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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수영장에서 아찔함을 맛보다

@빅토리아 폭포, 잠비아와 짐바브웨

by 지수




서류철을 넘기며 빠르게 이름을 훑는다. 검지 손가락으로 대문자로 쓰인 이름을 가리키자 구명조끼를 건네준다. 다행히 제대로 예약했나 보다. 악마의 수영장은 계절과 당일의 날씨, 위험도를 감안하여 시간당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다. 모터의 떨림과 함께 보트가 S자 모양으로 활주 한다. 곳곳에서 모인 지류들은 거대한 물웅덩이를 만든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유량과 물살에 배의 방향이 틀어질 정도이다. 쏜살같은 유속에 온몸이 찌릿하다. 보트가 뒤집어지거나 실수로 물에 빠지면 어떨지 상상마저 두렵다. 호수와 강의 어느 메인 폭포 위는 자그마한 섬들의 고향이다. 넘실대는 물길 위로 수목이 가지를 뻗고 있다. 수중에 잠긴 뿌리는 아직 덜 깎인 바위 덩어리의 빈틈을 파고든다. 이파리들은 이제 막 건기가 시작되어 고개를 젖힐 여유가 있지만 본격적인 우기가 들이닥치면 머리 끝까지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될 테다. 다음 해의 마른날이 찾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삼각주 모양으로 쌓인 생명력 넘치는 군락은 폭포의 끄트머리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와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반대로 물의 흐름은 소스라치게 빨라지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던 바람도 힘을 키워간다. 보트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잔잔한 바위틈에 몸을 숨긴다. 절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며칠 전의 양상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판이하게 다르다.


아찔한 다리를 끼고 있는 국경에는 무거운 카메라 렌즈와 들뜬 표정을 장착한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길게 늘어선 줄과 느긋한 세관 직원의 일처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떨어지는 땀방울을 연신 훔쳐내며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아프리카의 꽃 빅토리아 폭포를 목전에 두고 돌아갈 순 없다.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에 위치한 빅토리아 폭포는 나이아가라, 이과수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폭 1,676m, 최대 낙차 108m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길다. 빅토리아 폭포는 주로 잠비아 쪽에 넓게 걸쳐 있다. 가까이 보기에는 잠비아가 유리하고 전체적인 조망을 보기에는 짐바브웨가 좋다. 악마의 수영장을 방문하면 잠비아 쪽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짐바브웨 사이드로 넘어간다. 세관을 통과하고 두 나라를 연결하는 길쭉한 다리를 건넌다. 다리의 중간께에 안전장치를 단단히 맨 젊은이들이 보인다. 튼튼한 로프를 꼬리인 양 늘어뜨리고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숨죽여 지켜본다. 몇 차례의 뒤돌아섬 끝에 꼬리가 긴 비명이 추락한다. 길게 늘어선 줄은 태엽이 풀리 듯 빠른 속도로 풀려 떨어진다. 111m라는 어마 무시한 높이에 걸맞게 하염없이 멀어진다. 하이톤의 새된 목소리는 일순간 정적에 빠진다. 좁은 협곡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아찔한 모습에 눈을 질끈 감는다. 번지점프는 이 생의 업이 아니라며 놀란 가슴을 다독인다.


다리 중간에 놓인 번지 점프대


입구에서부터 한참을 걸어 들어와도 감감무소식이다. 울창한 삼림만 시야 한가득이다. 저 멀리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웅웅 거리는데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의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부지런히 발을 옮기며 숲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점점 울림이 강해진다. 물안개가 짙어지고 미스트를 뿌린 듯 옷이 축축하게 졌는다. 비를 맞는다기보다는 작은 물방울로 가득 찬 구름 속을 걷는 듯하다. 뿌연 대기 너머 빛 자락이 쏟아진다. 어깨 너비의 오솔길 끝자락에서 무지개관을 쓴 빅토리아 여왕이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토하고 있다. ‘모시 오아 툰야’, 본래의 이름대로 천둥 치는 연기를 내뿜는다. 갈수기에 들어가 유량은 우기에 비해 훨씬 적지만 스펙트럼이 압도적이다. 한눈에 담기 힘든 너비의 폭포를 파노라마 촬영하듯 가로로 훑는다. 절벽을 따라 걸으면 장대한 스케일의 폭포가 새로이 등장한다. 폭포 너머 폭포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웬걸, 장대한 폭포 끝자락에 위험천만하게도 사람들의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야트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햇볕을 쬐기도 한다.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는 100m가 넘는 깊은 골짜기로 가로막혀 있지만 폭이 좁아 충분히 내다볼 수 있다. 손을 흔들자 건너 관광객을 구경하던 사내가 무어라 외치며 격하게 팔을 휘젓는다. 그의 말 모양은 폭포의 용솟음에 삼켜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빅토리아 폭포


그날의 말 모양은 지금 나의 입모양과 닮았다. 거울처럼 그 자리에서 협곡 너머를 바라본다. 호기심 어린, 둥그렇게 뜬 눈이 낯설지가 않다. 설레는 마음으로 넘겨본 풍경 안에 내가 들어와 있다. 전혀 다른 온도와 감정을 품은 채.

-여기부터 헤엄쳐서 갈 거예요. 저쪽 바위까지 오세요.

보트에서 내린 지점부터 악마의 수영장까지는 스스로 헤쳐가야 한다. 10m 남짓한 거리로 그리 길지 않지만 정면으로 돌진하는 폭포수를 가로질러야 한다. 끝자락 가까이에는 이 이상의 접근을 금지하는 줄이 늘어져 있다. 떠밀려가도 내 몸 하나 지켜주지 못할 연약한 자태다. 건기라 그리 물살이 세지 않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짐바브웨 소년 넷이 앞장선다. 엄마 오리를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처럼 한 줄로 졸졸 따라간다. 하나가 뒤쳐지거나 주저하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준다. 물살에 밀리면 덜컥 겁을 집어먹는다. 제자리에서 버둥대다가 왼쪽 절벽을 보니 공포가 덮쳐온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머리를 수면 아래로 담근다. 수영장에서 유영하듯 자유형 자세로 진군한다. 끝에 다다랐는지 팔을 끌어 바위 위로 당겨준다. 한 명의 낙오 없이 무사히 도착한다.


거대한 폭포의 울음


악마의 수영장은 건기에만 생기는 바구니 모양의 천연 수영장이다. 물의 양이 줄어듬에 따라 바닥이 오목하게 파인 공간에 물이 고인다. 그렇다고 뜻대로 휘젓고 다닐 수는 없다. 수영장 바로 옆에는 100m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본류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가득 담은 바가지에서 뾰족한 주둥이 부분으로 물이 쏟아지듯 사방에서 모인 물줄기들이 서로 휘감고 등을 타며 곤두박질친다. 거대한 물살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광경은 폭포가 지르는 고함과 함께 온몸을 울린다. 자칫 팔을 뺐다가 힘에 밀려 손 쓸 틈 없이 휩쓸릴 수 있다. 덜덜 떨리는 몸을 햇빛에 말린다. 초가을 아침의 낮은 수온 때문인지 자연의 광기를 마주한 두려움 때문인지 까닭을 모르겠다. 공포를 지우지는 못하지만 한 구석으로 밀어낼 수 있는 여력은 두려움을 누르는 아름다움에 있다. 옆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폭포가 지배하는 영역 너머에 쌍무지개가 널따랗게 걸려있다. 바닥을 치고 뛰어오른 물방울들이 만들어낸 물안개로 반대편 절벽이 화장실 거울처럼 뿌옇게 흐려진다. 지상의 구름은 만능 캔버스가 되어 빛의 산란으로 그림을 그린다. 크게, 또 작게, 가깝게, 또 멀게, 각도를 이리저리 비튼다. 입맛대로 다채롭게 빛을 요리한다. 역동적인 폭포수의 낙화와 고고한 무지개의 조화는 이질적이면서도 한 쌍의 퍼즐 같다.


악마의 수영장에서는 쌍무지개와 질주하는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바위에 걸터앉아서 만세 해봐요.

바구니의 상단 테두리처럼 절벽 위에는 폭 1m가 채 되지 않는 좁다란 바위가 있다. 차마 뒤는 보지 못하고 손만 하늘로 뻗는다. 물이 흘러가는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간신히 체중을 지탱한다. 어깨너머를 보려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지레 겁먹어서 중심을 잃으면 영원히 안녕이다. 무지개와 폭주하는 폭포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어주려는 스태프의 열정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의 눈빛을 외면한다.

-엎드려서 슈퍼맨처럼 자세를 취해 보세요.

절벽 끝부분을 붙잡자 다른 스태프가 내 두 발목을 꼭 잡는다. 계속 앞으로를 외치며 몸을 허공으로 떠민다. 이미 어깨까지 밖으로 나왔는데 얼마나 더 가라는 건지 정신이 혼미하다. 공중에서 팔을 버둥대다 밑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민다. 건너편에서 협곡을 감상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아파트 40층 높이에서 물이 고인 돌바닥을 정면으로 마주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까마득한 깊이에 오싹 소름이 돋는다. 젖은 머리카락이 폭포수를 타고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발목을 놓으면 그대로 떨어질 테다. 붙잡는 손아귀의 힘이 느껴지지만 혼은 폭포의 비명과 함께 곤두박질친다. 정신을 앗아가는 사탄의 속삭임이 분명하다. 악마의 수영장, 이보다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건기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악마의 축복은 자연의 속살을 나의 피부로 체감하게 한다. 대자연과의 조우는 흉내 낼 수 없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고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대면한 한없이 작은 인간을 고개 숙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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