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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Apr 20. 2020

어떻게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가?

@팩트풀니스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좋은 곳에 쓸 자원을 훔치는 꼴이니까요.
-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Factfulness)


 여섯 평 남짓한 교실에는 스무 명이 넘는 꼬마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물꼬물 글씨를 쓰고 있다. 연필심은 아이의 손아귀 힘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물러 금세 부러진다. 시내의 학용품 가게에서 사 온 새 연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구성은 떨어지는 반면 나뭇결은 거칠어 머리수만큼 깎고 나니 손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누군가 잘못 써서 지우개라도 찾을 때면 좁다란 교실 안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지우개는 단 하나,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한다. 과제를 확인하러 무심결에 닿은 연필꽂이에는 제대로 나오는 빨간 펜이 없다.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학용품은 절대 부족 상태이다. 2019년 여름, 잠비아의 유치원에서 맞이한 일상이다.


 2017년 잠비아의 1인당 평균 소득은 4,000달러 남짓하다. 하루에 4달러를 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4달러는 전형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혹독한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더욱이 아프리카의 잠비아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유니세프나 국제기구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개발도상국의 비극적인 모습과 연결 짓는다. 물론 그들의 삶이 대한민국과 비교했을 때 윤택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면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하루에 여러 차례 정전이 되지만 전기가 공급된다. 찬물 샤워에 익숙해야 하지만 수도를 통해 물이 나온다. 교육환경은 열악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다닌다. 도로 상태는 나쁘지만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등 흔히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를 여행할 때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 달리 꽤나 넉넉한 삶을 누리고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 간극이 제법 크기도 하다. 기존의 편견이 충격적으로 깨질 때면 세계를 단순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둘로 나누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한스 로슬링은 그의 저서 <팩트풀니스>를 통해 제시한다. 팩트풀니스는 '사실충실성'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극적인 본능과 세계관에 근거하여 세상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데이터와 수치 등을 활용하여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방해하는 열 가지 본능을 소개한다.




 그는 '간극 본능'을 통해 세상을 단순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누는 것이 적절한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소득 수준에 따라 세계를 네 단계로 구분한다. 아래의 도표에서 사람 1명은 10억 인구를 나타낸다. 1단계에서는 우리가 흔히 미디어를 통해 접한 극도로 가난한 삶을 떠올리면 된다. 먹을 물을 구하기 위해 1시간을 걸어야 하고 어렵게 구한 식수는 그마저도 깨끗하지 않다. 굶주림에 시달리고 돈이 없어 약을 구하지 못한다. 지구에서 일곱 명 중 한 명이 이렇게 생활한다. 2단계 수준으로 소득이 올라가면 삶의 기본 요소를 충족하며 살아간다. 잠비아가 바로 2단계에 해당한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4단계에 속한다. 일곱 명 중 한 명이다.


세계 인구 분포


 이전에는 개발도상국들의 대다수가 1단계에 머무른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계 인구는 2-3단계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이 다수이다. 10억 인구가 결코 적지 않지만 놀랍게도 인류의 대부분은 인간다운 삶의 최저치를 넘어섰다.  이에 반해 4단계에 해당하는 선진국은 1단계처럼 소수에 해당한다.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구분하는 방식은 60억 인구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실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인 사고이다.


 네 단계의 구분은 나에게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는데 아프리카의 동남부를 훑으며 달라지는 삶의 수준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위에서 아래로 향할수록 대체로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을 목격했는데 세계 건강 도표가 이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북부의 에티오피아는 1단계, 중부의 탄자니아는 1단계와 2단계의 사이, 중남부의 잠비아는 2단계, 남부의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3단계에 속한다. 같은 개발도상국이지만 소득 수준과 삶의 격차가 뚜렷하다. 더욱이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의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


세계 건강 도표


 열 가지 본능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크기 본능'이다. 그는 '80/20 법칙'을 소개하면서 모든 문제가 동일하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한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자 할 때 꼭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긴급하고 필수적인 부분에 비중을 두고 역량을 집중해야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가령 예산을 짠다고 해보자. 전체 항목의 20%를 차지하는 시급한 항목에 예산 총액의 80%를 배치한다. 모든 항목을 같은 비중으로 나누는 것보다 선택적으로 집중하여 지원하는 방법이 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잠비아의 유치원에서 교육봉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점은 '어떻게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가?'이다. 각 나라가 속한 단계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다르다. 4단계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인다거나 디지털기기를 활용한 다양한 학습 도구를 개발한다거나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사회권을 확장하는 것과 같은 어젠다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물론 양질의 교육의 제공하고 선진화된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2단계 잠비아에게는 이보다 시급한 교육 쟁점이 있다. 공립학교를 세워 보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고 학습에 필요한 기본적인 필기구를 제공하고 문맹률을 낮추고 보건교육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유아 사망률을 낮추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한스 로슬링의 말처럼 세상은 때로 나쁘지만 동시에 나아지고 있다. 대체로 뉴스에서는 희망적인 메시지보다 자극적이고 고통적인 이야기를 다루어 긍정적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작은 차이를 일구어가며 느리게나마 좋아지고 있는 세상을 따뜻한 책의 온도만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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