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탄자니아
오픈 워터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 마지막 날 아침은 사뭇 비장하다. 생체 시계도 다이빙 강습에 맞춰졌는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인다. 어제 세 차례나 이어진 다이빙은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하여 여섯 시가 넘어 끝났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분명 슈트 안에 입은 수영복을 대충 빨래하고 테라스 탁자 위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걸어놓았겠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축축한 수영복의 물기를 손으로 쓸어내린다. 다이빙을 하는 생활이 조금씩 일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언제나 약간의 흥분이 몸을 지배한다. 떨림 한 방울, 두근거림 한 방울, 기분 좋음 한 방울, 후련함 한 방울. 하루의 시작을 설렘으로 열 수 있음에 또다시 설렌다. 이미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필요한 다이빙 횟수를 넘어섰지만 우리의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왼손의 통증이 잦아든다. 바다에서 다친 상처는 바닷물에 담그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말을 입증하듯 물에만 들어가면 욱신거리던 손가락의 아픔이 멎는다. 바닷물이 성게 가시를 녹이고 고통을 주는 성분을 제거하나 보다. 이제 무거운 장비를 옮길 때도 불편함이 덜하다. 꼼꼼하게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힘을 합쳐 보트로 나른다. 오늘은 처음으로 해변을 벗어나 음넴바 섬으로 떠난다. 바카리의 지도를 받는 우리 팀만이 아니다. 한 단계 위인 어드밴스드 자격증에 도전하는 다이버들과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는 펀(fun) 다이버들이 한데 모여 배에 오른다.
오늘의 캡틴 일라리는 다이빙용 검정색 반팔 상의와 반바지를 입고 빨간색 바람막이를 걸쳤다. 겨울이라지만 수온이 28도를 상회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이다. 모터에 열기가 오르고 가속이 붙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음넴바로 향하는 바닷길은 제트보트를 탄 것마냥 널뛰기를 반복한다. 까딱하면 튕겨 나가겠다. 바람을 가르는 배의 속도감에 맞춰 바람이 뺨을 내리친다. 슈트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촘촘히 앉아있어도 몸이 좌우로 앞뒤로 덜컹거리는데 일라리는 상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다. 한 손으로 기둥의 윗부분을 잡고 두 다리를 앞으로 뻗는다. 매일같이 운항하는 선장만이 할 수 있는 다소 위험하지만 여유 가득한 자세이다. 물결 사이로 회색빛 매끄러운 움직임이 보인다. 웅성거림이 커진다. 조류를 거슬러 돌고래 떼가 점프한다. 선체는 수중생물의 재빠른 몸짓을 따라잡지 못한다. 운이 좋다면 음넴바에서 돌고래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음넴바는 잔지바르 북동부의 작은 섬이다. 하지만 사유지라 허가 없이 입장하지 못한다. 음넴바의 아름다움은 다채로운 빛깔을 넘나듦에 있다. 코발트층을 거쳐 에메랄드빛 섞인 형광 파랑층 위로 정박한다. 보트에서 바로 입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손으로 마스크와 호흡기를 고정하고 다른 손으로 머리 뒤를 바친다. 바위에서 점프하듯 뛰는 건 금물이다. 등에 멘 공기탱크가 무거워 중심이 뒤로 젖혀질 수 있다. 등부터 떨어지면 머리를 크게 다칠 수 있으니 물 위를 걷듯이 나간다. 해변에서부터 조금씩 물이 깊어지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잔뜩 부풀린 BCD(부력조절기) 덕분에 수면 아래로 쑥 빠졌다가 둥둥 떠오른다. 하강 전에는 호흡기를 빼고 스노클을 입에 문다. 공기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수중에서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바카리의 신호와 함께 음넴바 속으로 빠진다.
인적이 드문 음넴바 주변은 볼거리가 많다. 특히 맛있는 게 가득하다. 해삼, 멍게, 성게가 안방인 양 늘어져 있다. 산호 사이사이로 화려한 빛깔과 무늬의 열대어들이 무리 지어 이동한다. 빅아이, 그레이 모레이, 트레 발리, 누디, 인디언 피시, 스콜피온 등 책에서만 보던 물고기들이 쏟아진다. 수산시장에서 끔뻑이던 생선들도 고향이 달라서인지 생김새가 다르다. 불가사리는 몸체가 하얗고 중심은 노랗다. 궁수들이 등장한다. 해파리가 낯선 이주민을 보고 촉수를 휘두르며 자포를 쏘아댄다. 침략자는 우리이기에 물러설 수밖에 없다. 나의 다이빙 버디(buddy), 왈리드가 어깨를 부여잡는다. 한 방 제대로 쏘였나 보다. 욱신거리는 통증은 나 역시 따끔거리는 손가락으로 기억한다. 바닷물에 오래 담그고 서서히 풀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첫 다이빙을 끝내고 다시 보트로 복귀한다. 부력 맞추기 훈련에서 한 차례 호흡이 엉켜 떠오르긴 했지만 무사히 끝마침을 자축한다. 선체에는 달달한 냄새가 진동한다. 바구니 한 가득 망고다. 반구 형태로 잘린 망고의 속살에는 십자 모양으로 칼집이 나 있다. 냉동실의 큐브 얼음 틀과 닮았다. 겉껍질을 뒤집어 안쪽으로 힘을 주면 칼집 난 모양대로 정육면체 망고 조각이 봉긋 올라온다. 굴곡진 면을 따라 하나씩 깨문다. 망고 특유의 달콤한 향내와 금세 사라지는 식감에 경직된 근육도 녹아내린다. 슈트의 뒷지퍼를 내리고 등받이에 기대 몸을 늘어뜨리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아부다비에서 온 중년의 사나이는 계속해서 음악을 찾는다. 아프리칸 사운드를 틀더니 갑자기 선상 파티가 열린다. 리듬감이 충만한 선곡에 맞추어 춤판이 벌어진다. 흥부자 어시스턴트 오미는 한 손에 망고를 들고 위아래로 들썩이며 제자리에서 회전한다. 춤에 재능이 있는 건지 단순한 동작인데도 관중들이 박자를 타게 한다. 정수리 높게 묶은 레게 머리카락이 고갯짓을 따라 감각적으로 움직인다. 노랑과 고동, 검정의 어울림은 바람에 흔들리는 해바라기를 연상케 한다. 선장 일라리도 중앙으로 나와 스테이지를 점령한다. 빨간 바람막이를 휘날리며 앞으로 걸어가는 듯한 스텝으로 이리저리 종횡무진한다. 그러다 숨겨진 춤꾼을 찾아 무대로 초대한다. 똑같은 다이빙 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춤 실력을 뽐내고 갑판에서 선미까지 빼곡히 앉은 관중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근처에 정박한 배에서 휘파람을 분다. 오미의 손에 이끌려 한바탕 흔들고 나서야 1차 파티가 종료된다.
바카리가 오픈 워터 다이버들을 불러 모은다. 펀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훈련이 남아있다. BCD(부력조절기)와 핀, 마스크와 스노클을 모두 제거하고 수영해야 한다. 오리발 모양의 핀 없이 맨몸으로 하는 바다 수영은 몇 배로 힘들다. 다행히 슈트 자체에 부력이 있어 가라앉을 염려는 없다. 배를 한 바퀴 돌고 오라는데 댄스파티로 흥이 올라 왕복으로 헤엄치고 오겠다며 씩씩하게 답한다. 내가 이렇게 수영을 잘했나?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파도를 넘으며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른다. 그러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배는 이미 저 멀리 떠나갔다. 그제야 돌아올 때는 조류를 거슬러야 해 훨씬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차례 다이빙을 한 터라 이미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 혼자 힘으로는 무리다. 이게 말로만 듣던 조난인가.
다이빙 포인트 근처라 다행히 도움의 손길이 있다. 가까이에 정박한 선원이 튜브를 던져준다. 고맙지만 다른 보트에 탈 수 없다. 다이빙을 계획한 배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래에 다이버가 있을 경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이빙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기준점이 되므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힘차게 킥을 차는데 저편에서 빠른 속도로 팔을 젓는 움직임이 보인다. 수면 위로 얼굴이 올라온다. 오미잖아! 그간 팀에서 사고뭉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왔다. 내가 한 건 씩 터뜨릴 때마다 전담처리반으로 다정하게 챙겨주었던 오미가 날 구하러 온 것이다. 반가움에 오미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자 웃으며 오렌지색 튜브를 던져준다.
- 괜찮아? 내가 앞장설 테니까 잘 따라와.
오미가 크게 앞으로 나가면서 나와 연결된 줄을 힘껏 당긴다. 그러면 조류에 떠밀리던 몸이 제트기를 탄 것마냥 쑥 나간다. 오미를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수영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튜브를 두 손으로 꼭 잡고 물장구를 친다. 멀게만 느껴지던 배가 덩치를 키운다. 대형사고를 친 게 분명한 듯 선미에서 바카리와 일라리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눈치를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나는 해맑게 오미와 떠들면서 끌려간다.
- 바카리 말을 들었어야 했어요. 배 주변만 돌걸.
- 갈 때는 조류 방향이라 쉽지만 올 때는 힘들죠. 하하하.
돌발상황을 일으킨 문제아로서 사죄의 반성문을 읊는다. 바카리는 호탕하게 웃으며 해프닝이 끝났음을 알린다. 단숨에 유명인사가 된다. 배에 고정된 줄을 붙잡고 계단에 매달린다. 일라리가 팔을 당겨 끌어올린다.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자 잔뜩 신난 일라리가 핸드폰 영상을 재생한다. 내가 조난당한 순간부터 구출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아까 배 잡고 웃으면서 촬영하는 거 놀릴 준비하는 거 다 봤다, 짜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삼 일간의 강렬한 오픈 워터 자격증 따기를 끝마친다. 조난 사건 이후에 무너진 평정심을 가다듬고 한 마지막 다이빙에서 수심 17.4m까지 도달한다. 바카리와 오미, 왈리드, 미리암과 로베르토, 우리 다이빙 가족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성게 잔뜩 박힌 손도, 매일 아침 드나들던 다이빙 센터의 활기도 당분간은 안녕이다.
- 이제 여러분은 오픈 워터 다이버입니다.
이 말이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게다가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에서 얻어낸 작지만 값진 성취는 기쁨을 배로 부풀린다. 다이빙 센터를 배경으로 다 함께 찍은 사진 속 우리는 전우애마저 느껴진다.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잔지바르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긍정의 메시지가 나에게 닿는다. 문제없어. 일단 부딪히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