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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l 04. 2019

남인도 까마귀 소탕 대작전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더니!



코발람 해변을 따라 식당이 줄지어 있다. 약속이나 한 듯 구조가 비슷하다. 대여섯 개의 계단을 올라야 입구가 나온다. 1.5층에 가깝다. 애매한 높이는 바다를 잘 볼 수 있게 하려는 배려의 산물이다. 일층은 거리의 사람과 모래사장의 파라솔, 간간히 지나가는 차 등 장애물이 많다. 반면, 이층은 잘 정비되지 않은 전깃줄이 수평선과 겹치고 내려다보는 각도는 묘한 거리감을 준다. 때때로 어중간한 것이 탁 트인 시야와 심리적 친밀도를 담보해 준다. 섬세함은 높낮이에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 창이 없고 앞이 뻥 뚫려 있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테라스는 명당자리이다.


곧 돌아온다던 주방장은 내내 보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의구심이 불쑥 튀어 오른다. 사실 없는 거 아냐? 어찌 되었든 전망 좋은 레스토랑의 식권을 주니 상관없다. 매일 아침 발코니 중앙 테이블에서 똑같은 메뉴를 시키는 동양인 소녀는 늘 관심을 끈다. 토스트 두 장, 딸기잼과 버터, 써니 사이드 업(sunny-side up), 수박주스와 커피. 며칠 반복되자 이젠 묻지도 않는다. 얼떨결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여유가 흐르는 코발람의 오전은 청량한 파도 내음과 고소한 식감으로 행복 치를 끝 간 데 없이 끌어올린다. 단 하나, 음식을 호시탐탐 노리는 도둑만 빼고!




안팎의 구분이 없는 테라스는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여행에서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귀 딱지가 앉도록 듣지만 여기서는 예외이다. 진짜 도적은 하늘에서 날아든다. 첫날부터 계란 프라이를 집고 도망쳐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준 까마귀가 범인이다. 태연하게 식탁 위에 사뿐히 안착하고는 간을 본다. 눈싸움 시작이다. 눈꺼풀에 힘을 잔뜩 주고 깜빡임을 멈춘다. 당당한 척 하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얼굴을 쪼아버리면 어떡하지? 1미터 이내에서 진득하게 이어지는 대치상황 끝에 승부가 났다. 잘 가라, 노른자여. 부리로 끄트머리를 콕 집더니 순식간에 사라진다. 옆 가게의 빛바랜 푸른 지붕 위에서 맛있게도 먹는다. 1라운드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까마귀들 사이에서 호구라고 소문이 났는지 다음날부터 경쟁자가 늘었다. 제멋대로 흐트러진 전신줄에 온 가족이 발을 괴고 시선을 쏟는다. 빈 틈을 보여선 안 된다. 노려보며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무는데 행동대장 격으로 보이는 한 마리가 푸드덕 날갯짓을 한다. 오, 신이시여. 불행 중 다행으로 옆 자리 가족을 노렸다. 노련한 할아버지는 베레모로 바람을 일으켰다. 1차 공습이 대실패로 돌아갔다. 한 숨 돌리나 싶었는데 바로 역습이다. 이번엔 내 차례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얼마 벌어지지도 않는 주둥이로 두꺼운 토스트를 잘도 들고 간다. 부들부들하고 있자 직원이 가련한 눈빛으로 새 것을 건네준다. 분하다.


평화로운 아침은 불청객의 방문으로 위기를 맞는다.


습격을 대비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은 무엇일까? 느긋한 식사를 포기한다. 재빨리 먹어치운다. 하지만 그 녀석들의 마음도 나만큼 급하니 속도전 역시 큰 효과가 없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까마귀 소탕 대작전! 전략팀을 꾸려본다. 대장은 주인 양반이다. 오른팔은 동네 주민이자 식당의 종업원, 왼팔은 연륜의 여행자 할아버지다. 전방 5m에 목표물 등장,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쪽으로 공격한다. 전수받은 까마귀 퇴치법을 실행해 본다. 1단계, 모자를 세워서 음식을 가린다. 2단계, 물병과 잔으로 진을 쳐 방어한다. 3단계, 소리를 내고 팔로 쫓아낸다. 마지막 비법은 내 깜냥에 불가능하므로 고이 접어둔다.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속아야 할 텐데. 밀짚모자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꿈뻑꿈뻑하더니 멈칫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버텨내야 한다. 몇 초 간 주위를 살피더니 휘리릭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해냈다! 물건으로 가리면 없다고 생각한다는데, 이렇게 별 거 아닌 일에 그동안 힘을 뺀 것 같아 허탈하기도 하다. 새삼 인간의 지혜와 경험은 위대하다는 걸 체감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먹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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