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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레폴레, 물속에서 걸음마 떼기

@잔지바르, 탄자니아

by 지수




대망의 그날이 왔다. 잔지바르에 도착한 이래 늘 단잠을 자며 느지막하게 하루를 열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늦잠은 금물이다. 다이빙 강습의 첫날이기 때문이다. 숙소는 다이빙 센터에서 1분 거리이다. 초승달 모양으로 조각낸 망고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몽키 바나나, 반으로 자른 새콤한 패션프루트와 아프리카에서 꼭 먹어봐야 할 달달한 파인애플까지, 싱싱한 열대과일로 가볍게 공복을 깨우는 일은 아침을 통통 튀게 만드는데 일등공신이다. 앞자리에 앉은 마드리드에서 온 로베르토와 미리암 커플이 조용히 눈인사를 보낸다. 큰 키와 상반되는 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로베르토는 과묵하지만 아내에게 하트 눈빛을 마구마구 발사하는 로맨티시스트이다. 그의 가슴께까지 오는 자그마한 체구의 미리암은 당차고 에너지가 넘친다. 나의 질문에 로베르토가 스페인어로 미리암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면 미리암은 영어로 살을 붙여 답한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찰떡궁합이라 서로를 살뜰히 챙기고 다독인다.


과일 향 진하게 풍기는 부엌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풀잎색 철문이 나온다. 굳게 닫혀 있는 듯하지만 살살 밀면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린다. 왼편에는 레스토랑이, 오른편에는 환전을 겸하는 관광안내소가 있고 가운데 자리한 커다란 야자수는 파도를 좌우로 이등분한다. 나무 그림자 아래에는 이른 시간부터 출근한 마사이족이 터줏대감마냥 서 있다. 나중에 마켓을 방문하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다이빙 센터에 들어선다.


달콤한 열대과일로 맞이한 잔지바르의 아침


해변 한 자락에 위치한 오두막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벌써 다이빙 슈트를 착용하고 소파에 앉아 쉬거나 텀블러에 물을 따르고 있다. 맞은편 모래사장에서는 다이빙 장비를 배에 실어 나르느라 한창이다. 몸에 바짝 달라붙는 유니폼 반팔 상의에는 스페인 무희(Spanish dancer)라고 쓰여 있다. 표범무늬 헛뿔 납작벌레의 유영하는 자태가 스페인 무희처럼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나도 다이빙을 하면 물속에서 춤출 수 있을까?


승선 준비를 끝마치자 음넴바 섬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은 다섯 명이다. 호탕한 웃음이 매력적인 사내는 무릎길이까지 오는 슈트의 윗부분을 젖혀둔 채 교재를 넘기며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삼 일간 진행되는 오픈 워터 자격증 과정의 선생님 바카리이다.

- 다이빙은 혼자 할 수 없어요. 항상 버디(buddy)와 짝을 이루어야 해요.

호흡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수 있다. 휘청거릴 만큼 무거운 공기탱크와 장비를 메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나의 산소가 임계치에 다다르거나 장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버디와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 다이빙 식구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볕에 그은 피부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정갈하게 기른 왈리드는 두바이에서 온 중년의 사나이다. 머리카락과 턱수염 사이가 희끗희끗하지만 단단한 어깨와 손아귀 힘은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반가운 미소도 떠오른다. 열대과일처럼 달보드레한 부부 미리암과 로베르토이다. 스쿠버 센터와 가까운 숙소를 잡은 일이 우연은 아니리라.


슈트와 스노클링 장비, 핀, BCD(부력조절기), 공기탱크 등 모든 장비를 보관하고 있는 옆 건물로 옮긴다. 각자의 체격에 맞는 물품을 챙기고 물에서 자동으로 뜨는 다이빙 슈트를 입는다. 잘 들어가지 않는다. 힘겹게 두 다리를 넣는데 성공하지만 손은 소매 부리에서 제자리걸음이다. 혼자 끙끙대고 있자 탱크를 점검하던 스태프가 소매 끝을 잡는다. 한 번 접으니 슝, 두 번 당기니 쭉, 그동안 애쓴 게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다. 레게 머리를 높게 묶어 올린 오미는 우리 팀의 어시스턴트이다. 이로써 바카리팀의 모든 멤버가 모였다!




첫 수업에서는 다이빙 장비의 특징을 알아보고 직접 설치하는 방법을 배운다. 비상시 장비를 스스로 다루지 못하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공기가 새지 않는지 확인하세요. 게이지 숫자가 200을 가리키나요?

타고난 기계치라 한참을 헤맨다. 순서가 어떻게 되더라. 이다음이 뭐였지? 맞게 하고 있는 건가. 다급하게 눈을 굴리자 왈리드가 다가와 깜빡한 부분을 이야기해 준다.

- 인플레이터를 잘못 연결했어. 당겼다가 밀어 넣어야지.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다 보니 귀를 쫑긋 세우고 최고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진땀 흘리며 겨우 완성하자 산 넘어 산이다.


- 자 이제 바다로 가서 연습해 봅시다.

바카리,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요! 막상 도전하려니 잔뜩 겁이 난다. 주변을 살피자 안도감이 든다. 다들 다이빙이 처음이라 나만큼 눈빛이 흔들리고 발갛게 뺨이 상기되어 있다. 공포체험을 앞둔 대원들처럼 사뭇 비장하게 나선다. 허리 높이의 나무판자 위에 장비를 올리고 어깨에 짊어진다. 예상보다 훨씬 무겁다. 마스크 유리에 침을 뱉어 몇 번이고 문지른다.

‘뿌예지면 안 돼. 시야마저 흐릿하면 얼마나 더 무섭겠어.’

혼잣말이 는다. 마스크를 꽉 끼고 사이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뺀다. 한 올이라도 남으면 그대로 침수다. 코로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인중까지 덮는다. 지상에서 마스크를 쓰고 하는 호흡은 정말이지 곤욕스럽다. 들이마실 때도 불편하지만 내쉴 때에는 들이쉰 양만큼 마스크가 들썩인다. 스노클을 꽉 물고 입으로 호흡한다. 인간이 왜 코와 입 두 기관을 사용하는지, 그 필요와 합리성을 고통스럽게 깨닫는다.


나무 널에 반쯤 무게를 분산하다가 해변으로 걸어 나오니 후회막심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곰 한 마리를 업고 반쪽 호흡을 하며 무릎길이의 핀을 흔들면서 걷는 꼴이 거대한 산을 등정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지기 직전의 모양새다. 옆 가게 직원과 동네 주민들이 응원을 보탠다.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할 수 있어!

수많은 초보 다이버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들이 겪은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용기인 줄 안다. 실린더가 파도 속으로 조금씩 잠기자 물결이 무게를 덜어낸다. 이제 살만하다 싶은데 물살에 휩쓸려 중심 잡기가 여간 쉽지 않다. 오리발처럼 생긴 핀을 발에 끼워야 한다. 한 다리로 지탱하니 흐름대로 몸이 나부낀다. 한 팔로 왈리드의 어깨를 짚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핀 안으로 발을 쑤셔 넣는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녹초가 돼버린 우리를 보며 바카리는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 걱정 말아요. 처음이니까 서툴 수밖에. 다음번에는 나아질 거예요. 폴레폴레!

폴레폴레(Pole Pole), 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를 뜻한다. 어설픈 지금의 나로서는 폴레폴레 정신으로 똘똘 무장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한 걸음씩 그렇게.


- 물속에서 호흡해 봅시다. 머리를 수면 아래로 담그고 레귤레이터를 사용하세요.

수영을 하면 물안경만 끼어도 두렵지 않다. 그런데 마스크도 호흡기도 있는데 왜 이렇게 무서운지. 동그랗게 둘러앉은 여섯 얼굴이 바닷속에서 마주한다. 초심자들의 눈빛에는 확신이 없다. 수중에서 몇 분 정도는 숨을 참을 수 있다는데 내 힘으로 버티는 건지 호흡기의 도움을 받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불안감이 엄습하자 살포시 고개를 물 밖으로 뺀다. 공기가 포근하고 잔잔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일탈도 잠시, 바카리와 눈이 딱 마주친다. 걸렸다. 턱을 아래 방향으로 찍자 냉큼 물속으로 들어온다. 바카리의 날카로운 눈빛이 굴절되어 가슴에 꽂힌다. 질끈 눈을 감았다가 똑바로 쳐다본다. 손으로 들이마시라는 사인을 보낸다. 거울처럼 들이쉰다. 내쉬라는 손짓을 한다. 그림자처럼 뱉는다. 몇 차례 반복하니 레귤레이터에서 흘러나온 공기가 안정적으로 가슴을 돌아 나오는 게 느껴진다. 내쉬는 호흡에 입으로 거품을 토한다.


- 어때요? 입으로 숨 쉬는 게 쉽지 않죠?

- 처음에 너무 무서웠어요. 맞게 하는 줄도 모르겠고.

다들 재잘대며 첫 호흡에 대한 소감을 늘어놓는다.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뱉는 첫 숨의 감촉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경이로움을 설핏 엿본 듯하다.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이제 밑으로 내려간다. 바카리를 따라 헤엄치자 점점 바닥과 수면의 격차가 벌어진다. 아래로 내려가자는 신호와 함께 하강 준비를 한다. 디플레이터 버튼을 누르니 물 위에 둥둥 떠있던 몸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침몰하는 생경한 감각에 다들 팔을 이리저리 저으며 발버둥 친다. 공포감에 몸을 돌리자 탱크 중량에 힘입어 빙글빙글 돈다. 한 손으로 실린더 아래를 잡고 등 가운데로 옮기니 그제야 회전이 멎는다. 보통 수영장에서 기초교육을 하고 바다로 나오는데 잔지바르에서는 처음부터 해상훈련을 한다. 파도와 조류가 있어 변수가 많고 깊이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바카리와 오미가 허둥대는 다이버들을 진정시킨다. 수신호로 오케이 표시를 하자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게 한다. 고개를 들자 수면이 한참 위에서 찰랑거린다. 어느새 수심 10m 지점에 다다랐다.


얼마큼 내려왔는지를 통증이 알린다. 왼쪽 고막이 찢어질 듯 아프다. 옆자리 어시스턴트 오미에게 검지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키자 살짝 위로 데려간다. 콧볼을 누르고 흥하며 콧김을 낸다. 비행 중 착륙할 때 귀가 뻥 뚫리는 현상처럼 안에서 뽕 소리가 나며 아픔이 멎는다. 내려오는 과정에서 압력 평형을 시도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압이 높아진다. 압력이 변할 때마다 주기적으로 압력 평형을 해야 하는데 초보자의 성공 확률은 오락가락한다.




여섯 다이버가 동그랗게 손을 맞잡는다. 바카리가 몸짓으로 과제를 안내하는 동안 물살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서로를 지지한다. 설명이 끝나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첫 번째는 잃어버린 호흡기를 찾는 연습이다. 순간적으로 놓치거나 장비가 불량인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목숨과도 같은 레귤레이터를 입에서 떼고 옆으로 던진다. 오른팔로 줄을 감아와 다시 문다. 이때 호흡기가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천천히 기포를 내보내야 한다. 당황해서 숨이 흐트러지면 그대로 물먹는다. 스쿠버 부진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라 마지막 순서다. 버디가 하는 동작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마지막 순간 입구로 들어간 물이 기도를 막지 않도록 혀로 가로막고 바람을 불어넣는다. 꽤 잘 해냈다.


다음 순서는 마스크에 들어간 물을 콧김으로 빼내는 연습이다. 처음에는 물을 반쯤 채워 넣고 나중에는 아예 마스크를 통째로 벗었다 쓴다. 마지막 날에는 마스크를 벗은 상태로 버디를 믿고 일정 거리를 헤엄친다. 다행히 바닥에서 장비를 입고 벗고 조립하는 과정은 수월하게 해낸다. 차분하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흥분하면 쉬운 일도 어려워지는 법이다. 바카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호흡할 것을 주문한다.


고질적인 문제는 자유롭게 유영하는데서 드러난다. 바카리 껌딱지로 잘 따라다니다가 순간 덜컥 겁이 나거나 돌발 상황이 생기면 호흡이 흐트러져 몸이 붕 떠오른다. 특히 높이에 따라 압력이 변하는 순간은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다. 들이쉬면 떠오르고 내쉬면 가라앉는 게 부력의 기본이다. 수면을 향해 올라가면 압력이 낮아져 BCD 본체의 공기 부피가 커진다. 이때 디플레이터를 눌러 공기 양을 줄이고 숨을 길게 내쉬어 급작스레 떠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부력을 조절해야 하는데 초보 다이버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몸이 갑자기 올라가니 놀라서 디플레이터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고 호흡도 짧아져 점점 더 올라간다. 내려가려고 발버둥을 치니 킥을 차는 효과로 또 올라간다. 고개를 드니 수면이 머지않았다. 잔뜩 당황해 있는데 오미가 팔을 잡는다. 눈을 마주치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안도감이 든다. 고개를 끄덕이자 함께 호흡하며 원래의 대열에 합류한다.


첫날 두 번의 다이빙을 끝내고 센터로 복귀한다. 바카리는 한 명 한 명에게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을 상기시키며 재차 설명한다. 궁금했던 부분을 묻고 답을 얻자 그제야 웃음이 나온다.

- 두 번째 들어갔을 때는 처음보다는 덜 무서웠어요. 호흡하는 것도 편하고 조금이지만 익숙해졌어요.

- 맞아요. 내일이면 더 나아질 거예요. 잘하고 있어요!

분명 그리 훌륭히 해내지는 않았지만 첫 다이빙보다 나아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으쓱해진다. 내일은 더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이유 모를 자신감도 생긴다. 다이빙 식구들과 물속에서 각자가 겪은 당혹감과 문제 상황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떨다 장비를 정리한다. 기계치는 또다시 진가를 발휘한다. 버벅대고 있자 오미가 다가와 천천히 가르쳐준다.

- 오미, 아까 정말 고마웠어요. 엄청 당황하고 무서웠다니까요. 근데 내일도 나 가까이에 있어야 해요!

은근슬쩍 오미에게 내일도 많이 도와달라고 속닥인다. 오미는 알겠다며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핀을 정리하는데 왼손가락이 따끔거린다. 이게 뭐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 있다. 바카리에게 달려가 손을 보여주자 성게에 찔렸다고 한다. 아까 바닥을 잘못짚으면서 성게를 건드렸나 보다. 한두 군데가 아니고 제법 통증도 있다. 게다가 나는 왼손잡이다. 울상을 짓자 바카리는 자신의 발바닥을 보여준다. 바카리의 발바닥에는 성게 가시가 무수히 박혀있다.

-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가시가 빠지고 통증도 줄어드니까 신경 쓰지 마요. 숙소에 라임이 있으면 문질러요. 덜 아플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숙소로 달려간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첫 다이빙에서 얻은 영광스러운 상처를 보인다. 이때는 몰랐지, 그 가시가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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