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중심지 스톤타운(Stone town)은 천 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 옛 요새는 염분기 가득한 바닷바람에 노출되어 색이 바래고 녹슬었다. 요새에서 언덕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다. 잘못 들어서면 금세 길을 잃기 일쑤이다. 커다란 문 위에 작은 나무판자를 덧대 호수를 표시한다. 며칠을 다녀도 숫자를 확인하지 않으면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찾아야 한다. 해거름 거리가 교차하는 광장에는 터번 캣을 쓴 아저씨들이 뉴스를 시청 중이다. 가게에서 수공예품을 파는 아주머니는 히잡으로 목덜미와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다. 시가지 곳곳에서 이슬람 양식의 원형탑과 모스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과거 아랍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잔지바르의 이름 또한 페르시아어 잔지(zanzi, 검은)와 바르(bar, 해안)를 합쳐 만들었다. 검은 해안, 혹은 흑인의 땅을 뜻한다. 지금도 주민 대다수는 무슬림이고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숙소를 잘못 잡았다. 잔지바르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북부의 능귀를 먼저 여행한 뒤 스톤타운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라 ‘하루 정도인데 어때’ 하는 마음으로 값싼 곳을 골랐다. 그런데 웬걸요, 경사진 고개의 옛 거리에 위치한 숙소는 도시의 나이만큼이나 연식이 지긋하다. 수직에 가까운 좁은 나무 계단은 한 발 디딜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나중에서야 여행자들은 주로 요새 밖 해안 쪽에 머무른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구시가지가 중심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잘못짚었다. 짐을 풀고 오랜 비행에 찌든 몸을 씻으러 욕실로 향한다. 문을 여는 순간 바로 닫고 싶어 진다. 천장이 높은 욕실 윗부분에는 유리 없는 세로 철창이 있다. 스톤타운의 건물들은 다 야트막하니 밖으로 보일 염려는 없지만 바람이 들어와 야외에서 씻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졸졸 나온다. 샤워기는 애당초 보이지 않고 온수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대야나 바가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수도꼭지 아래로 몸을 접어 넣는다. 창이 여럿이라 통풍에 최적이다. 찬물과 찬바람의 조화에 오들오들 몸이 떨린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간다. 대문을 꼭 닫고 카메라로 문패를 찍는다. 까먹으면 첫날부터 노숙이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해변로를 걷는다. 약속 장소는 템보 호텔 앞이다. 아직 유심을 사지 않아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로로 나오면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그 길이 그 길이다. 지도를 따라 쭉 가는데 점점 구석으로 들어간다. 직감상 여긴 아니다. 시계의 분침은 약속 시간이 지났음을 알린다. 큰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바로 옆 호텔로 들어간다.
- 안녕하세요? 저 길을 잃었는데 친구랑 연락해야 해요. 와이파이 비밀번호 좀 알려주세요.
너무나도 당당하게 부탁하자 직원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핸드폰을 달라더니 직원 아이디로 로그인해 준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는다. 빙 돌아 나와 하얀 외벽에 노란색으로 띠를 두른 호텔을 발견한다. 손을 흔드는 무리에게 다가가는데 순간 흠칫한다. 네 명의 남정네가 가슴팍에 탄자니아라고 적힌 검정색 아디다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있다. 이틀 전 잔지바르에 먼저 도착한 동행들이 벌써 친해졌나 보다. 아프리카에는 한국인 여행자가 적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일정이 허락하면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 나의 여정이 보편적이지 않아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스케줄이 맞는 일곱이 이곳에서 모이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잔지바르 친구들은 세희 언니, 원석 오빠, 명순 언니, 준민, 유준, 예찬이다.
어색한 인사를 뒤로 한 채 잔지바르의 유명인사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로 향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개봉으로 또다시 폭발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잔지바르에서는 대우가 썩 좋지 못한 모양이다. 현재 호텔 건물로 쓰이고 있는 생가의 벽면은 액자로 장식되어 있을 뿐 별달리 그의 흔적을 느낄 만한 구석이 없다.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이라 그의 양성애적 성적 취향과 에이즈 발병에 대한 적대감이 존재하는 듯하다.
구시가지에는 스톤타운의 야경이 멋들어지게 보이는 아프리카 토속 식당이 있다. 건너 부엌이 보이는 방에 신발을 벗고 들어선다. 보드라운 카펫 위로 낮은 테이블이 있고 그보다 더 낮은 의자가 있다. 쪼그려 앉다시피 무릎을 굽힌다. 아프리카 풍이 물씬 묻어나는 첫 끼라 기대감이 증폭된다. 고급 레스토랑답게 음식은 코스요리로 구성되어 있다. 아예 담백하거나 향신료의 고장답게 듬뿍 가루를 올린 극단의 요리는 호불호가 갈린다.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악사들이 공연을 알린다. 바이올린, 아코디언, 젬베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의 악기들로 전통 곡조를 연주한다. 가수는 스와힐리어로 빠른 리듬의 노래를 느릿하게 음을 끌어 부른다. 가성비 논쟁이 있지만 첫날은 다 용서된다.
부두 주변 공원에는 야시장이 열린다. 인기 메뉴는 피자와 꼬치이다. 그중 잔지바르의 명물 잔지바르 피자를 맛보러 간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장 모자를 쓴 요리사들은 야식을 탐하러 온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화려한 뒤집기 실력을 선보이는 점포 앞에 멈춘다. 취향에 맞게 재료를 선택한다. 유쾌한 요리사들은 자신의 역할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스스로를 소개한다.
- 왼쪽에 재료를 다듬는 친구는 찹찹(chop chop)이야.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맛있게 만드는 나는 딜리셔스(delicious)고, 오른쪽에 피자를 뒤집는 친구는 기브링고야.
총괄주방장 딜리셔스의 지휘에 맞추어 재료를 먹기 좋게 썰고 부드럽게 반죽하여 기름을 두른 팬에 노릇노릇 굽는다. 요리에 몰두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귀에 콕 박히는 이름에 걸맞게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부침개와 피자 사이의 식감은 한국인의 입맛에 거부감 없이 감기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다.
첫 만남을 이어준 템보 호텔에서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테라스는 파도가 드나드는 모래사장을 끼고 있다. 전구로 감싼 나무 아래에는 은은한 노란빛이 감돈다. 테이블 위로 생경한 브랜드의 맥주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킬리만자로, 세렝게티처럼 탄자니아의 자연경관에서 이름을 따오거나 스와힐리어로 코끼리를 의미하는 은도부(ndovu), 터스커(tusker)처럼 동물의 명칭을 빌리기도 한다. 여러 가지 유형을 맛보고 자신의 구미에 딱 맞는 맥주를 골라 먹는 재미는 여행이 선사하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완연한 밤이 찾아오자 각자의 숙소로 흩어진다. 같은 방향인 유준이와 예찬이는 길눈이 어두운 나를 돕는다. 달빛이 비치는 구시가지는 낮의 흥겨움을 잃어버린다. 가판대에 내놓은 물건을 모두 안으로 들여놓고 자물쇠로 단단히 입구를 채운다. 텅 빈 거리는 인적마저 드물다. 도시는 깊은 잠에 빠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요새를 중심으로 이리 돌고 저리 돌며 숫자 맞추기를 한다. 돌덩이 같은 열쇠의 아귀가 맞는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오르니 이탈리아인 주인장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코를 골고 있다. 가만가만 방으로 들어간다. 침묵이 쌓인 실내에는 손을 타 반들거리는 가구와 밑단이 해진 침대,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이 뿜어내는 세월의 울림이 있다. 빛바랜 천 년 도시의 속살거림은 구슬픈 미망인의 흐느낌만큼이나 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