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사자와 짜릿하게 오후를 산책하다
@리빙스턴, 잠비아
제발 앞에 봐, 센카야.
등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뻘뻘 흐른다. 앞으로 쭉 엎드려 꼬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몸짓에 눈빛이 갈팡질팡한다. 오후의 따사로운 볕에 반사된 황금색 털이 눈부시게 빛난다. 화려한 외관은 과연 동물의 왕이라는 별칭에 걸맞다. 갓 한 살이 되었지만 덩치는 이미 나보다 한참 크다. 정면에서 사육사들이 발을 구르며 센카의 주의를 끈다. 이따금 하품을 하며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맞출 때면 웃던 입꼬리가 굳고 파르르 떨린다.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며 시선을 피한다. 쳐다보지 마라, 쳐다보지 마라.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센카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길 기다린다. 바닥에 내려놓은 기다란 나뭇가지를 생명줄마냥 꽉 움켜쥔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아기 사자와 산책하려고 한 걸까.
며칠 전 팸플릿을 들고 흥분한 윌리엄과 베네사의 유혹에 홀랑 넘어간 게 잘못이다. 잠결에 끔뻑거리며 샐러드를 입에 막 밀어 넣는 차였다.
-아기 사자랑 산책하지 않을래? 사랑스러운 모습 좀 봐!
갸르릉 거리는 귀여운 눈망울이 아른거린다. 앞발로 눈을 비비는 게 커다란 고양이 같기도 하다. 옆자리 제시카는 볶은 당근을 포크로 푹 찌르더니 턱을 당긴다. 곁눈 짓으로 오케이 사인을 확인하고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털을 가지런히 빗어주어야 하나? 자그마한 새끼를 보살필 거라는 기대는 사자의 실물을 맞닥뜨리며 산산이 부서진다. 이게 어딜 봐서 아기라는 거야!
사랑스러운 아기 사자 센카는 커다란 고양이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아주아주 거대한 고양이 말이다.
잎이 바짝 마른 황톳빛 공원 안으로 다섯 마리의 사자들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 분명 생후 육 개월에서 한 해 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덩치는 성인 남성 못지않다. 한 발 뒤로 물러나 꼼꼼하게 매무새를 관찰한다. 사자의 상징인 갈기나 날카로운 송곳니, 단단한 발톱이 채 자라지 않았다. 막대기를 든 조련사가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자 길을 따라 안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간다.
- 어미를 잃었거나 부상을 당해 구조된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과연 아기 사자들은 짙은 고동색 유니폼을 입은 사육사들을 엄마처럼 따르고 있다. 잔뜩 머금은 경계심이 조금은 느슨해진다.
공원 깊숙이 자리한 늙은 나무는 가지와 잎을 늘어뜨려 그늘을 만든다. 느릿하게 걷던 아기 사자들은 붉은빛이 도는 흙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다. 땅을 등지고 하늘을 천장 삼아 늘씬한 다리를 벌러덩 뻗기도 한다.
-절대 등을 보이지 마세요. 항상 뒤쪽에 있어야 해요. 눈을 마주치면 똑바로 응시하지 말아요.
긴장을 풀라며 농담을 던지던 조련사가 손가락을 접으며 진지하게 주의 사항을 알린다. 지금부터 교감을 시작할 터이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고 사자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
빙 돌아 살금살금 다가간다. 뒤꽁무니에 천천히 앉는다. 조심스레 등덜미를 쓸어내린다. 머리와 꼬리는 예민한 부분이라 건드리면 안 된다. 보들보들한 고양이의 촉감을 상상했는데 웬걸, 빗자루마냥 뻣뻣하다.
-센카야 안녕? 만나서 반가워.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넨다. 여느 동물이든 가까워지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당황시키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몇 차례 과감하게 쓰다듬다 눈이 딱 마주친다. 얼음장처럼 굳었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사육사는 초록색 나뭇잎을 흔들며 시선을 분산시킨다. 우우우우 낮은 소리를 내다가 발을 구른다. 지금은 보호 구역에 머물고 있지만 사자는 사자다. 잠시라도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일어나도 괜찮다는 말에 작대기를 찾는다. 아까 전까지 쥐고 있었는데 보이질 않는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도움의 손길을 청한다. 센카의 꼬리 아래에 막대기가 깔려있다. 아기 사자들이 이곳에서 제일 처음 받는 교육 중 하나는 막대기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흔한 나뭇가지이지만 행동을 멈추게 하는 마법 지팡이의 역할을 한다. 부러진 지팡이를 들고 울상이 된 해리 포터가 여기에 있다. 눈앞에서 꼬리 끝에 달린 몽실한 털 송이가 제멋대로 흔들린다. 꼬리를 만지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손가락으로 바닥을 살살 더듬는다. 검지와 중지를 최대한 센카의 몸 쪽으로 뻗는다. 손톱 끝에 작대기의 끝이 닿는다. 두 손가락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지 지직. 옅은 흙먼지가 날리고 서랍 아래 떨어진 물건을 빼내듯 기다란 나뭇가지가 센카를 스쳐 빠져나온다.
느긋하게 오후를 즐기던 아기 사자들이 몸을 일으킨다. 앙상한 가지 사이 오솔길을 따라 발을 뗀다.
-사자와 산책할 때 앞서 걷지 마세요. 물건을 떨어뜨려도 줍지 말아요. 장난감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보일지도 몰라요.
이번에는 센카보다 덩치가 크고 갈기가 언뜻언뜻 보이는 수사자 에릭이다. 좌우로 제시카와 나란히 붙어 선다. 에릭은 노을 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졸음이 몰려오는지 눈꺼풀을 반쯤 감는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슥슥 발걸음을 옮긴다. 종종거리며 따라붙는다.
-움직일 때는 꼬리를 만져도 괜찮아요.
조금 전에는 무서워서 엄두도 못 냈는데 적갈색 먼지가 묻은 엉덩이도 툭툭 두드리고 꼬리 끝 털 뭉텅이도 쓰다듬는다. 제법 부드럽다. 엉거주춤 좁은 보폭이지만 쏜살같이 뒤를 쫓는다. 등줄기가 찌릿하다.
주홍빛으로 물든 프런트 앞으로 아가들이 몸을 뒹군다. 체구가 자그마하다. 진짜 아기 사자라 불릴 만한 크기다. 사육사가 기다란 막대로 장난스레 배를 긁는다. 까무러치며 뒤집고 갸르릉 거린다. 베네사는 입을 틀어막으며 치사량을 넘는 사랑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한다. 빙글 둘러 선 모두의 얼굴에는 ‘어떡해, 어떡해’가 쓰여있다. 이번에는 낚싯대 모양의 장난감 공이 등장한다. 고양이용 요요 볼이 열 배 커졌다. 머리 위로 대롱대롱 공이 떠다니자 앞발을 들어 올려친다. 윌리엄이 용감하게 나선다. 막대를 위아래로 흔들자 번갈아 휘젓던 발을 내리고 폴짝 뛴다. 꺄아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흥분한 사자가 착지를 하며 윌리엄 옆에 있는 베네사의 허벅지를 문 것이다. 공포에 어린 베네사는 꼼짝없이 얼음이 된다. 윌리엄이 다가서려 하자 조련사가 손을 들어 저지한다. 침착하게 다른 장난감을 보이며 이름을 부른다. 주춤거리더니 쪼르르 따라간다. 아기 사자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을 먹은 게 분명하다.
윌리엄이 베네사를 꼭 끌어안는다. 사랑하는 아내가 맹수에게 물려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낙담했을 테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꽃무늬 롱스커트에 선명하게 구멍이 나 있다. 얇은 치마를 들어 올리더니 모두를 향해 미소 짓는다.
-다행히 치마만 뜯겼어요. 허벅지에는 이빨 자국만 있네요.
아직 어려 단단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이 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눈앞에서 공격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니 간담이 서늘하다. 아기라도 사자는 사자다. 놀란 꼬마 맹수도 한 바퀴 산책을 다녀오자 다시 순둥순둥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 옷은 평생 간직할 거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구멍 난 스커트를 매만지던 베네사가 미소를 띠우며 이야기한다. 나라도 그럴 테지. 언젠가 잠비아에 다시 온다면 센카를 만날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초원을 누비고 있을 게다. 어미를 잃고 부상을 당한 약하디 약한 아기 사자가 라이언킹의 심바처럼 위기를 이겨내고 평원에서 자유롭게 달리길 바라본다.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