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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에서 지옥까지, 잠베지 강 래프팅

@잠베지 강, 잠비아와 짐바브웨

by 지수


짙푸른 보트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허리께에 물살이 찰랑인다. 두 손으로 옆면을 힘껏 눌러 상체를 끌어올린다. 정수리부터 바닥을 향해 밀어 넣는다. 미끄덩한 착지로 기울어진 헬멧이 시야를 가린다. 재빨리 빨간색 구명조끼와 노란색 헬멧의 끈을 단단히 조인다. 한 칸에 두 명씩, 3줄로 앉는다. 맨 뒷자리는 대장 드라이버 PC의 공간이다. 그의 좌우에는 일반 패들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튼튼한 나무 노가 철제 지지대에 고정되어 있다. 선체 안쪽으로 몸을 쏙 넣자 PC는 단호하게 보트의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찔끔 걸터앉으니 엉덩이를 끝까지 내밀란다. 튕겨나가면 어떡하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구령에 맞추어 패들을 물속 깊이 찍었다가 감긴 물살을 뒤로 밀어낸다. 래프팅은 팀원 간의 호흡이 성패를 좌우한다. 왼쪽으로 간다는 신호에 오른편 동료들이 씩씩하게 노를 젓는다. 한쪽에만 힘을 실으면 좌우에 속력 차이가 생긴다. 빨라진 우현은 뱃머리를 좌현으로 향하게 한다. 래프팅에서의 방향 전환은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과 반대로 해야 하기에 드라이버의 사인에 집중하고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어야 한다.


- 급류에는 등급이 있어요. 래프팅이 가능한 레벨은 5까지죠. 오늘 우리는 22km를 달려 23번까지 갈 거예요.

세계 래프팅 대회가 열리는 이곳은 래프팅의 성지로 추앙받는다. 4박 5일이나 걸릴 만큼 강 곳곳에는 여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는 이중 첫날 코스를 체험하기로 한다. 빅토리아 폭포를 떠난 보트는 첫 번째 급류를 향해 떠밀려간다. 폭포수로 인해 불어난 강은 좁다란 바위틈을 파고들어 속도를 올린다.

- 앞서 가는 카약의 움직임을 주시하세요.

물방울 모양의 1인용 카약을 탄 나이 지긋한 스태프는 쫀쫀한 고무 재질의 덮개로 지붕을 덮는다. 빈 공간으로 강물이 들어오면 침수되기 십상이다. 카야커는 위아래로 날개 달린 패들을 좌우로 빠르게 저으며 물구덩이로 돌진한다. 물살에 뒤집힌 건 아닌지 고개를 쭉 빼고 두리번거리는데 노련하게 소용돌이를 빠져나온다. 래프팅 팀에서 스카우팅 카야커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는 다가올 급류의 모양과 길을 보여주어 예상의 진폭을 넓힌다. 구경도 잠시 보트를 둘러싼 물길의 압력에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쿵, 수면을 치받은 보트에 엉덩이가 붕 뜬다. 본격적인 래프팅의 시작이다.


래프팅의 성지, 잠베지 강에서의 래프팅


- 큰 급류에는 이름이 있어요. 네 번째 급류 이름은 나팔꽃, 모닝 글로리(morning glory)에요.

과연 물줄기는 푸른빛 꽃잎을 타고 내려와 가운데 자리한 깊숙한 구멍 속으로 미끄러진다. 4.5 등급에 걸맞은 가파른 경사에 보트가 요동친다. 엎드리라는 드라이버의 명령에 황급히 걸터앉은 몸을 숙여 선체 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소나기는 몸을 바짝 낮추었음에도 혼미한 정신을 훑고 지나간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손바닥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린다. 방심은 금물, 더 큰 파도가 밀려온다. 다섯 번째 급류는 무려 레벨 5,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한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천국행 계단(Stairway to Heaven)이다. 스카우팅 카야커가 갑자기 시야에서 뚝 사라진다. 수 초 뒤 물보라가 약하디 약한 카약 위를 덮친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침몰을 면한다. 물살의 아우성이 귓가를 맴돌 무렵 직감적으로 위기에 봉착했음을 절감한다.

- 수그려!!!

지금까지는 급류를 타는 중간에 몸을 낮추라고 했지만 이번은 다르다. 진입과 동시에 보트 위 일곱 명 모두가 지진 대피 훈련마냥 몸을 웅크린다. 가볍게 몸이 뜨는 것도 잠시, 수직 낙하한 배 위로 거대한 물벽이 부서진다. 앉아있었다면 분명 힘을 견디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갔을 테다. 뒤를 돌아보니 8m가량 되는 높이에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다. 식은땀이 몽글몽글 등을 타고 구른다.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천국행 계단을 구르고 나니 악마의 변기(Devil’s toilet bowl)로 빠진다. 이쯤 되니 천당이든 지옥이든 극구 사절이다. 숨 돌릴 새 없이 나부끼는 푸른 보트는 동화 속으로 점프한다. 일곱 번째 급류는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이다. 표류 끝에 다다른 거인국은 땅이 진동하고 세상이 뒤집히는 요지경이다. 거인의 손마디에 올려진 걸리버처럼 파르르 어깨가 떨린다.


꿀렁이던 수면이 숨을 고르더니 장판을 깐 것 마냥 빠빳해진다. 긴장이 턱 하니 풀리는데 웬걸, 무방비 상태로 머리부터 침몰한다. 콜록대며 들이마신 물을 토해낸다. 웃음소리로 한가득 무거워진 보트가 위아래로 들썩인다. 분명 대장 드라이버 PC의 소행이다.

- 모두 뛰어내리세요. 잠베지강을 피부로 느껴봐야지요.

수영을 못하는 몇몇을 제외하고 모두 물속으로 다이빙한다. 구명조끼 덕분에 몸이 둥둥 뜬다. 굳이 헤엄칠 필요가 없다. 잠베지 강의 재빠른 물살은 물길 모양 따라 우리를 힘 있게 밀어준다. 처음에는 엎드린 자세로 수영하다 몸을 세로로 쭉 일으켜 세운다. 저항을 많이 받기 마련인데 유속이 워낙 빨라 선 채로 떠밀려간다. 물안에서 타는 수상스키랄까. 잔잔한 표면과 달리 잠베지 강의 뱃속은 생동감 넘치게 펄떡이고 있다. 허리를 젖혀 드러눕는다. 정오의 햇볕은 닭살 돋은 팔과 허벅지를 포근하게 데운다. 구명조끼의 목받침은 베개가 된다. 가볍게 눈을 감고 팔다리를 벌려 잠베지 침대에서 낮잠을 청해 본다. 귓가를 찰랑이는 물결과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과 기분 좋게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이불을 덮은 듯 따땃한 햇살에 시간이 멎은 듯하다. 시선을 돌리니 친구들도 시에스타(siesta)에 흠뻑 빠져있다.


- 올라와요. 악어가 나올지도 몰라요.

열대의 강은 위험이 도사린다. 안온한 한때를 깨는 말마디에 급히 보트로 돌아간다. 과연 골짜기를 꺾자 성인 남성보다 덩치가 큰 악어가 콧구멍을 물밖에 내놓고 눈을 끔뻑이고 있다. PC가 나무 노로 수면을 내리치자 유유히 건너로 사라진다. 악어 출몰지역인가 보다. 태초의 생물들이 보일 때면 그는 열성적으로 가리켜 설명한다. 급류를 코 앞에 두고 바위틈에 정박한다.

-여기에서는 래프팅을 할 수 없어요. 레벨 6이거든요. 이름 그대로 자살행위(Commercial Suicide)나 다름없어요.

드라이버와 카야커는 텅 빈 배를 흐름 속으로 떠민다. 잠시 후 급강하하던 보트가 180도 뒤집히더니 수면 위로 고꾸라진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곳보다 더 무시무시한 게 있어요. 레벨 7이죠. 빅토리아 폭포!

악마의 수영장에서 경험한 가공할 만한 높이에 간담이 다시금 서늘해진다. 애써 기억을 몰아내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보드라운 휴식에 취해 위험천만한 잠베지 강의 민낯을 잊으면 안 된다. 이제 막 짜릿한 래프팅의 첫발을 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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