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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손길이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리빙스턴, 잠비아

by 지수


라삐끼(rafiki, 친구) 조심히 가. 그리울 거야!


트렁크 문이 경쾌하게 닫힌다. 오늘 능귀를 떠난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오미가 한걸음에 달려온다. 다이빙 내내 사고뭉치인 나를 살뜰히 챙겨주며 한층 가까워진 터라 이별이 아쉽기만 하다. 어설픈 외국어로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따땃한 우정이 담긴 배웅과 함께 꿈결 같던 잔지바르에서의 열흘을 뒤로하고 잠비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리빙스턴에서 보낼 보름은 어떠할까? 아프리카 여행의 특징 중 하나는 여행자들이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욕, 런던, 파리와 같은 대도시는 스스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풍성하게 지니고 있어 장기간 투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 달리 아프리카는 주요 관광명소가 자연경관이다 보니 대개 짧게 머물고 이동한다. 가령 게임 드라이브를 개인 단위로 하는 일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투어 중심으로 랜드마크를 찍고 찍고 하는 식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하겠다.


처음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할 때 본래의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인들의 삶에 녹아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여행의 방향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서 나의 지향을 실현하는데 여러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취지에 맞는 일정을 세우기 위해 고민하던 중 워크 캠프(work camp)를 소개하는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워크 캠프는 일정 기간 동안 한 지역에 머무르며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교육, 건설, 환경 보호, 의료, 인권, 난민 지원 등 자신의 역량에 맞는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다. 이보다 훌륭한 제안이 있으랴. 아프리카 여행의 두 번째 도전으로 봉사활동을 택한다. 여행 예정지 중 적당한 시기와 장소로 맞아떨어지는 곳이 있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를 품은 도시, 잠비아의 리빙스턴이다.


워크 캠프에 참여하는 기회가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내가 희망하는 분야는 유치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봉사이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이점을 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지원서를 써 내려간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메일함에 반가운 이름이 보인다. 리빙스턴 담당자 레베카의 답신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사전에 준비해야 할 리스트를 자세히 알려준다. 잠비아에 대한 소개, 활동 전반에 걸친 유의사항과 봉사활동에 임하는 자세 등 꼼꼼하게 검토해야 할 내용이다. 난생처음 경찰서에서 범죄경력 조사서를 뗀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니 범죄 및 성범죄 경력 유무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각종 서류를 누차 확인하고 여러 부를 복사하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홈페이지에 제시된 커리큘럼을 하나씩 밟으며 워크 캠프를 고대하는 마음에 변화가 인다. 하나의 이색적인 경험을 넘어 잠비아의 아이들과 교육 전반, 지역공동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망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짧은 기간이라 미약한 손길이겠지만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길 바란다.


상공에서 바라본 잔지바르와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


잔지바르를 떠난 비행기는 응당 그러하듯이 다섯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세 번을 이륙한다. 환상적인 자가 환승 시스템에 지칠 무렵 탄자니아의 대도시 다르에스살람,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를 지나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 도착한다. 입국심사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비즈니스 비자를 신청한다. 대개 관광객은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넘나들 수 있는 카자 비자를 발급받는다. 입국 심사대의 직원에게 비즈니스 비자가 필요하다고 하니 고개를 들어 나의 얼굴을 확인한다. 안경을 곧추세우며 서류를 요구한다. 준비한 자료를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자 낱장으로 된 비즈니스 비자를 여권 사이에 끼워준다. 이제 무사히 도착만 하면 된다. 공항을 나서는 심장이 콩콩 뛴다.


루사카의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리빙스턴행 버스를 예약하러 터미널로 향한다. 레베카가 보내준 추천 버스 목록을 곱씹으며 정류장으로 진입하는데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택시 기사님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서두르라 한다. 시장통 속에 버스 업체의 간판이 여럿 보인다. 마젠두 회사는 이미 자리가 꽉 찼다.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알록달록한 간판을 훑다가 파워 툴스 사무소를 발견한다. 다행히 내일 아침 출발하는 차에 여유가 있다. 노란 종이 위에 원하는 시간과 이름을 적자 그대로 쭉 찢는다. 다음 장에는 파란 글씨로 내 필체가 찍혀 있다. 내일 가져오라고 이야기하더니 황급히 새로운 모객을 알선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잘 정비된 도로와 대형 쇼핑몰, 깔끔한 도시의 풍경과는 달리 잠비아인들의 삶은 고달파 보인다. 표정은 딱딱하고 눈빛은 매섭다. 주위를 둘러싼 눈초리와 억센 손아귀를 피해 황급히 빠져나간다. 레베카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탈 버스의 이름과 시간을 알리자 새로운 도전이 머지않음을 실감한다.


도로가 정갈하게 다듬어진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


이른 아침부터 정류장은 혼돈의 도가니이다. 미리 표를 구하지 않은 승객을 찾으려고 터미널 입구부터 아수라장이다. 택시에 타고 있는데도 유리창과 몸체를 두드리며 격렬하게 호객행위를 한다. 그들의 눈빛에서 절박함과 분노가 읽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바닥이 높은 차에 오르자 엔진의 떨림이 지르르 전해진다. 도심을 벗어나자 흙먼지가 인다. 내륙국인 잠비아의 들판은 황량하다. 낮은 구릉에는 불탄 나무와 풀더미가 보인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무성한 수목은 야생동물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여 주민들에게 피해를 안긴다. 작은 정거장에 설 때면 아낙들과 소녀들이 버스에 바짝 붙어 바구니에 든 옥수수와 바나나, 각종 과일과 간식거리를 가리킨다. 이 층높이의 버스에서 손가락으로 원하는 물건을 고르고 지폐를 아래로 흘린다. 까치발을 든 여인이 손에 바나나를 쥐어준다. 버스 주위를 맴도는 상인들에게 작은 간식을 하나씩 사며 멈췄다 섰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8시간이 훌쩍 지난다.


리빙스턴 정류장에 도착하자 손님을 데리러 온 택시 기사들이 진을 친다. 한 걸음 물러나 버스 회사 대기석에 털썩 앉는다.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말을 붙이지만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레베카에게 도착을 알리고 30분이 지났을까. 내 이름을 낭랑하게 부르는 이가 악수를 청한다. 봉사활동 숙소에서 근무하며 여러 편의를 봐주는 케네디이다. 검정 봉고차에 몸을 싣고 중심가를 벗어나 바둑판 배열의 주택가로 진입한다. 직진, 우회전, 직진, 우회전, 몇 차례 반복하다 심심한 주택 앞에 멈춘다. 열흘간 머물 숙소의 이름은 장기 하우스(Zangi house)로 봉사활동 참여자를 위한 공간이다. 숙소 엄마 이와스가 방을 안내하고 생활 수칙을 전한다. 부대시설을 꼼꼼히 살피고 3인용 도미토리룸으로 들어간다. 2층 침대 아래 자리에는 책을 읽고 있는 친구가 있다.

- 안녕? 난 지수라고 해. 반가워.

- 난 몬트리올에서 온 스칼렛이라고 해.

장기 하우스에서 어떤 경험을 맛보고 다채로운 관계를 맺게 될까?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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