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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소나기, 빅토리아 폭포 샤워

@빅토리아 폭포, 잠비아와 짐바브웨

by 지수


-Three, two, one, OOH! AAH!

동그랗게 둘러선 7개의 패들이 면을 맞댄다. ‘우’ 소리에 가운데로 날을 내민다. ‘아’ 소리에 하늘로 날린다. 패들 날개는 손등을 대신하여 기합을 불어넣는다. 오늘 하루 충실한 손이 되어줄 녀석이다. 잠베지 강은 빅토리아 폭포 절벽을 뛰어내려 거대한 유량으로 합류한다.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 자리한 강은 협곡을 따라 거칠게 길을 바꾸며 내달린다. 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바닥과 벽면은 물살이 서로 엉키고 뛰 넘고 뒤집히게 한다. 험한 물보라는 안정적인 수로로 쓰일 기회는 막았지만 아드레날린이 풍기는 체험의 장을 허락한다. 크고 작은 급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곳에서는 세계 최고 난도의 래프팅을 경험할 수 있다.


협곡을 따라 물보라를 일으키는 잠베지 강


본격적인 래프팅을 하려면 산부터 타야 한다. 한 손에는 패들을 든 채 맨발로 가파른 바윗길을 내려간다. 빛 한 줌 허락하지 않는 울창한 숲길은 이끼로 가득하다. 미끄러지길 수 차례, 주변의 나무줄기와 돌덩이를 부여잡고 조심스레 발을 디딘다. 앞서 가던 친구가 미끄덩하더니 노를 놓친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손잡이 부분을 집어 건넨다. 손은 이미 땀범벅이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게 된다. 이거 장난이 아니다. 래프팅을 하기도 전에 천국행 급행열차를 타겠다. 50cm가 채 되지 않는 너비의 낭떠러지 앞에서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절벽은 족히 10m 높이에 육박하고 아래에는 잠베지 강이 회오리치고 있다. 벽면을 따라 두른 로프를 틀어잡고 반들거리는 바닥을 물질하듯 밀어낸다. 손으로 무릎으로 엉덩이로 한참을 기어 나오니 물결 자락이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여기까지 살아왔으니 래프팅쯤이야, 별 거 아니지 뭐.


드디어 출발하는 건가. 기대 어린 눈길로 대장 드라이버 PC에게 손을 흔든다. 그런데 웬걸, 그의 엄지손가락은 빅토리아 폭포를 가리킨다. 말도 안 돼, 어딜 간다고? 폭포 끝자락까지 웅덩이가 가로막고 있다. 둘러 가려면 물 파래로 덮인 바위 언덕을 몇 개나 올라야 한다. 벌써 다리에 생채기가 여럿 났다. 볼멘소리로 웅얼댄다.

-암벽 등반은 끝난 거 아닌가요? 차라리 헤엄치는 게 낫겠어요.

-수영할 수 있으면 바로 건너가도 돼요!

그냥 던진 말인데 바라던 답이었나 보다. 짙은 물빛으로 수심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건너까지 그리 멀지 않다. 호기롭게 선두를 자처한다. 웅덩이에 발을 집어넣자마자 입이 떡 하니 벌어진다. 고개를 돌리자 래프팅을 보조하는 카야커(kayaker)가 내 표정을 보고 배꼽을 잡는다. 가을 아침 날씨라 냉기 어린 수온을 예상했지만 얼음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담근 몸, 에라 모르겠다. 풍덩 입수한다. 머리를 울리는 한기에 몸서리 칠 겨를 없이 반대편으로 진격한다. 뒤따라오는 동료들의 커진 눈과 물 먹은 비명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웅덩이를 헤엄쳐 오니 빅토리아 폭포의 품안이다.


웅덩이 두어 개를 건너고 나니 몇 걸음 앞에서 빅토리아 폭포가 쏟아진다. 등을 떠미는 손에 밀려 진군한다. 영겁의 세월 동안 폭포수를 맞아온 자리는 도무지 쉬이 길을 내주지 않는다. 바닥은 돌이끼로 빽빽하게 덮여있고 양 옆 바위는 물 범벅 신세라 체중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미끄럽다. 등을 오른쪽 바위에 기대고 발끝을 왼쪽 바위틈에 고정한다. 드러누운 자세로 게걸음을 친다. 절벽 코앞에 다다르자 허공에서 추락하는 물기둥에 머리카락이 미역줄기처럼 달라붙는다. 찰나의 멈춤 끝에 다시금 물바가지를 퍼붓는다. 턱을 들어 입을 벌리자 치아를 때리던 물줄기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100m 위에서 곤두박질치는 폭포는 머리와 어깨를 치고 바닥을 튀어올라 다리를 적신다. 빅토리아 폭포 샤워! 멎었다 시차를 달리해 떨어지길 반복한다. 예측할 수 없는 무게와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낙화한다. 암벽을 타고 웅덩이를 헤엄치는 번거로움은 신선한 태초의 물방울에 간단히 씻겨 내려간다. 래프팅 식구는 시야를 가리는 물갈기를 닦으며 팔을 벌려 만세 한다. 입을 모아 폭포 안에서 함성을 지른다. 이미 우리는 한 팀이다.


뿌연 시야 너머로 대장 드라이버와 카야커를 찾는다. 일렬로 늘어선 행진의 끄트머리에서 흠뻑 젖은 그들을 발견한다. 하늘 위로 엄지를 치켜세운다. 좀 전의 툭툭 거리던 입매가 민망하다. PC는 해맑은 얼굴로 물미역이 된 우리에게 팔을 쭉 뻗어 쌍엄지로 화답한다. 매일같이 빅토리아 폭포 아래에서 짜릿함을 맛보고 흥분하는 여행자들을 목격할 테다.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겠지만 대자연의 진가를 엿보는 설렘을 함께 나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아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의 파도를 공유한다. 주고받는 눈빛과 웃음소리와 떨리는 어깨는 우리의 두터워진 믿음을 증명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손은 서로의 온기를 전한다. 래프팅 시작 전에 뱃미를 돌려 빅토리아 폭포로 향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폭포의 끝자락일지라도 우리가 밀어낼 물살의 모태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거대한 자연의 진면목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 속에서 움트는 경이로움과 터져 나오는 탄성과 맞잡은 손은 우리가 영영 잊지 못할 찬란한 시간을 함께 써 내려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Three, two, one, OOH! AAH!

동그랗게 둘러선 7개의 패들이 면을 맞댄다. 보트 중앙에 차곡차곡 쌓인 패들 날개들이 하나의 움직임으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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