭을 빌려서 다녀왔다. 그런데 확장하면 레인커버가 씌워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배낭여행이 나한테 의외로 잘 맞았고 앞으로 꾸준히 다닐 거란 생각에 55L 배낭을 구입했다.
배낭은 몸에 밀착되어야 무게를 견딜 수 있고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살이 빠지니 배낭이 몸에 맞지 않았다. 짐을 다시 꾸려보아도 별 차이가 없었다. 모든 끈을 바짝 조여도 사이즈가 너무 커서 몸에 밀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배낭에도 여성용이 있었나 보다.
이번에도 힘든 까미노가 예상된다. 베드버그와 함께. 내 욕심과 미련들 때문에 내 배낭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샤워하고 나가보니 스태프들이 모두 모여 냉장고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미 많은 것들을 버린 후라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누군가가 두고 간 식재료들은 프리 존으로 옮겨졌다. 냉장실은 정리뿐만 아니라 세제로 열심히 닦아냈지만 냉동실은 거의 손대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노부부가 장기 투숙을 하는지 장을 봐 왔는데 양이 엄청나서 비워진 냉장고가 다시 가득 찼다. 뭐하는 사람들이길래 여러 명이 사용하는 공용 냉장고에 대량의 식량을 사다 두는 걸까 싶었다.
조금씩 가져다 먹던 땅콩뿐만 아니라 커피도 사라졌다. 조금씩 남은 식재료까지 다 버린 모양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챙겨둘 걸 그랬다.
여기저기 방치되었던 식재료가 정리되니 주방 분위기가 달라졌고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생선만 따로 구웠는데 맛있었다. 지금 나에게 맛없는 건 도대체 뭘까? 아직도 냉동실엔 많은 종류의 무언가가 남아있어서 베이스가 될 프라이드 라이스 한 봉지로 일주일은 거뜬히 버틸 것 같았다.
배낭이 무겁다면서도 그 와중에 고등어 캔, 쌀, 티백을 챙겼다. 그럼에도 눈치 보다가 많은 걸 놓친 것 같아 아쉬워하고 있었다.
C가 사진을 보내달란다. 얜 뭐지? 문득 여자들에게 사진부터 요구하는 광주의 S와 같은 부류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원래 엉뚱한 행동으로 짜증 나게 했었고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그 마음조차 미안해져서 다시 연락을 했던 건데 이내 후회가 되었다. 사람은 역시나 변하지 않나 보다. 언제 철들래?
루르드에 예약한 숙소는 성지에서 정말 가까웠다. 로드뷰를 통해 가는 길의 풍경을 미리 확인했다. 헷갈릴 골목도 없었고 십자가의 길 언덕과도 아주 가까웠다.
루르드 기차역에 도착하면 일단 성지로 가서 숙소를 찾아가면 될 것 같았다.
19시 반쯤 바나나가 생각나서 나갔더니 휴게실은 오늘도 모임 중이었다. 노부부가 데리고 온 큰 개는 그들 옆에 앉아서 사람들을 향해 짖어대고 있는데 노부부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테이블에 앉아서 칩을 먹으며 사람들 구경을 했다. 가득 채워진 프리존에서 요거트도 꺼내 먹고 맥주와 바나나도 챙겼다. 이젠 배 째~ 오늘도 내 위는 초과 근무를 했다.
부킹닷컴에서 신용카드를 통해 14€를 환불해 주겠다고 메일이 왔다. 자정이 되기 전에 환불 진행 관련 보안메일이 와서 환불 절차를 밟았다.
루르드 숙소에는 인터넷이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 메일을 받아서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Le Flâneur Guest House -19.00€
CuisinR
Réfrigérateur
Four à Micro-O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